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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은 대기업 편만 드는가”

“특허청은 대기업 편만 드는가”

GS그룹의 지주회사인 GS홀딩스(이하 GS)와 삼이실업의 상표권 분쟁이 지난 8월 일단락됐다. 2005년 3월 시작된 두 기업의 분쟁은 1년5개월 동안의 줄다리기 끝에 특허청이 GS의 상표 등록을 최종 허가해 주면서 결론이 난 것이다. 하지만 삼이실업의 김석희 회장은 이에 승복하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이코노미스트와 단독으로 만나 상표권 분쟁의 전말을 소상히 털어놨다. 그가 언론에 공식 인터뷰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회장은 인터뷰에서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GS보다 원칙 없이 판정한 특허청에 더 화가 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정부와 대기업에 한 중소 기업이 철저히 짓밟히고 말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회장 인터뷰와 특허청의 반론을 함께 싣는다.
강남구 청담동 삼이빌딩 12층엔 김석희(55) 회장 집무실이 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이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김 회장은 “저 광고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라리다”며 기자에게 통유리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건물 꼭대기의 GS칼텍스 광고판을 가리켰다. 김 회장의 속앓이는 2005년 3월 시작됐다. LG그룹에서 분사한 GS그룹이 삼이실업이 1993년부터 만들어 13년째 쓰고 있던 로고와 흡사한 기업이미지(CI·Corporate Identity)를 구축하며 광고를 하고 특허청에 상표등록 출원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삼이실업은 92년 11월 스페인 디자인회사인 크레도스사에 의뢰해 ‘S’자 로고를 만들었으며, GS는 2004년 세계적 디자인 컨설팅 회사인 랜도사에 의뢰해 지금의 CI를 만들었다. GS는 2004년 11월 새 CI를 특허청에 상표 출원했고, 2005년 4월부터 광고를 시작했다. 삼이실업은 GS가 CI를 공개하기 한 달 전 이 사실을 알고 GS 측에 로고 사용 중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GS는 개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이실업은 특허청에 즉시 GS홀링스의 상표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정보 제출서를 4, 7, 8월 세 차례에 걸쳐 송부했다. 이를 받아들인 특허청은 2005년 8월 GS그룹의 로고가 삼이실업의 기존 상표와 유사해 수요자들에게 오인과 혼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GS의 상표등록을 거절한다는 의견제출통지서를 GS홀딩스에 보냈다. GS그룹은 재차 상표등록을 출원했고, 특허청은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12월 상표 출원을 공고했다. 특허청이 처음의 입장을 바꿔 국내 상표법의 출원우선주의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특허청 공고 후 삼이실업은 올해 1월 이의신청을 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삼이실업은 특허청에 GS CI에 대한 등록 결정 무효심판 청구와 함께 이미 GS가 쓰고 있다는 이유로 삼이실업 표장 등록이 거절당한 데 대한 불복심판청구를 진행 중이다. “특허청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억울하다”는 김 회장은 관련 자료를 조목조목 보여주며 심정을 토로했다.

“불가능한 것을 등록 해준 것” “GS가 쓰고 있는 ‘S’자 로고는 원래 누구나 알고 있는 독일어체로 국내 상표법 제6조 제1항 제6호 규정에도 ‘1자’의 한글 또는 한자로 구성된 표장이나 ‘2자’ 이내의 기타 외국 문자로 구성된 표장은 상표로 등록될 수 없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더욱이 ‘GS’는 독일의 품질안전마크이면서 아프리카 가나의 표준원 표장으로 특허청의 공익표장자료집에 국가의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감독용이나 증명용 인장 또는 기호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표는 등록이 불가하다고 엄연히 나와있는 데도 상표권 등록을 해준 것은 납득이 안 간다.” 이에 대해 특허청 관계자는 “‘S’자는 독일어체인 프락투르서체와 비슷하긴 하나 이의신청인이 제출한 자료를 살펴보면 독일어 사전, 독일어 교재 등은 독일어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독일어를 습득하는 데 관심이 없거나 독일어를 모르는 대부분의 일반 수요자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대응했다. ‘GS’로고 역시 독일과 가나가 국가 공인 표준마크로 쓰고 있지만 이 역시 외관상으로 다르고 독일이나 가나에서 등록을 하지 말라는 통지를 우리에게 안 해왔기 때문에 굳이 등록을 못 시킬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공업소유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에 따라 자신의 증명용 인장 또는 기회 등을 보호받고자 할 경우에는 국제사무국을 통해 그 해당 가맹국에 의무적으로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허청은 해당 국가에서 통지가 없었기 때문에 등록이 가능했다고 하지만 파리협약엔 ‘해당 가맹국이 잘 알고 있지 않을 때’란 단서가 붙는다. GS가 독일 품질마크인 것은 국내 중소 기업청 자료집에도 나와 있다. 그럼에도 몰랐다고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취재 중 만난 특허청 출신 모씨는 “A와 B를 비교했을 때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외관·칭호·의미 중 어느 하나라도 유사·동일하면 상표 등록을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독일의 GS와 GS홀딩스의 GS는 외관은 유사, 칭호는 동일하기 때문에 당연히 상표 등록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특허청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A씨가 특허청 국제출원팀에 전화를 해 “GS를 상표 출원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담당자는 ‘GS는 독일의 품질안전마크이기 때문에 상표 등록을 할 수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기자가 이 사실을 알고 다음날인 14일 특허청에 전화해 물었다. “GS홀딩스는 GS 로고를 쓰는데 왜 다른 사람은 사용할 수 없나?” 특허청 관계자는 “기본 원칙만 이야기한 것이지 자세한 예외규정까지 어떻게 전화로 말하겠느냐. 만약 전화한 사람이 자세하게 이야기했다면 고려해 볼 수 있었을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원칙 있는 답변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대목이다. 김 회장은 “6월 15일자 헤럴드경제신문에서 특허청 관계자가 GS 상표권 분쟁과 관련해 ‘상표법은 상황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고 국익 등을 광범위하게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며 “대기업만 국익을 위하고 중소 기업은 국익을 위하는 기업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국가기관의 모든 행정 행위는 법령에 기초해 그 범위 안에서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실행돼야 함에도 특허청의 공고 결정은 법령과 심사기준을 무시한 채 ‘여러 상황과 국익’을 고려한다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이 사실만 봐도 특허청의 상표 등록 요건이 법령보다는 심사관의 재량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만약 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바뀐다면 국민은 어떻게 정부를 믿고 살겠느냐”고 분노를 토했다. 삼이실업은 이 건과 관련해 지난 6월 15일 특허청장 앞으로 아래와 같은 해명 요청 공문을 보냈다. ‘여러 상황과 광범위한 국익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따라 심사·결정을 하는 것과 법령과 판례상의 기준은 어떻게 조화돼야 하는지, 여러 상황과 국익을 고려해 법령과 기준 판례에 반해 결정된 사례가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특허청은 이에 대해 “상표 등록 출원 건이 이의신청 또는 심사진행 중인 바 설명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보내왔을 뿐이다. 김 회장은 “우리 질문에 대한 답변이 심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내용임에도 답변하지 않는 것은 명확한 근거 자료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 회장은 상표권 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담당 심사관들이 자리를 수시로 옮긴 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시했다. 특허청 내부에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GS쪽에 상표 등록 거절 통지서를 보낸 심사관이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고 이후 우리 쪽 실무자가 상표권 분쟁 주무 담당자에게 GS 상표 등록에 대해 소상한 설명을 요구하자 ‘나는 잘 알지 못한다’라는 답변을 하더니 일주일 안에 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기엔 석연치 않았다.”

원칙없는 ‘예외’주장에 불신감 특허청은 이에 대해 “정기인사로만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자리를 옮긴다. GS상표 등록 건은 한두 건이 아니라 수십 건이었기 때문에 여러 심사관이 종류별로 업무를 맡았다. 답변을 못한 게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이 답변을 하면 오해가 생길까봐 피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GS에 상표 등록 거절 내용의 공문을 보낸 후 바로 자리를 옮긴 해당 특허청 심사관을 찾아 통화했으나 그는 긴 답변을 회피했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자리를 옮긴 것과 그 일은 무관하다. 특허청의 심사 결과는 여러 차례 바뀔 수 있다.” 특허청의 어느 누구도 속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김 회장은 “대기업인 GS홀딩스는 비록 우리보다 상표 출원을 먼저 해 권리를 얻었지만 우리가 쓰던 것과 거의 똑같은 모양의 CI를 쓰면서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며 “대한민국에서 25년 넘게 사업하면서 대기업이나 정부에 대해 이렇게 서운한 적은 없었다. 힘의 논리에 의해 법이 끼워 맞추기 식으로 적용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삼이실업은 김 회장이 81년 설립한 중견 무역업체로 섬유·신발·철강·가구·건축자재 등을 수출입하고 있다. 김 회장은 “원칙이 적용되는 사회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며 “상표권 분쟁을 법정까지 끌고 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특허청 생각은 어떨까? 특허청 관계자는 “삼이뿐만 아니라 모든 중소 기업인은 백이면 백 정부가 대기업 편을 든다고 하는데 억지 주장이다. 중소 기업인들의 피해의식에서 나온 발상일 뿐”이라며 “기본 원칙은 당연히 지켜야겠지만 원칙의 예외라는 건 항상 존재한다”고 말했다. 특허청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예외’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없다면 정부를 향한 불신은 갈수록 깊어질 것이다. 특허법이나 실용신안법은 개인 보호를 위한 법이지만 상표법은 사회의 거래질서 유지를 위해 정해진 법으로 공익의 성격이 강하다. 보다 철저한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다.


특허청의 ‘원칙 없는’ 말말말

■2006년 8월 23일
(삼이실업이 특허청에 낸 ‘GS’ 로고 사용 이의신청에 대한 답변) “파리조약에 따라 자신의 증명용 인장 또는 기회 등을 보호받고자 할 경우에는 국제사무국을 통해 그 해당 가맹국에 의무적으로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독일로부터 우리나라에 통지가 있었다고 인정한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독일의 품질안전마크인 ‘GS’는 우리나라에서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 또한 일반 수요자들이 간단하고 흔히 있는 표시인 ‘GS’를 보고 외관이 서로 다른 표장인 독일의 품질인증마크 ‘GS’와 유사하다거나 이와 관련이 있는 상품인 것으로 오인할 염려가 없기 때문에 GS홀딩스의 출원 표장이 등록된 후 사회 공공의 질서에 반한다거나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한다는 등의 염려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2006년 12월 13일


A씨 :“GS 마크를 활용해 상표를 출원하려고 합니다. 출원이 가능할까요?”

특허청 :“GS는 독일의 품질안전마크라 등록이 불가능합니다. 특정 업체가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06년 12월 14일


기자 :“특허청은 누구에게는 GS가 독일의 품질안전마크라 등록이 불가능하다고 하고 등록 이의신청을 제기한 삼이실업에는 GS의 상표 등록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예외가 적용된 겁니까?”

특허청 :“기본 원칙이 그렇다는 겁니다. 만약 GS홀딩스처럼 독일 품질마크와 외관이 다르다면 등록이 가능할 수 있는 거죠.”

기자 :“만약 안 된다면 왜 안 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등록 가능한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특허청이 일언지하 안 된다는데 그걸 출원하려고 시도하겠습니까?”

특허청 :“전화로 일일이 말할 수 없습니다. 기본 원칙은 안 된다는 말을 한 것뿐입니다.”

기자 :“GS홀딩스의 경우는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특허청 :“GS 문제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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