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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오르는 기금 운용원칙 논쟁… “세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을까”

달아오르는 기금 운용원칙 논쟁… “세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을까”

한 시민이 국민연금 창구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하자, 증시 활성화를 위해 투입하자, 외국 자본으로부터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백기사’로 활용하자…. 129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운용자금 활용을 놓고 말들이 많다. 연기금을 증시·SOC 투자에 ‘동원’ 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안정성·수익성·공공성 등 연금 운용원칙 논쟁을 불렀다. 연기금의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원칙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경제회생 등을 위해 서두르다보면 자칫 안정성이 훼손되거나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연 기금 운용의 3대 원칙을 지켜가면서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묘안은 있을까.

안정성 “자산 운용 다양화 필요하지만 기금 안정성 훼손돼선 안 돼” “국민연금 운용의 3대 원칙인 안정성과 공공성·수익성 가운데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안정성이다. 경제부처가 사용처에 대해 앞서서 주장하면 의구심과 불신이 증폭되고 신뢰가 손상된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1월9일 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게 되면 기금 운용의 안정성이 훼손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국민연금 운용은 그만큼 안정성 원칙을 중시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129조원대 운용자금 가운데 91.1%가 채권에 투자되고 있다. 연금공단의 정석규 자금운용본부 부장은 “국민연금은 연금 가입자들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자금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안정성의 바탕 위에서 수익성을 추구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익률이다. 최근 국고채 수익률은 연 3.8% 수준에 불과하다. 물가상승률(5.7%)에도 못 미친다. ‘안전한’ 투자 수단이기는 하지만 안정성은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자금시장이 왜곡되는 것도 문제다. 국민연금이 국채를 싹쓸이해 시장과 금리가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 적립액을 90% 가까이 채권에 투자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연금의 안정적 운용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남재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채권 위주의 투자를 계속한다면 국채시장에서 국민연금 비중이 2015년에는 50% 이상, 2025년에는 67%에 이를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자금시장의 부작용이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자본시장의 발전을 촉진하고 안정적인 연금 재정 확보를 위해 SOC 투자 등 자산 운용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OC 투자는 투자회수 기간이 비교적 길어 연기금에 적합하며 캐나다·호주 등 해외연구 결과 SOC 투자를 전체 자산의 0∼30% 범위 내에서 증가시키는 경우 전체 자산의 위험은 감소하고 수익률은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남재현 연구위원) 주식 투자는 증시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외국인들에 의해 증시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연기금을 투입한다면 증시의 안정성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헌수 순천향대 보험금융학부 교수는 “투명성과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전제하면 연금의 주식 투자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연기금을 증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는 상당수의 상장·등록사들이 ‘우군’을 얻게 된다는 측면도 있다.

수익성 “국채수익률 플러스 알파 보장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 “수익률이 나는 사업에 연기금이 끼어들지 못하는 것은 ‘풀리시’(foolish·바보 같은)한 것이다.” 지난 11월19일 재경부 정례 브리핑에서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연기금을 SOC에 투자하면 수익률이 더 좋아질 것인가. 정부는 “연기금이 SOC에 들어오면 국채수익률 플러스 알파의 수익률을 보장해 주겠다”고 밝히고 있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보가 “투자 방안을 제시하면 오히려 연기금 측에서 더 좋아할 줄 알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형 뉴딜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연기금의 숨통을 틔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복지부대로 ‘공자금의 아픈 기억’이 있다. 국민연금 도입 초기인 88년부터 2000년까지 공자금관리법을 통해 정부는 연금 45조원을 공자금으로 끌어다 썼다. 이때 받은 이자가 16조원. 그러나 당시 이 돈을 채권시장 등 민간 부문에 투자했더라면 2조원대의 수익을 더 올릴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회비용을 2조원 날린 것이다. ‘플러스 알파’의 수익률을 보장해줘도 문제다. 나성린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국채수익률 플러스 알파를 제시한다고 하지만 이 알파는 국민의 세금 아니냐”며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사기극이다”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 역시 “이렇게 되면 결국 재정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정부의 딜레마”라고 말했다. 주식 투자는 어떨까? 국민연금은 91년부터 주식에 투자해 현재는 9조4,830억원가량을 증시에 투자하고 있다. 지금까지 13%의 누적수익률을 올려 성적이 좋다. 국민연금은 주식시장 투자액을 지속적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다만 그 속도와 규모에 있어서 이견이 있을 뿐이다. 조재민 마이다스에셋 사장은 “현재와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는 주식 투자 비중을 30%까지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보험금융학부 교수는 “주식 투자는 수익성이 높을 수 있는 만큼 위험도 높은 투자”라며 “노후의 필수자금을 위험한 자산에 선도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익성 “설립 취지에 맞는 사업 골라 독립적 판단으로 운용해야” 공공성이란 국민연금이 국민경제와 금융시장을 교란하지 않도록 중립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성린 교수는 “이 대목에서 정부의 연금 동원 취지가 의심받는다”고 말했다. “경기 부양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면 재정 확대나 국채를 발행하는 방법이 있다. 이것이 정상적이고 투명한 방법이다. 굳이 돈이 더 들어가고 우회적인 방법을 쓰는 것 자체가 공공성에 반하는 것 아니냐.”(나성린 교수) 아울러 공공성은 노인·탁아 등 사회복지사업 같은 공공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안정성·수익성과 전혀 관계없다는 지적도 있다. “항상 손해를 보는 투자인데, 왜 해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복지 부문에 대한 투자는 0.3%(3,832억원)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운영구조를 보다 투명하고 전문적으로 관리하면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헌수 교수는 “국민연금이 기금 운용의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수익률을 높이려면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투자해라. 단 실적이 나쁘면 책임을 져라”는 것이다.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책임과 권한을 명문화해서 경제부처의 입김을 막아야 한다. 위원회가 내린 판단이 재경부 안과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독립적인 판단이 존중돼야 한다.”(김헌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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