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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맥주 전쟁’ 볼 만하네

일본 ‘맥주 전쟁’ 볼 만하네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술자리를 맥주로 시작한다. 청주나 소주를 마시더라도 일단 맥주로 입가심을 한 후의 일이다. 반신욕 중에나 야구경기를 보면서 들이켜는 맥주 한 잔은 일본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맥주에 일본인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일본 맥주 시장 규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각사는 앞다퉈 신제품을 내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일본에서 맥주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골든위크 직전인 4월 21일 기린맥주 ‘더 골드’의 새로운 CF가 방송을 탔다. 인기배우인 오다기리 죠가 캔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원래 이 CF는 6월 방영 예정이었다. 왜 기린은 두 달이나 일찍 서두르게 된 것일까? ‘더 골드’는 기린이 올 3월, 17년 만에 투입한 대형 신인이다. 발매 10일 만에 연초 계획했던 20%인 160만 병을 출하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럼에도 기린은 두 달 먼저 새로운 CF라는 ‘마지막 카드’까지 써 버렸다. 기린맥주 관계자는 “신상품다운 신선함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국민맥주 아사히 vs 세대별 공략 기린 기린이 혹여 신선미가 떨어질까 벌벌 떠는 것은 왜일까?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발매된 맥주계 음료(맥주·발포주·제3 맥주)의 신상품이 무려 12종류나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했을 때 그 수는 2배에 이른다. 2006년 일본에서 출하된 맥주는 발포주, 제3 맥주까지 포함해 모두 4억9750만 캔이다. 시장은 매년 1~2%씩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주류업계 관계자는 “올해 신상품 러시는 단언하건대 지난 10년간 최대”라고 말한다. 유행에 민감한 일본 시장에서 신상품은 순식간에 발매수량을 늘리는 ‘마약’이다. 기존 상품의 영역까지 침범해 판매량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있다. 그래서 각 사는 신제품을 대표 브랜드가 약하고 타사 매출이 월등히 나을 때에 한해 내놓았다. 될 수 있는 한 대표 브랜드를 살리는 쪽으로 왔던 것이다. 그러나 대세는 바뀌었다. 기린은 신제품을 출시하며 ‘세대별 공략’이라는 새로운 승부수를 띄웠다. 신제품 ‘골드’는 20대부터 30대 전반을 타깃으로 하고, ‘이치방시보리’는 30~40대, ‘라거’는 50~60대를 타깃으로 한다. 이 전략은 적중해 맥주시장이 전년보다 감소한 가운데서도 기린은 1~3월 출하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 늘었다. 성공했다는 결론은 아직 이르다. 신제품 ‘골드’의 인기가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골드의 출시로 라거와 이치방시보리의 매출이 떨어질 수도 있다. 2006년 1억3260만 캔 출하로 시장의 20%를 점하고 있는 아사히맥주의 ‘수퍼 드라이’는 기린과 달리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국민맥주다. 아사히맥주 사장은 “세대를 가르는 것은 어리석다”며 단품으로 전방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발포주 일반 맥주와 거의 동일한 맛을 내지만 맥아(麥芽·엿기름) 비율이 25%를 넘지 않고 다양한 식품 첨가물을 혼합하기 때문에 소비자 가격이 일반 맥주의 절반에 불과하다.

제3 맥주 맥아 대신 완두콩 등 다른 원료를 사용해 발포주나 맥주에 비해 주세가 22~53엔가량 낮다. 발포주보다 싸다. 350㎜ 캔을 기준으로 하면 값은 110~120엔으로 같은 크기의 맥주(200엔 대)나 발포주(130~140엔)에 비해 싸다. 맛과 향은 맥주와 큰 차이가 없다는 평이다.


전통의 강호 삿포로 vs 뜨는 별 산토리 프리미엄 맥주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삿포로와 산토리의 대결이 팽팽하다. 산토리의 ‘더 프리미엄 몰츠’는 작년의 4.4배인 550만 캔이 팔렸다. 지난해에 1013만 캔이 팔린 삿포로의 에비스 맥주의 뒤를 잇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산토리는 2007년엔 여세를 몰아 1300만 캔을 목표로 내세운 에비스에 대항해 프리미엄 몰츠도 1300만 캔을 판매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운다. 삿포로 관계자는 “우리 계획을 알고 산토리가 갑자기 목표를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미엄 몰츠가 맹추격을 하자 에비스도 ‘브랜드 추가’라는 카드를 꺼냈다. 올해 2월에 흑맥주 ‘에비스 더 블랙’의 리뉴얼을 했고, 4월 4일에는 ‘에비스 더 호프’를 선보였다. 삿포로 관계자는 “기존 에비스의 맛이 무겁다고 느낀 사람에게 제격일 것”이라며 에비스 더 호프가 젊은 고객층을 겨냥하고 있음을 밝혔다. TV CF도 기존 에비스는 실내를 무대로 한 것에 비해, 에비스 더 호프는 실외에 뮤지션이 등장하는 캐주얼한 느낌이다. 마케팅 노선은 다르지만 두 CF 다 테마곡으로 ‘제3의 남자’를 선정했다. 삿포로 관계자는 “에비스라고 확인한 후면 서로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산토리도 프리미엄 시장에 역점을 두고 있다. 세계적인 주류·식품 콘테스트인 ‘Monde Selection’ 맥주 부문에서 3년 연속 최고 금상을 받은 여세를 몰아 흑맥주 ‘더 프리미엄 몰츠(흑)’를 6월에 출시한다. 산토리는 브랜드도 확충하고 한정 수량 형태로 지원사격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올봄부터 시작한 더 몰츠의 CF는 어쩐지 에비스의 CF를 연상시키는데 산토리 관계자는 “에비스의 마케팅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이 통했는지 올해 1~3월 매출이 지난해보다 2.6배 늘었다. 발포주 시장은 기린의 ‘엔쥬크’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원래 탄레이와 수요층을 달리하려고 했으나 엔쥬크의 맛과 향이 깊어 열렬한 소비자를 모을 수 있었다. “상품의 포지셔닝만 확실하면 문제없다”고 기린 측은 말한다. 한편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제3 맥주 시장은 ‘리큐르’ 경쟁에 불이 붙었다. 리큐르란 증류주나 정제(精製) 알코올에 설탕·향료를 섞은 혼성주를 말한다. 2006년 10월에 발매된 ‘고쿠우마’에 삿포로의 ‘더블유드라이’ 등이 선전포고를 했다.



프리미엄급 특유의 카리스마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삿포로의 ‘에비스’를 산토리의 몬도셀렉션 최고 금상의 ‘프리미엄 몰츠’가 맹추격 중. ‘에비스 더 블랙’과 ‘에비스 더 호프’가 ‘에비스’의 원군으로 투입.

일반 맥주 인기 맥주 아사히의 ‘수퍼 드라이’의 독주가 계속. 베테랑 선수 기린의 ‘이치방시보리’ ‘라거’와 함께 대형 신인 ‘더 골드’가 3인4각으로 함께 뛰는 만큼 아사히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제3 맥주 3년간 기린의 ‘노도고시 나마’가 강세. 삿포로는 다소 스태미나가 부족하다는 ‘드래프트 원’을 신인 ‘우마이나마’로 보완했다. 그 뒤를 산토리의 ‘조끼나마’나 아사히의 ‘구비나마’가 쫓고 있다.



“홈런은커녕 번트만 대고 있다” “홈런은커녕 번트만 대고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종류만 늘어나고 히트 상품이 없다는 것이 올해의 특징이다. 그래도 각 사는 수그러들 줄 모르는 시장인 프리미엄 시장, 제3 맥주의 부활을 바라보며 신제품 효과에 따른 점유율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타사가 신제품을 내면 우리도 손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말이다. 게다가 신제품의 라이프사이클도 짧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주 단위로 신제품이 등장해 가게에 진열되는 것이 고작 2주인 상품도 적지 않았다. 특히 편의점은 맥주 진열대가 작고 점주는 인기제품이나 신제품만 가려서 올려놓는다. 아사히 관계자는 “상품 포지셔닝이 뚜렷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몇 개의 브랜드가 살아남을까. 일본 맥주 시장이 끝없는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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