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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의 전성시대는 갔다

유럽 축구의 전성시대는 갔다

In With The New 오는 6월의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중 대진 일정이 남보다 순탄하다고 자랑할 만한 팀은 없다. 그러나 자동 출전 자격을 얻은 주최국 독일이 가장 많은 논란과 좌절을 겪는 듯했다. 젊은 독일 팀은 그동안 무기력한 경기를 펼쳤다. 올해 초 이탈리아에 4대 1로 참패한 일이 대표적이다. 새내기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도 뭇매를 맞았다. 1990년대 독일 대표팀 주전 스타로 월드컵에 3회 출전했던 클린스만은 비전통적인 팀 운영방식으로 욕을 얻어먹었다. 게다가 캘리포니아 남부에 살겠다고 고집을 부려 죄가 더 무거워졌다. 이탈리아에 패한 직후 미국의 자택으로 돌아갔을 때는 팀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훈계도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독일 축구의 최대 우상 프란츠 베켄바워가 한 말이었다. 대신 독일 팬들은 미국의 ‘B’팀에 4대 1로 승리한 데서 위안을 찾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클린스만은 팀이 ‘훨씬 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준비를 진행하게 해 준 중요한 승리라고 평했다. 그러나 그런 차분함은 아마 폭풍 전야의 고요함과 같은 성격이라고 독일 안팎의 축구 전문가들은 믿는다. 6월 9일을 시작으로 독일은 스포츠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된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추산에 따르면 한 달 후 베를린에서 월드컵 결승전이 열릴 때까지 12개 도시의 축구장에서 340만 명의 관중이 월드컵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월드컵 경기의 누적 시청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400억 명에 달할 전망이다. 독일은 2002년에 준우승하고 주최국이었던 74년에 우승했다. 따라서 독일이 네 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기에 크게 유리하리라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가 보기에 독일 팀의 우승 가능성은 아무리 좋게 봐도 높지 않은 듯하다. 그 이유를 알면 유럽의 다른 전통 강호들도 불안해 하리라. 농구 강국임을 자랑하던 미국의 드림팀들은 최근 힘 한번 못 쓰고 무너져내렸다. 마찬가지로 축구에서도 유럽의 독주체제에 몇 년 전부터 빨간 불이 계속 들어왔다. 지금까지 일곱 차례의 20세 이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남미 14개 팀, 아프리카 7개 팀이 준결승에 진출했다. 반면 유럽 팀의 경우는 5개에 불과했다(스페인 3회 포함). 축구의 그런 실력 평준화 추세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확실히 뚜렷해졌다. 당시의 전적을 돌이켜보자. 세네갈 대 프랑스 1:0, 미국 대 포르투갈 3:2, 한국 대 이탈리아 2:1, 일본 대 벨기에 2:2. 물론 이번 월드컵은 다시 유럽에서 치러진다. 유럽에서는 전통 강국들이 항상 자신들의 아성을 한 치의 양보 없이 지켰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열린 9회의 월드컵 대회 중 유럽 팀이 여덟 번 우승컵을 가져갔다(이탈리아·잉글랜드·독일·프랑스는 모두 주최국으로서 우승했다). 17세의 펠레가 첫선을 보인 58년 대회에서만 브라질이 유럽의 주최국을 뛰어넘었다. 그런 성공에는 비유럽계 선수들이 장거리 여행과 낯선 축구장에 적응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 많이 작용했다. 유럽 리그에서 활동하는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늘어나면서(지금은 유럽에서 뛰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수백 명이다) 거리는 이제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브라질의 호나우디뉴, 아르헨티나의 후안 로만 리켈메,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르 드로그바, 가나의 미셸 에시엥, 한국의 박지성 등 유럽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들이 세계 각지의 월드컵 본선 진출 팀들을 이끈다. 아주 뛰어나고 우수한 중남미와 아프리카 선수들은 더 빠르면서도 창의적인 듯하다. 그들은 공을 지키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또 폭발적인 돌파력으로 유럽 팀들의 조심스럽고 거친 수비 스타일을 뚫는 능력이 있다. 유럽 팀들은 큰 경기에서는 흔히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친다. 유럽의 5대 명문 리그에서는 중요한 위치, 특히 공격을 맡는 외국 선수들의 비중이 갈수록 커진다. 따라서 똑같은 능력을 가진 토종 선수들의 발굴이 줄어든다. 그러니 유럽 현지 국가대표팀의 전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많은 전문가가 독일(월드컵 우승 3회, 유럽선수권 우승 3회의 오랜 유럽 최강호)의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고 평가절하하는 이유도 모두 그런 점들 때문이리라. 최근 독일 축구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자국 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리라 본다는 응답자는 5%에 불과했다. “우리의 전술과 속도가 아주 구태의연하다”고 스포츠 주간지 스포르트 빌트의 편집장 피트 고츠샬크는 말했다. 유럽이 너무 자만에 빠졌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대조적으로 중남미와 아프리카 선수들이 유럽에서 갈수록 두각을 나타낸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축구가 가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유럽 축구의 장기적인 문제는 현 세대가 경제적으로 지금까지 어느 때보다 유복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영국 리즈대 비즈니스 스쿨 빌 제라드 교수(스포츠 금융학)는 말했다. 한눈 팔 만한 유혹이 없는 가난한 곳, ‘공을 찬다’는 말이 여전히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 곳, 축구가 여전히 부를 쌓는 가장 확실한 티켓인 곳에서 흔히 축구가 꽃을 피운다. 물론 유럽에도 그런 곳들이 있다. 그러나 특히 독일에서는 청소년 팀을 향한 투자가 지지부진했으며 이민자의 발굴에는 더 굼떴다. 독일의 터키계 인구 중 뛰어난 선수가 상당히 많지만 우수 선수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뛴다. 독일 기성 축구계의 타성 때문에 분데스리가 경기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올해에는 유럽의 권위 있는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진출한 독일 클럽이 하나도 없다. “어설프고 느리다”고 독일의 대표적인 축구 주간지 키커의 라이너 홀츠슈 편집장은 말했다. 독일은 멀리 볼 필요도 없이 바로 이웃 나라에서 몇 가지 더 나은 모델을 찾으면 된다. 프랑스는 자신들이 주최한 98 월드컵에 대비해 이민자들과 소수인종을 팀에 성공적으로 통합시켰다. 축구장에서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프랑스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가져왔다. 선수들이 똘똘 뭉쳐 프랑스에 최초의 월드컵 트로피를 가져다 줬다. 뿐만 아니라 그때 생긴 구호(한 나라, 하나의 프랑스)는 ‘위기’(la crise)라 불렸던 불안과 소외감을 말끔히 씻어냈다(안타깝게도 최근의 사태가 보여주듯 그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네덜란드도 기존의 유소년 발굴과 발탁 방침을 바꿔 재능있는 소수인종 선수들을 국가대표의 중심적 위치에 포진시켰다. 다소 느리기는 하지만 독일 팀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독일이 2004 유럽 선수권대회에서 1승도 못 건지고 치욕적인 탈락을 하자 과거 조국의 영웅이었던 클린스만을 부르는 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고참 순이나 평판보다는 실적 기준에 따라 선수를 선발하고, 혈액검사로 체력을 검사하는 등 현대적인 방식의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자 독일 기성 축구계에서 원성이 높아졌다. 선수 체력검사를 둘러싸고 그렇게 논란 많은 나라는 또다시 찾기 힘들다. 그 결정에 독일의 많은 경험 많은 선수들과 감독들이 기겁하고 반발했다. 체력은 정신력과 경험을 대신하지 못한다고 그들은 믿는다. “독일에서 누가 먼저 개혁을 시작하든 욕을 얻어먹게 돼 있다”고 스포르트 빌트의 고츠샬크는 말했다. 독일 팀의 대표적인 무기는 불굴의 의지력인데 클린스만이 일방적으로 그것을 포기한다고 믿는 열성 팬이 많다. 그들은 2002 월드컵을 예로 든다. 당시 독일은 종종 불리한 경기를 치르면서도 결승에까지 올라 훨씬 기량이 뛰어난 브라질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이제는 의지만으로 승리하지 못한다고 영국의 축구 칼럼니스트 롭 휴스는 말했다. “스포츠 정신, 기량, 상상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클린스만은 선수 시절 그런 요소를 모두 보여줬다. 그리고 40년래 가장 어리고 경험 부족한 대표팀에 그것을 불어넣으려 한다. 너무 짧은 시간에 거창한 일을 벌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래전에 해야 했을 개혁이 월드컵(참패를 당하든 대성공을 하든) 때문에 흐지부지돼서는 안 된다. 그것이 독일 축구에는 최선의 희망이다. With STEFAN THEIL, GINANNE BROWNELL and SAM REGISTER 차진우 jincha@joongang.co.kr




세계 축구제전의 제1 관문
월드컵 첫 라운드에서는 독일 각지에서 2주 동안 32개팀이 48경기를 치른다. 각조 상위 2개팀이 16강에 진출한다. 뉴스위크가 가장 흥미로운 10경기를 골랐다. 1. 독일/코스타리카 개막전에는 항상 돌발변수가 도사린다. 막강한 독일은 2002년 세네갈 대 프랑스(1:0)전을 돌이켜야 하리라. 6월 9일 2. 멕시코/이란 멕시코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유럽 순방 계획에 찬물을 끼얹으려 애쓴다. 6월 11일 3. 미국/체코 공화국 미국은 유럽 강호 하나를 물리쳐야 16강에 진출한다. 이탈리아전보다는 체코전이 더 승산이 높다. 6월 12일 4. 호주/일본 앞으로 호주는 아시아 팀들과 예선을 치르게 된다. 이번이 좋은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 6월 12일 5. 브라질/크로아티아 브라질이 여섯 번째 우승컵을 차지할 확률은 3대 1. ‘유럽의 브라질’과 첫 경기를 갖는다. 6월 13일 6. 프랑스/한국 한국은 2002 월드컵의 성공을 재현하려 한다. 프랑스는 예선에서 득점 빈곤에 허덕였다. 6월 18일 7. 스페인/튀니지 스페인이 가장 손쉬운 상대를 만났다. 월드컵 출전 경험을 가진 유일한 이 아프리카 팀이 상대가 될까. 6월 19일 8. 스웨덴/잉글랜드 스캔들에 휘말린 스벤 예란 에릭손 잉글랜드 감독이 모국을 상대로 체면을 살리려 한다. 6월 20일 9. 네덜란드/아르헨티나 이 거물들의 대격돌에서 월드컵 죽음의 조 1위가 결판날 가능성이 크다. 6월 21일 10. 체코/이탈리아 1위 자리를 둘러싼 또 다른 대결. 승자는 2회전에서 브라질과의 대결을 피한다.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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