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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 M&A’ 테마주 투자주의보

‘허풍 M&A’ 테마주 투자주의보

인수 ·합병(M&A) 재료로 짧은 기간에 급등하는 주식이 늘고 있다. 이른바 ‘슈퍼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가 종목을 옮겨다니며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금감원의 공시 사이트 등을 열심히 뒤져 초기에 투자했다면 ‘대박’도 가능하지만 추격 매수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지난 1월 초 4,000원을 밑돌던 주가가 석달 만에 9만원이 됐다. 무려 25배다. 주식이라기보다는 로또나 경마에 가깝다. 같은 기간 그 좋다는 삼성전자 주식도 46만원에서 60만원으로 오르는 데 그쳤다. 요즘 주식시장이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이런 ‘로또 같은 주식’들이 종종 눈에 띄고 있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최고의 재료로 치는 ‘적대적 인수 ·합병(M&A)’이라는 이름표까지 달면 주가가 며칠 만에 2~3배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약세장 틈새 테마 M&A주 시세 분출=첫 머리에 언급한 주식은 서울식품이다. 한 개인투자자가 장내에서 지분을 사들이면서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회사의 주식 사들이기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추측이 더해지며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월 초 1,000원도 안 되던 주가가 감자를 거쳐 9만2,000원까지 올랐다. 개인투자자는 22세의 회사원 경규철 씨로 그는 서울식품 전직 임원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경대현(50)씨는 코스닥기업 에프와이디 회장이기도 했다.

서울식품이 대박을 터뜨리자 비슷한 M&A 테마주들이 줄을 이었다. 개인투자자가 장내에서 지분을 사들이다가 그 지분율이 5%를 넘으면 이 사실을 금융감독원에 공시로 신고해야 한다. 서울식품과 비슷한 종목을 찾던 투자자들은 개인 ‘큰손’이 장내에서 주식을 5% 이상 사들였다는 공시만 나오면 일단 ‘제2의 서울식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분을 사들인 개인투자자에게는 ‘슈퍼 개미’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남한제지도 마찬가지다. 3월 초 3,000원도 안 되던 주가가 역시 슈퍼 개미가 등장하면서 6월 말에는 주가가 2만6,000원까지 올랐다. 남한제지에는 박주석 ·이병학 ·정명호라는 세 명의 큰손이 각자 지분을 사들이면서 M&A 가능성을 부풀렸다. 한국금속도 3주 만에 3,000원대의 주가를 1만3,000원으로 끌어올리면서 M&A 3인방에 합류했다. 김성진이라는 개인투자자가 나선 한국금속은 김씨가 역시 경영참여를 선언하면서 지분을 대규모로 사들여 주가가 급등했다.

주가는 수백 퍼센트씩 폭등했지만 정작 예상하던 적대적 M&A는 이뤄지지 않았다. 단지 기대감에 주가만 올랐을 뿐이다. 서울식품 ·남한제지 ·한국금속 모두 지난해의 경영진이 그대로 경영을 하고 있다. 주가가 오르자 적대적 M&A의 실마리를 던졌던 슈퍼 개미들은 너도나도 장내에서 지분을 팔아치웠다.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차익을 남긴 것은 당연하다. ‘대장’이 지분을 팔아치운 것도 모르고 계속 고가에 추격매수를 하던 개인투자자들만 골병이 들었다. 시장에서 ‘허풍 M&A’라는 말이 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M&A 3인방의 아류작들도 잇따라 등장하면서 짧으면 2~3일, 길어야 1주일 안에 주가를 급등시키고 차익을 챙겨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슈퍼 개미’들 종목 옮겨다니며 유혹=신화실업 지분 5.1%를 매입했다고 공시하면서 신화실업을 M&A 테마주로 부각시켰던 개인투자자 김형태 씨가 100%가 넘는 차익을 거두고 보유지분 대부분을 장내에서 처분했다. 실제로 지분을 보유한 기간은 1주일. 5,000원대에서 사들인 주식을 1만원선에 팔아 약 2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김씨가 이번 거래에 투자한 금액은 2억2,600만원. 적은 돈으로 5% 이상의 지분을 살 수 있는 종목을 공략한 게 주효했다.

이들은 지분매입을 공시하면서 ‘경영참여’나 ‘추가매입 예정’이라는 문구로 투자자들을 유혹하지만 나중에 상황이 바뀌어 지분을 팔고 나가도 그만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분변동 공시를 할 때 투자목적을 밝히게 하고 있지만 그 목적이 허위라도 이를 증명해서 처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나중에 이 목적이 바뀌더라도 이를 규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분 매입 공시를 통해 주가를 띄우려는 목적으로 통정매매나 허수주문 등이 동반됐다면 문제삼을 수 있지만 이는 공시와는 무관한 별도의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슈퍼 개미들은 종목을 갈아타면서 주가를 들썩이게 한다. 서울식품에서 재미를 봤던 경규철 씨는 6월 말부터 한국슈넬제약 지분을 대거 매입해서 17%의 지분을 가진 주요주주로 부상했다. 한국슈넬제약의 주가는 6월 말부터 2주일 사이 4배로 급등했다. 서울식품의 ‘아련한 추억’이 학습효과로 나타난 것.
신촌사료의 개인 큰손이었던 지원철 씨도 6월부터 자동차 부품업체인 윤영의 지분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지원철 씨는 그동안 신촌사료 ·도드람B&F ·우성사료 ·오픈베이스 등의 지분을 사들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시세차익을 올렸다. 슈퍼 개미들이 거둬들이는 투자수익은 엄청나지만 10% 이상의 지분을 사들이지 않을 경우는 단기매매차익 반환 규정과도 무관하다. 경영참여 또는 경영진 교체 등 허위목적을 내세우고 지분을 사들인 후 높은 주가에 팔아 치우더라도 이를 규제할 방법은 없다. 특별히 허수주문이나 통정매매 등 부당거래가 없었다면 차익은 고스란히 슈퍼 개미의 몫이다.

◇실제 M&A 가능성은 희박 = M&A를 이끌던 대장 개미가 지분을 팔고 난 후 그 사실을 공시하면 주가는 추락하게 마련이다. M&A 테마주로 불리던 대부분의 종목은 시세분출을 마치면 반 토막 또는 세 토막으로 주가가 내린다.
이런 종목의 추격매수에 나서다가는 쉽게 투자금을 날리기 쉽다. 상한가에서 단숨에 하한가로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상한가에 샀다가 하한가로 떨어지면 손실률은 무려 26%. 만약 미수를 모두 동원해 사들인 것이라면 단 하루 만에 거의 ‘깡통계좌’가 된다. 증시 관계자들은 최대 주주 지분이 많아 적대적 M&A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M&A 테마주로 포장되며 주가가 오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한 투자자들에게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남한제지는 기존 최대 주주 지분율이 42%로 경영권 인수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었고, 한국금속도 최대 주주 지분율이 43%였다. 신화실업도 기존 대주주가 27%나 보유하고 있었다. 한 증시 관계자는 “M&A 테마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것은 로또를 구입했다가 낙첨된 것과 비슷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수백 퍼센트씩 오르는 주가를 보면서 아예 ‘못 먹을 떡’으로 젖혀두기도 아깝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투자를 하려면 상승 랠리의 초기에 동참해야 한다. M&A 관련주로 소문나기 전에 주식을 사들여야 하는데, 유일한 요령은 금감원의 공시 사이트를 수시로 찾아보는 일이다. 개인투자자가 지분을 5% 이상 사들였다는 공시가 나오면 M&A 테마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초기에 종목을 골라 투자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주가가 오르면 조심해야 한다. 언제 매물이 쏟아질지 모르는 일. 투자수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역시 금감원 공시나 주가 움직임을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사실상 전업 투자자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서 M&A 테마주를 추격매수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충고하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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