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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결단의 순간] 운명 걸고 본사와 담판

[CEO 결단의 순간] 운명 걸고 본사와 담판



김정호 대표는… 63년 서울생. 고려대 통계학과를 나와 미국 오하이오주의 라이트 주립대학 (Wright State University)에서 MBA를 밟았으며,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다국적 밀폐용기 업체인 타파웨어코리아 마케팅이사를 거쳐 2003년부터 휘슬러코리아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 쪽 안세병원 네거리를 지나다 보면 이색적인 간판 하나를 만나게 된다. 불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는 수많은 것들의 정체가 무엇일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수십 개의 스테인리스 냄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 같은 발상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휘슬러코리아의 김정호(44) 대표였다. 김 대표는 2003년부터 휘슬러코리아의 좌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잊지못할 결단은 무엇일까? 김 대표가 자신의 결단 체험기를 보내왔다.
처음 휘슬러의 한국지사 대표 자리를 제의 받았을 때 나는 많이 망설였다. 휘슬러는 98년 휘슬러코리아를 설립하면서 독일 현지에서 직접 대표를 파견하고 관리하고 있었으나, 성장 폭이 지체돼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했다. 글로벌 감각도 있으면서 한국 시장에서의 빠른 트렌드를 주도해 나갈 마케팅 전문가 출신 사장이 휘슬러에는 절실히 필요했다. 그때 난 독일 휘슬러 본사에도 알리지 않고 아내와 둘이 독일에 갔다. 휘슬러를 판매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제품을 살펴보고, 물어보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휘슬러라는 브랜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고, 바로 대표이사직을 수락해 휘슬러코리아의 대표 명함을 갖게 됐다.

현지생산 원칙 무너뜨려 글로벌 브랜드로서 휘슬러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휘슬러코리아가 가야 할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휘슬러라는 브랜드는 주방용품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다. 부엌, 조리하는 공간에만 놓여있는 제품이라 다른 패션 분야처럼 트렌디하거나, 감각적인 제품으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전통’ 이라는 가치는 보수적이고, 올드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브랜드에 대한 새로운 환기와 혁신이 있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려울 수 있다는 고민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과연 이 숙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고민을 거듭하면서 나는 독일 본사에 끊임없는 자문을 했다. 하지만 이미 160여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명성을 쌓아 온 독일의 마케팅 방식이 한국의 상황과 같을 수는 없었다. 휘슬러코리아만의 정체성과 길을 가야 한다는 게 첫 번째 내린 결론이었다. 휘슬러라는 브랜드가 가진 가치는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여야 하고, 이를 위한 전략이나 방향성은 동일했다. 하지만 이것을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보편화시키기 위해서는 휘슬러코리아만의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세계화의 추진이 특성 지역이나 민족성과 부합될 때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의 개념을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고와 전략은 글로벌하게, 행동과 운영은 로컬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휘슬러는… 161년 전통의 독일 명품 주방 브랜드다. 독일산 최고급 스테인리스 원료와 기술력이 합쳐진 최고의 주방 브랜드로 손꼽히고 있다. AC 닐슨 조사에 따르면 주방용품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기업이다. 압력솥, 냄비, 프라이팬, 전기 열원인 쿡탑, 각종 조리도구 등을 생산한다. 전 세계 100여 개국 이상에 진출해 있다. 70년대 한국에 첫 진출했으며, 98년 한국에 휘슬러코리아를 설립했다.

그 첫 시작이 한국인에게 맞는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것이었다. 휘슬러는 현지생산 원칙으로 독일에서 모든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이미 생산라인이 갖춰져 있는 상황에서, 한 지역의 소비자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로선 운명을 건 도박이었다. 그것도 리미티드 에디션(한정 상품)이나, 특별기획 상품처럼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별도의 라인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럽과 달리 가스레인지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압력솥의 손잡이가 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를 감안해 손잡이를 더욱 길게 만든 제품을 개발해 달라고 했다. 찜이나 전골 요리를 즐기는 한국의 음식문화를 반영해 ‘솔라’ 라는 시리즈의 냄비 뚜껑을 좀 더 높게 만들어 줄 것도 주문했다. 나는 이러한 한국형 제품의 개발을 관철하기 위해 본사와 긴 씨름을 해야 했다. 끈질긴 설득에 원칙을 고수했던 독일 본사도 뜻을 굽혔다. 국내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국 소비자들은 그러한 세심한 변화에 즉각 반응을 나타냈다. 이를 기점으로, 소량의 밥을 짓는 데 압력솥을 사용하는 한국 소비자에 맞춘 소용량의 압력솥도 출시했다. 흰밥·잡곡밥의 화력이 달라야 하는 섬세한 한국 요리에 맞춰 압력솥 계기를 2단계에서 3단계로 늘리기도 했다. 이러한 압력솥 개발로 한국을 넘어 음식문화가 비슷한 일본·중국·동남아시아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한국적인 것이 결국 세계적인 것이 된 시발점이다. 사실 제품이라는 것은 소비자에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R&D팀은 한국의 소비자가 갖고 있는 문제를 찾아내고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 할 수 있다. 영업 조직을 쿠킹 어드바이저(Cooking Advisor)로 명명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마케팅 조직 내에 쿠킹 컨설턴트(Cooking Consultant) 등을 도입한 것도 바로 소비자가 원하는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주자는 뜻이었다. 직급·성별 불문하고 매주 요리를 배우게 하고, 백화점 판매사원에게도 경영학, 리더십 교육을 하는 것 등은 바로 이들에게 ‘어드바이저’와 ‘컨설턴트’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위한 것이다. 내가 휘슬러코리아 대표에 취임한 후 핵심 키워드로 선택한 것은 바로 ‘감성 중심 마케팅’이다. 기존 기능 중심 판매에서 감성 중심 판매로 전환해야만 고객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세군 냄비 교체해 주기도 실제로 2004년 나는 40년 만에 구세군 냄비를 처음 교체해 주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길에 조심스럽게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지원은 1회로 끝나지 않았고, 2005년에는 구세군 소형 냄비를 제작해 주었다. 2007년 새해 들어 나는 또 하나의 모험을 시작했다. 휘슬러 브랜드 사상 아시아권에서는 유례 없었던 지상파 TV 광고를 시작하기로 한 것. 휘슬러 본사나 다른 지사에서도 염려의 목소리가 있는 걸 안다. 하지만 TV 광고 데모 필름을 아시아 지사 몇 군데에 광고 수출 계약까지 했다. 2003년 취임 후 2007년 새해를 맞이한 현재 휘슬러의 매출은 3배 이상 증가했다. 기업에 대한 선호도나 인지도 또한 매우 높아지고 있다. 이런 긍정적 변화들이 나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절대 아니다. 직원과 사랑하는 한국 소비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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