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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장도 농업인데 웬 규제가 그리 많아…”

“양계장도 농업인데 웬 규제가 그리 많아…”

김홍국 회장(왼쪽)이 양계장에서 닭을 검사하고 있다.
김홍국(47) ㈜하림 회장의 첫마디는 “정말 어려웠다”는 말이었다. 실제 지난 몇 달 동안 몰아닥친 조류독감 파동으로 치킨집·통닭집·삼계탕집 등 닭고기 전문 음식점들은 하루하루를 살엄음판 위에서 살았다. 하림을 비롯한 닭고기 공급업체 역시 죽음 일보 직전까지 내몰렸다. 국내 최대의 닭고기 생산업체인 하림은 한때 매출이 평소의 30% 아래로 떨어졌다. 공장은 멈춰섰고 운전자금도 바닥났다. 업계 3위인 체리부로는 끝내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2월10일 부도가 났다. 그러나 체리부로의 부도는 업계에 보약이 됐다. 닭고기 산업을 이대로 죽일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익혀 먹으면 조류독감 할애비라도 걱정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2월20일 전북 익산의 하림 공장을 방문해 “닭고기 참 맛있네요”라고 한마디 던졌다. 의구심을 품던 소비자들의 닭고기 소비가 늘어나면서 업계는 거의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 하림도 조류독감 이전 수준인 하루 30만수 이상을 가공처리하고 있다. 국내 육계 산업을 이끌고 있는 김홍국 회장은 ‘닭고기 업계의 정주영’ 같은 인물이다. 1978년 고등학교 졸업 직후 육계 수직계열화 사업에 뛰어들어 올해 매출 5천4백26억원(예상)으로 시장점유율 1위(약 24%) 업체를 키워냈다. 그는 한번 마음먹은 것은 불도저처럼 해내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5월 익산 공장 내 도계공장의 전소, 조류독감 파동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1등 자리를 지켜냈다. 오는 4월1일에는 익산공장에 새 도계공장을 완공해 ‘닭고기 1등업체’ 자리를 더욱 굳힌다는 계획이다. 그는 조류독감 파동과 관련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발생한 조류독감 파동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은 국내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면서 “그러나 자살한 사람이 업계에 두 명이나 있는데, 이는 조류독감이 아닌 ‘언론독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언론의 과잉보도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김회장은 조류독감 같은 외부 요인에 쉽게 흔들리는 국내 닭고기 산업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국제경쟁력을 확고하게 갖추지 못해 외부 요인에 쉽게 휘둘린다는 얘기다. 수입 닭고기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경쟁력 확보는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닭고기 소비가 많이 늘고 있는데 조류독감 여파는 완전히 가라앉았는지요. “정말 어려웠습니다. 두 달 만에 끝나서 다행이지 6개월 정도 지속됐다면 닭고기 관련 산업이 완전히 붕괴됐을 겁니다. 하림의 경우 하루 10억원이 들어와야 돌아가는데, 2억원만 들어온 적도 있었습니다. 운영비가 턱없이 모자랐지요.”

피해가 예상외로 컸는데, 닭고기 업계가 지닌 구조적 문제점은 없었나요. “유통상의 문제점도 있었고, 이 산업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도 있었지요. 일단 유통상의 위생 문제 때문에 조류독감 파장이 더 커진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유통 과정의 위생을 더 투명하게,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현재 HACCP(위해요소 중점관리 기준)를 공장에 적용하고 있어요. 위해요소를 체크하는 겁니다. HACCP를 통해 위해요소가 없도록 공장에서 검사를 받은 뒤 제품이 나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HACCP를 받아 포장이 돼 나가도 중간도매상들이 포장지를 뜯으면 이게 어느 회사 제품인지, 국산인지 수입품인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런 유통구조를 갖고 있어요.”

경쟁국은 우리와 어떻게 다릅니까. “미국은 공장에서 HACCP를 받아 위생적으로 도계하면 제품에 붙은 이름표가 소비자에게 끝까지 갑니다. 중간도매상이 포장지를 찢으면 이름표가 떨어지는데 그러면 다시 국가에서 검사를 받게 돼 있어요. 우리나라는 그런 조항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중간도매상에게 가면 이름표가 남아 있지 않아요. 이를 투명화하려면 생닭도 끝까지 포장 상태로 유통이 돼야지요. 포장이 해체되면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영세업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있어요. 이는 결과적으로 닭고기 산업을 죽이는 겁니다.”

유통 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조류독감 피해가 커졌다는 뜻이네요. “그렇습니다. 투명하면 국민들은 조류독감이 와도 안심하고 닭을 사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업계도 흔들리지 않고요.”

업계 피해는 얼마나 됩니까. “우리 업계라고 하면 닭 키우는 쪽만 생각하면 안 돼요. 가공하는 사람, 사료·닭고기 운반업자, 판매하는 외식업자들도 포함됩니다. 외식 체인점이 전국에 4만개나 되고, 여기 종사자 12만명만 포함해도 업계 전체적으로 80만명이 있습니다. 피해액은 7천억원으로 추산하고 있어요.”

닭고기 산업에서 더 고쳐야 할 부분이 있나요. “문제점은 크게 보아 정부 규제와 불합리한 경영구조 두 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닭고기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생산 코스트가 높아져, 조류독감 파동 때 더 심하게 타격받은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 닭고기 산업이 잘 되려면 첫째 정부 규제가 완화돼야 합니다. 둘째로는 경영구조가 개선돼야 합니다.”

규제 완화는 산업계 전체의 현안인데 닭고기 산업에서 특히 문제가 되나요. “예를 들어 양계장 축사를 지을 때 까다로운 국토이용계획 변경허가를 받아야 돼요. 닭이 지금 농업입니까, 공업입니까? 농업 아닙니까? 그런데 1만평 이상의 국제경쟁력을 갖춘 양계장을 지으려면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별도의 허가 없이 농업 지역에 양계장을 그냥 짓습니다. 농장에다 농업을 하려고 짓는 거라서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이게 우리와 달라요. 국내 규제는 경쟁력 약화와 직결돼 있어요.”

닭고기 육가공 관련 법규도 까다롭다면서요. “우리나라 가스나 연료 관련법이 그래요. 닭고기 생산 코스트를 낮추기 위해 전 세계가 설비집약적 대량생산 체제로 닭고기를 생산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대형 축사 건물을 짓고 그 안의 온도를 잘 맞춰 닭을 키워야 합니다. 온도는 물론 가스로 맞추지요. 그런데 최고 번화가인 종로의 가스법이나 시골 농장의 가스법이 똑같아요. 그러나 미국 같은 경쟁국은 다릅니다. 미국 농촌에서는 2t짜리 가스, 3t짜리 가스를 마치 우리가 50㎏짜리 가스를 사고 팔듯 처리합니다. 한데 우리나라는 자격증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는 주택의 세율하고, 닭이 사는 양계장의 세율하고 건축 관련 세율이 같아요. 그런데 축사를 지을 때 세금을 안 받는 나라도 많아요. 우리도 편리하게 양계장을 짓고 비용이 안 들어갈 수 있게 경쟁국만큼까지만이라도 규제를 완화해 줘야 합니다.”

경영구조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직경 50㎞ 단지 내에 양계부터 도계·가공까지 한곳에서 복합화시키는, 이른바 통합경영체제가 시급합니다. 물류비 때문입니다. 보통 양계장에서 닭을 키워 도계장·가공공장까지 올 때 드는 물류비와 가공 뒤 시장으로 나가는 물류비를 비교하면, 가공 이전에 드는 물류비(㎏당 약 1백50∼1백70원)가 가공 이후 물류비(약 30원)의 5배나 됩니다. 경영구조가 개선되면 물류비가 반으로 줄고, 닭고기 생산원가는 10% 다운될 겁니다.”

이런 문제점이 해결된다면 어떤 효과가 일어납니까. “규제 완화와 경영구조 개선, 이 두 가지가 실현되면 닭고기 생산 코스트가 최소 25% 이상 다운됩니다. 현재 국내 닭고기 생산원가가 ㎏당 1천원인데 반해, 미국은 7백원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것만이 우리 닭고기 산업이 살길입니다. 규제 완화에 돈 들어가는 거 아닙니다. 경영구조 개선도 돈 들어가는 거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국내 닭고기 산업의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세계 추세를 보면 식량이 탄수화물에서 단백질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백질의 품질은 소·돼지·닭 중 닭고기가 단연 최고입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닭고기 소비가 늘 수밖에 없습니다.한국은 현재 1인당 연 8㎏을 소비하고 있는데 일본 수준인 15㎏까지는 갈 것으로 봅니다. 국내 닭고기 시장도 매년 10%씩 꾸준히 커지고 있습니다.”

닭고기 산업의 경우 최근 가공육 비중이 커지고 있지요. “네덜란드 같은 경우 전체 농산물의 60%가 가공식품입니다. 옛날에는 빵을 집에서 구워 먹었지만 지금은 99%가 공장에서 만든 빵을 사먹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닭고기 산업도 육가공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업계나 하림의 발전방향과 비전은 무엇입니까. “하림이나 우리 업계의 비전은 육가공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단백질 식량인 닭고기를 하림이나 업계가 책임지겠다는 얘기입니다. 하림의 경우 가공육 비중이 현재 20%인데 이를 3∼5년 안에 50%까지 늘릴 것입니다. 부분육 시장도 키워서 현재 매출 비중 30%를 5년 내에 80%로 만들 겁니다.”

미국·태국 등 외국산 닭고기 수입에 맞설 만한 대책은 있습니까. “조류독감 같은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외국산 닭고기 점유율이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현재 국내 시장의 25%를 차지하는 수입 닭 비중이 3∼4년 안에 40%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수입 닭의 가격경쟁력 때문이지요. 이에 대한 대책은 생산원가를 경쟁국 수준으로 내리는 겁니다. 또 품질과 유통·위생 수준을 경쟁국 수준으로 높여야 합니다.”

김홍국 ㈜하림 대표이사 회장 1957년 전북 익산 生
이리농림고·전북호원대 경영학과·전북대 경영대학원 卒
2001년 원광대 명예경제학 박사
86년 하림식품 대표이사 사장
90∼2001년 하림 대표이사 사장
96∼2003년 한국계육협회 회장
2002년∼現 하림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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