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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에서 성장엔진 찾는다”

“신천지에서 성장엔진 찾는다”

국내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이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내수에만 매달렸던 유 ·무선 통신사업자와 포털 그리고 무선 인터넷 솔루션업체 등도 해외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서다. 특히 통신업계의 경우 단말기?장비업체 등과 공동 진출, 국내 IT산업에 활력도 불어넣고 있다.
지난해 7월 유럽형통신방식(GSM) 서비스가 주류인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이 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서비스를 시작했다. SK텔레콤과 LG전자 그리고 전원시스템 전문 중소기업인 동아일렉콤이 모여 만든 ‘SLD텔레콤’이 도전장을 내민 것. 그로부터 1년. SK텔레콤(지분율 53.8%) ·LG전자(44%) ·동아일렉콤(2.2%)의 영문 첫 글자를 딴 이 회사는 기대보다 빨리 베트남에 뿌리내렸다. SLD텔레콤은 10초 단위 요금제, 단말기 무상임대 등의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25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비나폰과 모비비폰을 위협하고 있다. SLD텔레콤은 올해 가입자 13만 명에 매출 1,200만 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지난 8월 26일에는 KTF가 대만의 CDMA 신규 사업자인 비보텔레콤과 3세대 이동통신인 CDMA2000-1x와 EVDO 무선인터넷 서비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1,500만 달러 상당의 계약이었다. 언뜻 대기업의 흔한 제휴처럼 보이지만 속을 뜯어보면 좀 다르다. 남중수 KTF 사장은 “솔루션과 시스템 수출로 기지국 ·중계기 등 국내 장비업체와 휴대전화업체들도 진출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이번 제휴로 발생하는 매출의 80%는 함께 진출하는 중소기업의 몫”이라는 남 사장은 “중소 ·벤처기업과 손잡고 해외진출을 계속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내수에 매달려온 이동통신업계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9월 현재 3,600만 명으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는 가입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승승장구했지만 앞으론 가입자 기반의 고속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동통신업계는 지속 성장을 위해 해외 시장 공략이 필수라는 판단이다. 아무래도 ‘실탄’이 가장 많은 SK텔레콤이 해외 사업에 가장 적극적이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3월에 취임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컨버전스(융 ·복합)사업과 해외 사업에 승부수를 띄우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또 6월 말에 해외 사업 관련 임원들과 중국에서 워크숍을 갖고 큰 그림을 다시 그리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지금까지 CDMA 관련 솔루션이나 부가 서비스를 수출하는 데 무게를 뒀다. 특히 무선인터넷 플랫폼과 네트워크 컨설팅 등의 수출에 주력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현지에서 이동전화 서비스까지 직접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인원을 충원해 글로벌 사업 조직을 대대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통신업체들, 글로벌 조직 대폭 확대

KTF도 비슷한 입장이다. 안태효 KTF 글로벌 사업 실장은 “컨설팅 중심에서 무선인터넷 사업 등으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 투자 여력이 크지 않은 만큼 현지 업체와 합작사를 세워 조심스럽게 공략할 예정이다.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이 타깃이다.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고 있는 ‘통신 공룡’ KT 역시 해외 사업에 적극적이다. 이용경 KT 사장은 “KT는 15년 전부터 해외에 진출해 러시아 ·베트남 ·몽골에서 통신사업을 하고 있고 말레이시아와 태국에 수출도 한다”며 “KT의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KT는 9월 11일 막을 내린 ‘부산 ITU텔레콤 아시아 2004’ 행사에서 중동 진출의 성과를 거뒀다. KT는 9월 8일 이란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인 아시아체크에 오는 2005년까지 모두 20만 회선, 2,600만 달러어치의 초고속인터넷망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 분야 단일 수출건 가운데 수주 규모와 금액 면에서 가장 크다. KT의 해외사업본부 관계자는 “기간산업인 통신 분야의 해외 진출이 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큰 성과”라며 “수출이 경제 회생의 지름길이란 점에서 초고속망의 세계화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유 ·무선 통신 대기업뿐 아니라 관련 중소 ·벤처기업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통신시장의 성장세가 예전만 못한 탓에 필링크 ·지어소프트 등 무선 인터넷 솔루션업체도 해외 사업에 승부수를 띄웠다. 국내 무선인터넷 솔루션 시장은 게걸음질 치고 있는데 경쟁자는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닥 등록업체인 필링크는 SK텔레콤 ·삼성전자 등 대기업과 공조체제를 구축해 해외 시장을 본격 공략하고 있다. 필링크는 얼마 전 SK텔레콤과 더불어 태국 이동통신사인 TA오렌지와 무선인터넷 솔루션 공급 계약을 맺었다. 또 삼성전자와도 손을 잡고 동남아시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올해 상반기 25억원 가량의 수출 실적을 올린 필링크는 하반기에 동남아시아 ·동유럽 ·남미 등 해외에서 50억~6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어소프트도 지난 8월에 싱가포르 현지 업체인 스탠드퍼스트 모바일에 2억여 원을 투자해 지분 50%를 확보하고 계열회사로 편입했다.

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을 필두로 국내 인터넷 포털업체의 해외 진출도 줄을 잇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인터넷 인구만으론 성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인터넷 산업의 급성장에 자극받은 SK텔레콤 ·CJ ·KT 등 대기업이 잇따라 포털 사업에 뛰어들었다. 야후나 구글 등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들도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을 앞세워 호시탐탐 국내 업체 인수를 노리고 있다.

이들은 특히 이미 글로벌 경쟁 체제를 갖추고 있다. 더구나 검색 ·커뮤니티 ·게임 ·쇼핑 등 그동안 구분돼 있던 영역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인터넷 업계가 전방위 경쟁체제로 접어들었다. 기존 업체들이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강록희 대신증권 책임연구원은 “온라인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경쟁업체도 급속히 늘어 마케팅 비용이 급증하는 등 영업환경이 악화하고 있다”며 “인터넷 기업이 성장성을 유지하려면 해외 진출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NHN, 한 ·중 ·일 게임 네트워크 구축

이런 가운데 NHN의 일본 ·중국 진출이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NHN은 일본과 중국에서 게임을 중심으로 인터넷 사업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한게임재팬을 앞세워 일본에 발을 디딘 NHN은 게임 아이템 유료화 등으로 이익을 내고 있다. 한게임재팬은 일본 웹보드 게임 사이트에서 야후게임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NHN은 60만 명의 동시접속자 수를 자랑하는 중국 제1의 게임포털인 아워게임의 공동 경영권도 확보했다. 한 ·중 ·일 3개국에서 100만 명의 동시접속자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다만 중국 아워게임의 영업권 상각과 마케팅 비용 증가로 NHN의 하반기 실적은 애초 예상치를 밑돌 전망이다. 공격적 해외진출의 부작용인 셈이다. 김범수 NHN 대표는 그러나 “인터넷 사업은 선점이 중요하다”며 “돈이 좀 들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있다면 미리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도 진출 물망에 올라있다고 덧붙였다.

라이코스를 인수해 인터넷업계를 놀라게 한 다음을 두곤 평가가 엇갈린다. 세계시장 진출의 물꼬를 텄다는 긍정론과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부족하다는 부정론이 교차한다. 지난 2000년 일본에 법인을 설립한 뒤 사업성을 저울질해 온 다음은 일본 커뮤니티 사이트인 ‘카페스타’를 인수한 뒤 일본 파워드컴과 합작법인 ‘타온(TAON Corp.)’을 세웠다.

그러나 일본 사업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라이코스와 메일닷컴을 인수하며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린 점은 전력 분산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재웅 사장이 올해를 ‘글로벌 원년’으로 선언하고 기업 인수 ·합병에 활발하게 나서고 있지만 무리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더구나 라이코스 인수에 따른 영업권 상각과 지분법평가손실 등이 당장 하반기 실적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로 단숨에 인터넷업계에 강자로 떠오른 SK커뮤니케이션즈도 중국 현지 관계사를 축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동남아 지역에 전초기지도 세울 방침이다.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은 “현지화에 기반을 둔 수익모델 개발이 성공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우량 종목을 선정할 때 ‘해외 공략’을 중요한 잣대로 보고 있다. 특히 인터넷, 온라인게임, 전자부품 등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인 업종의 분석 보고서에서는 해외 시장에서 실적이 가시화하거나 성장 계기를 마련한 기업을 높이 사고 있다.

이정수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이동통신을 포함한 국내 IT산업은 성장이 둔화하거나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이라며 “해외에서 돌파구를 마련해 실적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무작정 나가기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란 지적도 곱씹을 만하다. 국산 장비를 들고 나가야 돈이 된다는 얘기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은 “IT 인프라나 사용 면에서는 세계 정상권이지만 장비나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외국 제품”이라며 “한국은 IT 생산강국이 아닌 소비강국”이라고 꼬집었다.



신박제 글로벌 IT기업 CEO 포럼 의장
“중복 ·과잉 규제부터 손질해야”

“글로벌 IT기업이 솔깃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세계 IT시장의 흐름도 전달하겠습니다.”
지난 5월 말 발족한 ‘글로벌 IT기업 CEO 포럼’의 초대 의장인 신박제(60) 필립스전자 사장의 각오다. 글로벌 IT기업 CEO 포럼은 필립스전자 ·한국IBM ·인텔코리아 등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의 CEO들이 참여하는 모임이다. 9월 현재 회원사는 30개로, 출범 때보다 5개 늘었다. 외국기업협회 수석 부회장, 아테네올림픽 선수단장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신 의장은 이번에도 중책을 맡았다.

신 의장은 포럼에서 “한국이 동북아 IT허브로 성장하도록 연구 ·개발(R&D)센터와 외자를 적극 유치하고, 한국과 글로벌 IT기업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민 ·관 협력채널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9월 초에 포럼 회원, 진대제 정통부 장관 등과 골프 모임을 했다”는 신 의장은 “자주 만나면서 신뢰부터 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책의 일관성 등을 통해 믿을 수 있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가져야 투자든 뭐든 하지 않겠느냐는 것.
그는 “세계 정상급인 IT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무엇을 내놓아야 중국이 아닌 한국으로 몰릴 것”이라며 “그러려면 먼저 부처 간 중복 그리고 과잉 규제부터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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