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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의 5가지 징후

장기불황의 5가지 징후

기력이 다 빠진 것인가? 주저앉은 경제가 일어설 줄을 모른다. 수출은 매달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내수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리 경제가 일시적 침체에 빠진 게 아니라 L자형 장기불황에 들어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장기불황의 늪으로 빠져들 것인가? 그렇다면 그 가능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코노미스트」가 그 5가지 징후를 짚어봤다. <편집자> 지난 5월 국내의 한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K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경제성장률 수정치를 발표할 때가 됐는데 수치가 일반인의 체감경기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체감 성장률은 고작 2∼3%에 그쳤는데 예측치는 6%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연구소 수뇌부와 고민 끝에 결국 발표 내용은 5%대 초반으로 조정됐다. K 연구위원은 “당시 장기침체의 조짐을 몇 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장은 내수와 수출 모두의 역할이어서 한쪽이 ‘평균’은 돼야 성장이 이뤄진다. 내수가 최악인 상태에서 아무리 수출이 잘 돼도 체감경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출로 혜택을 입는 기업은 소수이고 수출이 무한정 잘될 수만도 없다. 결국 전반적인 하향 기조에서 수출이 ‘반짝 경기’를 유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경제 흐름에서 소외 세계 경제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현실은 더욱 괴롭다.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가 좋으면 수출→투자→소비→성장의 선순환을 그려왔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세계 경제는 좋은데 우리 경제는 죽을 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최근 투자에 소비까지 살아나면서 “10년이 넘는 장기불황을 탈출했다”고 선언할 정도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2000년 정보통신(IT) 버블이 꺼지며 내리막길을 걸었던 미국 경제는 올 한 해 기록적인 성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올해 미국 경제의 성장률을 4.6%로 보고 있는데, 이는 레이건 정부 이래 20년 만에 최고치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미 금리를 인상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이 같은 호조세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다. 언젠가는 꺾일 것이 자명하다. 지난 2002년 미국은 1분기 성장률이 4%대에 이른다며 “불황이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2분기부터 다시 곤두박질쳐 결국은 ‘더블 딥’(Double Dip:경기가 반짝 상승한 뒤 다시 하강하는 현상)에 빠졌다. 일본 역시 10여년의 장기불황 속에서 몇 차례 “불황 종료”를 선언한 적이 있었지만 번번이 ‘반짝경기’로 판명됐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는 언제까지 좋을까? 또 세계 경제가 정점에서 하락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나마 수출로 버텼던 우리 경제는 다시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것일까? 최근 LG경제연구원은 이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세계 경제의 정점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될 테고 우리 경제는 다시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다. 우리도 2002년 미국처럼 ‘더블 딥’을 겪을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보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기선행지수가 지난해와 비교해 4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는 점 ▶이번 세계 경기 회복에 한몫을 했던 IT경기가 올 연말에 끝날 것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향배는 뻔하다. 세계 경제의 하락으로 수출이 둔화될 테고 내수는 살아나기 어려워 보인다. 보고서를 작성한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수가 살아나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게다가 수출 둔화는 내수가 다소 살아난다 해도 상쇄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내년 1분기 중 경기가 다시 꺾일 테고 이후 장기침체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장기불황은 피할 수 없다? 내수부진·소비부족의 여파는 심각하다. 민간소비가 꼼짝도 않다 보니 대표적인 소비지표인 소매판매 증가율이 16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상장기업이 갖고 있는 현금성 자산은 20조원을 웃돌고 있어도 투자는 좀처럼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400만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와 400조원의 가계부채, 400조원의 부동자산은 내수 부재의 단면을 일깨워주는 수치다. 이렇다 보니 내수용 제품을 만드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몰살’의 위기감까지 거론할 정도다. 가방 제조업체 K사의 이경은(56) 대표는 “IMF 때보다 힘들다는 말이 실감난다.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이러다 다 망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 정도”라고 말했다. 압구정동에서 바를 운영하는 김은희(46)씨도 소비부족을 절감한다. “한창 장사할 시간인 밤 10시에도 두 테이블 차면 다행”이라는 그는 “압구정동·청담동이 장사가 안 된다면 얘기 다 한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한국 경제는 장기불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그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성장잠재력이 줄어들고 있으며 부동산 시장도 버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산층·중소기업이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는 지적에 재정·금융 압박이 심화되고, 정부는 이렇다 할 정책을 펼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04년 7월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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