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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거꾸로 본 통계] 한국 경제 일자리 창출 능력 잃었나

[양재찬의 거꾸로 본 통계] 한국 경제 일자리 창출 능력 잃었나

즐거워야 할 한가위에 고향에도 가지 못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 한둘이 아니다. 대학을 나오고도 여태 직장을 못 구했거나 겨우 ‘알바’ 처지에 쏟아질 친지들의 직장과 결혼에 대한 질문이 무서워서다. 어디 20대만 그런 딱한 처지인가? 30·40대 중에도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사람보다 봉급이 적은 데다 그나마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몰라 불안해하는 이들에겐 밝은 보름달이 가슴을 시리게 했으리라. 명절이면 더욱 커지는 이태백의 걱정은 교육인적자원부의 취업 통계로 입증된다. 대학의 보고 내용을 모아 발표하는 것이라서 조사 방법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는데도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49.2%로 절반이 안 된다. 전국 363개 대학과 139개 대학원 졸업자 56만1203명 중 취업자는 38만9157명인데 정규직이 29만9804명, 비정규직 8만679명으로 집계됐다.
비정규직은 해마다 빠른 속도로 불어난다. 2001년 363만5000명에서 지난해 548만3000명으로 급증했다. 4년 사이 증가율이 50.8%로 전체 임금 근로자 증가율 10.5%(2001년 1354만 명→2005년 1496만8000명)의 5배에 육박한다. 그런데 이 기간에 정규직은 오히려 990만5000명에서 948만6000명으로 4.2% 감소했다. 2002년부터 급증한 비정규직과 달리 정규직 일자리는 경제성장률과 정비례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장률이 7%로 높았던 2002년 정규직은 1019만1000명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성장률이 3.1%로 뚝 떨어진 2003년 64만8000명이나 줄어든 데 이어 성장률이 4%대인 2004년에도 35만3000명의 정규직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 결과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001년 26.8%에서 2004년 3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서 비정규직은 한시적 근로자(기간제 근로자 포함)를 비롯해 시간제 근로자, 비전형 근로자로 구성된다. 고용의 지속성을 기준으로 따진 한시적 근로자는 근로계약기간을 정했느냐 여부에 상관없이 본인 의사가 아닌 비자발적 사유로 계속 근무하길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지난해 8월 현재 361만5000명으로 비정규직 10명 중 7명이 이런 경우다. 이 밖에 근로시간이 짧은 시간제 근로자가 104만4000명, 파견·용역·일일(호출)근로자 등 근로제공 방식이 일반적 형태가 아닌 비전형 근로자 190만7000명이 비정규직 명부에 올라 있다. 이처럼 급증하는 비정규직 때문에 일자리가 불안하고, 한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경제 성적이 나쁘다는 국제기구의 진단이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9월 21일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는 안정적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고용(permanent salaried employment)을 창출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IMF는 그 근거로 비정규직 비중이 (참여정부 출범 전인) 4년 전보다 10%포인트 높아졌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5배나 되는 높은 수준임을 들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외환위기를 맞아 IMF의 권고로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을 편 측면도 있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IMF가 이번에는 한국에서 비정규직이 문제라고 들고 나왔다. 이는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비정규직이 늘어나면 근로자가 미래를 불안해하며 이는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그 해답은 결국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성장이 일자리와 국민 후생을 해결하는 시대는 거의 끝나간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이어 정부가 제시한 2007∼2010년 80만 개의 사회 서비스(보육인·간병인·방과후 지도교사 등) 일자리 확충은 한 달에 몇십 만원씩 받는 또 다른 비정규직 양산에 다름아니다. 경제의 수원지는 기업이고, 기업의 상수원은 투자다. 9·28 기업환경개선대책에 그치지 말고 수도권 규제 완화, 출자총액제한 폐지, 노사 안정화 방안 등 기업이 걱정하는 규제를 더 풀어 투자를 활성화시켜야 괜찮은 일자리가 더 나오고, 근로자의 주머니가 두툼해지면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고, 소비가 늘어나 경제가 활기를 띠며 성장률도 높아진다. 거꾸로 가면 상수원이 마르고, 성장이 정체되며, 그런 경제의 내일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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