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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는 턱수염 기른 그린스펀?

버냉키는 턱수염 기른 그린스펀?

지난 9월 18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기준금리와 재할인율을 동시에 0.5%포인트 인하했다. 묻지마 투자자들까지 구제하는 도덕적 해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벤 버냉키 FRB 의장의 다짐은 어디로 갔을까? 혹시 그가 국회 출석을 앞두고, 자신에게 비난을 퍼부을 의원들을 향해 미리 손을 쓴 것일까? 재무장관 헨리 폴슨에 의해 좁아졌던 운신의 폭을 좀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벤 버냉키 의장이 점점 앨런 그린스펀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벤 버냉키 의장이 턱수염을 기른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린스펀은 금융위기 때마다 발 빠르게 기준금리를 내려 안정을 꾀했었다. 전 세계가 알다시피 이번 버냉키 의장의 결단도 효력을 발휘했다. 금리인하 조치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주식시장에 엄청난 랠리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공격적인 금리인하 조치가 주식시장에 강력한 윤활유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불안했던 투자심리와 관련해 인베스터스 인텔리전스(Investors Intelligence)가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낙관적인 입장의 투자자가 53.9%인 반면, 비관적인 입장을 보인 투자자는 27%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몇 주 전 실시한 조사와는 현저하게 다른 결과였다. 당시 매수 세력은 간신히 40%를 넘은 반면, 매도 세력은 무려 37%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매도 세력보다 매수 세력이 많게 마련인데 이 수치는 시장에 대한 비관적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이처럼 버냉키 의장의 기준금리와 재할인율에 대한 파격적인 인하 조치는 전 세계 주가를 무서운 상승세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는 지속적인 효과를 발휘하기보다는 일시적인 충격 처방에 더 가깝다. 콤스톡 파트너스(Comstock Partners)의 찰리 민터(Charlie Minter)와 마티 와이너(Marty Weiner)는 “경제 대통령으로 칭송받는 앨런 그린스펀이 2001년 1월 3일 오랫동안 견지해 오던 금리인상 정책을 포기하고 처음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했을 때, 지난주처럼 당시 주식시장은 대대적인 상승세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당시 FRB는 기준금리를 6.50%에서 6%로, 재할인율은 6%에서 5.75%로 각각 인하했다. 2001년 금리인하 조치가 발표된 당일, S&P500지수는 5% 상승했으며, 나스닥지수는 무려 14%나 상승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후 21개월 동안 S&P지수는 43% 하락했으며, 나스닥지수는 이보다 더 참담한 수치인 57%의 하락세를 보였다. 비록 과거가 반복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종종 그 모습을 조금씩 달리해 재현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과거는 그것을 무시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금리인하 결정도 잘못된 과거가 반복되는 듯하다. 주식시장에 격렬한 랠리를 촉발시킨 버냉키 의장의 공격적인 금리인하 조치가 다른 통상 부문에는 그다지 유익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FRB가 금리인하를 단행할 때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신용시장 경색 문제는 환율시장의 혼란과 주요 공산품 가격 동요로 인해 갑작스럽게 그 심각성이 퇴색되고 말았다. 미국 달러화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달러에 대한 유로화 환율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캐나다 달러화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달러화와 1 대 1 비율로 거래됐다. 사실상 지구상의 거의 모든 통화가 미국 달러화에 대해 가치가 상승했다. 다행히 현재 미 달러화는 짐바브웨 달러에 대해서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단,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은 연간 1만5000%로 추정되며 향후 여섯 자릿수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끝없이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미 달러화는 해외채권단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이제까지 미국인들은 그들의 강력한 수입상품 구매력에 고무된 해외채권단의 인내심 덕택에 차용한 돈(찍어낸 달러)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달러화 약세로 금값 폭등 그러나 해외채권단은 자신들의 막대한 차용원금이 계속 잠식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점차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고 있으며, 보다 안정적인 통화로 여유자금을 이동시키고 있다. 또 미 달러화의 가치 하락은 달러화로 표시되는 원유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져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유는 원유가 상승이 한풀 꺾이기 전의 시세인 1배럴당 84달러 이상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또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한 걱정 때문에 미 달러화의 약세는 금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금 1온스가 약 745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번커 헌트가 금 사재기를 시도해 1온스당 850달러에 거래가 이뤄졌던 1980년 1월 이후 최고치다. 버냉키 의장이 0.25% 대신 0.5%의 파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하게 된 도의적 차원의 동기는 신음하고 있는 주택시장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이었다. 결국 버냉키는 재무부 만기채권의 수익률 곡선을 가파르게 만들었고, 이는 사실상 담보대출 금리를 결정하는 재무부 장기채권의 가격이 인상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금리인하를 주택시장 침체의 골을 완화시켜줄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실 대출이자를 낼 수 없는 담보대출자나 곤경에 빠진 부주의한 대출은행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제안된 방안들 중 실효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거의 없다. 최근 발표된 데이터 역시 별다른 위안을 주지는 못한다. 건축업계에서 흘러나오는 소식들 또한 천편일률적으로 암담하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했던 찰리 민터와 마티 와이너가 지적했듯이, 서브프라임 담보대출 부실 사태만으로 무려 1640억 달러의 금융손실을 입을 수 있다. 두 사람은 또한 “주택가격이 15% 하락할 경우 3조 달러의 가계순자산이 날아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의 이 끔찍한 사태를 초래한 주범을 지목하기란 어렵지 않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무절제하게 대출해준 은행권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마련하는 데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하는 월스트리트의 마구잡이식 무절제한 대출 관행이 그 주범이다. 물론 여기에는 FRB처럼 수수방관해 온 감독기관들의 잘못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의 난국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답일까. 이러다가 잘못하면 짐바브웨처럼 인플레이션 지옥에서 허덕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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