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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 비은행권 대출 급증 위험하다

[양재찬의 프리즘] 비은행권 대출 급증 위험하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3년 반 만에 최고란다. 직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1.8%로 2003년 4분기 이후 가장 높다.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5.0%로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5’라는 숫자다. 상반기까지만 괜찮은 게 아니다. 성장률로 직결되는 산업생산 증가율은 4∼7월 넉 달 연속 상승세다. 8월 수출 증가율도 14.4%로 19개월 연속 두 자릿수 행진이다. 종합적인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선행지수나 동행지수 흐름도 좋다. 경제 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100을 넘었다. 현재 경기가 상승 국면이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는 신호다. 지표가 이렇게 밝은 데도 사람들의 표정에는 그늘이 있다. 실제 느낌으로 확 다가오지 않아서다. 그도 그럴 것이 성장률을 높이는 데 주로 기여한 게 대기업이나 가진 자들 쪽이고 영세업자나 서민들 삶과 직결되는 쪽은 되레 성장률을 갉아먹었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돌파하는 등 증시 활황 속 금융보험업이 성장률의 두 배 가깝게 성장(9.7%)했고, 반도체·조선·자동차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출도 잘됐다. 그런데 일용직이 많은 건설업은 감소(-1.8%)했다. 6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약 9만 채. 남양주 진접지구 등 수도권에서도 미분양 사태를 빚는 것을 목격한 주택건설업계는 연말 미분양 주택이 12만 채를 넘을 것으로 본다.
게다가 3분기째 상승세를 유지해온 민간소비 증가율이 꺾였다. 지난해 1분기 1.2%에서 2분기 0.6%로 내려갔던 민간소비 지출 증가율은 3분기 0.9%, 4분기 1.0%, 올해 1분기 1.5%로 조금씩 증가 폭이 커지며 내수 회복의 분위기를 띄우는 듯했다. 그런데 1년을 못 버티고 이번에 0.8%로 주저앉았다. 어느 누가 멋진 옷에 맛있는 음식을 마다 하랴. 민간소비가 증가하려면 가계소득이 꾸준히 늘어나며 받쳐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네 집안 살림이 영 시원찮다. 물가 오름세를 감안한 2분기 전국 가구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고작 1%로 지난해 2분기(2.4%)의 반 토막도 안 됐다(통계청 가계수지동향). 경제 성장에 따른 과실은 3대 경제주체(가계·기업·정부)가 나눠 갖는다. 상장기업들의 상반기 수익이 괜찮다. 특히 증권사·은행이 좋다. 정부 살림에도 여유가 있다. 세금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걷혀서다. 상반기 세금 징수액이 79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5조5000억원(24.3%)이나 많다. 이대로라면 올해 예산보다 11조원(7.9%) 많은 150조4000억원이 걷힐 전망이다. 체감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이룬 사상 최대 세수 실적이라서 국세청이 당황해 하는 눈치다. 3대 경제주체 중 가계만 허리가 휜다. 빚이 계속 불어나는 데다 금리마저 올라 이자 부담도 커졌다. 6월 말 현재 가계대출과 외상구매를 더한 전체 가계부채가 596조4407억원으로 3월 말보다 10조원가량 늘었다. 지난해 분기마다 13조∼20조원씩 늘어나던 가계 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하자 올 1분기 4조원대로 줄더니만 2분기에 다시 불어났다. 석 달 사이 늘어난 가계부채 규모가 10조원대로 커진 데다 질도 나빠졌다. 은행 문턱이 높아지자 급한 김에 이자가 비싼 다른 데서 돈을 빌리는 풍선효과가 빚어진 게다. 특히 신협·새마을금고·상호금융 등 신용협동기구에서 빌린 자금이 4조3933억원으로 1분기의 2.5배다. 1분기에 줄었던 카드론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8%에 육박하는 판에 비은행권의 대출금리는 벌써 10%에 가깝거나 넘어선 상태다. 더구나 이들 비은행권 이용객은 자산이 적고 신용도도 낮은 서민층이라서 금리 상승기에 느끼는 부담이 더욱 크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금리는 오르는데 비우량·저신용자가 많이 찾는 비은행권 대출이 급증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신호다. 세계 금융시장을 짓누른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도 바로 비우량 고객들의 연체 증가에서 비롯됐다. 우리도 이런 상황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지금 빌리는 사람이나 빌려주는 금융회사나, 이를 감독하는 금융당국 모두 시한폭탄의 뇌관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잘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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