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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구직 성공 스토리…“취직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눈물나는 구직 성공 스토리…“취직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벼랑 끝에 내몰려 발끝으로 서 있는 심정이었다. 실업자! 생각만 해도 식은 땀이 난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든 붙어야 한다. 한두 해만 지나면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이명찬(28)씨는 용기를 냈다. 대형 피켓을 만들었고, 피켓을 걸어 둘 휴대용 받침대도 장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의지와 장점을 면접관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우일렉트로닉스 사옥 앞은 한여름 태양에 뜨거웠지만, 오히려 맘은 편했고 속도 시원했다. 이 회사에만 벌써 두번째 도전이었다.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열심히 하겠다’고 목이 아프도록 인사했다. 바로 4개월 전 8월의 어느 여름날 얘기다. 대우일렉트로닉스 본사에 배치받은 이씨의 책상 서랍에는 그때 피켓에 적었던 문구가 지금도 잘 보관돼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긍정적 도전의식,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아이디어를 몸 밖으로 뿜어내는 적극적인 열정, 그 의지와 열정이 식지 않게 하는 변치 않는 성실로 무장하겠습니다. ‘비전 2010’을 향해 돌진하겠습니다.” 비전 2010은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캐치프레이즈다.

구직 광고에 동영상 메일까지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뚫겠다는 구직자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평균 경쟁률 100대 1, 좀 괜찮다 싶은 회사는 300대 1을 훌쩍 넘는다. 안 그래도 좁은 바늘구멍이 더 좁아지고 있다. 대기업 인사팀마다 널린 게 토익 900점 이상인 지원자다. 사법고시·공인회계사 합격자도 서류 전형에서 물을 먹는다. 구직자들의 노력은 절규에 가깝다. 구직자들은 면접관들 뇌리에 어떻게든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면접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무리다 싶을 정도의 돌출 행동도 나오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다.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올인’해야 할 것 아닌가. 이명찬씨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김모(26)씨. 그는 올해 초 면접 전날 사탕 500개를 구입했다. 면접 당일 ‘대우일렉트로닉스에서 꼭 일하고 싶습니다’는 팻말을 목에 걸고 출·퇴근길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솔직히 ‘붙여 달라’는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달 초 이 회사에는 동영상 메일까지 등장했다. 면접을 앞둔 취업 준비생이 인사팀에 보낸 것이다.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들어 보이며 “발로 뛰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힘줘 말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회사는 올 하반기 100명 모집에 7,951명이 지원했다. 올 봄 인터넷에는 셋톱박스 전문업체인 휴맥스에 입사했던 유모(26)씨 사례가 회자되기도 했다. 유씨가 한 취업 전문업체 사이트에 남긴 자신의 경험담이 퍼진 것이다. 유씨가 ‘드디어 취업했습니다’는 제목으로 남긴 사연은 이렇다. “…2차 면접을 보는 날 아침 7시에 회사 앞에서 제 이름을 붙인 요구르트를 직원들에게 나눠줬습니다. 30명에게 나눠주다 ‘보험 아줌마’쯤으로 오해한 직원이 제지를 하려 왔기에 설명하는 사이, 직원들이 다 가져갔더군요. 오후 면접 때 마침 요구르트를 드렸던 분이 면접관이었고, ‘면접시간 몇 분 동안 저의 모든 걸 보여드릴 수 없다고 생각해 요구르트를 나눠주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무난하게 면접을 봤죠. 요구르트 덕을 본 것 같습니다.” 실력 때문인지, 요구르트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요구르트가 감점 요인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심지어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자신을 ‘구직 매물’로 내놓은 사람도 있다. 32세의 이 청년은 지난 9월 한 사이트에 ‘근면한 남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이력서를 올렸다. 경매 시작가는 1,000원, 즉시 구매가격 300만원으로 설정해 은근히 희망 급료를 제시하는 재치를 보였다.

“뜻은 갸륵하지만 역효과 낼 수도” S대 법대 출신으로 시가 총액 1,000억원대의 장외 기업을 운영했다는 박모(42)씨는 일간신문에 가로 8㎝, 세로 15㎝ 크기의 구직광고를 냈다. 그는 “사업이 부도나 2년 간 옥살이를 했다”며 “기획 능력이 뛰어나고 수익모델에 대한 아이디어도 있으니 입사만 하면 수개월 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호소했다. “월급 대신 스톡옵션만 받고 일할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덧붙였다. 구직자들의 눈물겨운 몸부림의 원조를 꼽으라면 단연 서울에서 울산까지 마라톤 레이스를 벌인 김모(28)씨다. 서울에 사는 김씨는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 공채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고 20여일 남은 발표일을 서울에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현대중공업 본사가 있는 울산까지 500㎞에 이르는 길을 7일 밤낮에 걸쳐 뛰어 갔다. 그는 인사 담당자에게 미리 이메일을 보내 “천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현대중공업을 위해 달리겠다”며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갸륵한 정성을 보여 결국 취업문을 뚫었다. 울산 본사에서 근무 중인 김씨는 그러나 “실력 덕분에 입사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깡’ 하나로 들어간 것으로 비치는 게 부담스럽다”며 인터뷰를 사절했다. 김씨의 말처럼 ‘튀는 행동’은 ‘덤’일 뿐이다. 너무 튀다보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다. 기업이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평가는 냉정하다. 그래서 많은 구직자들은 ‘정’(情)에 호소하기보다 자신의 실력을 온전히 내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자신의 실력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증거물을 만들겠다는 노력이다. 단국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박각연(26·여)씨가 올 상반기 제일기획에 입사하기까지 쏟은 노력은 여느 프로 디자이너에 못지않았다. 지난 2년 간 정리해 놓은 아이디어 북만 11권이다. 기발한 생각이나 문구, 집 디자인이 떠오를 때마다 노트에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광고대행사 주최 공모전에 한 차례도 빠짐 없이 출품했다. 실력은 어차피 결과가 말해 주는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렇게 했는데도 설마 안 뽑아 줄 것인가”라는 배짱도 작용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 한 대행사 공익광고 에너지 절약 부문 공모에서 ‘냉장고라면 열어 두시겠습니까’라는 카피와 디자인으로 대상을 받았다. 경기대 경영학과 출신의 황재수(26)씨는 군 제대 뒤 탐독한 증권 관련 서적만 60여권에 달한다. 증권 분야에 원래부터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증권사 입사를 위해서는 투자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지난해 말 굿모닝신한증권이 대학생을 상대로 실시한 ‘실전투자대회’에 입상하면서 그토록 원하던 증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취업 전문업체인 잡코리아의 변지성 실장은 “몸으로 튀어보겠다는 발상은 정성은 갸륵하지만 경우에 따라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오히려 실력으로 튀어보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조언이다.실력과 결과로 평가받는 냉정한 현실에, 사탕을 나눠주고 요구르트를 손에 쥐어주며 자신을 알리려는 구직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은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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