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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으로 달려가라

기회의 땅으로 달려가라

‘오렌지 혁명’의 나라, 우크라이나.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나라 중에서 가장 알짜배기 국가일뿐더러 최근 들어서는 부정선거를 뒤엎은 민주화 바람으로 한층 유명해졌다. 더구나 떠오르는 흑해 경제권의 중심 국가로 카스피해 나라들과 함께 21세기의 ‘뜨는 나라’로 세계의 기대를 모아왔다. 그러나 웬걸 혁명이 성공하기는커녕 최근 들어서는 극심한 정치 혼란을 빚어내는 나쁜 뉴스만을 쏟아내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수도 키예프에서 때마침(지난 7월) 벌어지고 있는 정쟁(政爭)의 현장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오렌지 혁명의 주인공 유셴코 대통령의 하늘을 찔렀던 인기는 땅에 떨어졌고, 선거 패배에 이어 연정 계획마저 무산되자 망신살이 뻗친 셈이 됐다. 물고 물리는 요란한 정치싸움은 한국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우크라이나에 와보니 정쟁의 세계 챔피언은 바로 이들이었다. 영·호남 지역갈등 문제도 우크라이나의 동·서 대립과는 비교조차 못 됐다. 한강보다 더 크고 멋들어진 드네프르 강을 두고 양쪽으로 갈라져 벌여온 해묵은 동·서 갈등은 나라를 둘로 쪼개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했고, 러시아와 서방이 벌이는 보이지 않는 전쟁도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이런 정치적 혼란과 불안정이 언제 어떻게 가실지에 대해 누구에게 물어도 허사였다. 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 “유셴코 대통령은 변화와 개혁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국민통합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갈등을 키웠기 때문에 인기가 폭락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같은 정치 사회 혼란이나 리더십 부재 현상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쏙 빼다 박은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노무현과 유셴코, 두 대통령은 곧 있을 서울 정상회담에서 서로의 안타까운 심경을 털어놓으며 동병상련의 정을 나눌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이나 우크라이나나 경제가 모든 걸 말해준다. 경제가 안 되면 다른 모든 게 허사다. 유셴코 대통령의 정치적 고전도 경제 성적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전임 쿠치마 대통령 때는 독재정치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그래도 경제는 괜찮았다. 그의 집권 말기 경제성장률이 9.6%(2003년), 12.1%(2004년)였던 데 비해 유셴코 집권 첫해인 지난해에는 2.6%로 급락했다. 올해 경제도 비슷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최근 집계에 따르면 성장률이 5%대로 회복되고 있다지 않은가? 전문가들의 해석이 재미있다. “정치인들이 권력싸움에 정신이 팔려 경제에 간섭을 덜하는 바람에 요행히 경제가 시장의 힘으로 저절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불안이 경제에는 독(毒)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모를 리 없다. 특히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데는 최대 장애요인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키예프의 유력인사들은 나에게 물어왔다. “한국도 정치가 불안하고, 더구나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데도 어떻게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는가?” 다행인 것은 정치가 엉망진창임에도 최근 들어 경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부러워했고, 한 수 지도를 절실히 원했다. 정권의 향방에 상관없이 여러 나라와 갖가지 비즈니스가 추진되고 있었다. 이 나라는 잠재력이나 가능성으로 치면 세계 최상급임에 틀림없다. 미사일 제조기술을 비롯해 항공산업·핵발전소 관련 사업 등에 있어서는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왔던 터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땅에서 소련의 빵을 공급해왔던 나라다. 철광석을 비롯한 풍부한 자원 보유국인 데다 중앙아시아에서 서유럽으로 가는 기름과 천연가스가 대부분 우크라이나를 통해야 하며,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흑해 경제권의 중심국이 우크라이나다. 미국 대사관 직원이 무려 700명이라는 사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우리는 어떤가(한국 대사관은 구멍가게 같은 건물에 직원은 불과 20명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사관 직원 숫자가 곧바로 그 나라의 경제적 가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를 겨냥한 국제정치적·군사적 중요성 쪽에 훨씬 더 큰 무게를 둬야 할 것이다. 지난 1991년 소련체제에서 독립한 이후의 정치적 혼란도 따지고 보면 러시아와 미국의 상치된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쿠치마의 10년 집권 자체가 친러시아계의 후원 속에 유지되었던 것이었고, 이를 뒤엎은 유셴코의 오렌지 혁명 또한 미국의 적극적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그 이후의 총선에서 유셴코가 참패하고 쿠치마의 후계자 격인 야누코비치가 다시 득세한 것 또한 러시아의 또 다른 뒤집기 성공을 뜻하는 것이었다. 가서 보니 러시아계의 재역전은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졌다. 러시아와의 역사적·지정학적 특수관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주요 산업을 꽉 잡고 있는 친러시아계의 현실적인 파워를 거슬러서는 어떤 정책이나 개혁도 성공할 수 없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는 또 다른 러시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비즈니스 스타일도 러시아식이요, 사람들도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구조 속에서 하루아침에 서구 자본주의식 사업 틀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아직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면 비즈니스 관행에 대한 신뢰도가 동남아 국가들보다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만큼 외국인 투자 면에서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자부심은 보통이 아니다. 전반적인 경제수준이 국제적으로 바닥을 헤매는 데도 왕년에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던 비행기 산업을 비롯해 미사일·핵 관련 기술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기네가 여전히 세계 최고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방산제품, 특히 미사일 계통은 암암리에 국제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공을 들여 특수 방산기술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기술력 자체로만 보면 우크라이나는 세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는다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극도의 정치 혼란과 아직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회주의 관행과 부패구조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기업들이 상품수출은 열심히 하면서도 현지의 인프라 투자나 공장건설 등에 대한 직접투자 진출을 계속 꺼리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스피해 연안국들 못지않게 그 서쪽에 위치한 흑해 경제권 또한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고, 그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크라이나다. 정치적 혼란만 웬만큼 관리할 수 있다면 우크라이나 경제의 성장동력은 엄청난 폭발력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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