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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I의 회계조작일파만파

DVI의 회계조작일파만파

보건의료 전문 파이낸싱업체 DVI가 회계사 ·증권사 ·투자자들 코 앞에서 어떻게 수년 동안 적자를 은폐할 수 있었을까.
펜실베이니아주 제이미슨에 있는 DVI가 지난해 8월 파산을 신청했다. DVI는 외래환자 전문 클리닉에 영상진단 장비 구입자금을 융자해온 업체다. DVI는 당시 아리송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상세한 내용은 이후 밝히지 않았다. 건실한 듯했던 기업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무너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DVI는 증권화한 자금 18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주간사 메릴린치가 그 가운데 4억5,000만 달러 상당의 증권화 대출채권을 인수해 3개월 전 이미 처분했다. 공모 설명서에 채권 등급은 AAA로 매겨져 있었다. DVI의 신용에 하자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DVI의 파산은 더욱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델라웨어주 연방 파산법원의 메리 월래스 재판장으로서는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월래스는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 출신 토드 닐슨을 외부 조사관으로 임명했다. 닐슨은 6개월이라는 시간과 비용 200만 달러까지 투입한 끝에 188쪽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DVI가 ‘상당한’ 대출 적자를 고의적으로 은폐했다고 밝혔다. DVI의 전 CEO 마이클 오핸런(Michael O’Hanlon)은 물불 안 가리는 경영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금융사기를 허락?승인했다. 회계법인 딜로이트 앤 투시(Deloitte & Touche)는 회계관행이 기준에 못 미친다고 계속 경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DVI로부터 손떼기 전까지 수년 동안 ‘문제 없음’을 남발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친 게 아니다. 닐슨은 DVI 임원 등 관련자들의 형사상 혐의나 과실 혐의에 대한 조사도 제안했다. 월래스는 후순위채권단에 300만 달러를 지급해 추가 조사토록 조치했다. 분노한 주주들은 추가 조사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일리노이주 시카고 소재 법률회사 크리슬로브 앤 어소시에이츠(Krislov & Associates)는 주주들을 대표해 집단소송에 나섰다. DVI가 주가조작을 위해 재무상황에 대해 ‘명백한 허위 사실’로 주주들을 오도했다는 것이다. 플릿 내셔널 뱅크(Fleet National Bank)도 지난 3월 허위 진술 및 불공정하고 기만적인 관행 혐의로 DVI를 고소했다.

플릿 내셔널은 부적격 담보물 혹은 이중 담보가 설정된 자산을 근거로 DVI에 1억5,000만 달러나 빌려줬다 물리고 말았다. 오핸런의 경영은 한 마디로 마구잡이식이었다. 그가 DVI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그는 이자를 제때 내지도 못하는 부실 병원들과 거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닐슨의 보고서에서는 DVI가 이자를 내지 않은 지 180일이 넘는 경우 체납으로 분류해 회계 규정대로 대손상각하지 않고 해당 병원 경영진만 경질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출계약서를 다시 작성해 기존 대출채권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조작했다.

DVI의 과거 이름은 다이어그노스틱 벤처스(Diagnostic Ventures)다. 닐슨은 DVI가 증권화에 ‘중독’됐다고 보고했다. DVI는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 등 각종 장비와 운전자금에 대한 개별 대출을 연간 두어 번씩 한 데 묶어 장부상 잡히지 않는 다른 병원으로 넘겼다. 부외(簿外) 병원은 이를 바탕으로 채권발행에 나섰다. 채권의 이자와 원금은 병원들이 DVI 대출을 상환할 때 갚게 돼 있었다. 투자자들은 이자가 낮았지만 이를 감수했다. 채권의 신용등급이 높게 매겨져 있는 데다 DVI가 대출금 1억 달러마다 자기자본 1,000만 달러를 보태 담보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1991~2003년 DVI는 개별 대출을 32번이나 증권화했다. 병원들이 수익조차 내지 못하자 DVI는 계약을 재작성하거나 경신해 대출 재구성에 나섰다. 이로써 손실을 은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94년 텍사스주의 코퍼스 크리스티 커뮤니티 암 치료 센터에 제공한 100만 달러를 들 수 있다. 당시 대출금은 이후 600만 달러로 불었다. 닐슨의 보고서에서는 코퍼스 크리스티의 수익은 전혀 없었으며 장비조차 구매하지 않고 대출금을 사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DVI는 대출금을 대손상각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 DVI는 계약서를 재작성해 RTA라는 신규 고객에 더 많이 빌려줬다. RTA의 체납이 악화하자 DVI는 99년 또 다른 신규 차주 온큐어(OnCure)/USCC에 대출을 넘겼다. 온큐어/ USCC는 오핸런의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오핸런은 ‘특혜’로 병원 자산가치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대출해줬다. 다른 암센터와 같이 온큐어/USCC도 2001년 돌핀 메디컬(Dolphin Medical)에 매각됐다. 벌써 네 번째 매각이었다. 돌핀은 DVI가 지분 일부 혹은 전부를 소유할 정도로 ‘특별한 관계’에 있는 병원이었다. 파산 당시 돌핀은 DVI로부터 3,300만 달러나 대출받은 상태였다.

성장의 필요성을 절감한 오핸런은 해외 진출에 나섰다. 그러나 대출계약을 증권화할 수 없어 장부에서 삭제했다. 그 결과 1억1,000만 달러가 비게 됐다. DVI는 97년 플릿 내셔널로부터 1억2,800만 달러나 빌렸으나 상황이 악화하자 2,000만 달러를 더 끌어들였다. 닐슨은 DVI가 일종의 이중 매도(double dipping)를 자행했다고 말했다. 다른 채권자들에게 담보로 잡힌 520만~1억200만 달러의 자산들을 플릿 내셔널에 고의적으로 다시 잡힌 것이다. 더욱이 부적격 담보물을 플릿 내셔널에 또 다른 담보로 제공한 사기극은 오핸런의 승인 아래 이뤄졌다는 믿을 만한 증언이 있다.

그렇다면 사기행각을 누가 알고 있었을까. 닐슨은 DVI의 몇몇 이사가 알았거나 알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딜로이트는 1999~2002년 중 DVI 이사진에 적어도 세 번 서면으로 경고했다. 무엇보다 대출채권 대손충당금을 마련하지 않고 부실채권도 대손상각하지 않은 데다 180일 이상 체납된 대출계약에 대해 계속 수입으로 잡는 관행이 문제였다. 대출 두 건이 신용위원회의 승인없이 이뤄졌다는 딜로이트의 서면 통보 이후 감사위원회가 사기행위를 인지했을 법하다. 프리츠커(Pritzker) 일가의 동업자이기도 한 신용위원회 위원장 제럴드 콘(Gerald Cohn)이 DVI 이사가 된 것은 87년 프리츠커 일가가 다이어그노스틱 벤처스 지분 가운데 40%를 사들인 뒤였다.

주주들은 딜로이트도 제소할 참이다. 닐슨은 딜로이트가 DVI의 파행을 계속 묵인한 채 연간 수수료 140만 달러만 챙겼다고 밝혔다. 딜로이트는 지난해 6월 DVI가 자사의 서명도 없이 분기별 보고서를 제출한 직후 손을 뗐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DVI의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플릿 내셔널은 자사 담보물이 메릴린치에 양도됐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그즈음 DVI는 플릿 내셔널이 보유한 선순위 채권의 이자를 지급하지 못해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2000년 11월~2003년 5월 메릴린치는 6차례에 걸쳐 모두 24억 달러의 증권화를 통해 수수료로 수백만 달러를 챙겼다. DVI는 2002년 6월 메릴린치에 7,300만 달러를 빚지고 있었다. 주주들은 소장에서 메릴린치가 마지막 증권화 전 8,800만 달러에 이르는 대출계약 재작성 및 경신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메릴린치는 채권발행을 계속 추진했다. 지난해 4월 메릴린치는 DVI의 도움 아래 이미 플릿 내셔널로 넘기게 돼 있는 4,300만 달러에 상당하는 선취특권도 양도받았다.

메릴린치는 마지막 채권발행 이후인 지난해 5~8월 추가로 현금 2,000만 달러를 상환받았다. 메릴린치 측 대변인은 소장의 내용이 거짓이라며 “우리는 적절히 실사했고 자산담보부채권 발행 전 모든 의문에 대해서도 만족할 만한 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DVI는 현재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원고가 승소해도 이사진 ·임원진에 대한 보험금 1,500만 달러 말고는 건질 게 별로 없다. 그나마 피고 측 변호사들이 대부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승소할 경우 손해배상금은 딜로이트 ·메릴린치 ·프리츠커 일가의 호주머니에서 나올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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