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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다시 왔다. 그러나…

봄은 다시 왔다. 그러나…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는 조짐이다. 경기에 선행한다는 주식시장은 다른 시장보다 앞서 봄이 한창이다. 특히 5년여에 걸친 장기 하락세가 멈춘 모습인 코스닥시장은 지수 상승뿐 아니라 질적인 변화도 엿보인다. 투기 세력이 부추기는 ‘무늬만 IT주’가 없진 않지만 기술과 실적을 겸비한 우량 종목도 예전보다 늘었다는 평가다. 막가파식 투자로 혼이 났던 개미 군단의 경우 아직 관망파가 많지만 옥석을 가리며 뛰어드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지난 2월 16일 정오 무렵 삼성증권 명동지점 객장. 인터넷 시대라 온라인 거래가 늘었다지만 객장은 넥타이를 맨 회사원 ·주부 ·노인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주식 전광판 앞의 24개 좌석은 이미 꽉 찼다. 수십 명이 선 채로 시세판을 지켜보고 있다. 객장 한 쪽에 마련된 4대의 시세조회용 단말기에도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잠시 들렀다는 회사원 K씨는 “코스닥 투자로 빚만 잔뜩 진 뒤 한동안 시세판을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장이 뜨니 본전 생각도 나고 해서 한 번 나와봤다”고 말한다. 옆자리의 주부 J씨는 “외국인과 기관의 지분율이 높은 종목을 중심으로 투자해볼까 저울질하고 있다”며 연신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과열 우려를 비웃듯 500선을 훌쩍 넘은 코스닥지수가 좀처럼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자 K씨처럼 몸이 달아오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점심도 거른 채 손님들의 문의에 답하고 있던 안성재 삼성증권 명동지점 과장은 “냉소가 관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김정현 지점장도 “명동 금융가에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많이 들르기 때문에 코스닥 투자 비중은 작지만 (코스닥 종목) 문의는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고 말한다.

비슷한 시각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15층 시장감시부. 코스닥시장의 불공정 거래를 감시하는 김현철 시장감시3팀장과 7명의 직원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순간순간 변하는 매매 현황을 놓칠세라 직원마다 모니터 3대를 켜놓고 주가와 거래량, 매수?매도 창구를 꼼꼼히 점검한다. 이른바 ‘작전’은 상승장에서보다 횡보장에서 활개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온 정부의 벤처 활성화 대책을 기폭제로 코스닥지수가 가파르게 오르자 벌써 ‘거품’ 논란이 일고 있다.

시장감시부 사무실에 긴장감이 감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0년부터 코스닥시장을 지켜봐 온 김현철 팀장은 “오랜만에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계좌별 거래 내용을 보면 한 번에 매수(매도)하는 금액이 10억원이 넘는 경우도 늘었다고 전한다. 한동안 코스닥시장을 떠났던 ‘큰손’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얘기다.

증권선물거래소에서 여의도공원 방향으로 한 블록 떨어진 동원증권 본점의 12층. 코스닥시장과 유가증권시장(옛 거래소시장)의 중소형주를 분석하는 스몰캡팀 직원 5명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박정근 스몰캡팀장은 지점과 영업직원에게서 걸려오는 문의 전화를 받느라 휴대전화와 사무실 전화를 번갈아 든다.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기업분석부 전체 회의와 팀 회의 등을 끝내면 팀원들은 일제히 기업탐방에 나가 오전 10시 무렵이면 박 팀장만 자리에 남게 마련이다.

올 들어서는 박 팀장도 사무실 밖에 나가있을 때가 잦아졌다. 지난해 단 한 번도 없었던 기관 대상의 중소형주 투자 설명회가 올해 들어 1주일에 2~3번씩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닥 종목을 중심으로 중소형주를 분석하는 증권사는 동원 ·현대 ·삼성 정도에 불과하다. 동원 측의 종목발굴이 가장 활발해 박 팀장이 덩달아 바빠졌다. 그는 “코스닥 열풍이 한창이던 1999년과 2000년에 생겼다 사라진 ‘코스닥팀장’이란 직함이 증권가에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며 웃는다.

삼성증권 명동지점은 투자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올 들어 세계 최고의 상승률, 5년 만의 강세장

그럴 만도 하다. 올해 들어 코스닥시장은 2월 15일까지 30.15%나 올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1000선 돌파를 목전에 둔 유가증권시장(8.41%)보다 훨씬 많이 올랐다. 기술주 시장의 대명사인 나스닥지수가 이 기간 2.92% 떨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000년 3월 10일의 2834.4포인트(현재 지수 산출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지난해 8월 4일 기록한 연간 최저치(324.71포인트)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거래대금도 많이 늘었다. 지난해에는 900여 개 코스닥 상장기업 가운데 600여 개 종목의 하루 거래대금이 1억원을 밑돌았다. 거래가 뜸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달라졌다. 활황을 반영하듯 이들 종목의 하루 거래대금이 10억원대로 늘었다. 코스닥시장이 5년여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겨울이 길었던 만큼 불안감의 그늘이 깊을 수밖에 없다. 다시 거품인가, 지금 들어갔다가 5년 전처럼 당하지는 않을까. 객장을 다시 찾은 투자자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다. 실제로 기술과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데도 이른바 ‘테마’에 편승해 단기에 급등한 종목도 적지 않다. 예전에 유행했던 ‘무늬만 정보기술(IT)주’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11월에 꿈틀대기 시작한 줄기세포 관련주를 필두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와이브로(휴대 인터넷) 등이 돌아가며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이 가운데는 적자 상태이거나 심지어 퇴출 대상인 기업도 포함돼 있다. 코스닥 시장감시부도 다시 바빠졌다. 특정 종목의 주가와 거래량 등이 3개월 평균치와 지나치게 다르게 움직이면 적용되는 이상매매 적출 건수가 올해 들어 하루 150여 건에 이른 까닭이다. 지난해에는 하루 100여 건에 그쳤다.

시장 관계자들은 모처럼 찾아온 봄날을 놓칠 수 없다는 듯 한사코 ‘거품’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함성식 대신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휴대전화갟CD 부품주 등은 영업이익률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오른 반면 부채비율은 떨어진, 기술과 실적을 겸비한 대표적 종목”이라고 강조한다. 요컨대 오를 만한 이유가 있어 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예전에 기대감만으로 올랐던 인터넷 관련주도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며 실력자만 살아남았다는 것.

코스닥지수가 가파르게 올랐지만 이제 유가증권시장과 키를 맞추는 데 그쳤을 뿐이란 분석도 있다. 박정근 팀장은 “지난해 4월의 코스닥지수와 종합주가지수를 100으로 봤을 때 12월까지 코스닥지수가 종합주가지수 밑에서 머물다 올 1월에야 겨우 웃돌았다”고 설명한다. 더구나 개인 투자자들이 테마주를 중심으로 분위기를 띄운 뒤 빠져나가는 빈 자리를 기관과 외국인이 메우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덧붙인다(외국인 투자가 비중은 지난해 2.86%에서 5.38%로 늘었다).

김현철 팀장도 “두세 배까지 오르던 2000년 급등 때와 많이 비교하는데 올해 들어 30% 정도 올랐을 뿐”이라고 말한다. 상승폭만 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닌데 워낙 오래 바닥을 헤매다 갑자기 오르니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식이 됐다는 얘기다.

2000년 급등 당시 ‘아무거나 사주세요’를 남발했던 개미 군단의 투자 행태도 달라졌다. 김현철 팀장은 “학습효과로 개인의 묻지마 투자는 크게 줄었다”며 “실적이 좋거나, 아니면 적어도 테마라도 가진 종목에 관심을 가진다”고 말한다. 대신증권 명동지점 창구의 한 직원은 “요즘은 명동의 사채업자 큰손들도 옥석을 가려 검증된 종목만 손을 댄다”고 전한다.



세계의 ‘기술주 시장’은 지금
지난 1월 27일 증권선물거래소가 공식 출범했다. 1996년 개장 이후 미국 나스닥에 이어 가장 성공적인 신시장이라던 코스닥시장은 2000년을 정점으로 사그라지다 결국 증권거래소·선물거래소와 더불어 증권선물거래소에 통합됐다. 세계 각국의 기술주 시장도 코스닥처럼 정보통신 산업의 부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0여 개의 대표적인 시장 가운데 미국의 나스닥, 일본의 자스닥 그리고 대만의 GTSM 정도가 유명세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97년 문을 연 독일의 노이어 마르크트(Neuer Markt)는 부실 기업이 늘면서 2002년 12월에 폐쇄됐다. 이보다 앞서 스위스의 노이어 마르크트도 문을 닫았고, 나스닥이 일본 오사카거래소와 손을 잡고 만든 나스닥재팬도 주식시장 간 경쟁 격화 탓에 2002년 8월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반면 홍콩의 GEM, 싱가포르의 세스닥, 캐나다의 TSX Venture Exchange, 영국의 AIM, 프랑스의 누보 마르쉐 등은 99년과 2000년을 정점으로 거래대금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안감은 여전, 큰손도 단타 위주

다만 코스닥시장은 여전히 불안해 장기 투자가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김선열 삼성증권 FN아너스 청담지점 팀장은 올해 들어 주식관련 문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 주식 투자에 10억원 이상 맡기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선뜻 코스닥 종목을 추천하지 못한다. 더구나 코스닥에 투자하는 고객도 주식을 오래 들고 있지 않는다. 김선열 팀장은 “삼성전자를 10만원대에 사서 지금도 들고 있는 사람이 코스닥 주식은 길어야 7~10일 단타로 접근한다”고 밝힌다.

강북의 거액 자산가 고객이 많은 김성우 신한PB 서울파이낸스센터지점 팀장도 “60대 고객은 유가증권시장 주식도 꺼리고 50대는 그나마 주식에 관심이 많지만 코스닥 종목은 꺼림칙하게 여긴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김석규 B&F투자자문 사장도 “개인이 맡긴 돈으로 굴리는 작은 펀드의 경우 한 달 전 코스닥 주식 비율이 25%에 이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처분해 5% 선으로 줄였다”고 말한다.

이들의 걱정처럼 코스닥시장은 여전히 ‘미운 오리새끼’일 뿐일까. 김정현 지점장은 코스닥시장이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과 수익을 기반으로 기업의 체질이 달라졌고 해외 IT 경기도 나아지고 있으며, 적립식 펀드 등의 덕으로 기관 중심의 수급도 강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앞으로 2~3년은 활황이 예상된다고 말하는 그는 “올해는 상승 기반을 다지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인다.
올해 들어 코스닥 펀드가 하나둘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한국 ·대한투자신탁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펀드를 내놓았고, 굿모닝신한증권 등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원일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 상무는 “지금까지 코스닥 펀드는 장세에 따라 반짝했다 사라지는 대표적인 스폿 펀드에 머물렀지만 시중 자금이 몰려들수록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가증권시장에서처럼 장기 펀드가 늘어나면 그만큼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어 시장 불신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장기 하락기를 거치며 생긴 무관심 탓에 숨은 저평가주가 여전히 많다는 점도 코스닥의 잠재력으로 꼽힌다. 김환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실적에 비해 주가가 낮은 주식(저PER주)이 1~2년 사이에 3~4배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동원증권 스몰캡팀이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추천한 53개 종목(유가증권시장 종목 8개 포함)의 수익률은 48.6%로 지수 대비 24.2%의 초과 수익을 거뒀다.
이처럼 지표로든, 분위기로든 코스닥 시장에 봄은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에 여전한 불안감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코스닥의 봄기운은 어디까지 뻗칠 것인가. 이번엔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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