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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길 뚫어 조선족 엑소더스 막자”

“뱃길 뚫어 조선족 엑소더스 막자”

“물류비가 많이 든다고 옌볜 경제를 살릴 방도가 없는 건 아니에요. 무역할 만한 산업이 없다고 할 게 아니라 무역이 산업을 이끌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북한·러시아 3국의 교차점으로서의 지경학적 여건을 활용해 북한·러시아와의 무역이 제조업을 견인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옌볜이 장차 동북아 시대의 물류 거점으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김란수(35) 옌볜신광국제경무유한회사 동사장은 “옌볜의 경제를 일으키려면 무역이 제조업을 견인하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옌볜을 떠난 조선족 동포들도 회귀한다고 말했다. 낙후된 옌볜 경제가 그동안 동포들의 엑소더스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김 동사장은 조선족 교포 기업인이다. 그가 오너인 옌볜신광은 구리·니켈 등 유색 금속을 비롯해 2700여 개 품목을 취급하는 무역회사. 그는 제련된 구리·니켈을 수입해 내수시장에 팔고 철제 건축 자재, 인테리어용 벽지, 커튼 등 완제품을 수출한다. 무역액의 90%는 러시아와 거래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8700만 달러. 올 들어서는 8월 말까지 1억 달러어치를 팔았다. 그가 하는 무역은 마진이 좋은 편이다. 수입을 통해 7~11%, 수출을 통해서는 3~5% 이윤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수입 마진율이 높은 것은 위안화가 강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 러시아 광산을 인수해 직접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동사장은 대학에서 생물화학을 전공하고 정부 산하 무역업체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11년 전 독립했다. 무역상답게 옌볜이 살길은 무역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물류상의 애로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물류 애로는 넓히면 됩니다. 북한의 나진항·청진항, 러시아 연해주의 자루비노항·블라디보스토크항을 이용해 남방으로 나아가고, 러시아 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뻗어나가면 됩니다. 북한의 체제 내지는 정책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변화를 도모해야죠. 현재도 이용하고 있는 나진항 부두도 임차하면 됩니다. 북한의 회령과 마주 보는 지역엔 이미 보세창고를 짓고 있습니다. 막힌 길은 뚫으면 됩니다. 옌볜은 뱃길을 뚫어야 삽니다.” 그는 옌볜의 훈춘과 러시아 철도를 잇는 구간이 개통되면 한국 등 외국 기업들도 옌볜에 진출할 만하다고 했다. 러시아 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육로 수출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훈춘은 옌볜자치주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두만강과 연해주를 끼고 있다. 그는 내수시장인 중국 남방쪽 운송도 해운을 이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린성을 비롯해 중국의 동북3성은 전국적인 콩·옥수수·쌀 산지입니다. 곡물은 부가가치가 높죠. 주곡의 3분의 1을 동북에서 공급합니다. 그런데 콩을 남방으로 실어 나를 때 철도를 이용하면 해운 요금의 2배가 듭니다. 이 역시 북한·러시아의 항구를 통해 배로 실어내는 겁니다.” 그는 동북아 시대가 열리면 옌볜이 핵심적인 거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동북아 경제권이 융성하려면 북한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 시장이 열려야 합니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밀가루를 옌볜에 제분공장을 지어서 공급하면 물류비도 절약할 수 있죠.” 그는 회사에서 민주적인 CEO로 통한다. 운전기사와 식사를 같이 할 때도 있다. 직원들을 편하게 대하다 보니 직원들도 그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과거엔 직원들이 노크도 없이 자기 방을 드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금껏 순탄하게 사업을 해 왔다고 말했다. 너무 순탄해 오히려 마음에 걸릴 정도라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예상되는 어려움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고비가 남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김란수 동사장의 세 가지 성공비결 ▶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 수출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 좋아하는 무역 사업에 매진한다
나름대로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환율 동향을 주시한다. 위안화가 강세면 그는 수입 물량을 늘린다. 수출입 물량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수출입을 병행하기 때문에 사전에 대비하면 환율 변동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수출 거래선을 결정할 때 그가 주목하는 것은 기업의 내용과 유통 능력, 해당 국가의 시장, 해당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 등이다. 반면에 그 거래로 적자가 날 가능성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적자를 보더라도 거래를 시작합니다. 일시적인 적자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시장만 있으면 거래를 성사시키죠.” 사업 성공 노하우로 그는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욕심을 크게 부리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마진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그는 5년 전부터 수출 원가를 공개하고 있다. 그래도 싸니까 거래선들이 그의 물건을 산다. 마진이 남는 것은 그가 남들은 받기 힘든 싼 가격에 물건을 받아오기 때문이다. 비결은 자금력이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납품 회사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은행의 지급보증도 활용한다.

“10년 후 제조업 하겠다” 그는 우연히 시작했지만 무역 일이 재미있다고 했다. “무역 거래를 성사시키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실은 일이 어려울수록 더 재미있어요. 우연히 빠져들었지만 이 일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협상하고 설득하는 것이 제 적성에 맞아요.” 좋아하는 일에 푹 빠졌다는 게 어쩌면 그의 세 번째 성공 노하우인지도 모르겠다. “10년 후쯤 중소기업에서 벗어나면 제조업을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제조업은 무역과는 비교가 안 되죠. 그러나 제조업을 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무역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예요.” 제조업을 하게 되면 니켈합금으로 만드는 SUV 차량 부품을 제조해 보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연애한 지 8년 만에 만혼을 했다. 일에 빠져 지내기도 했지만 그새 그의 부인이 서울대 대학원에 유학해 국악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옌볜대에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한 상태. 자녀에게 조선어를 가르칠 건지, 거의 한국 사람처럼 조선어를 구사하는 그에게 물었다. “가르칠 겁니다. 조선족인데 당연히 조선어와 조선의 역사를 알아야죠.” 조선족 사회에서 자녀에게 조선어를 가르치는 것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다. 옌볜 출장 전 기자가 서울에서 만난 한 조선족 동포는 자녀에게 조선어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 굴지의 기업에 근무하는 그는 “조선어를 가르칠 시간에 영어를 더 시키겠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만났다는 그의 부인은 한족이다. 이른바 민족 간 ‘교차 결혼’을 한 것이다. 교차 결혼은 조선족 사회의 붕괴를 가속하는 요인 중 하나다. 과거 교차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 성을 따랐다. 요즘은 부계를 따를 건지, 모계를 따를 건지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쪽을 따르느냐에 따라 민족이 결정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한족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즘은 아버지가 조선족인 아이도 한족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저출산에 더해 교차 결혼이 태어난 아이들마저 한족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김 동사장은 조선족인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족의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는 않는다고 했다. “개인의 의견이 있을 뿐이죠. 같은 러시아인끼리도 서로 종교와 문화가 다를 때가 있습니다. 민족을 지켜야겠지만 매사에 민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의 꿈은 축구단 구단주가 되는 것이다. 소학교 시절 그는 2년 반 동안 축구선수 생활을 했다. “우의를 다지고 평화를 배울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그가 거래선과 펼치는 윈-윈 게임이 축구 경기와 닮은 것은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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