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원더풀! 실버 라이프4] 동양의 신비 품은 서늘한 별천지
[조주청의 원더풀! 실버 라이프4] 동양의 신비 품은 서늘한 별천지
필리핀 루손섬의 사가다는 독특한 지역이다. 속인이 들어가기엔 좀 성스런 곳 같기도 하고,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기괴한 곳 같기도 하고, 알프스 산속 평화로운 어느 산골마을 같기도 하다. 해발 1,500m 울울창창한 아름드리 솔숲에 숨어 있는 인구 3,000명의 제법 큰 산촌마을로 가 보자.
필리핀은 한두 달 살다 오기에 안성맞춤의 나라다. 가장 큰 장점은 누구를 만나도 말이 통한다는 점이다. 중학교 1, 2학년의 영어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필리핀에서 살아가는 데 아무 불편 없이 의사소통이 된다. 버스 차장도, 꼬치를 파는 아주머니도, 밭을 매는 농부도 우리 수준에 약간 못 미치는 영어를 구사해 영어라면 겁부터 집어먹는 우리를 그렇게 편안하게 해 줄 수 없다. 그리고 필리핀은 가까워 오가기 편할 뿐더러 비행기 삯도 싸다. 필리핀은 모든 물가가 싼 데다 요즘은 원화 강세로 물가가 더 싸졌다. 필리핀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안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직도 이 나라 남부 민다나오에서는 간헐적으로 회교반군과 정부군의 충돌이 있고 도시에서는 살인 사건도 일어나지만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런 악운에 걸려들 사람은 서울의 강남에서 밤길을 걷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다른 열대지방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착하다. 더운 나라 필리핀이란 고정관념도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필리핀엔 고산지대 피서지가 많아 온대 사람이 열대 지방으로 피서를 가는 아이러니를 만든다. 사가다, 이곳엔 가야 할 사람과 가지 말아야 할 사람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떠들썩하고 흥청거리는 필리핀적이고 도회적인 밤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 그리고 골프를 하겠다는 사람,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가다에 가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다. 사가다는 독특한 곳이다. 속인이 들어가기엔 좀 성스런 곳 같기도 하고,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기괴한 곳 같기도 하고, 알프스 산속 평화로운 어느 산골마을 같기도 하다. 루손섬은 필리핀 최대의 섬으로, 섬 아래쪽에 마닐라가 자리 잡고 있으며 중부에서 북단까지 대(大) 코르디엘라 산맥이 뻗어 있다. 사가다는 이 산맥 한복판, 해발 1,500m 울울창창한 아름드리 솔숲에 숨어 있는 인구 3,000명의 제법 큰 산촌마을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버스로 올라가면 서늘한 공기가 땀을 날려 버린다. 사가다에 첫발을 디디면 첫인상이 “이곳이 정말 필리핀인가”란 의문을 품게 한다. 비닐 쓰레기가 풀풀 날아다니고 악취를 풍기는 생활 하수가 흐르는 전형적인 필리핀 마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깨끗한 집·골목길·실개천, 그리고 하늘을 덮는 숲, 끝없이 이어진 계단식 논…. 이곳엔 디럭스 호텔도 없고 쿵작거리는 디스코텍도 없지만 서구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많다고 해봐야 단체관광객이 오는 게 아니라 동양의 신비감을 찾아 혼자서 혹은 둘만 오는 진짜 여행객들이다. 이곳엔 우리 교민이 없지만 서툰 영어로도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첫 2, 3일쯤은 여관에 들어갈 일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30여 개밖에 안 되는 앨프레도 B&B는 크고 깨끗한 방값이 6,000원이다(샤워실은 몇 개의 방이 공유). 작고 깨끗한 호텔이 열댓 군데가 있고 레스토랑도 여럿이다. 2,000~3,000원이면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사가다엔 여행자 안내소가 버스 정류장 옆에 있어 모든 걸 도와준다. 한 달에 15만~20만원이면 부엌과 욕실이 딸린 방을 구할 수 있다. 이곳에도 시장이 있지만, 큰 시장에 가려면 수시로 다니는 버스를 타고(20분) 본톡(Bontok)에 갈 일이다. 이곳엔 볼거리가 많다. 사가다 사람들은 칸칸아이(KanKanay)족으로 그들은 아직도 그들의 전통을 지키고 그들의 말을 쓴다. 그들도 다른 필리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서툴지만 영어를 구사한다. 사가다는 석회암 지대라 석림(石林)지대가 이어지고 석회암 동굴이 수없이 이어져 있다. 사가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관을 석림 절벽에 걸어 두고 동굴에도 쌓아 둔다. 동굴 속의 관과 절벽에 매달린 관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어 신비감을 자아내게 한다. 산허리를 돌면 천상으로 오르는 층계처럼 계단식 논이 이어졌고, 바닥엔 물이 흐르고 천정엔 종유석이 늘어진 수마깅 동굴·북콩·목포·전통 초가집 마을·트래킹 코스… . 이곳은 떠들썩한 관광지가 아니다. 카페가 있고 바도 있지만 음악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는 법도 없고, 술 취해 해롱대는 사람도 없다. 밤 9시가 되면 사이렌이 울린다. 식당도 카페도 바도 문을 닫는다. 읽고 싶은 책 몇 권만 싸들고 가서 한두 달, 피서도 하고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마닐라에서 사가다로 가는 길은 꽤 멀다. 가장 빠른 길은 마닐라-바나우에-사가다로 가는 길이다. 마닐라에서 바나우에로 가는 버스는 당와 트랑코(Dangwa Tranco)와 오토버스(Autobus)다. 9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이른 새벽에 출발하므로 마닐라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하룻밤을 자야 한다. 마닐라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당와 트랑코나 오토버스 버스 정거장으로 가자고 하면 똑바로 간다. 바나우에는 세계 최대의 계단식 논으로 유네스코가 정한 인류문화유산이 있다. 바나우에도 시원한 고산지역이라 이곳에서 2, 3일 머물다 갈 일이다. 이곳에도 호텔이 여럿 있고 지갑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른 아침에 떠나는 바나우에서 사가다행 직행 지프니는 대 코르디엘라의 장관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며 3시간이 걸린다. 분노와 자괴감을 안고 직장을 떠난 은퇴자는 쳇바퀴 일상의 지루함을 안고 여생을 갉아먹는다. 인생의 리프레시! 한두 달 외국에서 사는 데도 서울 생활비보다 지갑은 축이 덜 나고 생의 활력을 만끽하는 곳, 그곳으로 가 보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인 가구 월평균 소득 315만원…생활비로 40% 쓴다
2‘원화 약세’에 거주자 외화예금 5개월 만에 줄어
3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 9개월 만에 하락
4국제 금값 3년 만에 최대 하락…트럼프 복귀에 골드랠리 끝?
5봉화군,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 "청년 농업인 유입 기대"
6영주시, 고향사랑기부 1+1 이벤트..."연말정산 혜택까지 잡으세요"
7영천시 "스마트팜으로 농업 패러다임 전환한다"
8달라진 20대 결혼·출산관…5명 중 2명 ‘비혼 출산 가능’
9김승연 회장 “미래 방위사업, AI·무인화 기술이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