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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쌀 때 인수하자” 벤처 M&A 급증

“값쌀 때 인수하자” 벤처 M&A 급증

테헤란밸리 전경.
지난 5월 초 한 M&A(인수·합병)정보 사이트에는 “우회등록을 목적으로 2건의 코스닥등록업체 매수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매매정보가 떴다. 이 업체의 의뢰를 받은 중개회사는 불과 며칠 만에 2건의 M&A를 성사시켰다. 인수업체는 쉘컴퍼니(Shell Company) 방식의 M&A를 통해 코스닥의 뒷문으로 우회등록했다. 쉘컴퍼니란 기존 회사의 외형은 그대로 둔 채 다른 기업 전체나 일부 영업 부문만 인수함으로써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기업을 말한다. 올해 초 완전자본잠식으로 코스닥에서 매매정지까지 됐던 엑세스텔레콤은 지난 5월25일 장외 유망기업으로 평가받는 위성항법장치 전문업체인 인텔링스를 흡수합병했다. 형식은 흡수합병이지만 인텔링스의 서춘길 대표가 엑세스의 경영권을 넘겨받고 우회등록에 성공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인텔링스는 지난 2001년 코스닥 예비심사에서 보류 판정을 받은 뒤 2년 동안 코스닥 입성을 시도했던 업체다.

“벤처 활성화 차원에서 긍정적” 벤처기업의 M&A가 부쩍 활성화되고 있다. 장외기업이 코스닥기업 인수를 통해 우회등록을 시도하고, 코스닥기업은 경기불황 여파로 매도에 나서는 사례가 늘어나는 데 따른 것이다. 코스닥 등록은 까다로워진 반면 정부가 M&A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나가는 점도 M&A시장엔 호재가 되고 있다. 지난 5월에만 합병을 위한 외부평가계약 체결 신고건수가 코스닥등록시장에 8건이 신청됐고, 진두네트워크-메가라운드, 가산전자-엠텍, 이림테크-예림인터내셔널, 콜린스-디지탈스퀘어(뒤쪽이 장외기업) 등이 우회등록 목적의 M&A를 이뤄냈다. 시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양쪽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저주가를 타깃으로 한 머니게임 수단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지적도 적지 않다. 우회등록이 장외기업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지만 성공확률이 높은 것만은 아니다. 휴대폰 제조업체인 이스턴텔레콤은 지난해 12월 이후 지속적으로 코스닥기업인 쓰리소프트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하다가 스스로 무너진 케이스. 당시 이스턴텔레콤의 관계자는 “우회등록을 통한 자금 확보의 목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스턴은 쓰리소프트와의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회사정상화 시기를 놓쳤고 결국 지난 4월 최종 부도처리됐다. 우회등록 방식과는 반대로 코스닥기업들이 인수 뒤 기술력 확보 또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장외기업을 인수하는 전통적인 M&A 사례도 증가 추세다. 웹젠이 대표적이다. 웹젠은 지난해 모바일게임업체인 플럭스를, 올해는 게임개발사인 델피아이를 인수하는 등 M&A를 통해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M&A시장의 활성화는 주식시장 하락과 장기간의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 경영환경 악화, 정부의 M&A 활성화 정책, 기업들의 M&A에 대한 인식 변화가 골고루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M&A 환경을 감안할 때 머니게임의 장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경영컨설팅 업체인 필립파트너스의 정양현 대표는 “M&A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편법적인 것도 많다”고 진단한다. M&A협회 관계자는 “저가주가 속출하면서 개인투자자에게 놀아나는 기업들이 생기는 등 부작용도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8일을 기준으로 코스닥에서 최대주주가 변경된 공시 건수는 127건에 달한다. 최근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식품 사례는 국내 M&A시장의 허약한 체질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꼽힌다. 지난 1월 초 액면가의 20% 미만이었던 서울식품의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소위 ‘나홀로 M&A’가 시도되고 있다는 것은 한달여가 지난 후 20대 초반의 경 모씨가 2대주주로 공시되면서 알려졌다. 증시의 반응은 엉뚱했다. 개인투자자의 매집을 따라서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고, 경 모씨는 4월께 35%의 지분을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이 기간 동안 서울식품의 주가는 8만원대까지 뛰었다. 하지만 경 모씨는 최근 보유 지분을 전량 처분하고 약 70억원의 차익을 남긴 뒤 서울식품에서 사실상 손을 털었다. 경 모씨는 서울식품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8억 여원을 썼을 뿐이다.

적대적 M&A에는 속수무책 개인뿐 아니라 창업투자사나 벤처캐피털도 불순한(?) 목적으로 M&A 시도에 나서고 있다. 벤처캐피털 B사는 지난해 장기경영 목적으로 코스닥업체인 I사를 인수한다고 밝혔지만 주가가 오르자 지난 5월 보유지분 절반을 매각하고 최대주주 자리를 넘겼다. 창투사인 H사 역시 코스닥 업체의 최대주주 지분을 확보한 뒤 현재 차익실현 차원의 M&A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개인이나 기관펀드의 M&A 시도는 머니게임의 목적이 클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대책 없이 당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외국계 투자펀드가 최대주주가 된 코스닥업체의 IR 담당자는 “삼성전자도 적대적 M&A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마당에 대부분 벤처는 속수무책”이라고 토로했다. 증권가에서는 코스닥 등록업체의 절반 정도는 적대적 M&A에 취약한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 M&A 시장이 활성화되고는 있지만 미비한 제도와 열악한 환경, 낮은 인식 수준이 M&A의 순기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관련 업계는 7월로 예정된 정부의 M&A 개선안을 비롯한 후속 대책에 또 한번 기대를 걸고 있다.

M&A 얼마나 늘고 있나


“올해 매물 2,500건, 거래는 100건”
지난 5월 말까지 한국M&A협회에 중개 알선이 들어온 매물은 69건이다. 매도와 매수가 각각 35, 34건으로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매도 물건 중 6개사는 코스닥 등록기업이었다. 3월까지는 전년보다 30% 이상 증가하는 추이를 보였지만, 5월 말 현재는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다. 기술거래소의 경우 현재까지 20개의 매물이 나와 전년보다 늘었다. 중소기업진흥공단·기술신용보증기금·M&A 중계업계 등도 비슷한 양상이다. 종합하면 이들 M&A 거래시장에 나온 매물은 현재까지 350∼400여건 정도로 추정된다. M&A 성사율은 저조한 편이라는 게 관계기관과 업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업계에서는 대략 10% 성사율이면 성공적인 수치로 보는데, 현재는 그보다 밑인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거래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분석은 나오고 있다. 김경환 한국기술거래소 M&A사업본부장은 “올해 들어 신성장동력 산업과 관련된 기술벤처를 대기업이 인수·합병하는 사례가 기술거래소에만 2건 나타나는 등 긍정적 형태의 M&A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모 중개업체 대표는 “인수·흡수되는 기업 모두 윈윈하는 매우 성공적인 사례가 성사된 건이 있지만 관행상 밝히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M&A시장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공개 거래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경우는 전체 M&A 매물의 20% 미만이라는 점을 감안해 올해 M&A시장 매물 규모는 1,700∼2,500건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스닥등록시장에서는 지난해 46건보다 대폭 늘어난 70건∼100건 정도의 M&A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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