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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칼럼] 동유럽의 뿌듯한 기억

[CEO칼럼] 동유럽의 뿌듯한 기억

얼마 전 슬로바키아를 방문했다. 직항노선으로 오후 6시 빈에 도착해 차로 1시간(41km) 정도 가니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가 나왔다. 다음날 아침 2시간 넘게 차를 타고 질리나에 도착했는데 나는 입을 벌리고 말았다. 슬로바키아의 3대 도시 중 하나고 인구가 15만 정도라고는 하지만 도로조차 제대로 놓여있지 않은 낙후된 시골이라는 생각을 차 속에서 하던 터에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대규모의 큰 공장들과 빨간색 ‘KIA(기아)’ 로고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기업의 동구권 진출은 지난 1995년 이후 김우중 대우 회장이 세계경영을 외치며 현지 공장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그 당시는 동구권 국민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지도 잘 모를 때였는데, 대한민국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대우라는 회사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신뢰와 고마움을 가지게 됐다고 들었다. 그 시절 필자는 대우 담당으로 동구권을 자주 방문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고마움과 뿌듯함을 느꼈다. 이번에 필자는 그 기억을 되살리게 된 것이다. 파리 모터쇼가 시작되던 날, 기아 질리나 공장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공장 안 직원들이 오가는 곳에 광장을 만들어 ‘하모니(화합) 광장’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처음으로 질리나 공장에서 생산하게 되는 Ceed(시드)라는 차를 발표하게 된 기념으로 음악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처음 필자는 양산을 앞두고 1000여 명 되는 기아자동차 직원들이 서로 잘하자는 무언의 다짐과 격려를 위한 사내 행사였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단지 기아자동차에 근무하는 직원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 모두 참석하는 동네 축제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몇 안 되는 한국인 파견 근무자들이 현지인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하모니 광장에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 필자는 왜 이 먼 시골에 1조2000억원이나 되는 큰돈을 투자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그 행사를 보고 매년 나라 경제를 흔들며 파업을 하는 한국의 노조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씁쓸함과 함께 안도감을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 체코를 들렀다. 공항에서 프라하 시내로 차를 타고 들어가는데 가로등에 온통 삼성 깃발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삼성이 디지털의 이름으로 마라톤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새삼스럽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동구권 곳곳에 우리나라 기업이 뻗어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집 나가면 효자 되고, 밖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나는 유럽이나 미 대륙에 출장 갈 때마다 특히, 버려져 있는 넓은 땅을 보면 대한민국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우리 국토가 조금만 더 넓었어도 하는 안타까움과 19세기 초 대원군의 쇄국정책만 아니었어도 어쩜 지금의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세계로 더 뻗어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등등…. 그런데 최근 두바이의 경우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예전에는 좁은 국토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기업과 국민이 전 세계를 무대로 뻗어나가야 된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두바이는 우리나라 제주도 두 개 정도의 국토를 가지고 있고 그중 90%가 사막이다. 그럼에도 71km의 해안선을 따라 형성돼 있는 주거지 10%에서 1인당 GDP 10만 달러를 목표로 달리고 있다. GDP 2만 달러 달성 가능성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우리네 상황에서는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국토가 넓고 좁음이 문제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두바이처럼 안에서도 밖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전 세계에 또 다른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을 한다면 멋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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