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리딩투자증권의 브릿지증권 M&A 배경 윈-윈게임? 新기업사냥?

리딩투자증권의 브릿지증권 M&A 배경 윈-윈게임? 新기업사냥?

안토니 버트러 브릿지증권 사장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사장
2월 16일 리딩투자증권은 브릿지증권을 1310억원에 인수하기로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브릿지인베스트먼트홀딩스(BIH)와 계약했다고 공시했다. 금융감독위원회 승인 과정이 남아있지만 매각이 성사되면 자본금 231억원에 불과한 리딩투자증권은 중견 증권사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본지는 이번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킨 안토니 버틀러(61) 브릿지증권 사장과 박대혁(44) 리딩투자증권 사장을 직격 인터뷰했다. 2월 23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콘퍼런스룸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 자리에서 버틀러 사장은 “청산이라는 극약 처방을 쓰기보다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로 남아있길 희망한다”며 “청산가치에 비해 200억원대 손해를 감수하고 새로운 매수 희망자를 찾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이 말하는 합병 후의 청사진은 ‘투자은행’이다. 10년 이상 영국 런던에서 투자금융가로 활동해온 박 사장은 스스로 ‘기업 은행가(Investment Banker)’라고 부른다. 2000년에 성과급으로 번 돈 70억원을 투자해 리딩투자증권을 세울 때도 그는 ‘투자은행으로 육성하겠다’는 설립 취지를 밝힌 바 있다. 합병 이후 ‘리딩+브릿지’의 지향점에 대해서는 기업금융과 자기매매 중심의 전문화된 증권사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M&A를 보는 시장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일부에서는 두 회사의 결합에 대해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 유출이다’ ‘불과 20억원으로 머니 게임을 하고 있다’는 등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의 밑바닥에는 후불제 인수 방식(LBO)이 아직까지는 국내 M&A 시장에서 낯설다는 점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LBO 방식의 M&A가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경우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국내 증권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제공, 새로운 구조조정 방식으로 활용될 여지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이 낯선 거래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주요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브릿지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박대혁 :
중소형 증권사를 인수하려는 것은 우선 덩치를 최적화시키기 위해서다. 리딩은 ‘미니 투자은행’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선 당장 자본금 규모를 500억원으로 확충해야 한다. 현재 리딩의 자본금은 231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증자나 M&A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브릿지는 잠재력이 좋은 회사다. 우선 인력이 좋다. 브릿지의 전신인 단자회사는 1980년대 후반 최고 인재가 몰렸던 곳이다.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 주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최근 지점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많은 고객이 떠난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7만명이라는 고객이 있다. 그런데 이런 ‘자원의 보고(寶庫)’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최근의 증권시장이 은행 중심의 대형화로 가고 있다. 소형 증권사는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다. 살아남을 수 있나.

박대혁 :
증권시장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대형 증권사만 살아남을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수긍하지 못한다. 미국에는 수천개의 증권회사가 있다. 일본에도 290개, 대만에도 200개의 증권사가 있다. 증권시장 구조조정은 ‘숫자’로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 비슷한 업무를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차별화·전문화가 관건이다. 합병 이후에는 전문화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합병 이후 어떻게 전문화할 것인가.

박대혁 :
합병 증권사는 ‘사이버투자은행’을 지향한다. 시가 총액 1000억원 미만의 중소·벤처기업을 대상으로 금융 서비스에 집중할 생각이다. 이들 기업을 상대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CB)를 발행·유통할 것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영국 런던에 근무하면서 한국물(Korean Paper) 시장을 개척했다. 업계 최초로 ‘채권호가시스템’ ‘사이버커뮤니티툴’(메신저)을 상용화했는데 이를 활용할 계획이다.

자금 조달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박대혁 :
유상감자 계획은 없다. 다만 합병 회사의 자기자본을 700억원대로 조정할 계획이다. 자본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봐 달라. 두 회사의 자산을 더하면 2230억원에 달한다. 현금화 가능한 자산이 1600억원이다. 여기서 1290억원을 주는 것이다. 노조와 갈등의 골이 깊다.

버틀러 :
매각에 대해서는 지난해 이미 노조와 합의한 사항이다. 매각이 쉽도록 희망퇴직도 받았고 지점을 통폐합했다. 회사는 이 과정을 충실히 이행했다. 노조가 요구한 사항은 ‘새 주인이 한국 회사였으면 좋겠다’ ‘계속 법인이 존속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새 주인이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한다고 했을 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그 뒤에 노조가 약속을 깬 것이다.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BIH는 펀드매니저 출신의 짐 멜론이 설립한 리젠트퍼시픽그룹의 후신이다. 국내에 들어온 것은 98년 2월 대유증권(리젠트증권)을 50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다. 이후 해동화재·경수종금·일은증권·리젠트자산운용 등을 설립 혹은 인수하면서 ‘종합금융그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리젠트화재·리젠트종금·리젠트자산운용이 문을 닫았다. 2002년 리젠트증권과 일은증권이 합병해 만든 회사가 브릿지증권이다. 그러나 본사 사옥 매각, 고액 배당, 유상감자, 지점 통폐합 등을 통해 브릿지증권은 국내 철수를 서둘러 왔다.

왜 한국 시장을 떠나는가.

버틀러 :
BIH가 한국에 투자한 지 5년이 지났고 이제 수익을 실현할 때라고 판단했다. 지난해부터 매각 작업을 진행해 왔다. 6개의 한국 업체들이 인수희망서를 제출했고 최종적으로 리딩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수익을 실현한다는 말은 완전한 한국 철수를 뜻하는가.

버틀러 :
투자는 매수(buy)와 보유(hold), 매각(sell) 단계로 진행된다. BIH 쪽에서는 투자 사이클로 봤을 때 이제 팔 때가 됐다고 본 것이다. BIH로선 한국 투자가 그리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5년 동안 총투자한 자금은 2억8000만달러에 달한다. 이번 매각가격을 포함해 그동안 유상감자·배당 등을 통해 회수한 돈은 2억2000만달러에 불과하다. 6000만달러가 손해다.

성공적인 투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한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버틀러 :
먼저 한 가지 묻자. 외국 자본이 들어와 수익을 내면 그것이 왜 잘못된 투자인가? 이익이 나면 왜 잘못인가? 일부에선 (조세회피지역에 본사를 둠으로써) 세금도 한푼 내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여기에 대응하는 법률을 정비하지 못한 탓이 더 크지 않은가? 펀드 투자의 본질은 수익을 내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사고파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은 파는 사람은 악(惡), 사는 사람은 선(善)이라는 이분법으로만 얘기한다.

박대혁 :
회사를 청산하면 BIH는 1500억원을 가지고 나간다. 매각 가격은 1310억원이니까 200억원 가까이 손해를 보는 셈이다.

외국자본이 봤을 때 한국은 투자하기 좋은 나라인가.

버틀러 :
노조 문제가 심각하다. 매각을 진행하면서 노조와 갈등이 심했다. 풀기 어려운 과제다. 이번에 매수자를 찾으면서 해외 쪽에 먼저 의사를 타진했다. 그런데 우리가 접촉한 25∼30개 기업 가운데 매수를 원하는 외국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이것이 한국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리딩투자증권은 LBO 방식으로 자금 문제를 해결한다고 밝혔다. 매각대금 1310억원 중에서 20억원을 계약금으로 지급하고 잔금은 15영업일 이내에 지급한다는 조건이다. 리딩 측은 브릿지와 합병한 후 보유 자산을 팔아 잔금을 갚는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불과 20억원의 돈으로 자본금 2000억원대 회사를 삼켰다는 얘기가 나왔다. 계약금은 20억원이고, 나머지 금액은 브릿지 보유자산으로 지급된다. 계약금도 통상적인 수준(10%)보다 훨씬 적어 모든 대금을 후불로 받는 셈이다.

버틀러 :
매각 과정에서 BIH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먼저 가격이 좋아야 하고, 다음으로 회사를 살릴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금감위 승인도 필요하다. 브릿지 매수를 희망한 6개 회사 중 리딩이 내놓은 조건이 ‘베스트 오퍼’였다.

박대혁 :
LBO는 쉽게 말해 외상으로 회사를 매입한 후 회사 자산으로 나중에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2000억원 수준인 브릿지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게 되면 자기자본이익률(ROE)도 2배 올라가기 때문에 ‘윈-윈 게임’이 된다. 금감위 승인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버틀러 :
그런 것을 검토하지 않고 인수계약서에 사인했겠나. 그렇지 않으면 유일한 방법은 자발적 청산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자발적 청산은 전례가 없다고 하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이사회 결의를 거쳐 주주총회에서 3분의 2 이상만 결의하면 된다.

계약대로 15영업일 안에 외부자금을 조달하고 경영 정상화 수순을 밟을 수 있나.

박대혁 :
시장에서 나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경영 능력으로 보나 자금조달 능력으로 보나 이것은 억측이다. 리딩은 일 거래량 3000억원에 채권시장에서는 10위권에 올라 있다. 사업 초기 5년에 이 정도면 칭찬받을 실력 아닌가. 나는 이 일에 ‘올인’한 사람이다. 합병은 두 회사가 몸을 섞는 것이다. 자칫하면 리딩도 위험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브릿지 인수에 앞서 105명에 이르는 전 직원들로부터 동의서를 받았다.

박 사장이 BIH의 ‘자본 유출 대리인’이라는 풍문이 있는데….

버틀러 :
그렇지 않다. BIH는 자발적 청산을 통해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박대혁 :
루머가 많은 것으로 안다. 왜 그런가? 이번 M&A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이익을 보는 ‘다른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M&A에 모두 6개 업체가 인수제안서를 냈다. 브릿지의 순자산가치는 1800억원에 이른다. 매수를 원했던 다른 업체가 제시한 가격은 900억원대였다. 자산가치와 인수희망 가격 사이에는 900억원의 갭이 존재한다. 노조보다 더 커머셜한(돈에 민감한) 집단이다.

어쨌든 자본금이 줄어드는데….

박대혁 :
자본금은 최적화 함수지, 극대화 함수가 아니다. 어떤 사업을 하는 데 1000억원의 자본금이 있다고 치자. 이 가운데 10억원만 쓰고 990억원을 은행에 예치하면 어지간해서 부도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잠을 자고 있는 돈’이지 제대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LBO란....
Leveraged Buy Out(후불제 인수방식)의 이니셜로 기업 매수자금의 대부분을 매수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금으로 충당하는 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매수자도 피매수기업의 자산 및 수익력을 바탕으로 은행이나 보험회사로부터 차입 등을 통해 기업을 매수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케이뱅크, 아파트담보대출 등 금리 인하…대환대출 최저 연 3.43%

2HLB 간암 신약 美 승인 불발…"中 항서제약 문제"

3 합참 “북, 동해상으로 미상 탄도미사일 발사”

4'필라이트 후레쉬 점액질' 논란...하이트진로 '세척·소독' 미흡 '행정처분'

5국민은행, 캄보디아 중앙은행과 QR코드 기반 지급결제시스템 구축

6셀트리온, 브라질서 램시마SC 공공의료시스템 등록 권고

7 화면 꺼지고 먹통...‘해결책’ 없어 고통받는 폴스타 차주들

8미국 유학생 취업 비자 어려워졌다∙∙∙미국투자이민으로 영주권 취득 방법 대두, 국민이주㈜ 18일 대구∙25일 서울 설명회

9신한자산운용, 디폴트옵션 펀드 수탁고 1000억원 돌파

실시간 뉴스

1케이뱅크, 아파트담보대출 등 금리 인하…대환대출 최저 연 3.43%

2HLB 간암 신약 美 승인 불발…"中 항서제약 문제"

3 합참 “북, 동해상으로 미상 탄도미사일 발사”

4'필라이트 후레쉬 점액질' 논란...하이트진로 '세척·소독' 미흡 '행정처분'

5국민은행, 캄보디아 중앙은행과 QR코드 기반 지급결제시스템 구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