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그리는 ‘의정갈등’...고래가 싸우자, 새우는 울었다 [P기자의 길 위에서]
30년 신촌 지키던 상인도 못피한 ‘의정갈등’
길어지는 ‘의정갈등’에 인근 상인들 ‘직격탄’
산업을 좋아합니다. 사람은 더 좋아합니다. 산업을 이끄는 주체는 단연코 사람입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하지만, 가끔은 사람 사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고래가 싸우자, 새우는 울었다. 고래는 정부와 의사, 새우는 상인이다. 이들의 싸움에 흔들림 없던 신촌 상권이 흔들리고 있다. 30년 신촌 상권을 지키던 터줏대감도, 24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식당도 속수무책이다. 그 배경에는 ‘의정갈등’이 있다.
의정갈등의 시작은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다. 올해 2월 정부가 발표한 해당 정책에는 4가지 내용을 담겨 있다. 바로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이다. 이 중 ‘의료인력 확충’이 의정갈등의 스모킹건이 됐다.
당시 정부는 10년 뒤인 2035년 의사 수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토대로 2025학년도부터 입학정원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 수급추계에 따른 주기적 정원 조정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정부의 정책패키지 방향에 공감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는 의학교육의 질 저하와 건보 재정에 큰 부담을 가져올 것”이라며 “의협 및 의학교육 전문가 단체 의견을 경청해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정부와 의료계의 ‘불협화음’이 시작됐다. 양측의 대화는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정부는 강행기조를 유지했고, 의사는 전공의 파업으로 맞받아쳤다. 깊어진 갈등의 골에 화해 여부는 낌새조차 없다. 길고 긴 싸움에 덩그러니 놓인 사람은, 병원 인근 상인들이었다.
신촌 지키던 터줏대감의 눈물
문을 열자, 적막을 깨는 도마 위 칼질 소리가 들린다. 이곳은 중식당이다. 서울 서대문구 신천동 연세 세브란스 병원 인근 상권에 위치해 있다. 분명 장사 준비로 분주했지만,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사장님이 신촌 상권을 지킨 지는 어언 24년이 다 되어간다. 긴 세월을 견뎌온 이곳엔 ‘맛집’을 상징하는 징표들이 곳곳에 붙어있었는데, 정작 사장님의 얼굴엔 깊은 주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맛일까. 맛집이라 소개 됐으니, 아닐 것이라 짐작한다. 그럼 서비스일까. 기자를 응대하는 동안 사장님은 단 한 번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서비스 문제도 아닐 것이다. 혹시 위치가 문제일까. 신촌 상권은 부동산 시장에서 손꼽히는 명당으로 평가받는다. 우수한 접근성이 보장되기에 위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장님과 대화를 나눠보니, ‘의정 갈등’이 그의 속을 갉아먹고 있었다. 의정갈등 이후 매출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매출의 20%가 줄었다고 설명한다. 회식이면 찾아오던 의사들의 발길이 끊겼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사장님의 몫이었다.
신촌 중식당 사장 A씨는 “이런 말씀드리긴 그렇지만 우리는 맛집으로 소개될 만큼 괜찮은 식당이다”라며 “특히 의사들이 회식 장소로도 많이 찾아왔는데, 의정갈등이 시작되더니 그때부터 서서히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 의정갈등이 1년이 다되어가는데, 의정갈등 시작부터 매출이 하락세를 띠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약 매출의 20%가 떨어졌다. 의사들이 학생이나 동료를 데려와서 함께 음식을 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아 영업이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인근 상인들도 의정갈등 시작과 함께 고통을 받고 있지만, 무엇보다 아픈 환자가 중요하다”며 “의사들에게 환자의 생명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빨리 복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갈비집도 의정갈등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곳 문을 여니, 고기냄새가 아닌 향긋한 보리차 냄새가 기자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업력은 무려 30년에 달한다. 기자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이곳 사장님은, 의정갈등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전했다. 의정 갈등 이후 매출의 3분의 1이 떨어졌다고 애써 전하는 그의 눈은 짙은 어둠을 띠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의사들이 자주 찾는 고깃집이다. 저녁이면 의사와 동료들이 곳곳에 자리 잡아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 맘때즘이면, 연말 회식 예약 문의로 눈코 뜰 새없이 바빴단다. 불과 지난해만 해도 연말 예약으로 가득 차 예약을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는 그다. 다만, 사장님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현재 연말 예약 문의는 씨가 말랐다. 가득 찬 예약자로 예약 문의를 거절을 하던 그가, 하염없이 예약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가 지금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의사들이 하루빨리 현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단순 매출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모두를 위해서다.
소갈비집 사장 B씨는 “가끔 찾아오는 의사들한테 물어본다. 언제쯤 현장으로 복귀하느냐고. 그럴때 마다 의사들은 고개를 흔든다. 아직은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라며 “이제는 이 기나긴 의정갈등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는 돈도 많이 벌고 편한 직업인줄 알았는데, 가게를 운영하며 의사들이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를 알게 됐다”며 “한 번은 우리 가게에 예약한 의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예약 취소 문의였다. 급한 수술이 잡혀서 예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을 위한 상도 다 차려놨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내가 아는 의사들은 직업의식도 있고, 사명감도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 아닌가. 새벽부터 나와서 회진 돌고, 환자 돌보고, 수술하고, 바쁜 사람들이다”라며 “의정 갈등에 가게 운영도 힘들어졌지만, 이제는 그저 의사들이 모두를 위해 현장에 복귀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수제비집을 방문했다. 이곳은 노인 2명이 운영하는 아주 작은 식당이었는데, 의정갈등의 직접적인 영향권은 아니었다. 사장님은 한 그릇에 5000원짜리 수제비를 팔았다. 비싼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들이 찾아오는 곳이라기보다, 일반 학생들이 한 끼 싸고 든든하게 먹기 위해 찾는다고 했다.
결국 발길을 돌리려는 기자 뒤로 그가 물었다. 매출에 영향이 있어야만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기자는 아니라고 했다. 의정갈등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음에도, 그가 꼭 의사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었다. “돌아오라”는 것.
수제비집 사장 C씨는 “우리는 비싼 음식을 파는 집이 아니라, 사실 의정갈등에 영향은 없다”면서도 “그래도 의사는 사람을, 아픈 환자를 지켜주는 직업이니, 얼른 아픈 사람들을 위해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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