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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이겨도 북핵 안갯속

미국 민주당 이겨도 북핵 안갯속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진 지난주 국내 서점가에선 눈에 띄는 책 한 권이 선보였다. 국내 외교·안보·경제 분야 대학교수, 연구원 등 15인이 발간한 ‘10·9 한반도와 핵’(이룸 펴냄)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날이 10월 9일이다. 따라서 이 책이 기획되어 시중에 나오기까지 채 한 달이 안 걸렸다. 북한 핵실험이 초래할 미래를 다룬 최초의 사회과학 서적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미 간 충돌과 핵 협상에는 순환구조가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초반 이래 15년간 꼬이고 풀리기를 반복해온 북핵 문제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얘기다. 전 교수는 “북한의 핵 도발, 핵 위기 발생, 일괄 타결 합의, 합의 해체로 이어지는 4단계 주기가 반복됐다”고 주장했다. 사실 북한 핵문제의 전개는 유사한 일들과 엮여왔다. 북·미 양국이 핵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점에서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모두 야당이 승리했다는 사실도 우연치고는 이채롭다. 1차 핵위기가 고빗길을 넘어서던 1994년 11월 중간선거에서는 당시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승리했다. 북한 핵실험으로 북·미 관계가 최악일 때 치러진 2006년 중간선거에서도 야당인 민주당이 의회 지배권을 탈환했다. 야당의 의회 장악은 북핵을 포함한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빌 클린턴의 민주당 행정부는 그 직전 체결된 북·미 제네바 합의(1994년 10월 21일) 이행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제네바 합의를 탐탁지 않게 보던 공화당이 다수당의 힘으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강하게 견제했기 때문이다. 이번 중간선거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는 민주당이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변화를 강요한다. 민주당은 북·미 직접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문해왔다. 행정부와 의회 권력을 공화·민주 양당이 번갈아 행사하면서 대북정책 역시 강경과 온건 기조를 오갔다. 이제 북·미 관계는 충돌 일보 직전에서 대화의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1990년대 초반 1차 북핵위기와 지금의 핵위기는 시기와 내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점에서 닮은꼴이다. 우선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동일하다. 1차 핵위기 당시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가, 지금은 핵실험이 벼랑 끝 전술의 핵심이다. 둘 다 국제사회의 규칙을 깨뜨리는 행위로 간주됐다. 이와 관련해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야말로 위기를 조성한 뒤, 행동으로 옮기면서 위기의 수위를 높여 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1차 핵위기를 보자.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한 북한은 93년 6월 유엔의 제재가 가해지면 한국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94년 3월 19일 남북 특사회담 실무접촉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그런 뒤 6월 13일 NPT를 탈퇴함으로써 동북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다. 지금의 핵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05년 2월 10일 북한 외무성은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5월 13일 조선 중앙텔레비전은 “선제타격권은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다”며 선제공격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한은 이와 함께 “우리에게는 그 어떤 핵 선제타격에도 대처할 수 있는 강력한 억제수단이 있다”고 거듭 역설했다. 그런 다음 행동에 나섰다. 올해 7월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에 이어 10월 9일 한반도 최초의 핵실험을 단행하는 강수를 뒀다. 고유환 교수는 “이 시점에서 시간을 끌면 장기적으로 미국의 정권교체 의도에 말려들겠다는 판단에서 단기적 초강수를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두 차례 북핵위기에서 모두 북·미는 물리적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갔다. 두 번의 경우 모두 한국 정부는 전쟁이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94년 2월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단시간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한다는 작전계획 ‘5027’을 언론에 공개했다. 또 3월에는 미국의 핵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일본 요코스카 기지에 입항시키는 등 한반도 주변에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핵시설 폭격까지도 검토했다. 1차 핵위기 때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대북 강경정책을 구사하면서도 미국에는 전쟁불가론을 강조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김영삼 대통령은 ‘핵을 가진 북한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무력제재를 검토했던 미국에도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버텼다”고 말했다. 2차 핵위기는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 시인으로 불거졌다. 이후 줄곧 한반도 전쟁론, 북폭론 등 미국 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대북 공격론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10월 9일 북한 핵실험 이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작전이 본격화하면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한층 현실에 가까워졌다. 이에 맞서 북한은 10월 17일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털끝만치라도 침해하려 든다면 가차없이 무자비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흥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11월 2일 “북한 핵무기 폐기 노력이 또 다른 충돌의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물리력 행사를 말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무력충돌 불가론을 편 것이다. 무력충돌은 엄청난 희생을 요구한다는 사실 때문에 두 번의 핵위기 모두 도상 연습에 그쳤다. 1차 북핵위기가 불거졌던 1994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과의 전쟁을 고려했지만 막판에 협상으로 돌아섰다. 예상되는 인적·물적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94년 5월 19일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한반도 전쟁 발발시 초기 90일간 미군 5만2000명, 한국군 49만 명 등 궁극적으로 100만 명 이상이 숨진다고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미군의 전쟁 비용은 초기 610억 달러에서 최종적으론 1000억 달러를 능가하며, 한국 경제손실 규모가 1조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됐다. 미국은 전면전 대신 폭격기나 항공모함 등을 이용해 핵시설만 제한적으로 공습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이마저 북한이 한국을 맞공격할 경우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려대상에서 제외됐다. 2006년의 상황도 비슷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현재의 군사적 상황은 (자신이 방북했던) 10여 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의 전력은 북한군을 괴멸시키고도 남는다. 하지만 한국인과 미국인 최소 100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초래한다고 카터 전 대통령은 우려했다. 미국은 이미 미군 13만 명 이상을 이라크에 파견했으며, 북한은 핵무기를 가졌다. 미국이 처한 상황은 1994년에 비해 더 열악하다. 따라서 군사적 조치가 북핵문제 해법이 되기 어려운 처지다. 대북 정책 조정관이 핵위기 국면의 해결사로 등장한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1차 핵위기 당시 대북 정책 조정관 임명을 통한 북·미 직접 대화가 이뤄졌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8년 북한이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하자 윌리엄 페리 대북 정책 조정관을 평양에 파견했다. 이후 대북 포용과 관계 개선 추진을 골자로 하는 ‘페리 프로세스’는 클린턴 행정부 내 대북 협상의 이정표가 됐다. 부시 대통령도 고위급 대북 정책 조정관을 임명토록 한 법률에 서명했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대북 정책 조정관 임명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민주·공화 양당에서 선호하는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거론된다. 부시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미 직접 대화는 이제 불가피해졌다는 인상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다”며 “6자회담의 틀 속에서 양자회담을 전개하는 절충형을 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민주당의 중간선거 승리로 북·미 양국은 무력충돌이라는 파국을 면할 듯하다. 하지만 두 번째 핵위기도 첫 번째와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까. 많은 전문가는 유보적이다. 1차 핵위기 때는 제네바 합의라는 북·미 간 타결 방안이 도출됐지만 이번엔 속단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궁극적으로 정책 집행은 행정부 몫이다. 1차 핵위기 때의 민주당 행정부는 대북 포용 의지를 내보였지만 지금 공화당 정부는 북한 고립과 봉쇄 정책을 추구하는 등 정부의 성격이 판이하다. 국방연구원의 백승주 대북정책실장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철학과 인식을 바꾸면서까지 북핵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잘못된 행동을 보상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과 북한과의 양자회담은 반드시 실패작이라는 인식이 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세종연구소의 송대성 수석 연구위원도 “미국 민주당의 김정일 정권 인식은 근본적인 오류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경제 지원을 제공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핵무장은 협상용이 아니라 정권 유지용이다. 핵 포기를 전제로 한 북·미 대타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북·미 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렇게 전망했다. “북한은 2년 후 미국의 정권교체를 기대하며 시간을 끌고, 미국은 미국대로 현상을 유지하면서 시간 끌기에 나설지 모른다.” 북한은 2년 후 다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경우 정권도 유지하면서 핵을 보유하게 된다는 꿈을 꾼다. 반면 미국의 공화당은 시간이 북한의 편이 아니라고 믿는다. 어느 쪽의 판단이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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