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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철’로 승부한다

‘소리없는 철’로 승부한다

위기로 허덕이고 있는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는 자사가 과거 개발한 ‘무소음’ 철강에 사운을 걸었다. 우리가 지금 타고 다니는 차에도 ‘조용한’ 철이 사용됐을지 모른다.
활달한 성격의 마이클 캘러헌(Michael Callahan ·64)은 17년 동안 식품회사 퀘이커 오츠(Quaker Oats), 가전업체 월풀(Whirlpool), 화공업체 FMC에서 임원으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은퇴를 포기하고 이따금 손대던 컨설팅 일까지 정리한 채 그렇고 그런 제조업체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Material Sciences)로 뛰어들었다.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는 2002년 매출 2억6,700만 달러에 세전 순익 220만 달러를 기록한 업체다. 일리노이주 엘크그로브빌리지에 위치한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가 1971년 설립된 것은 신소재 발명 업체들을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인수 업체 대부분의 실적은 신통치 못했다. 하지만 그 중 한 업체에 힘입어 84년 상장할 수 있었다. 차체 ·지붕재 ·차고 문 제작에 사용되는 철강 ·알루미늄을 신속히 도색하는 비법이 있었던 것이다. 코일 코팅은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 매출에서 3분의 2를 차지한다. 코일 코팅이란 철강공장에서 최고 22.7t에 이르는 강판 두루마리를 흡착성 화학물질로 애벌칠하고 분당 최장 213m까지 도색하는 작업이다.

금속 코일 도장이 그리 흥미로운 사업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수익을 올릴 수는 있었다. 지난 10여 년 사이 4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금속 도장 시장에 40여 개 경쟁사가 뛰어들었다. 시장조사업체 더커 월드와이드(Ducker Worldwide)는 그 동안 금속 도장업의 마진이 60% 하락했다고 추정했다. 지난 10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열린 한 회의에서 캘러헌은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없을 만큼 낮은 수준”이라고 한숨지었다.

캘러헌의 회사 되살리기 노력은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가 과거 개발했던 한 기술에 달려 있다. 두드리거나 덜커덩거리며 싣고 다녀도 소리가 나지 않는 이른바 ‘무소음’ 금속이 바로 그것이다. 80년대 초반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는 두 장의 얇은 강판 사이에 점착성 폴리머 도료를 0.025㎜ 두께로 바르기 시작했다. 진동에너지를 흡수하고 열을 발산하며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얼마 안 돼 기존 코팅 라인에서 점착성 폴리머 도료를 입힌 철강 코일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무소음 철강은 자동차 디스크 브레이크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없애고 컴퓨터 디스크 드라이브 소음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단점이라면 생산비용이 일반 철강의 2~4배로 비싸다는 것이다. 휘어짐이 떨어지고 두께가 다소 늘면서 중량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소음 철강의 매출액총이익률은 40%에 달한다. 기존 코일 코팅의 경우 18%다. 하지만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는 새로운 시장에 그리 활발히 진출하지 못했다. 다행히 렉서스(Lexus)의 빼어난 마케팅에 힘입어 90년대 초반 ‘조용한’ 자동차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중 98년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에 일대 호기가 찾아왔다. 포드(Ford)의 픽업 트럭 익스플로러 스포츠 트랙 계기판과 엔진 사이에 들어가는 철제 방화벽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포드의 신형 F150 픽업 오일팬에도 조용한 철제를 공급하는 계약이 성사됐다. 현재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는 ‘빅 3’와 각각 계약을 맺고 있다. 앞으로 150개가 넘는 새 계약을 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소음 철강의 출발은 매우 순조로운 편이었다.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인근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의 실험실 천장에 똑같은 듯한 포드 링컨 내비게이터(Lincoln Navigator) 계기판 패널 두 개가 매달려 있다. 하지만 하나는 일반 철, 다른 하나는 무소음 철로 만든 것이다. 두 패널 모두 에너지 변환기를 통해 스테레오에 연결돼 있다. 거대한 스피커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이다. 재즈 음악을 틀자, 철제 패널이 진동하며 크고 작은 소리가 울렸다.

동일 음량을 입력했지만 무소음 철강 패널에서는 소음기가 장착된 것처럼 음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는 특정 진동 주파수와 주변 온도에 맞게 제작된 60여 등급의 무소음 철강을 판매하고 있다.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는 6억 달러에 이르는 차량용 무소음 철강재 시장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최근 은퇴한 전 최고기술책임자(CTO) 에드워드 비드라(Edward Vydra)는 최대 경쟁자로 자동차 디자이너를 꼽을 수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디자이너가 소음 없는 자동차를 설계해낼 경우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는 그것으로 끝장이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의 가장 좋은 친구다.”

자동차 메이커들로 하여금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의 신기술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게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자동차 디자인과 제작공정을 개편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제너럴 모터스(GM)의 경우 2004년형 ‘캐딜락 CTS’ 세단과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SRX’에 무소음 철강 방화벽을 설치하기 위해 기존 철강 덧판, 아스팔트 커버, 고무판까지 제거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무소음 철강의 높은 가격 부담을 벌충하고 차량 한 대당 제조원가도 8~10달러 줄일 수 있었다.

GM의 캐딜락 소음 ·진동 연구 담당 램 크리냄은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가 접근해 왔을 때 ‘영업사원이 아닌 전문 엔지니어와 얘기하고 싶다’는 말부터 꺼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런 점에서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가 2001년 이래 채용해온 영업 ·마케팅 인력 21명 전원이 공학 전공자인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몇몇은 경영학 석사 혹은 박사 학위까지 소지하고 있다.

불굴의 집념도 있어야 한다. 모든 컴퓨터 모델링 ·용접 테스트 ·내구력 시험까지 끝낸 뒤에도 자동차 제조업체와 한 건을 계약하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캘러헌에게 그럴 여유는 없을 듯 싶다. 2002년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의 무소음 철강 매출은 8,400만 달러였다. 2000년 6,600만 달러보다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매출 증가는 주로 웨스턴 디지털(Western Digital)과 맺은 독점 공급 계약에서 비롯됐다. 웨스턴 디지털은 무소음 철강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의 X박스(Xbox) 비디오 게임기와 티보(TiVo) 비디오 리코더용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커버를 제작하고 있다.

조만간 자동차 메이커들로부터 더 많은 주문이 들어오지 않을 경우 캘러헌은 파산신청을 해야 할 판이다.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의 주식은 최근 9.80달러에서 거래되고 있다. 1년 전보다 23% 하락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 앤 푸어스(S&P)500 주가는 19% 상승했다.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 지분 13%를 보유하고 있는 자산관리 ·금융 서비스 가벨리 애셋 매니지먼트(Gabelli Asset Management)는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의 사업 부문들이 분할 매각될 경우 주당 15달러까지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머티어리얼 사이언시스에는 LCD용 전자센서를 생산하는 사업부도 있다.
캘러헌은 “현재 모든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 밖에는 무소음 철강처럼 침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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