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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조차 거세당한 ‘왕의 여자들’

욕망조차 거세당한 ‘왕의 여자들’

지난 3월 종영된 MBC의 드라마 ‘대장금’은 평균 5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공전의 히트작이었다.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궁녀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는 점에 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궁녀는 ‘왕의 여자’로서 음모와 질투에 사로잡힌 탐욕의 화신으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장희빈’이나 ‘장녹수’ 등 조선의 대표적인 ‘팜므 파탈’(妖婦)이 궁녀였던 까닭이 클 것이다. 하지만 궁녀 대장금은 요리와 의술이라는 전문분야에서 자기 성취를 이뤄가는 현대적 여성상을 제시하면서 능동적 여성으로서의 궁녀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왕실문화 전문가인 신명호 부경대 교수가 지은 ‘궁궐의 꽃, 궁녀’의 출간 동기도 ‘대장금’의 인기여파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궁녀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베일에 감춰졌던 궁녀의 생활과 문화, 성과 사랑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궁녀로 선발돼 입궁하는 과정에서부터 성장과정, 궁녀들 간에 성행하던 동성애, 왕과의 관계, 말년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조선 궁녀의 삶을 사료에 근거해 생생하게 복원해내고 있다. 흥미로운 정보들도 많다. 백제 의자왕의 ‘3천 궁녀’는 허구일 뿐 기록도 없을 뿐더러 조선의 궁녀가 5백∼6백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춰볼 때 1천명 미만이었을 것이라 추론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대표적인 궁녀들에 대한 열전이다. 가령 세종과 사랑에 빠져 후궁이 됐던 신빈 김씨의 경우는 ‘조선판 신데렐라’다. 그녀는 세종의 자녀 여덟명을 낳았으면서도 왕비인 소헌왕후와의 사이도 기이할 정도로 좋았다. 중국과 일본에서 궁녀가 됐던 조선 여인들의 기구한 삶도 눈길을 끈다.

명나라에 공녀로 보내져 영락제의 총애를 받았던 청주 한씨는 황제가 죽자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순장을 당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궁녀가 됐던 오따 줄리에의 삶도 비극적이다. 김옥균을 도와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혁명가 궁녀 고대수, 권력의 화신이었던 김개시와 장녹수도 등장한다.

저자는 궁녀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을 개탄한다. 봉건시대의 왕은 “인간의 심층에 뿌리박힌 동물적 욕망과 악마성을 극복한 온전한 인간”으로서 숭배를 받았기 때문에 왕의 여자인 궁녀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 신성성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조선시대의 사관들은 궁녀에 대한 기록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왕의 권위를 보존하려 했다는 것이다. 궁녀는 존재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그 존재를 부인당해야만 했다. 궁녀는 왕에 의해 선택된 소수를 제외하고는 욕망조차도 거세당해야만 했다. 이 책이 궁녀의 삶과 생활에 대한 충실한 해설서이면서 ‘궁중 여인 수난사’로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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