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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남 VS 4남 경영권 분쟁으로 확전”

“2남 VS 4남 경영권 분쟁으로 확전”

박카스. 제약업계 1위 동아제약의 ‘45년 효자상품’이다. 지난해 이 회사는 전체 매출(5300억원) 가운데 4분의 1을 박카스 한 제품으로 벌었다. 엄청난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다. 경쟁사조차 “박카스는 제약업계의 자존심”이라고 치켜세운다. 실제로 박카스는 즉각 현금 결제가 되는 몇 안 되는 상품이다. 박카스는 명쾌한 작명(作名)으로도 유명하다. 브랜드 네이밍이 건강 드링크 이미지와 제대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2분기 브랜드 스톡이 평가한 박카스의 순위는 국내 23위. 제약은 물론 식음료 부문에서도 단연 톱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박카스(Bacchus)는 풍요와 성장을 상징하는 자연의 신, 술의 신을 뜻한다. 1960년대 독일에서 유학했던 강신호(79) 동아제약 회장이 함부르크 시내에 있던 박카스 석고상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박카스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 따로 있다. 강 회장의 첫째 부인인 박정재(78)씨다. 박씨가 강 회장에게 작명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회사 내에서도 많지 않다. 제약 비즈니스가 전형적인 남성의 영역이 되다 보니 이 역시 자연스럽게 ‘남편의 작품’이 됐다는 것. 역으로 따지면 박씨에게도 그만큼 ‘지분’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최근 강 회장 일가는 가정 불화에 시달리고 있다. 박씨가 지난해 5월 강 회장에게 이혼 소송을 냈다. 박씨 측은 강 회장의 외도를 문제 삼고 있다. 최근 두 사람 간 조정에 실패하면서 조만간 가정법원에서 이혼 본안 소송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2003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재계의 맏어른’ 역할을 하고 있는 강 회장으로선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너 일가의 사적인 일이 재계 이슈가 되는 것은 이 사태가 몰고 올 파장 때문이다. 두 사람의 ‘황혼 이혼’은 국내 1위 제약업체의 후계구도 문제와 직접 연결된다. 누가 ‘대권’을 잡느냐에 따라 동아제약은 물론 동아오츠카·용마로지스 등 10개 계열사, 연간 8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동아쏘시오그룹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 강 회장은 5남 4녀를 두었다. 장남인 의석(53)씨와 차남인 문석(45·수석무역 부회장)씨가 박씨의 소생이다. 다만 건강이 안 좋은 의석씨는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복 동생인 강우석(43) 선연 사장과 정석(42·동아제약 전무)씨가 후계자 자리를 놓고 이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박카스 신화 숨은 공신? 동아제약 사태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 회장의 차남인 강문석 당시 동아제약 사장이 차기 자리를 예약한 듯 보였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마친 강 전 사장은 2003년 1월 사장에 오르면서 부실 부문을 정리하고 전문 의약품 영업을 강화하는 등 회사의 체질 바꾸기에 전념했다. 그런데 2004년 12월 강 회장은 “(강문석 사장은) 사장 그릇이 아니다”면서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강 전 사장으로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 3개월 동안 지방 영업을 다니는 등 백의종군하면서 이른바 ‘동아제약식 석고대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해 말 부회장으로 ‘무장 해제’된 강 전 사장은 이듬해 주주총회 때 등기이사직마저 박탈당했다. 강 부회장은 “아버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는 글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곧 회사는 월급 지급을 중단했고 자동차를 회수했다. “실적 부진에 따른 문책”이라는 회사 측의 얘기는 점잖은 편이다. “부인이 강남에 와인 숍을 차렸기 때문이다” “4남인 정석씨와의 헤게모니(주도권) 싸움에서 밀렸다” “물갈이 인사를 통해 ‘아버지 사람들’을 회사에서 몰아내다가 노여움을 샀다”…. 한마디로 부자 간 갈등설이 불거졌다. 소문은 확대 재생산돼 “몰래 회사 지분을 사들이면서 부자 간 지분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집안의 갈등설에 대해 강 회장 일가를 잘 아는 모 인사는 “그렇지 않다. 오해가 더 많다”고 말했다. “(지분 경쟁에 대해서는) 회장님도 펄쩍 뛰면서 ‘아니다’고 할 만큼 근거 없는 루머였습니다. (강문석) 부회장은 아버지와 ‘대립’이라는 말만 나와도 펄쩍 뛸 만큼 ‘전혀 그렇지 않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강문석 부회장의 아내)의 사이가 나빠졌다는 말도 나왔지만 역시 소문입니다. 회장님은 평소 둘째 며느리를 친딸처럼 아꼈어요. 특히 ‘황희 정승의 후손’이라며 며느리 잘 들어왔다는 얘기를 자주 했어요. 며느님 역시 회장님의 코디네이터를 자임했어요. 고희연 때는 판소리 영재인 유태평양군을 직접 섭외해 회장님을 기쁘게 했던 효부였습니다.” 다만 강 부회장 부부가 서울 강남에 와인 숍을 낸 것에 대해서는 “전경련 회장 며느리가 술장사라니”하면서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동아제약 일가의 갈등은 강문석 부회장 측과 강우석·정석 형제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을 듯하다. 해외 유학설이 돌기도 했지만 강 부회장은 지난해 8월 수석무역 대표로 복귀한다. 어머니인 박씨가 강 부회장의 ‘컴백’에 보이지 않는 힘이 돼줬음은 물론이다. 주류업체인 수석무역은 ‘제이앤비(J&B)’ ‘타이거맥주’ 등의 브랜드를 수입 유통한다. 지난해 매출이 400억원으로 동아제약에 비하면 외형이 1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수석무역은 서울 용두동 동아제약 본사 근처에 사옥을 두었으나 강 부회장이 경영하면서 논현동으로 이전했다. 강 부회장이 꾸준히 지분을 늘려 전체 주식의 51.2%를 갖고 있다. 언뜻 보면 ‘분가’처럼 보이지만 강 부회장은 아버지와 끈을 놓지 않았다. 강 부회장의 한 측근은 경조사 때마다 연락하고 가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전한다. 어머니인 박씨의 이혼 소송도 처음부터 반대했다고 한다. 그의 한 측근은 “그러나 이미 회장님의 마음은 떠난 것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강 부회장이 할아버지(강신호 회장의 부친이자 동아제약 설립자인 고 강중희씨) 제사를 모시는데 최근 2년 새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어요. 강 부회장이 몇 번이나 회장님께 편지를 쓰고 연락도 넣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외손녀 결혼식에도 나타나지 않으셨어요.”

“대립이라니? 효도 못해 죄송할 뿐” 강 회장의 복심(腹心)은 ‘아직까지’ 우석·정석 형제에게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는 인물이 강우석·정석씨다. 우석씨는 형제 가운데 강 회장에게 특별히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일본어에 능통하고 대인관계가 좋아 강 회장의 눈에 들었다. 문제는 경영 성적표였다. 일찌감치 라미화장품과 동아제약 중국사업본부를 맡았으나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2004년 광고대행사인 선연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동아제약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강정석씨는 강 부회장이 동아제약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영업본부장에 기용됐다. 강 부회장이 빠지면서 메디컬본부장에서 영업본부장으로 수직 승진한 것. 영업조직 중심의 국내 제약회사 구조에서 영업본부장은 ‘사장 다음’의 자리다. 이렇게 되면서 동아제약은 국내 재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4남을 중심으로 후계구도가 구체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이슈가 더 생겼다. 지난 3월 유충식(70) 동아제약 부회장이 갑자기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것. 61년 입사한 유 부회장은 강 회장에게 ‘동지’같은 사람이다. 제약 마케팅 분야의 1인자로 꼽히는 그는 특히 회사가 어려웠던 90년대 초반 ‘박카스F’를 선보이면서 ‘강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젊은층을 대상으로 박카스 광고 마케팅에 집중 투자하면서 박카스를 ‘젊게’ 만든 공신이기도 하다. 이런 유 부회장의 낙마(落馬)는 동아제약의 후계구도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지난 1년여 동안 유 부회장은 강 전무의 전면 등장을 놓고 강 회장과 부딪쳐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아제약의 한 임원은 “강 전무와 영업방침을 놓고 언성을 높일 때가 많았다. 부회장은 강 전무에게 ‘너무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고 다닌다’ ‘신경과민이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유 부회장은 강문석 부회장의 복귀를 바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부회장 직함은 내놓았지만 등기이사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동아제약의 권력구도는 ‘강신호+우석·정석 그룹’과 ‘강문석+유충식 그룹’으로 나뉘게 된다. 결국 지분 싸움이다. 현재 강 회장 측 지분은 우석·정석씨 지분과 회사가 운영하는 비영리재단 주식과 자사주를 포함해 12.86%다. 강 부회장 측은 7.27%를 확보하고 있다. <도표 참조> 현재로선 아버지와 아들이 동아제약을 놓고 ‘끝까지 가는’ 지분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강 부회장 측은 “지분을 늘리는 것은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는 회장님도 인정하는 것이다”고 강조한다. 동아제약 측은 조금 다른 듯하다. 최근 동아제약은 자사주 매입을 결의했다. 지난 6월 14일 동아제약은 “95억원을 들여 자사주 20만 주를 매입하기로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기존의 60만 주에서 20여만 주를 추가 확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미 6월 22∼27일 사이에 2만7500여 주를 사들였다. 계획대로 되면 동아제약의 자사주 지분은 8%대로 늘어난다. 강 회장 측 우호지분도 14% 정도로 늘어난다. 배기달 한화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은 주가 하락으로 인한 주주의 피해를 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며 “동아제약의 지분 구조는 견실하기 때문에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 부양 말고도 여기에는 두 가지 포석이 더 있다. 일단 혹시 있을 수 있는 경영권 방어에서 유리하다. 6월 말 현재 강 부회장 측을 포함해 강 회장 일가의 지분은 20.1% 수준.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를 위한 최대주주 지분이 25%라고 봤을 때 자사주 매입을 통해 특수관계인 지분을 2%포인트 올린다면 아주 괜찮은 투자가 된다.

“핏줄 보고 기업 주지 않겠다” 물론 강 부회장 측에 대해서도 확실한 견제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재계는 이번 자사주 매입이 강 회장의 의중을 ‘확인’해 주는 조치라고 해석한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자사주가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강정석 전무에게 무조건 유리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또 최근 법원이 부부간 재산 분할 소송에서 여성에게 돌아가는 몫을 40% 이상으로 늘리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도 향후 지분구조는 ‘안개 속’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러다 보니 강 회장 부부의 황혼 이혼을 지켜보는 재계의 시선은 착잡하기만 하다. 항간에서는 “어지간한 합의금으로는 합의가 되지 않을 것이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강 부회장의 한 측근은 “불효를 하는 것도 죄스러운데 과장된 얘기가 떠돈다”며 “아직도 어머니를 설득하는 중이다.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강 회장은 평소 “핏줄만 보고 자식에게 기업을 넘겨줬다가 망하는 것을 많이 봤다. 회사를 세계적인 제약기업으로 키우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이 회사를 맡아야 한다”는 ‘후계자론’을 밝혀왔다. “동아제약을 오너가 없는 유한양행 같은 회사로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재계의 어른’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동아쏘시오그룹은… 일반인에게는 동아제약 그룹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게는 동아쏘시오그룹이다. 강신호 회장은 10년 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치있는 기업을 만들자”며 ‘동아쏘시오(Socio)그룹’으로 바꿨다. 1932년 서울 중학동에서 창업한 ‘강중희상점’이라는 약국이 모태로, 60년대 후반부터 국내 제약업계에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포카리스웨트’로 유명한 동아오츠카를 비롯해 물류회사 용마로지스, 유리병 제조업체인 ㈜수석, 주류유통업체인 수석무역 등 10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그룹 매출이 8000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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