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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끌어내야 돈 번다”…40, 50대 겨냥한 추억의 문화상품 봇물

“7080 끌어내야 돈 번다”…40, 50대 겨냥한 추억의 문화상품 봇물

지난 8월14일 광주에서 열린 ‘7080 콘서트’ 장면. 무려 1만명이 넘는 ‘중년’들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
“반 연예인이 된 기분”이라는 여병섭 샌드페블즈 리더의 콘서트 모습.
신작 드라마만큼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는 ‘수사반장’DVD.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지난 9월10일 저녁 7시30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았던 ‘샌드페블즈’가 무대에 나와 ‘나 어떡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무대 아래 2만2,000여명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샌드페블즈에 이어 구창모·김수철·옥슨80 등 ‘그때 그 시절’의 가수와 그룹사운드들이 연이어 나와 노래를 부르자 이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관객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10대들이 아니었다.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아줌마·아저씨들이었다. 넓은 상암구장은 시간이 갈수록 박수소리와 노랫소리 등으로 환호의 도가니가 됐다.

난데없이 나타난 ‘중년 관객’ 상암구장의 뜨거운 열기는 밤 10시55분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전 출연자가 무대에 올라 마지막 곡인 ‘젊은 그대’를 부르자 최고조에 달했다. 관객들은 ‘와아~’ 하는 함성을 지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합창’을 했다. 노래 한곡 한곡을 부를 때마다 모두 하나가 되는 보기 드문 공연이었다. 이날 열린 ‘밤을 잊은 그대에게… 추억의 낭만 콘서트’를 기획한 정진현 한국기획 이사는 “은근히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열기가 뜨거울 줄 몰랐다”며 “공연계도 전반적인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말 유례없는 콘서트였다”고 평가했다. 한국기획은 이 열기에 고무받아 10월30일 수원 공연을 필두로 계속적인 지방공연 일정을 짜고 있다. 최근 ‘7080’을 타이틀로 내세운 문화상품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70년대와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7080’은 이제 트렌드를 넘어 본격적인 알짜 비즈니스로 떠오르고 있다. ‘7080’은 40대와는 다른 마케팅 용어다. 대학을 나오고 문화를 소비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7080’으로 불리는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해당하는 이들은 국내 문화 분야의 ‘큰손’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영화에서 1,000만 관객 돌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하더니 올 초에는 뮤지컬로 옮겨가 7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스웨덴 그룹 ‘아바’의 노래를 내용으로 한 ‘맘마미아’를 대박의 반열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이 최근 들어 ‘추억의 콘서트’에 몰리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무엇보다 시장의 주축을 형성해 왔던 댄스·발라드·힙합 등 신세대 취향의 가요가 극심한 불황에 휘말려 공연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추억의 낭만 콘서트’가 열리기 전인 9월4일과 5일 양일간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축제, 백 투 더 캠퍼스(Back to The Campus)’도 ‘세대형 추억’이 상품화가 가능함을 보여준 콘서트였다. 한국 포크 음악의 시조라고 불리는 한대수를 비롯 임지훈·시인과촌장 등이 출연한 이 공연은 입장권 가격이 3만3,000원에서 5만5,000원까지 꽤 비싼데도 불구하고 첫날 객석 6,000석이 꽉 찼고 둘째날에는 객석보다 더 많은 7,500여명이 모여들었다. 더구나 노래 한곡 한곡에 환호하는 장면은 추억을 소재로 한 공연이 충분히 상품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기획사 측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 공연은 꽤 짭짤한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 특집 ‘열린음악회’가 시초 그렇다면 도대체 공연장 근처에도 가지 않던 ‘중년 관객’들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이 분야 관계자들에 의하면 ‘7080 노래’의 시작은 지난 1월 KBS1 TV가 설 특집으로 마련한 ‘열린음악회’가 시초다. ‘7080-추억의 그룹사운드’ 편이 중년층의 폭발적인 호응과 인기를 모았던 것. 77학번으로 이 프로그램을 기획·연출한 유찬욱 PD는 70, 80대 노년층 공연이라는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어서 교체를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요즘에는 “왜 ‘7080 콘서트’라는 공연명을 특허내지 않느냐”는 얘기까지 들을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이 지난 4월10일과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추억의 빅 콘서트 7080 캠퍼스밴드’ 공연이었다. 70, 80년대 대학가요제에 등장했던 그룹사운드들이 총출동한 이 콘서트는 공연 개최 수일 전에 예매 티켓은 동이 났고, 3,000석의 객석은 4회 모두 가득 찼다. 기획사인 컬처피아 측은 “40대가 티켓 구매의 80%를 차지했다”며 “동창회에서 단체로 오는 분들도 많았고 가족끼리 오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관객층이 나타난 것이다. 컬처피아는 이후 10여곳이 넘는 지방도시를 순회하고 있는데 12월까지 거의 매주 일정이 잡혀 있을 정도다. 이 순회 콘서트에 참여하고 있는 샌드페블즈의 리더인 여병섭(48)씨는 “다들 직장 다니며 주말에 잠깐 연습하고 나가고, 유명한 가수도 없는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열광적”이라고 말했다. <아래 인터뷰 기사 참조>

DVD로 나온 ‘수사반장’ 상황이 이쯤 되자 7080을 마케팅에 이용하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월14일 SK건설이 광주광역시청 문화광장에서 연 ‘7080콘서트’가 그것이다. SK건설이 광주 풍암동 SK뷰 아파트 분양을 위해 개최한 이날 콘서트에는 무려 1만명이 넘는 ‘중년’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날 공연을 위해 5억원 가까이 투자한 SK건설은 비용이 아깝지 않다는 표정이다. 10년 만에 이 지역에 다시 진출하는 SK건설로서는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이 공연을 기획한 이순신 분양소장은 “3시간30분 동안 모든 관객들이 일어나서 춤을 추고 노래를 같이 하는 등 폭발적인 분위기였다”면서 “회사 이미지는 물론이고 분양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콘서트만 뜨는 게 아니다. 최근에는 7080을 겨냥한 다양한 추억의 문화상품들이 나오고 있다. ‘7080을 걸면 뜬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중 하나가 지난 5월 DVD로 출시된 ‘수사반장’이다. ‘수사반장’은 지난 1971년부터 18년 동안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던 MBC의 수사 드라마인데, 이 중 13편을 4장의 DVD에 담은 것이다. 이를 기획한 비트윈의 장권일 과장은 “4장짜리 세트인데다 가격(4만8,400원)도 만만치 않은데 월 150장 이상씩 나가고 있다”며 “이 정도면 신작 드라마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70, 80년대 TV드라마가 DVD로 제작된 것은 ‘수사반장’이 처음이다. 12월에는 ‘7080 노래’를 담은 뮤지컬도 등장할 예정이다. ‘난타’로 유명한 송승환 PMC 대표가 준비하고 있는 ‘달고나’가 그것이다. 송대표는 “8월과 9월 테스트 공연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7080 노래를 모르는 20대들이 의외로 이들 노래를 ‘과거라는 판타지’로 받아들여 수용층이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상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옛날 노래라고 해서 무조건 복고 바람을 타는 것은 아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의 대학 그룹사운드와 포크 계열 이외에는 바람을 타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상업적이지 않은 노래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옥슨80’의 홍서범씨는 “7080 콘서트의 관중들은 단순히 그 시절의 노래를 들으러 온다기보다 ‘추억’을 회상하러 온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꿈 많던 대학시절 이후 숨돌릴 틈 없이 세월에 밀려 어느덧 초로에 접어든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찾는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여행업계에서도 이에 가세, ‘7080 스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상품을 준비하고 있고, 영화 배경음악으로 여러 곡이 계약 협상 중이라고 한다. 이른바 ‘추억 마케팅’으로 불리는 7080이 바야흐로 터진 봇물처럼 거세게 퍼져나가며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를 잡는 양상이다. “올해에는 설익은 내용들이 많았지만 내년에는 확실한 상품이 될 것이다.” 이 분야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인터뷰]여병섭 ‘샌드페블즈’ 리더·파라곤애드 대표
“아저씨·아줌마도 낭만이 있더라”
지난 1977년 서울대 농대 학생으로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 ‘나 어떡해’로 대상을 받은 여병섭(48)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5년 전 광고대행사 LG애드 국장으로 재직하다 ‘파라곤애드’라는 광고대행사를 직접 창업, ‘대표’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지만 요즘 들어 ‘가수’로 활동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올 1월 열린음악회에서 초청하길래 ‘그냥 공연 한번 한다’는 생각으로 나갔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지난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뒤 ‘캠퍼스밴드 7080’이라는 이름으로 벌써 열번도 넘게 지방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우리는 도시가 아니냐’며 항의해 오는 바람에 12월까지 주말 스케줄이 꽉 차 있어요. 안 갈 수 없잖아요.” 그가 말하는 ‘안 갈 수 없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구경하는 게 아니예요. 음악을 ‘듣고’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우리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빠르고 흥겨운 노래인데 이런 노래를 울면서 부르는 이들이 많아요. 모두 일어나서 부르는 건 흔한 일이고…. 점잔빼고 이런 거 없어요. 얼마나 가슴에 멍든 게 많으면 그러겠습니까. 노래하다 보면 저희들도 눈물이 글썽할 때가 있습니다.” 그는 “더구나 ‘무공해 음악’이어서 더 호응을 받는 것 같다”며 “팬클럽도 생기고 나니 반 연예인이 된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인기라는 걸 실감합니다. 지난 5월 부산 공연 때는 같은 날 열린 유명 여가수 콘서트에 300명이 왔다는데 KBS홀에서 열린 우리 공연에는 3,000석이 다 찼어요. 이제는 공연하는 게 의무처럼 느껴집니다.” 여대표는 정신없이 살아온 것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겠느냐는 질문에 “밥만 먹고 살았지 문화를 향유해 보지 못하고 살아온 세대들의 갈증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가 리드하는 ‘나 어떡해’ 샌드페블즈는 원래 6기 5명으로 구성됐지만 현재 활동하는 이는 3명이다. 이영득 대구대 교수와 김영국 더블A㈜ 지사장이다. 대구가톨릭대 교수로 있는 최병진씨는 7기, 키보드를 맡은 김동은씨(30기)는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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