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카지노의 새 주역 싱가포르
도박·외식·쇼·쇼핑·호화 숙박이 혼합된 오락 도시로는 마카오보다 더 적합 11월 마지막 주 싱가포르 리츠-칼튼 호텔의 어느 회의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컨소시엄 에잇스 원더(Eighth Wonder)의 전략가들이 전투를 준비했다. 임원들은 서류뭉치를 들고 황급히 움직이거나 흰색 칠판에 뭔가를 열심히 써내려갔다. 한쪽에는 그들이 다음날 싱가포르 당국자들에게 발표할 프로젝트의 정밀한 모형이 있었다. 가운데 바닷물 호수가 있는 인공 화산 분화구에 10층 높이의 폭포까지 갖춘 36억 달러짜리 카지노 리조트다. 같은 호텔의 다른 곳에서는 바하마에 본부를 둔 커츠너 인터내셔널이 카메라를 설치한 뒤 전설적인 현대주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서기 3000년의 애틀랜티스’를 홍보하는 쇼를 리허설 중이었다. 세 번째 경쟁사인 말레이시아 도박 독점기업 젠팅 역시 모처에서 발표를 준비 중이었다. 얼마 후 그들은 미인대회 후보들처럼 싱가포르 선정위원회 앞에서 마지막 퍼레이드를 펼쳤다. 급성장 중인 아시아 도박산업의 가장 촉망받는 왕관인 싱가포르의 두 번째(그리고 가장 호화로운) 카지노 사업 허가를 따내기 위해서였다. 무대 뒤의 각축전은 여느 미인대회와 마찬가지로 치열했고 교활하기까지 했다. 참가사들은 저마다 상대방의 디자인이 진부하다는 암시를 흘리고, 언론에 서로 비방하고, 누가 더 큰 수족관을 가졌느냐, 혹은 누가 동물의 권리를 더 존중했느냐를 두고 언쟁을 벌였다. 메릴린치 증권사가 젠팅 쪽에 유리한 평가보고서를 내자 에잇스 원더의 대표 마크 애드번트는 편파성을 비난하고 나섰다. 메릴린치가 젠팅의 주식 공개 당시에도 도와준 전력이 있다며 이해관계 상충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메릴린치의 한 분석가는 “에잇스 원더가 계약을 따면 우리를 축하파티에 초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수했다. 이번 경쟁에 걸린 상품은 싱가포르의 초목이 우거진 센토사섬에 위치한 49만㎡의 해안 부지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지역을 2010년 개장 예정인 아시아 최고의 호화 카지노 리조트로 꾸밀 계획이다. 30억 달러가 넘는 입찰가가 싱가포르 관광산업의 엄청난 발전 가능성을 말해준다. 동시에 카지노를 가족 오락 리조트로 변신시킨 라스베이거스 거물들과 도박꾼들을 상대하는 바카라 테이블과 슬롯머신으로 거액을 벌어들인 기존의 아시아 도박업체들 사이의 대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품이 워낙 탐나다 보니 당연히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애드번트는 말했다. “센토사섬은 도박과 엔터테인먼트, 레저 산업에서 ‘별들의 별’이 될 전망이다.” 아시아의 눈부신 경제 성장과 저가 항공의 등장, 그리고 여행 규제 완화는 세계적인 수준의 관광산업 부흥을 예고한다. 시장조사 업체 민텔은 태평양 연안 거주자들의 연간 여행비 지출이 현재 약 8000억 달러에서 10년 안에 약 1조8000억 달러까지 증가하리라 예측했다. 세계 최대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아시아 도박산업의 총 수익도 2010년까지 연간 14%씩 상승한다고 내다봤다. 세계 전체의 도박산업 연간 성장률인 8.8%를 크게 앞지른다. 이미 싱가포르는 중국인들에게 홍콩과 마카오(내륙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가장 인기 높은 해외 여행지다. 이 모든 추세를 발판으로 싱가포르는 아시아 카지노 전쟁의 새로운 전선으로 떠올랐다. 아시아의 카지노 전쟁은 4년 전 국제적 카지노 리조트 브랜드인 샌즈 그룹이 억만장자 스탠리 호가 40년간 독점하던 마카오 도박시장에 도전장을 내면서 불붙었다. 센토사섬 쟁탈전에는 말레이시아 젠팅의 이해가 가장 많이 걸려 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58㎞ 떨어진 젠팅 하이랜드 리조트는 1971년부터 도박시장을 독점했다. 젠팅은 그 이익금을 이용해 아시아 최대 크루즈 회사로 세계 최대의 수상 카지노를 운영하는 스타 크루즈에 투자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합작해 카지노 겸 놀이공원 건설 계획을 세웠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왔다고 유리한 점은 없다”고 젠팅 인터내셔널의 림 콕 타이 회장이 말했다. “소비자의 요구와 맞아떨어지느냐가 중요하다.” 젠팅의 문제는 디자인이 전형적인 놀이공원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개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카지노 자체는 지하에 감춰져 있다. 만약 선정위원들이 상징적인 건축물을 원한다면 이 디자인은 상당한 감점 요인이 된다. 반면 커츠너의 애틀랜티스는 첨단 로봇공학이 가미된 미래지향적인 추상 건축물이다. 에잇스 원더의 화산 분화구 모델은 펠레의 축구 교실, 디팍 초프라 요양 센터, 알랭 듀카스 요리학교, 디자이너 베라 왕의 결혼식장과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라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건축적인 관점에서는 젠팅이 뒤진다”고 OCBC 투자 조사의 윈스턴 류 분석가가 지적했다. “하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합작이라는 사실이 이 결점을 보완하고도 남는다. 서비스 역량이 가장 뛰어난 계획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다수 분석가가 젠팅의 우승을 점친다. 도박산업 규모로 볼 때 라스베이거스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마카오보다 싱가포르가 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싱가포르는 쇼핑과 교통의 요지인 데다 초목이 우거진 공원이 많고, 예술계도 새롭게 주목받기 때문에 커플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관광객들은 보통 싱가포르에서 3∼4일을 머문다. 반대로 마카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거칠며 가족중심적이 아니다. 대부분 중국 남성 관광객들이 하루 일정으로 마카오를 찾는다. “이들은 도박으로 돈을 벌려고 마카오에 온다”고 모건 스탠리의 도박산업 분석가 롭 하트는 말했다. 하트는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기업들이 별 다섯 개짜리 고급 식당과 색색의 분수 쇼를 만들었지만 도박에 몰입하는 마카오의 풍토를 아직 완화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마카오가 라스베이거스처럼 발전하기를 바라지만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했다. 라스베이거스 기업들이 한 일을 보면 중국인들이 더 나은 상품을 좋아하는 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화장실 바로 곁의 더러운 자리보다 약간 떨어진 곳의 좋은 자리를 선호한다. 하지만 여전히 화장실 바로 곁에 앉기를 원한다. 앞으로도 그런 성향은 바뀌지 않을 듯하다.” 그런 상황인데도 스탠리 호의 도박 제국은 수세에 몰린다. 마카오 도박 수입의 반 이상이 소위 VIP홀에서 나온다. 도박계 큰손들이 한번에 1만 달러 이상을 건다. 그런 큰손을 영입하는 일은 전통적으로 인맥이 넓은 외부의 개인 중개인이 맡았다. 그러나 새로 진출한 라스베이거스 도박 기업들이 더 높은 수임료를 주고 그들을 데려갔다. 지난 여름 내내 호는 “인정사정없는 경쟁”을 한탄하면서 몇몇 VIP홀이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했다. “만약 열기를 못 견디겠다면 주방에서 나오라”고 샌즈 그룹의 CEO 셸든 아델슨이 꼬집었다. 호는 대안으로 3억8000만 달러를 들여 그랜드 리스보아를 1월 개장할 예정이다. 비록 라스베이거스식의 화려함은 없겠지만 호는 중국 도박꾼들이 별로 개의치 않으리라고 믿는다. 호의 생각이 옳을지 모른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가 처음 시도한 도박과 외식, 쇼, 쇼핑, 호화 숙박이 혼합된 오락 도시로는 마카오보다 싱가포르가 적합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마카오가 정통 도박 도시라면 싱가포르는 가족을 위한 관광지”라고 커츠너 인터내셔널의 토빈 프라이어 사장은 주장했다. 프라이어는 그 판단에 기꺼이 34억 달러를 걸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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