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룰라 대통령
딜레마에 빠진 룰라 대통령
Feeling the Pressure
지난 5월 9일 뉴욕 타임스지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음주벽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베테랑 특파원 래리 로터 기자가 쓴 그 기사는 브라질에서 인기있는 지도자의 음주 습관을 슬쩍 짚고 넘어갔지만 당사자인 룰라 대통령은 발끈했다. 브라질 정부는 재빨리 그 기사를 “명예를 훼손하는 거짓 황색 저널리즘”으로 규정지었다. 주미 브라질 대사도 뉴욕 타임스에 짤막한 항의서한을 보냈다. 사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5월 10일 루이스 파울루 바레투 브라질 법무장관 대행은 아마도 룰라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로터 기자의 비자를 즉각 취소하고, 그에게 8일 내로 브라질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그 다음엔 법률가·헌법학자·언론인 및 외교관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브라질 신문들은 정부의 가혹한 대응에 대해 전횡적이고 권의주의적이라고 비난했다. 룰라의 의회 내 적들은 쾌재를 불렀다. 사민당 당수 아르투르 비르질리우는 “이것은 집권 1년 6개월을 맞은 정권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라고 선언했다. 결국 이번 소란은 외교적으로 결말났다. 로터는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는 편지를 룰라에게 보냈다. 편지 내용은 발언을 취소하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룰라는 그 편지를 계기로 로터에게 브라질 체류를 허용하는 조치를 내렸다.
단기간 벌어진 이 우스꽝스러운 촌극은 브라질 정부가 새로 갖게 된 조바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예다. 노조 지도자로 출발해 실용주의자로 변신한 룰라는 짧은 기간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
수출은 큰 폭으로 늘었고, 인플레율은 6% 이하로 떨어졌으며, 주요한 연금·세제 개혁 법안은 통과됐고, 정부도 현재 국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데 필수적인 흑자 예산 실현을 위해 긴축 재정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룰라 정부는 출범 때부터 힘든 과제를 안고 탄생했다. 그는 재정 감축을 선거 구호로 내세워 부동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동시에 그의 승리는 일자리 창출, 임금 인상, 의료 혜택 확충을 갈구하는 모든 평범한 브라질인에 대한 구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같은 균형을 이루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룰라는 5월 초 비공개로 진행된 고위 정책회의에서 “나는 그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선거운동 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며 “정부의 계획들도 그같은 약속과 보조를 맞추기 힘들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통령으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기대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그런 도움을 제공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의 이같은 변신을 실감하고 있다. 상파울루 경영대학원 Ibmec의 경제학자 에두아르두 지아네티는 “국민의 좌절감은 커지고 있고, 정부는 수세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룰라의 딜레마는 단순하면서도 심각하다. 상파울루의 컨설팅 회사 A. C. 파스토레 & 아소시아도스가 얼마 전 표현한 것처럼 그는 브라질의 경제 전망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시기에 복지 예산을 지나칠 정도로 줄인 데 대해 “강력한 정치적 비난”을 받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운신의 폭도 좁아지고 있다.
브라질 경제는 올해 3.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문제는 그것이 12%에 이르는 실업률을 떨어뜨리거나, 새로운 교량·도로·병원을 건설하거나,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유치할 수 있을 정도로 건실한 성장이 아니란 점이다. 올해 브라질의 FDI는 1백30억달러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질의 대규모 외채는 관리가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항상 예측불가능한 금리에 연동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잦아지면서 브라질 국채에 벌써부터 높은 프리미엄이 붙어 투자자들은 결국 브라질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을 매도하고 달아날지 모른다. 또 채권국들이 브라질의 채무 상환을 연기해주는 대신 갈수록 높은 금리를 요구하면서 브라질 정부는 수출 증가로 인한 달러의 기록적인 유입에도 불구하고 복지 프로그램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들 것이다. 사실 브라질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룰라 집권 초기의 72%에 비해 크게 낮은 35%까지 하락했다.
빈곤과 실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브라질이나 남미에선 새로운 게 아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보는 것과 같이 긴축재정까지 겹치게 되면 사회적 불안도 급속히 심화된다. 안토니우 팔루시 브라질 재무장관은 정부의 지출을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미 이해 당사자들의 압력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과격한 농민단체인 ‘땅없는 노동자 운동’은 지난 4월 브라질 정부가 농지 개혁을 가속화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해 대규모 목장과 농장들에 대거 침입하는 ‘붉은 4월’운동에 돌입했다. 그러자 지주들이 모래주머니로 농장 정문을 차단하고 경찰의 도움을 호소하고 나서자 농촌개발부는 농지 개혁에 대한 보상금으로 약 5억7천만달러를 긴급 투입했다.
룰라가 이끄는 노동자당(PT)의 중심 세력인 공적 부문 근로자들도 이젠 큰 목소리로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고 나섰다. 연방 경찰·보건 종사자·영농학자 및 공무원의 거의 절반이 파업에 참여해 통관 업무가 엄청난 지장을 받고 있으며, 농작물 연구는 중지됐고, 많은 보건소들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뉴욕의 금융 컨설팅 회사 ‘아이디어 글로벌’의 남미 연구 책임자인 리카르도 아모림은 “너도 나도 정부에 압력을 가해 양보를 얻어낼 기회를 노리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정치적 아젠더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표결이 있을 때마다 룰라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당 소속 의원들 간의 단결을 호소해야 하는 의회에서조차도 바로 좌파 의원들이 정부의 최대 장애물로 등장했다(좌파라면 브라질 정부의 최대 지지 세력이어야 마땅하다). 룰라의 의회 내 적들은 5월 초 PT 이반자들의 부추김에 힘입어 대통령의 빙고 게임장 폐쇄령을 뒤집었다. 지난 3월 불법 자금을 세탁하는 장소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폐쇄 조치를 강행한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반기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의원들은 한달 내내 국가의 최저임금을 한달에 7달러 가량 인상토록 하는 협정을 체결하느라 그토록 부산을 떨고도 그것을 더 높이기 위해 공모 중이다. 브라질 정부는 그렇게 될 경우 정부 예산의 고갈을 우려한다. 상파울루의 MCM 컨설팅 회사에서 정치 분석가로 일하는 아마우리 데 수자는 “정부는 매번 패배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룰라는 임기 첫해 동안은 사실상 의회를 장악했다. 강경 좌파 세력들은 정부의 보수적 노선에 불만을 표시했지만 PT 집권으로 자신들의 입지가 강화되길 기대하며 대체로 평온을 유지했다. 그러나 한 뇌물수수 스캔들(박스 기사 참조)을 조사하자는 의원들의 초당적 요구를 정부가 거부하자 좌파 세력의 지지도 올 초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룰라를 지지하던 의회 내 부동층 의원들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부의 이같은 약점을 인식하게 되면서 표류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PT 내 유력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룰라의 핵심 측근들의 경륜 부족 탓이 크다. 그들 중 고위직을 지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 한명(한때 시장을 지낸 팔루시)뿐이다. 한때 연방 의원을 지낸 룰라 자신도 노조나 PT를 능가하는 조직을 통솔해본 적이 없다. 정치 분석가 수자는 “그들은 정말 순진무구한 상태에서 정권을 잡았고, 정치는 실전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룰라는 부하들을 위해 훌륭한 모범을 보인 적도 없다. 한때 제철소 노동자였던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흡사 팝스타처럼 군중 사이로 뛰어들거나 사람이 모인 곳에서 장황하게 지껄이는 등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면모를 버리지 않았다.
룰라는 자신이 마치 위기 탈출의 명수인양 어떤 난국도 타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포퓰리즘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정치 문화를 탈피할 필요성 때문에 그의 임무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이미 세차례의 큰 패배를 맛본 그는 자본주의자들을 타도하자는 식의 빈정대는 표현을 포기할 줄도 알고, 당에 대해서도 자신을 따르라고 설득 중이다. 그러나 PT는 영국·독일·스페인 등 유럽 사회주의 진영의 새로운 노선을 차용하면서도 그저 변신 속도만 높였을 뿐이다. 경제학자로 한때 재무장관을 지낸 마일순 다 노브레가는 그 나라들은 “중도로 이동하는 데 20∼30년이 걸렸지만 룰라는 PT의 진로를 순식간에 바꿨다”고 말했다.
이같은 변화는 브라질의 정치 문화를 혼란에 빠뜨렸다. 비록 정부가 기본적인 시장 개혁에 착수했지만 국가의 영향력은 아직도 크기 때문에 투자자들로선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일례로 지난해 PT 관리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전화 및 에너지 회사들이 요금을 인상하자 격분했다. 관리들은 정부가 정책 결정권을 외부 인사들에게 ‘아웃소싱’했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그 기관들은 자신들의 의사 결정권은 보유하게 되지만 모호한 관리 계약에 따라 아직도 ‘목표액’을 달성하도록 돼 있다. 지아네티는 “브라질의 제도적 환경은 투자에 유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혼란된 모습에 대해 브라질 정부는 PT가 여러 가지 목소리가 혼재된 복수 정당이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해명을 늘어놓았다. 그보다는 PT가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 나을 것이다. 브라질의 저명한 정치학자 볼리바르 라모니에르는 브라질 국민 모두가 룰라 정권 출범과 함께 좌파의 낡은 원칙이 깨졌음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버릴 땐 재빨리 다른 이념을 채택할 필요가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아직도 룰라 정권은 브라질을 현대적인 자본주의 국가로 끌고가야 할지를 두고 확신이 서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만일 브라질이 최근 몇년 간 거둔 경제적 성과를 착실히 다져나가기를 바란다면 선택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문제는 이 나라의 정치 문화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지 여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5월 9일 뉴욕 타임스지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음주벽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베테랑 특파원 래리 로터 기자가 쓴 그 기사는 브라질에서 인기있는 지도자의 음주 습관을 슬쩍 짚고 넘어갔지만 당사자인 룰라 대통령은 발끈했다. 브라질 정부는 재빨리 그 기사를 “명예를 훼손하는 거짓 황색 저널리즘”으로 규정지었다. 주미 브라질 대사도 뉴욕 타임스에 짤막한 항의서한을 보냈다. 사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5월 10일 루이스 파울루 바레투 브라질 법무장관 대행은 아마도 룰라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로터 기자의 비자를 즉각 취소하고, 그에게 8일 내로 브라질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그 다음엔 법률가·헌법학자·언론인 및 외교관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브라질 신문들은 정부의 가혹한 대응에 대해 전횡적이고 권의주의적이라고 비난했다. 룰라의 의회 내 적들은 쾌재를 불렀다. 사민당 당수 아르투르 비르질리우는 “이것은 집권 1년 6개월을 맞은 정권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라고 선언했다. 결국 이번 소란은 외교적으로 결말났다. 로터는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는 편지를 룰라에게 보냈다. 편지 내용은 발언을 취소하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룰라는 그 편지를 계기로 로터에게 브라질 체류를 허용하는 조치를 내렸다.
단기간 벌어진 이 우스꽝스러운 촌극은 브라질 정부가 새로 갖게 된 조바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예다. 노조 지도자로 출발해 실용주의자로 변신한 룰라는 짧은 기간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
수출은 큰 폭으로 늘었고, 인플레율은 6% 이하로 떨어졌으며, 주요한 연금·세제 개혁 법안은 통과됐고, 정부도 현재 국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데 필수적인 흑자 예산 실현을 위해 긴축 재정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룰라 정부는 출범 때부터 힘든 과제를 안고 탄생했다. 그는 재정 감축을 선거 구호로 내세워 부동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동시에 그의 승리는 일자리 창출, 임금 인상, 의료 혜택 확충을 갈구하는 모든 평범한 브라질인에 대한 구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같은 균형을 이루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룰라는 5월 초 비공개로 진행된 고위 정책회의에서 “나는 그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선거운동 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며 “정부의 계획들도 그같은 약속과 보조를 맞추기 힘들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통령으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기대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그런 도움을 제공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의 이같은 변신을 실감하고 있다. 상파울루 경영대학원 Ibmec의 경제학자 에두아르두 지아네티는 “국민의 좌절감은 커지고 있고, 정부는 수세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룰라의 딜레마는 단순하면서도 심각하다. 상파울루의 컨설팅 회사 A. C. 파스토레 & 아소시아도스가 얼마 전 표현한 것처럼 그는 브라질의 경제 전망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시기에 복지 예산을 지나칠 정도로 줄인 데 대해 “강력한 정치적 비난”을 받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운신의 폭도 좁아지고 있다.
브라질 경제는 올해 3.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문제는 그것이 12%에 이르는 실업률을 떨어뜨리거나, 새로운 교량·도로·병원을 건설하거나,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유치할 수 있을 정도로 건실한 성장이 아니란 점이다. 올해 브라질의 FDI는 1백30억달러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질의 대규모 외채는 관리가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항상 예측불가능한 금리에 연동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잦아지면서 브라질 국채에 벌써부터 높은 프리미엄이 붙어 투자자들은 결국 브라질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을 매도하고 달아날지 모른다. 또 채권국들이 브라질의 채무 상환을 연기해주는 대신 갈수록 높은 금리를 요구하면서 브라질 정부는 수출 증가로 인한 달러의 기록적인 유입에도 불구하고 복지 프로그램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들 것이다. 사실 브라질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룰라 집권 초기의 72%에 비해 크게 낮은 35%까지 하락했다.
빈곤과 실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브라질이나 남미에선 새로운 게 아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보는 것과 같이 긴축재정까지 겹치게 되면 사회적 불안도 급속히 심화된다. 안토니우 팔루시 브라질 재무장관은 정부의 지출을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미 이해 당사자들의 압력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과격한 농민단체인 ‘땅없는 노동자 운동’은 지난 4월 브라질 정부가 농지 개혁을 가속화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해 대규모 목장과 농장들에 대거 침입하는 ‘붉은 4월’운동에 돌입했다. 그러자 지주들이 모래주머니로 농장 정문을 차단하고 경찰의 도움을 호소하고 나서자 농촌개발부는 농지 개혁에 대한 보상금으로 약 5억7천만달러를 긴급 투입했다.
룰라가 이끄는 노동자당(PT)의 중심 세력인 공적 부문 근로자들도 이젠 큰 목소리로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고 나섰다. 연방 경찰·보건 종사자·영농학자 및 공무원의 거의 절반이 파업에 참여해 통관 업무가 엄청난 지장을 받고 있으며, 농작물 연구는 중지됐고, 많은 보건소들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뉴욕의 금융 컨설팅 회사 ‘아이디어 글로벌’의 남미 연구 책임자인 리카르도 아모림은 “너도 나도 정부에 압력을 가해 양보를 얻어낼 기회를 노리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정치적 아젠더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표결이 있을 때마다 룰라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당 소속 의원들 간의 단결을 호소해야 하는 의회에서조차도 바로 좌파 의원들이 정부의 최대 장애물로 등장했다(좌파라면 브라질 정부의 최대 지지 세력이어야 마땅하다). 룰라의 의회 내 적들은 5월 초 PT 이반자들의 부추김에 힘입어 대통령의 빙고 게임장 폐쇄령을 뒤집었다. 지난 3월 불법 자금을 세탁하는 장소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폐쇄 조치를 강행한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반기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의원들은 한달 내내 국가의 최저임금을 한달에 7달러 가량 인상토록 하는 협정을 체결하느라 그토록 부산을 떨고도 그것을 더 높이기 위해 공모 중이다. 브라질 정부는 그렇게 될 경우 정부 예산의 고갈을 우려한다. 상파울루의 MCM 컨설팅 회사에서 정치 분석가로 일하는 아마우리 데 수자는 “정부는 매번 패배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룰라는 임기 첫해 동안은 사실상 의회를 장악했다. 강경 좌파 세력들은 정부의 보수적 노선에 불만을 표시했지만 PT 집권으로 자신들의 입지가 강화되길 기대하며 대체로 평온을 유지했다. 그러나 한 뇌물수수 스캔들(박스 기사 참조)을 조사하자는 의원들의 초당적 요구를 정부가 거부하자 좌파 세력의 지지도 올 초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룰라를 지지하던 의회 내 부동층 의원들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부의 이같은 약점을 인식하게 되면서 표류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PT 내 유력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룰라의 핵심 측근들의 경륜 부족 탓이 크다. 그들 중 고위직을 지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 한명(한때 시장을 지낸 팔루시)뿐이다. 한때 연방 의원을 지낸 룰라 자신도 노조나 PT를 능가하는 조직을 통솔해본 적이 없다. 정치 분석가 수자는 “그들은 정말 순진무구한 상태에서 정권을 잡았고, 정치는 실전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룰라는 부하들을 위해 훌륭한 모범을 보인 적도 없다. 한때 제철소 노동자였던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흡사 팝스타처럼 군중 사이로 뛰어들거나 사람이 모인 곳에서 장황하게 지껄이는 등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면모를 버리지 않았다.
룰라는 자신이 마치 위기 탈출의 명수인양 어떤 난국도 타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포퓰리즘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정치 문화를 탈피할 필요성 때문에 그의 임무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이미 세차례의 큰 패배를 맛본 그는 자본주의자들을 타도하자는 식의 빈정대는 표현을 포기할 줄도 알고, 당에 대해서도 자신을 따르라고 설득 중이다. 그러나 PT는 영국·독일·스페인 등 유럽 사회주의 진영의 새로운 노선을 차용하면서도 그저 변신 속도만 높였을 뿐이다. 경제학자로 한때 재무장관을 지낸 마일순 다 노브레가는 그 나라들은 “중도로 이동하는 데 20∼30년이 걸렸지만 룰라는 PT의 진로를 순식간에 바꿨다”고 말했다.
이같은 변화는 브라질의 정치 문화를 혼란에 빠뜨렸다. 비록 정부가 기본적인 시장 개혁에 착수했지만 국가의 영향력은 아직도 크기 때문에 투자자들로선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일례로 지난해 PT 관리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전화 및 에너지 회사들이 요금을 인상하자 격분했다. 관리들은 정부가 정책 결정권을 외부 인사들에게 ‘아웃소싱’했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그 기관들은 자신들의 의사 결정권은 보유하게 되지만 모호한 관리 계약에 따라 아직도 ‘목표액’을 달성하도록 돼 있다. 지아네티는 “브라질의 제도적 환경은 투자에 유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혼란된 모습에 대해 브라질 정부는 PT가 여러 가지 목소리가 혼재된 복수 정당이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해명을 늘어놓았다. 그보다는 PT가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 나을 것이다. 브라질의 저명한 정치학자 볼리바르 라모니에르는 브라질 국민 모두가 룰라 정권 출범과 함께 좌파의 낡은 원칙이 깨졌음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버릴 땐 재빨리 다른 이념을 채택할 필요가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아직도 룰라 정권은 브라질을 현대적인 자본주의 국가로 끌고가야 할지를 두고 확신이 서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만일 브라질이 최근 몇년 간 거둔 경제적 성과를 착실히 다져나가기를 바란다면 선택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문제는 이 나라의 정치 문화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지 여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기아, 美 SEMA서 ‘EV9 어드벤처·PV5 위켄더’ 공개
2韓조선, 10월 수주 점유율 26%...中조선은 65% 1위
3한·중·일 3국 청년기업가 대표단, 中 로봇기업 탐방
4HMM, 시리아 난민 ‘국제 구호물품 운송’ 후원
5美 경합주 노스캐롤라이나 84% 개표…트럼프 50.7% 해리스는?
6美 대선에 비트코인 들썩…'사상 최고가' 뛰어 넘었다
7 비트코인, 사상 최고가 경신…약 7개월 반 만
8더본코리아 '쾌조의 출발'…얼어붙은 IPO 시장 녹일 수 있을까
9로제, 악플 보며 영감을? "아파트, 다들 안 부를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