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수퍼모델에서 수퍼 경영자로

수퍼모델에서 수퍼 경영자로


호주 수퍼모델 엘르 맥퍼슨 명색뿐인 마네킹 노릇 탈피 이젠 당당하게 “나도 경영인” 기업의 전형적인 기획회의에 초청받았다면 커피를 한잔 가득 들고 블랙베리(휴대정보단말기)를 가져가야 현명한 행동이다. 그러나 벤든사에서 격월로 열리는 품평회에 어쩌다 참석하게 됐다면 케이블TV의 유료 프로그램에서나 볼 만한 광경을 기대해도 좋다. 벤든은 엘르 맥퍼슨 인티미츠(EMI)의 뉴질랜드 제조사다. EMI는 ‘몸짱(The Body)’이라는 별명이 붙은 호주 수퍼모델 엘르 맥퍼슨이 이끄는 고급 속옷 브랜드다. 그 품평회의 의제는 간단하다. 맥퍼슨은 “겉옷을 벗고 속옷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품평회는 견본을 입어보고 몸에 맞는지, 편안한지, 스타일은 좋은지 논평하는 자리다. 이 엄격한 검사를 통과하는 벤든 제품들은 성장하는 사업제국의 초석을 이룬다. 지난해 맥퍼슨의 브랜드는 76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얼마 전만 해도 수퍼모델들이 신경 쓰는 수치는 주로 두 가지였다. 신체 치수(35-23-35가 표준)와 일당 모델료(1만 달러 이상이면 이상적)였다. 그러나 운동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모델로 활동 가능한 시기는 젊었을 때뿐이다. 21세기의 표지 모델들이 몸매만큼 브랜드에 신경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갈수록 경력 관리에 중점을 둔다. 신체 주요 부분들이 처지기 시작한 한참 뒤에도 꾸준한 수입을 올리려는 목적이다. 갈색 눈에 금발인 맥퍼슨(42)은 가장 최근에 이런 다각화 전략에 성공한 수퍼모델이다. 그녀의 사업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고경영자는 아니지만 전략회의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이익도 분배받는다. 그녀의 제품은 뉴질랜드·호주·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제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로드&테일러, 블루밍데일스 같은 매장에서 판매된다. 매출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23%씩 증가한다. 앞으로 엘르 브랜드의 보습제와 로션도 나온다. 요즘 맥퍼슨은 거의 패션쇼에 나서지 않지만 관리자로서 재능을 한껏 발휘한다고 동료들은 말했다. 그녀의 런던 지역 변호사인 앨릭스 카터-실크에 따르면 “모델과 연예인 엘르에서 사업가와 스타 CEO 엘르로 변신하는 중”이다. 본명이 엘리너 가우인 맥퍼슨은 호주에서 성장해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모델로 일했다. 그녀의 집안에는 사업가의 피가 흐른다. 아버지는 호주에서 음반·전자제품점 체인을 세워 성공했고, 오빠도 호주에서 첨단 벤처기업들을 창업해 여러 번 큰돈을 벌었다. 엘르는 1980년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에서 해마다 발행하는 수영복 특집호의 고정 모델로 유명해졌지만 실상 모델 일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고 이제는 말한다. “거의 언제나 잡지에 실린 내 사진을 보고 형편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자의식이 강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들어온 일의 절반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모델료를 아주 세게 불렀다.” 요즘 그에게는 엄마의 역할이 첫 번째(세 살과 여덟 살짜리 아들이 있다), 사업이 두 번째지만 자사 상품의 판매를 도우려 카메라 앞에 서기도 한다. 최근 호주 GQ지에 실릴 사진을 촬영할 때 뉴스위크가 그녀를 찾아갔다. 작은 가죽 속옷을 입고 두카티 오토바이를 타는 자세를 취했다. 한 무리의 남자 모델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다수가 그녀 나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정작 본인은 모델 일을 경멸할지 모르지만 모델로서 정년이 지난 나이에도 우상으로 남아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요즘 유명인들 사이에서 많이 눈에 띄지만 수퍼모델은 실상 근래 들어 탄생한 직종이다. 19세기 중반까지 상인들은 옷을 진열할 때 ‘마네킹’만 사용했다. 그러던 중 런던의 디자이너 더프 고든 부인이 키 크고 매력적인 노동계급 여성들을 뽑아 행동거지와 자세를 훈련시키고 코리산드 같은 이색적인 이름들을 붙여줬다. 이들은 곧 가십 칼럼의 단골메뉴가 됐다. 모델업은 1960년대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당시 트위기 같은 모델들은 패션 사진을 촬영하고 하루 600달러를 받았다. 80년대 들어서야 모델들이 ‘수퍼’해졌다. 패션 무대에서 벗어나 광고·MTV·향수 제품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사업적인 관점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은 1984~94년 사이 모델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케이티 아일랜드(43)다. 오늘날 그녀의 회사(케이티 아일랜드 월드와이드)는 직원 37명을 두고 창문 블라인드에서 소파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품을 판매한다. 연간 매출액은 14억 달러에 달하며 포브스의 추산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연간 1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다. “내 외모로 돈을 번다는 사실이 영 불편했다”고 아일랜드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나는 카메라 체질이 아니라고 항상 생각했다.” 수퍼모델 일은 주로 꾸준히 밀려들어오는 라이선싱 계약 중 하나를 택해 이름을 빌려주는 것이 전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모델 자신은 대체로 그 제품이 어떻게 디자인됐는지 거의 모른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잘못된 통념이라고 반박한다. 모델업계를 떠나자 “아무도 광고출연을 제의하지 않았다”고 아일랜드는 말했다. 맥퍼슨의 사업 공부는 20대 때 시작됐다. 그리고 실패를 통해 가장 소중한 경험의 일부를 얻었다. 94년 다른 모델들과 함께 패션 카페에 투자하기로 계약했다. 하드 록을 본뜬 테마 레스토랑이었다. 그 사업은 실패로 끝났으며 그녀는 아직도 그 얘기가 나오면 흥분한다. “브랜드를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큰 배움을 얻었다.” 맥퍼슨은 90년 벤든과 손을 잡고 현재 사업을 시작했다. 애당초 EMI는 전통적인 라이선싱 계약으로 이뤄졌다. 처음에는 이름과 이미지만 제공했다. 맥퍼슨이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벤든의 경영진은 이렇게 타이르곤 했다. “자기 일이나 잘하쇼. 댁은 속옷을 착용하고 제품에 이름만 빌려주면 돼요. 우리는 그것으로 족하오. 고맙긴 하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업 참여 기회가 늘어났다. “내가 속옷에 얼마나 열광하는지 그들은 몰랐다”고 맥퍼슨은 말했다. 첫 번째 디자인 회의에 전 세계에서 자신이 수집한 “브래지어와 내의를 가득 채운 여행가방을 들고 가서 테이블에 모두 쏟아놓고 ‘이제 일합시다’ 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처음에 마치 ‘야 이 여자, 속옷에 집착하는 별난 성적 취향이 있지 않나’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곧 적임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나 역시 그들이 꼭 필요했다는 점은 모르더라.” 2003년 그녀는 저작권 전문가인 카터-실크를 고용해 계약을 전면 수정했다. 그 결과를 실크는 이렇게 설명했다. “해고하면 그만인 관계가 아니라 상당히 상호적인 관계가 됐다. 회사는 그녀의 지시와 정보를 상당히 필요로 한다.” 벤든의 신임 최고경영자 스테판 프레스턴은 맥퍼슨의 사업 참여 확대를 반긴다. 금전적인 측면에서도 선지급으로 주는 확실한 라이선싱 수수료 대신 나중에 더 큰 몫의 투자 배당금을 받기로 했다. 따라서 아이디어가 성공하면 더 큰 수입을 올리게 된다. 맥퍼슨은 또 자기 브랜드 회사 이외의 사업다각화 기회를 모두 마다했다. 오랜 매니저인 스튜 캐머런은 맥퍼슨을 광고 모델로 쓰고 싶어하는 회사(색안경·패션 액세서리 업체)들의 제의를 끊임없이 전달한다. 그러나 “(맥퍼슨은) 그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캐머런은 말했다. “자신이 20년 동안 키워온 사업에 온 신경을 쏟아붓는다.” 맥퍼슨은 부분적으로 자기계발의 보상을 얻는다고 본다. “돈은 그렇게 많이 못 벌었을지 모르지만 더 즐겁게 일하고 더 많이 배웠다”고 그녀는 말했다. 관리자이자 EMI의 개발팀장으로서 맥퍼슨은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사업가라고 생각하니 좀 우습다. 여성 사업가라면 MBA 학위에 정장 차림을 한 사람, 그리고 장악력이 있고, 결단력을 갖췄으며 숫자를 훤히 꿰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일에 더 많이 참여하는 이유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팀이 뛰어난 결정을 내리도록 도울 만큼 똑똑하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어렸을 때 무식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그래서 멍청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질문하기를 꺼렸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제 “현명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 질문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영국과 호주에서는 대부분의 백화점 매장에 그녀의 레이스 달린 속옷들이 눈에 띄게 진열돼 있다. 그 브랜드의 인기상품 중 일부는 엘르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녀는 아이들을 낳은 후 수유용(授乳用) 브래지어를 출시해야 한다고 열심히 주장했다. 그러나 임산부용 제품이 그녀 브랜드의 섹시한 이미지를 해칠지 모른다고 벤든사는 우려했다. “비싸든 싸든, 유명 브랜드든 아니든, 임산부용이든 그냥 대형 브래지어든 나에게 맞는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벤든 경영진은 그녀가 너무 ‘매력적’이라 ‘촌스러운’ 제품 출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그녀는 계속 밀어붙여 결국 승낙을 받아냈으며 현재 수유용 브래지어(약 50달러 선)는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또 다양한 종류의 부두아 브랜드 이색 란제리와 애프터웨어 파자마 브랜드도 자신이 개발했다고 한다. 파자마는 그녀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파자마는 전통적으로 잠옷 매장에 속하기 때문이다. “잠옷을 만드나요, 란제리를 만드나요.” 처음에는 백화점 관계자들이 황당해 하며 물었다. 이제 그녀는 매장에 자신의 옷을 전시하는 데 사용하는 옷걸이의 종류, 광고 캠페인, 블루밍데일스와 삭스 피프스 애버뉴 관계자들과의 회의 등 모든 결정에 관여한다. 마사 스튜어트(역시 모델로 출발했다)처럼 지나치게 꼼꼼하게 챙기려 한다는 쑥덕공론이 있다는 점을 맥퍼슨도 인정한다. “실상은 정말 그냥 궁금할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결과를 통제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 가만히 서서 그냥 ‘내 제품을 사세요’ 라고 말하기보다 다른 정보를 좀 더 제공하고 싶었다.” 미국에서는 브랜드 독자성을 구축하기가 좀 더 까다로울 전망이다. 대형 브랜드 빅토리아스 시크릿은 미국에 1000개 가까운 매장을 뒀으며 100억 달러 규모인 여성 속옷 시장의 약 40%를 차지한다. 맥퍼슨은 브래지어와 팬티 이외에 어떤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갈지 구상하기에 바쁘다. 지난해 가을 그녀의 ‘더 보디’ 로션 브랜드(프루트&허니 엑스폴리에이터, 선키스트 보디 밤)가 고급 런던 매장에서 판매에 들어갔다. 그것은 단순히 이름을 부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녀가 직접 만들어내는 제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브랜드 확장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10년 전에는 그녀의 상표가 의류에 국한됐지만 앞으로 만들어낼 접시·발한억제제·지갑·주걱 등 온갖 제품의 홍보에 사용하도록 그녀의 이름을 2004년 특허로 등록했다. 이미 호주에서 맥퍼슨 맨이라는 남성 속옷 브랜드를 선보였다. 어떤 스타나 마찬가지지만 가능성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보험회사나 자동차 렌트 회사까지 세운다면 브랜드를 좀 지나치게 남용하는 셈”이라고 ‘스타는 팔린다(Celebrity Sells)’의 저자 해미시 프링글은 말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신의 외모를 밑천 삼아 생활해온 여성의 입장에서 사고의 지평을 넓힐 기회는 오히려 반가운 변화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서울시, ‘휴먼타운 2.0’ 사업 후보지 10곳 선정

2굿파트너 작가 '황재균·지연' 이혼에 등판, '누구'와 손 잡았나

3가기 힘든 싸이 ‘흠뻑쇼’…온라인 암표 최다 적발

4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3人…나란히 국감 불출석 통보

5벤츠코리아, 국내 최대 ‘SUV 오프로드 익스피리언스 센터’ 오픈

6운전 중 돌연 가로수 쾅...20대 중학교 동창 3명 사망

7현대차, 수소전기버스 ‘일렉시티 FCEV’ 누적 판대 1000대 돌파

8제주도 활보한 ‘베이징 비키니’…“한국에서 왜 이러는지”

9하늘길 넓히던 티웨이항공...특정 항공기 운항정지·과징금 20억

실시간 뉴스

1서울시, ‘휴먼타운 2.0’ 사업 후보지 10곳 선정

2굿파트너 작가 '황재균·지연' 이혼에 등판, '누구'와 손 잡았나

3가기 힘든 싸이 ‘흠뻑쇼’…온라인 암표 최다 적발

4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3人…나란히 국감 불출석 통보

5벤츠코리아, 국내 최대 ‘SUV 오프로드 익스피리언스 센터’ 오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