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엽의 ‘그림 읽기’] 달빛 속 애틋한 남녀의 사랑
[전준엽의 ‘그림 읽기’] 달빛 속 애틋한 남녀의 사랑
애틋한 사랑의 분위기가 한껏 묻어 나는 이 그림의 제목을 생각해 보자. ‘밀애’ ‘사랑, 그 셀렘에 대하여’ ‘연애시대’…. 그 어느 것을 붙여도 제법 어울릴 수 있는 내용이다. 작가 신윤복은 ‘월하정인’, 즉 ‘달빛 속의 연인’이라는 아주 낭만적인 제목을 붙였다. 게다가 화제까지도 신윤복답다. ‘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달은 기울어 삼경인데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알 뿐이다’. 두 사람 사이에만 통하는 마음, 그것은 바로 사랑의 감정일 것이다. 그런데 어스름 달빛 속에 놓여 있는 사랑이다. 사실 사랑은 그만큼 은밀해야 제격이겠지. 도덕을 국가 기본 이념으로 삼아 윤리의 서슬로 사회를 운영해 왔던 조선시대 남녀의 사랑은 이처럼 내밀해야만 실감이 났을 것이다. 조선 후기 인물 표현에 있어 걸출한 기량을 보여 준 신윤복(1758∼?)은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풍속화라는 독특한 장르를 확립한 화가다. 화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재능을 인정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반 출신도 아니고 사대부와의 교류도 없었던 것으로 보여 그림 외에 그에 대한 기록은 전하는 바가 거의 없다. 더구나 그는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저속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져 도화서(조선시대 화원을 양성하고 관리하던 기관)에서 쫓겨난 것으로 보인다. 신윤복이 즐겨 다룬 주제는 요즘으로 치면 대중문화인 셈이다. 당시 도회지 저잣거리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림에 담았던 것이다. 그래서 유희 문화의 장면이나 기생집 등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시도는 서양의 인상주의 미술(르누아르의 유희 그림, 로트렉의 술집 주제 그림)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신윤복은 이보다 50~60년 앞서 그려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신윤복은 특히 남녀의 사랑을 그 누구보다도 과감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장기가 있었다.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이기까지 했다. 이처럼 노골적인 표현의 대상은 대부분 사대부와 기생들의 유희적 이미지들이다. 일종의 사회풍자인 셈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 등장한 주인공들에게서는 퇴폐적 분위기가 풍기지 않는다. 애틋하기까지 하다. 애절한 사랑의 감정이 묻어 나온다. 여염집 뒤뜰, 후미진 담장 아래 야심한 시각에 만난 연인들의 표정에는 사랑의 갈증이 담겨있는 듯하다. 사내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차마 입으로는 전할 수 없는 가슴속의 말을 전하려는 듯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한다. 아마도 가슴속에 품었던 절절한 사연이 담긴 연애편지겠지. 그 심정을 이미 눈치 챈 여인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감추려는 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인들의 이러한 마음은 사내가 들고 있는 초롱의 과장된 붉은색과 쓰개치마를 잡고 있는 여인의 자주색 소매로 나타나고 있다. 사랑으로 물든 붉은 마음인 것이다. 200여 년 전 선조들의 사랑은 표현엔 소극적이었을지는 몰라도 마음의 밀도는 지금보다 더욱 치열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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