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분의 1을 뚫어라”
“10억 분의 1을 뚫어라”
코스닥 기업 플래닛82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10월 500억원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11월에 이 회사가 전자 부품연구원(KETI)에서 기술 이전을 받은 고감도 나노 이미지 센서 칩을 발표하면서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4위까지 올라섰다. 실험실을 뛰쳐나온 나노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나노기술이란 10억 분의 1m 수준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과학기술을 통칭한다. 시장조사회사 럭스 리서치(Lux Research)는 2010년 전세계 나노 관련 시장 규모가 5,077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나노기술을 상용화한 업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불확실성이 크다. 과연 국내 나노 기술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이고 상용화는언제쯤 가능할까. 국내 나노 열풍을 주도해 온 김훈 박사와 이영규 은성코퍼레이션 사장을 만나한국 나노 비즈니스를 들여다봤다. <편집자>편집자>
“디지털기기의 눈 더 밝고 저렴하게” 김훈 KETI 나노광전소자연구센터장 사람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최저 조도는 0.1룩스다. 전자부품연구원(KETI)의 김훈(41) 나노광전소자연구센터장이 이끄는 연구팀이 개발한 고감도 나노 이미지센서(Single Carrier Modulation Photo Detector ·SMPD)는 0.001룩스에서도 피사체를 인식한다. 사람 눈보다 100배나 빛에 민감한 셈이다. 현재 디지털 영상기기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로는 고체촬상소자(Charge Coupled Device ·CCD)와 상보성 금속산화 반도체(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 ·CMOS)가 있다. SMPD는 이들 이미지센서와 비교하면 적어도 1만 배 이상 빛을 잘 감지한다. 그래서 SMPD칩을 채택한 디지털카메라 ·캠코더는 깜깜한 곳에서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서도 사진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다. 김 센터장의 연구팀이 개발한 SMPD칩 기술은 지난 2003년 12월에 코스닥시장 업체인 플래닛82로 이전됐다. 윤상조(47) 플래닛82 사장은 사업영역을 여성지에서 전자부품으로 확대한 데 이어 KETI의 기술이전으로 이미지센서에도 진출했다. 윤 사장은 잡지를 내기 전에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아날로그 카메라 필름에 비해서는 SMPD칩이 1,000배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SMPD칩 기술이전의 대가로 플래닛82가 KETI와 김 센터장의 연구팀에게 지급한 돈은 46억원. KETI는 23억원을 받았고 김 센터장의 연구팀 8명에게 나머지 23억원이 돌아갔다. 플래닛82는 파운드리(제조전문회사)에 외주를 줘 SMPD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발생하는 매출에 대해서도 1%씩을 KETI와 연구팀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윤 사장은 “개발 과정에서 파운드리 3, 4곳에 칩을 시험 생산하도록 했다”며 “지난해 11월 SMPD칩을 발표할 때 이미 수율이 90%가 넘어 양산단계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분명 신기한 기술이다. 그렇지만 야간 투시경이나 감시카메라 외에는 큰 수요가 없지 않을까. 윤 사장은 “성능뿐 아니라 가격경쟁력을 봐야 한다”고 대답했다. SMPD칩은 개당 제조원가가 20~50센트로 CMOS칩의 10분의 1, CCD칩의 몇 십 분의 1에 불과하다. 김 센터장은 “SMPD는 빛을 전기신호로 바꾸는 효율이 높기 때문에 다른 이미지센서처럼 영상신호 증폭 기능이 필요 없어 제조공정이 훨씬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윤 사장은 “현재 폐쇄회로TV(CCTV)나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들과 공급조건·가격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계약이 체결되면 적용되는 제품의 운영체제에 따라 SMPD칩의 설계를 변형해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기는 순서로 일이 진행된다. 그는 퀄컴(Qualcomm)처럼 기술료를 얹어 SMPD칩을 팔 생각이다. 매출과 관련해 윤 사장은 “시장조사회사 아이서플라이(iSupply)가 추산한 지난해 세계 이미지센서 시장이 약 70억 달러”라며 “SMPD가 몇 년 안에 국내에서만 연간 1조원 이상 수입을 대체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그는 “SMPD는 전자제품 외에 국방 ·의료 ·자동차 ·로봇 등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인체에 빛을 쏘여 반사되는 미세한 신호를 분석하면 당뇨 ·암 등 질병 진단에 획기적인 장을 열 수 있다는 전망이다. 플래닛82는 2004년 매출 142억원에 영업손실 55억원을 입는 등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냈다. 그런데도 액면가 500원인 플래닛82의 주가는 2만원대에 거래된다. 이에 대해 동양종금증권의 이현주 연구원은 “아직 이미지센서 부문의 매출이 일어나지 않은 단계라서 현 주가 수준에 대해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김 사장은 도요하시(豊橋)기술과학대에서 석사학위를, 도쿄(東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에서 나노 반도체를 연구하면서 나노 단계에서는 물리적 성질이 바뀌는 데 주목했다. 예컨대 어떤 조건에서는 단 몇 개의 빛 알갱이도 검출해 전기신호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2000년 말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거쳐 2001년 10월에 KETI에 자리 잡으면서 이 기술의 응용분야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미미한 빛을 감지해 전기신호로 변환할 수 있다면 이미지센서로 그만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는 SMPD와 관련한 특허를 약 50개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논문은 쓰지 않았다. “논문을 쓴다면 기술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다른 업체가 그 원리를 응용해 별도의 특허를 취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보유한 특허도 내용을 2년간 비밀로 보호받는 비공개특허다.
“나노섬유 올해 500t 생산 실력으로 검증받겠다” 이영규 은성코퍼레이션 사장 나노는 멀리 있는 기술이 아니다. 예컨대 침낭 속에서 자는 사람들이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침낭 안으로 들어온 진드기의 분비물이 원인이다. 하지만 진드기보다 얇은 섬유로 만든 침낭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런 나노섬유를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이영규(47) 은성코퍼레이션 사장의 얘기다. 이 회사의 주가는 최근 3개월 동안 크게 출렁였다(1,700원→8,480원→4,780원). 지난해 적자로 돌아선 기업이지만 신제품인 나노필터의 사업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듯 주가가 오르내린 것이다. 하지만 지난 1월 11일 서울 구로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 사장은 생각보다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는 “아직 양산 단계가 아닌데 액면가 500원짜리 주가가 8,000원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장에서 검증을 받으며 차곡차곡 올라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나노필터 소재의 양산시설 완공을 계기로 ‘나노주’로 각광받고 있는 은성코퍼레이션은 극세사 분야에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회사다. 극세사는 단면적이 머리카락의 약 100분의 1 정도인 아주 가는 섬유. 이 사장은 이런 극세사를 행주나 타월에 적용해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다. 극세사 클리너 분야에서는 세계 시장 점유율 25%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생활용품 회사인 3M에 30개가 넘는 제품을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납품하고 있고, 이 중 극세사 관련 6개 제품은 독점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 사장은 “결제 조건을 환차손 위험이 있는 달러 대신 원화로 하면서 일부 제품을 독점 공급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그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이 사장이 처음 사업을 차리게 된 계기는 안경닦이였다. 당시 효성에서 극세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 일본의 한 전시회를 찾았다가 불량 원단이 안경닦이 소재로 쓰이는 것을 보고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안경닦이용 극세사 직물 개발에 착수해 극세사 원사 한 가닥을 분리하고 꼬임을 주는 가공 기술로 흡수력이 뛰어난 직물 개발에 성공했다. 일반 섬유에 비해 흡수력이 5배 이상 높고 오염 제거와 광택 효과도 뛰어났다. 고기능성 제품을 선호하는 유럽과 미주 등지로 수출길이 열렸고, 2000년에는 3M 본사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국내 시장에는 목욕용품 브랜드 세사(SESA)도 선보였다. 세사는 목욕용품 소재의 기능성을 높이고 디자인을 고급화한 제품. 이 밖에도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건조시키는 기능의 특수 소재인 ‘아쿠아트랜스’를 개발해 스포츠용품 등에 사용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고청정 클린룸용 와이퍼도 생산하고 있다. 은성코퍼레이션은 지난해 기대됐던 삼성전자 납품이 지연되고, 무리한 매출증가 계획에 따라 수익성이 감소해 350억원 매출에 순이익은 적자가 예상된다. 이 사장은 수익성 하락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에 30%의 인력을 감원하고 28개 매장을 7개로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는 “구조조정을 통해 지난해 적자 요인이었던 고정비 요소를 개선했기 때문에 올해는 흑자가 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은성코퍼레이션은 올해부터 의류와 청소 등 생활용품 업체에서 극세사와 나노섬유를 이용한 산업용소재 전문기업으로 변신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과거 천연섬유에서 합성섬유로 발빠르게 움직였던 것처럼 앞으로 나노섬유 쪽에 투자를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섬유협회에 따르면 나노섬유는 약 1㎛(미크론) 이하의 초미세 섬유를 말한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실험실 수준의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상품가치를 가진 소재로 대량 생산에 성공한 기업은 없다. 은성코퍼레이션은 1월 말부터 800nm(나노미터)의 나노섬유를 연간 500t가량 생산할 계획이다. 우선 나노섬유를 울파필터 소재에 적용하고 시험생산에 착수했다. 울파필터는 반도체나 LCD 공정 중 클린룸의 공기정화용으로 사용되는 에어필터다. 100nm 크기의 초미세 입자를 99.999% 이상 여과할 수 있는 초고효율 필터다. 현재 울파필터의 소재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유리섬유를 사용하고 있다. 이 사장은 “하반기부터는 나노 섬유를 활용해 초경량 방탄복 ·인공피부 ·대용품 ·2차전지 분리막 등의 응용제품도 양산해 나갈 것”이라며 “올해 나노섬유를 통해 3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내년에는 100억원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나노 기술은 실험실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었지만 상용화가 항상 문제였다”며 “올해 국내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해 실력으로 시장에서 승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동양종금의 이현주 연구원은 “은성코퍼레이션이 시도하는 나노섬유의 양산화는 의미가 크다”며 “대량 생산이 가능한지, 주문량이 어느 정도인지 등 나노 기술이 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주목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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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기기의 눈 더 밝고 저렴하게” 김훈 KETI 나노광전소자연구센터장 사람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최저 조도는 0.1룩스다. 전자부품연구원(KETI)의 김훈(41) 나노광전소자연구센터장이 이끄는 연구팀이 개발한 고감도 나노 이미지센서(Single Carrier Modulation Photo Detector ·SMPD)는 0.001룩스에서도 피사체를 인식한다. 사람 눈보다 100배나 빛에 민감한 셈이다. 현재 디지털 영상기기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로는 고체촬상소자(Charge Coupled Device ·CCD)와 상보성 금속산화 반도체(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 ·CMOS)가 있다. SMPD는 이들 이미지센서와 비교하면 적어도 1만 배 이상 빛을 잘 감지한다. 그래서 SMPD칩을 채택한 디지털카메라 ·캠코더는 깜깜한 곳에서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서도 사진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다. 김 센터장의 연구팀이 개발한 SMPD칩 기술은 지난 2003년 12월에 코스닥시장 업체인 플래닛82로 이전됐다. 윤상조(47) 플래닛82 사장은 사업영역을 여성지에서 전자부품으로 확대한 데 이어 KETI의 기술이전으로 이미지센서에도 진출했다. 윤 사장은 잡지를 내기 전에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아날로그 카메라 필름에 비해서는 SMPD칩이 1,000배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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