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콘텐트 유통을 장악하라
디지털 콘텐트 유통을 장악하라
SK텔레콤은 요즘 분주하다. 단말기 제조업체인 SK텔레텍을 팔았고 다른 한편으론 음악 ·영화 등 콘텐트 업체를 사들이고 있다. 무선위성DMB 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무기로 디지털 콘텐트 유통사업을 해보겠다는 얘기다. 이 사업이 음성통화료, 부가서비스에 이어 SK텔레콤의 세 번째 먹을거리가 될 수 있을까.
SK텔레콤은 7월 12일 팬택 계열과 SK텔레텍 매각을 위한 최종 계약서에 서명했다. 지난 5월 3일 SK텔레텍의 지분 89.1% 중 60%를 팬택앤큐리텔에 넘긴다는 깜짝 발표를 한 지 두 달여 만이었다. 올해 초 최태원 SK 회장과 박병엽 팬택 계열 부회장이 만나 SK텔레텍의 내수 규제 문제 등을 논의하다 세계 무대에서 함께 뛰기로 했다는 얘기가 나온 뒤 매각 협상은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지난해 SK텔레콤을 맡은 김신배 사장이 취임 초 SK텔레텍을 키우겠다고 강조한 터라 두 회사의 거래는 더욱 뜻밖이었다. 그래서 시중에는 말도 많았다. SK텔레콤이 나중에 SK텔레텍을 되사는 바이백 옵션이 붙어 있다거나, 정부 고위층의 후광이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등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SK텔레콤이 SK텔레텍을 만든 배경은 새로운 서비스에 맞춰 단말기도 발빠르게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삼성갟 ·LG 등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제때 단말기를 내놓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출발한 SK텔레텍은 이제 매출액 8,000억원대에 이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어정쩡한(?) 덩치였다. 돈이 많이 드는 단말기 사업의 특성상 국내외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면 몇 천 억원을 더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게 SK텔레콤 측의 설명이다. SK텔레텍이 고가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의 애니콜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회사가 설계 중심이고, 생산은 SK C&C 등이 맡다 보니 특히 글로벌 사업에 필요한 대규모 생산 능력을 갖추기엔 아직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SK텔레콤은 투자를 확대해 SK텔레텍을 키우느냐, 여기서 팔 것이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얘기다. 그 갈림길에서 SK텔레콤은 단말기 사업을 파는 쪽을 택했다.
이 여파로 SK텔레콤의 성장세가 둔화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SK텔레콤의 요즘 움직임을 보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신사업은 다른 데 있다. 바로 디지털 콘텐트 유통사업이다.
통신업계는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고 있다. 이미 위성 DMB 서비스와 차세대 통신망인 광대역통합망(BcN)의 시범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내년에는 3.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와 휴대 인터넷 등도 선보인다.
통신과 방송, 유선과 무선, 음성과 데이터 등의 컨버전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때 영화 ·음악 ·게임 등 디지털 콘텐트로 서비스의 질을 업그레이드해놓으면 음성통화료, 부가서비스에 이어 돈이 되는 사업이 되리라는 게 SK텔레콤의 판단이다. 경쟁의 핵심이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전달하느냐’로 바뀌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이미 콘텐트 사업에서 돈맛도 봤다. 10조원의 매출 가운데 1조8,000억원 정도를 벨소리 ·통화연결음 ·캐릭터 등 무선인터넷 콘텐츠로 벌어들인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커뮤니케이션즈도 싸이월드에서 하루 2억원의 수익을 올린다. 모두 디지털 콘텐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아바타 등 인터넷에서 특화된 콘텐트도 있지만 배경음악처럼 기존 콘텐트를 디지털화한 것도 많다. SK텔레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음악 ·영화 등 오프라인 콘텐트가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과하면서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여기에 무선통신에 이어 위성DMB 네트워크도 장악하면서 콘텐트만 확보하면 독점적인 유통을 통해 대박도 터뜨릴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SK텔레콤이 이미 보여주고 있는 이른바 ‘플랫폼 전략’이다. 미래에셋증권의 김경모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의 음악포털인 멜론에서 제공되는 MP3 음악은 특정 단말기에서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콘텐트만 좋으면 독점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신배 사장이 7월 6일 기자 간담회에서 “오는 2007년까지 시장점유율을 52.3% 이하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도 콘텐트 사업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가입자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가입자를 토대로 이뤄지고 있는 비대칭 규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정부가 새로운 컨버전스 규제정책을 세울 때 불이익을 피해보자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정보통신부는 앞으로 규제의 큰 틀을 수직 규제(전화 ·인터넷 등 역무별 분류)에서 수평 규제(네트워크 ·정보서비스 ·콘텐트 등 내용별 분류)로 바꿀 계획이다.
게임 콘텐트는 전략적 제휴로 확보
SK텔레콤은 올해 들어 몇 개의 콘텐트업체를 인수 ·합병(M&A)하거나 지분투자를 했다. 콘텐트 업체와 느슨한 제휴나 협력 관계를 맺던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 2월 영화 ·드라마 등을 제작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 IHQ의 지분 21.7%를 사들여 2대 주주가 됐다(내년에 발행되는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옵션도 갖고 있어 지분을 35.2%까지 늘릴 수 있다). 이어 5월에는 음반시장에서 17%를 점유하고 있는 YBM 서울음반에 292억원을 투자해 60%의 지분을 확보했다.
경영권을 확보했지만 그렇다고 콘텐트를 직접 만들 뜻은 없다. 대신증권의 이동섭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의 콘텐트 사업 방식은 디지털 콘텐트를 확보 ·관리하고 유통하는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이동통신 사업에서 데이터 매출을 늘리는 한편 새로운 서비스에서 가입자를 유인하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엔터테인먼트 ·영화 ·음악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진화한 네트워크에 맞는 좀더 다양한 콘텐트 확보가 목적이다. 물론 투자 태도는 분명히 달라졌다. 콘텐트 공급업자(CP)가 들고 오는 콘텐트를 그대로 쓰는 ‘수동적 소싱’ 형식에서 벗어나 펀드 투자로 품질을 높이는 ‘능동적 소싱’으로 전환했다. SK텔레콤은 750억원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펀드를 준비 중이다. 또 영화 펀드에 600억원, 음악 펀드에 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SK텔레콤만 콘텐트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TU미디어 ·SK커뮤니케이션즈 등 이른바 ‘텔레콤그룹’의 자회사나 SK그룹의 정보기술(IT) 관계사도 콘텐트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게임업체 인수를 저울질하던 SK커뮤니케이션즈는 6월에 온라인 교육업체 이투스의 지분 27%를 사들여 2대 주주에 올랐다. 컨버전스 시대를 활짝 연 TU미디어는 해마다 1,000억원 이상을 방송 콘텐트에 쏟아 부을 예정이다. 1~2년 전 콘텐트 분야에 진출을 노리다 출자총액제한 등에 걸려 뜻을 접은 SK C&C도 애니메이션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SK텔레콤의 콘텐트 투자에 관한 마지막 고민은 게임이다. 영화 ·음악 등에 M&A나 지분 투자를 하자 게임도 인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 가뜩이나 잘나가던 게임업체의 몸값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시원찮은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해선 만족스런 성과를 내기 어려워 NHN ·넥슨 ·웹젠 등 선두 주자를 노려야 하지만 이들을 잡으려면 적어도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하다. 더구나 이들은 SK텔레콤의 손을 선뜻 잡을 만큼 절박하지도 않다.
SK텔레콤의 서성원 신규사업전략본부장은 “게임의 경우 기존 업체를 인수하기보단 전략적 제휴를 맺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 본부장은 “영화 ·음악등의 투자로 시장의 관심이 워낙 고조돼 있어 이를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콘텐트 투자는 계열사끼리도 경쟁
SK텔레콤과 관계사가 너도나도 콘텐트에 매달리면서 SK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SK 계열사의 한 임원은 “소니처럼 사업의 큰 축을 콘텐트로 잡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모호하게 나서는 방식은 전선만 넓힐 뿐”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동원증권의 양종인 애널리스트도 보고서에서 “영화와 음악 등 콘텐트 사업은 수익성이 낮고 투자비 회수 기간이 길다”며 “SK텔레콤의 투자 여력이 충분하지만 투자비가 늘수록 위험 요인도 커진다”고 밝혔다.
콘텐트 사냥을 놓고 계열사가 과열경쟁 양상을 보일 때도 있다. 각 계열사가 미래경영전략(To-Be모델)이란 그룹 차원의 큰 전략에 따라 움직이지만 ‘누구는 무엇을 하고, 누구는 무얼 해라’는 식의 구체적인 역할 분담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마다 자신의 필요나 상황에 맞게 판단해 콘텐트 사냥에 나서다 보니 때로는 경쟁하는 모습으로 비칠 때도 있다.
서성원 본부장은 “회사끼리 긴밀히 협조하거나 구체적으로 역할을 분담하진 않지만 쓸데없이 부딪치지 않도록 조율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 인터넷 등으로 무선 사업에도 뛰어들려는 KT와의 콘텐트 확보 경쟁도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른바 ‘경쟁 코스트’다. 3.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에 공을 들이는 SK텔레콤이나 휴대 인터넷에 올인하고 있는 KT나 네트워크는 달라도 내용물(콘텐트)은 비슷하기 때문에 자칫 인수 대상의 몸값만 부추길 수 있다. KT가 SK텔레콤보다 뒤늦게 콘텐트 확보에 나선 상황이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KT의 콘텐트 확보 전략과 전술은 SK텔레콤과 별반 다르지 않다. KTF는 국내 2위 영화 투자배급사인 쇼박스가 만든 300억원 규모의 영화 펀드에 80억원을 투자했다. KT가 직접 나선 영화제작사 싸이더스픽쳐스의 인수 작업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룹 차원에서 큰 흐름을 잡고 계열사별로 투자하는 방식도 엇비슷하다. KT는 지난 5월에 KTF ·KTH 등 그룹 계열사의 콘텐트 담당자가 참석하는 ‘콘텐트사업협의회’를 발족하는 한편 개별 사업은 각사의 특성에 맞게 벌이도록 할 방침이다.
SK텔레콤은 KT의 진출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규모는 커졌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성원 본부장은 “두 대기업의 진출로 사업의 체계가 잡히고 자금 관리 등의 프로세스도 더욱 투명해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SK텔레콤의 수익원은 음성통화료 ·부가서비스 등으로 변해왔다. 하지만 제3의 수익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디지털 콘텐트 유통사업이 과연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SK텔레콤은 7월 12일 팬택 계열과 SK텔레텍 매각을 위한 최종 계약서에 서명했다. 지난 5월 3일 SK텔레텍의 지분 89.1% 중 60%를 팬택앤큐리텔에 넘긴다는 깜짝 발표를 한 지 두 달여 만이었다. 올해 초 최태원 SK 회장과 박병엽 팬택 계열 부회장이 만나 SK텔레텍의 내수 규제 문제 등을 논의하다 세계 무대에서 함께 뛰기로 했다는 얘기가 나온 뒤 매각 협상은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지난해 SK텔레콤을 맡은 김신배 사장이 취임 초 SK텔레텍을 키우겠다고 강조한 터라 두 회사의 거래는 더욱 뜻밖이었다. 그래서 시중에는 말도 많았다. SK텔레콤이 나중에 SK텔레텍을 되사는 바이백 옵션이 붙어 있다거나, 정부 고위층의 후광이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등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SK텔레콤이 SK텔레텍을 만든 배경은 새로운 서비스에 맞춰 단말기도 발빠르게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삼성갟 ·LG 등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제때 단말기를 내놓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출발한 SK텔레텍은 이제 매출액 8,000억원대에 이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어정쩡한(?) 덩치였다. 돈이 많이 드는 단말기 사업의 특성상 국내외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면 몇 천 억원을 더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게 SK텔레콤 측의 설명이다. SK텔레텍이 고가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의 애니콜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회사가 설계 중심이고, 생산은 SK C&C 등이 맡다 보니 특히 글로벌 사업에 필요한 대규모 생산 능력을 갖추기엔 아직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SK텔레콤은 투자를 확대해 SK텔레텍을 키우느냐, 여기서 팔 것이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얘기다. 그 갈림길에서 SK텔레콤은 단말기 사업을 파는 쪽을 택했다.
이 여파로 SK텔레콤의 성장세가 둔화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SK텔레콤의 요즘 움직임을 보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신사업은 다른 데 있다. 바로 디지털 콘텐트 유통사업이다.
통신업계는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고 있다. 이미 위성 DMB 서비스와 차세대 통신망인 광대역통합망(BcN)의 시범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내년에는 3.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와 휴대 인터넷 등도 선보인다.
통신과 방송, 유선과 무선, 음성과 데이터 등의 컨버전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때 영화 ·음악 ·게임 등 디지털 콘텐트로 서비스의 질을 업그레이드해놓으면 음성통화료, 부가서비스에 이어 돈이 되는 사업이 되리라는 게 SK텔레콤의 판단이다. 경쟁의 핵심이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전달하느냐’로 바뀌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이미 콘텐트 사업에서 돈맛도 봤다. 10조원의 매출 가운데 1조8,000억원 정도를 벨소리 ·통화연결음 ·캐릭터 등 무선인터넷 콘텐츠로 벌어들인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커뮤니케이션즈도 싸이월드에서 하루 2억원의 수익을 올린다. 모두 디지털 콘텐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아바타 등 인터넷에서 특화된 콘텐트도 있지만 배경음악처럼 기존 콘텐트를 디지털화한 것도 많다. SK텔레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음악 ·영화 등 오프라인 콘텐트가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과하면서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여기에 무선통신에 이어 위성DMB 네트워크도 장악하면서 콘텐트만 확보하면 독점적인 유통을 통해 대박도 터뜨릴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SK텔레콤이 이미 보여주고 있는 이른바 ‘플랫폼 전략’이다. 미래에셋증권의 김경모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의 음악포털인 멜론에서 제공되는 MP3 음악은 특정 단말기에서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콘텐트만 좋으면 독점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신배 사장이 7월 6일 기자 간담회에서 “오는 2007년까지 시장점유율을 52.3% 이하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도 콘텐트 사업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가입자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가입자를 토대로 이뤄지고 있는 비대칭 규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정부가 새로운 컨버전스 규제정책을 세울 때 불이익을 피해보자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정보통신부는 앞으로 규제의 큰 틀을 수직 규제(전화 ·인터넷 등 역무별 분류)에서 수평 규제(네트워크 ·정보서비스 ·콘텐트 등 내용별 분류)로 바꿀 계획이다.
게임 콘텐트는 전략적 제휴로 확보
SK텔레콤은 올해 들어 몇 개의 콘텐트업체를 인수 ·합병(M&A)하거나 지분투자를 했다. 콘텐트 업체와 느슨한 제휴나 협력 관계를 맺던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 2월 영화 ·드라마 등을 제작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 IHQ의 지분 21.7%를 사들여 2대 주주가 됐다(내년에 발행되는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옵션도 갖고 있어 지분을 35.2%까지 늘릴 수 있다). 이어 5월에는 음반시장에서 17%를 점유하고 있는 YBM 서울음반에 292억원을 투자해 60%의 지분을 확보했다.
경영권을 확보했지만 그렇다고 콘텐트를 직접 만들 뜻은 없다. 대신증권의 이동섭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의 콘텐트 사업 방식은 디지털 콘텐트를 확보 ·관리하고 유통하는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이동통신 사업에서 데이터 매출을 늘리는 한편 새로운 서비스에서 가입자를 유인하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엔터테인먼트 ·영화 ·음악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진화한 네트워크에 맞는 좀더 다양한 콘텐트 확보가 목적이다. 물론 투자 태도는 분명히 달라졌다. 콘텐트 공급업자(CP)가 들고 오는 콘텐트를 그대로 쓰는 ‘수동적 소싱’ 형식에서 벗어나 펀드 투자로 품질을 높이는 ‘능동적 소싱’으로 전환했다. SK텔레콤은 750억원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펀드를 준비 중이다. 또 영화 펀드에 600억원, 음악 펀드에 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SK텔레콤만 콘텐트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TU미디어 ·SK커뮤니케이션즈 등 이른바 ‘텔레콤그룹’의 자회사나 SK그룹의 정보기술(IT) 관계사도 콘텐트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게임업체 인수를 저울질하던 SK커뮤니케이션즈는 6월에 온라인 교육업체 이투스의 지분 27%를 사들여 2대 주주에 올랐다. 컨버전스 시대를 활짝 연 TU미디어는 해마다 1,000억원 이상을 방송 콘텐트에 쏟아 부을 예정이다. 1~2년 전 콘텐트 분야에 진출을 노리다 출자총액제한 등에 걸려 뜻을 접은 SK C&C도 애니메이션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SK텔레콤의 콘텐트 투자에 관한 마지막 고민은 게임이다. 영화 ·음악 등에 M&A나 지분 투자를 하자 게임도 인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 가뜩이나 잘나가던 게임업체의 몸값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시원찮은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해선 만족스런 성과를 내기 어려워 NHN ·넥슨 ·웹젠 등 선두 주자를 노려야 하지만 이들을 잡으려면 적어도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하다. 더구나 이들은 SK텔레콤의 손을 선뜻 잡을 만큼 절박하지도 않다.
SK텔레콤의 서성원 신규사업전략본부장은 “게임의 경우 기존 업체를 인수하기보단 전략적 제휴를 맺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 본부장은 “영화 ·음악등의 투자로 시장의 관심이 워낙 고조돼 있어 이를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콘텐트 투자는 계열사끼리도 경쟁
SK텔레콤과 관계사가 너도나도 콘텐트에 매달리면서 SK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SK 계열사의 한 임원은 “소니처럼 사업의 큰 축을 콘텐트로 잡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모호하게 나서는 방식은 전선만 넓힐 뿐”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동원증권의 양종인 애널리스트도 보고서에서 “영화와 음악 등 콘텐트 사업은 수익성이 낮고 투자비 회수 기간이 길다”며 “SK텔레콤의 투자 여력이 충분하지만 투자비가 늘수록 위험 요인도 커진다”고 밝혔다.
콘텐트 사냥을 놓고 계열사가 과열경쟁 양상을 보일 때도 있다. 각 계열사가 미래경영전략(To-Be모델)이란 그룹 차원의 큰 전략에 따라 움직이지만 ‘누구는 무엇을 하고, 누구는 무얼 해라’는 식의 구체적인 역할 분담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마다 자신의 필요나 상황에 맞게 판단해 콘텐트 사냥에 나서다 보니 때로는 경쟁하는 모습으로 비칠 때도 있다.
서성원 본부장은 “회사끼리 긴밀히 협조하거나 구체적으로 역할을 분담하진 않지만 쓸데없이 부딪치지 않도록 조율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 인터넷 등으로 무선 사업에도 뛰어들려는 KT와의 콘텐트 확보 경쟁도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른바 ‘경쟁 코스트’다. 3.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에 공을 들이는 SK텔레콤이나 휴대 인터넷에 올인하고 있는 KT나 네트워크는 달라도 내용물(콘텐트)은 비슷하기 때문에 자칫 인수 대상의 몸값만 부추길 수 있다. KT가 SK텔레콤보다 뒤늦게 콘텐트 확보에 나선 상황이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KT의 콘텐트 확보 전략과 전술은 SK텔레콤과 별반 다르지 않다. KTF는 국내 2위 영화 투자배급사인 쇼박스가 만든 300억원 규모의 영화 펀드에 80억원을 투자했다. KT가 직접 나선 영화제작사 싸이더스픽쳐스의 인수 작업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룹 차원에서 큰 흐름을 잡고 계열사별로 투자하는 방식도 엇비슷하다. KT는 지난 5월에 KTF ·KTH 등 그룹 계열사의 콘텐트 담당자가 참석하는 ‘콘텐트사업협의회’를 발족하는 한편 개별 사업은 각사의 특성에 맞게 벌이도록 할 방침이다.
SK텔레콤은 KT의 진출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규모는 커졌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성원 본부장은 “두 대기업의 진출로 사업의 체계가 잡히고 자금 관리 등의 프로세스도 더욱 투명해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SK텔레콤의 수익원은 음성통화료 ·부가서비스 등으로 변해왔다. 하지만 제3의 수익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디지털 콘텐트 유통사업이 과연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컨버전스+세계화가 미래 성장축” |
“콘텐트 투자 등 새로운 사업이 대개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입을 닫고 지내야 할 판입니다.” 글로벌 사업을 포함한 SK텔레콤의 신규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서 본부장은 말을 아꼈다. 콘텐트 투자를 늘리고 있는 SK텔레콤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장의 시선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SK텔레콤의 미래 사업의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 21.9%였으나 2000~2004년까지 7.2% 수준으로 급감했고 올해에는 3.7%에 그칠 전망”이라며 “생존을 위해서 기존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로도 서둘러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은 디지털 콘텐트다. 정체된 음성 시장을 만회하기 위해 데이터 매출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디지털 콘텐트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서 본부장은 “미디어그룹에서 볼 수 있는 서비스와 콘텐트의 결합보다 단말기와 콘텐트의 만남이 훨씬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어 “지금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제휴나 소규모 지분 투자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 ·베트남 ·미국 등에 진출한 글로벌 사업도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서 본부장은 “통신사업의 특성상 규제가 많다 보니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렵다”며 “그렇더라도 진입 코스트와 매력도를 평가해 여지가 있다면 진출을 꺼릴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특히 이동통신 서비스 보급률이 35~40% 이하면서 경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나라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세계 50개국을 놓고 살핀 결과 아시아권 중심으로 2~3개국으로 투자 대상을 압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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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자본시장법으로 '주주 충실 의무' 보장한다…정부안, 여당 협의 후 국회 제출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