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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 지키는 것은 할아버지 遺志”

“동아제약 지키는 것은 할아버지 遺志”

■ 무리한 승계작업으로 핵심 인력 다 나가 ■ 동생이 나의 경영참여 원천봉쇄 ■ 아버님도 모시고, 동생도 다 보살필 것 ■ 아버님이 여러 가지 훈련시킨다고 생각 ■ 어머님은 40년간 남편 없이 혼자 살아 ■ 내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화합
국내 1위의 제약회사 동아제약이 다시 경영권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극적인 화해로 봉합되는가 싶었던 이복형제의 갈등은 지난 7월 동생인 강정석 동아제약 대표가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자사주 7.45%를 매각하면서 재점화됐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가 제3자에게 매각되면 의결권이 생기기 때문이다. 형인 강문석 수석무역 부회장 측은 당장 임시주총 요구와 함께 법원에 자사주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강 대표 측은 강 부회장을 횡령 및 배임혐의로 형사 고발하며 맞섰다. 기자는 임시주총을 요구한 강문석 부회장에게 수 차례 연락을 했다. 계속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를 집 앞 출근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거듭된 설득 끝에 그는 자리를 시내 한 호텔로 옮겨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3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그는 동아제약에 대한 생각은 물론 아버지와의 관계, 지난했던 가정사 등을 상세하게 털어놨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영권을 놓고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형제 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점을 감안해 다른 한쪽의 얘기를 언제라도 지면에 반영할 것이다.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이 3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2004년 강문석 사장 사퇴와 2005년 강정석 전무의 등장이 1라운드라면, 지난 3월 주총에서 양측이 극적 합의를 한 것이 2라운드다. 불행히도 드라마 같은 합의는 일찍 종영됐다. 지난 7월 자사주 처분과 관련해 강문석 부회장이 임시주총을 요구했고, 동아제약은 강 부회장을 횡령 및 배임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10월 31일 실시되는 임시주총은 좀 더 긴박해 보인다. 분쟁에는 경영권과 아버지와 아들, 형제 간 갈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대결의 당사자인 강문석 부회장과 강정석 대표는 이복형제다. 한때 강문석 부회장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 강신호 회장은 지금 강정석 대표와 같은 편에 서 있다. 강문석 부회장의 어머니인 박정재씨와 강신호 회장은 2005년 7월 50년 간의 법적 부부생활을 끝내고 황혼 이혼했다. 강 부회장은 아버지를, 박 여사는 남편을 잃은 셈이다. 한때 동아제약의 ‘황태자’였던 강 부회장. 그는 동아제약의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한사코 “아버님과 맞서려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2004년 대표이사 사장에서 ‘전격 경질’ 됐을 때도 “아버님 뜻을 따르겠습니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지금도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가족의 화합이 중요하다. 나는 아버지와 동생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갈등을 불사하면서 동아제약 경영에 참여하려는 이유에 대해선 “(사실상) 장자로서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이번 사태의 전말과 아버지에 대한 추억, 그리고 아쉬움을 들어본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됐는가. 아버지 밑에서 20년 가까이 일해 왔지 않나?
“2003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자산 정리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대표이사가 되고 나서 처음 한 것이 부실자산 정리였는데 그러다 보니 그해 실적이 안 좋았다. 사실 갈등은 예전에도 있었다. 아버님은 40년간 그쪽(둘째 부인) 집에 있었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이전에도 몇 번 ‘회사를 떠나라’고 했는데 원로, 중진들이 말려서 남을 수 있었다.”

-그전에도 나가라는 얘기가 있었나?
“부사장 할 때인데(96~97년)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회사를 그만두라고 한 적이 있다. 구조조정과 부실 계열사 정리 등 구조조정 작업이 못마땅하셨던 거다. 20개 정도의 계열사를 구조조정, 합병해서 5개 정도로 줄였다. 당신이 만든 회사를 없애는 게 서운하셨던 것 같다. 또 작은집(둘째 부인의 집)의 얘기를 많이 듣고 나를 꾸중했다. 월요일만 되면 작은집에서 무슨 얘기를 듣고 오시는지 야단치셨다. 그래서 월요일 가급적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구조조정을 아버지와 상의할 수도 있지 않았나? 독단적으로 한 게 아닌가?
“아니다. 그때도 최종 결정은 아버지가 하셨다. 그러나 나중에 꼭 불만이 쌓이셨다. 특히 라미화장품 매각에 대해 불만이 많으셨다.”

-왜 라미화장품인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아버지의 첫 신규사업이었다. 그 회사를 자식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 제약회사의 추세를 보니 화장품 회사를 다 매각하더라. 그리고 R&D에 집중하더라. 우리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그 회사는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5년 연속 적자를 냈을 정도다. 처음에 팔려고 할 때(96년)는 200억~300억원 받을 수 있었는데, 아버지가 ‘노(No)’했다. 몇 차례 기회가 더 있었는데 번번이 반대하셨다. 결국 수석무역에 흡수합병되면서 수백억 손해를 본 셈이다.”

-창업자인 할아버지(고 강중희 회장)와 관계는 좋았나?
“할아버지는 내가 고2 때 돌아가셨다. 나를 많이 사랑하셨다. 덕소에 산이 있는데 그곳에 할아버지와 자주 놀러갔다. 그걸 직접 나한테 넘겨 줬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동아제약 지분(3.74%)도 할아버님이 직접 넘겨 주신 것에서 시작했다. 할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지분이 약 1.78% 정도 됐다. 나머지는 내가 조금씩 산 거다. 당시에도 형님이 아파서 할아버님은 ‘이 회사는 앞으로 네가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셨던 것 같다. 내가 동아제약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할아버지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다. 돈이야 뭐, 수석무역도 있고, 주식도 있다. 돈 때문에 이렇게 하겠나?”



아버지와 아들, 갈등의 뿌리



-할아버지가 명시적으로 ‘이 회사는 네가 이끌라’고 말한 적 있나?
“나에게 경영자의 도리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셨다. 주변 친척들에게도 문석이가 맡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하시는 걸 들었다.” 강 부회장에게 할아버지는 좀 남달랐던 것 같다.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가 나와 나들이도 하고, 학교 선생님도 찾아다녔다”고 그는 말했다.

-할아버지 유지를 받들기 위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다는 건 납득이 안 된다.
“아니다. 나는 아버지를 거역하는 것이 아니다. 2004년 아버지가 나가라고 하셨을 때 납득은 안 됐지만 ‘그래도 아버님 뜻을 따라야지’ 하면서 나왔다. 그런데 밖에서 지켜보니까, 무리한 승계작업 때문에 회사의 핵심 인력들이 다 나가더라. 우리 회사의 영업을 만든 장항수 전무가 한미약품 사장으로 갔다. 그 외에도 20~30명의 핵심인력이 나갔다. 동생(강정석 대표)이 승계를 위해 그런 사람들을 몰아내면 회사가 무너진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어떻게 만든 동아제약인가? 불행히도 비슷한 경우가 제약업계에 있다. 우리도 그렇게 되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우호지분을 찾았고, 가족이 화합하는 가운데 내가 경영참여를 해서 동아제약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아버지, 동생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동아제약 경영에 참여해야 하나? 바깥에서 보기에는 재산 싸움으로 볼 수도 있다.
“회사 발전 때문이다. 나는 돈 욕심이 없다. 지금 가지고 있는 주식도 할아버지가 주신 건데 회사의 발전을 위해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대주주로서 회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되는 것 아니냐? 아버지와의 갈등도 아니다. 동생이 무리하게 경영권 승계를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화해했다가 다시 대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에 지난 3월 주주제안을 통해 경영참여를 시도했다. 최초안을 양보하면서까지 화해해서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나? 그런데 주총 당일 이사회를 열어 나는 보직도, 사무실도 안 주고, 강정석 전무는 대표이사로 승진시켰다. (아버지가) 아직도 감정이 남아계시니까 그렇겠지 하고 기다렸다. 백의종군해서 열심히 하면 뜻을 알아주시겠지 하면서 참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문제가 생긴 게 교환사채(EB) 발행이다.”

▶“내가 동아제약을 가지려는 게 아니다. 사장 자리가 탐나는 것도 아니다.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만 해주면 된다.”



-EB 발행을 동아제약 측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이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번 일은 주주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기관투자가들도 이런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몇몇 기관투자가와 상의도 해봤다. 그냥 있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을 거라고 얘기하더라. 동생이 0.5%밖에 지분이 없으니 무리한 일을 한 거다. 그래서 임시주총을 소집해서 문제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회사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뭐가 그렇게 문제인가?
“회사가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EB를 발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가 자체 주식을 보유하고 EB를 발행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거기에 주식을 팔고, 또 채권 인수자를 찾는 등 여러 단계의 일을 했다. 과정도 복잡하고, 비용도 더 든다. EB 인수자와 중계자, 투자자를 찾아준 에이전시에 모두 회사 돈으로 수수료를 줬다. 그건 주주가치를 심각히 훼손한 거다. 해외에서 한 이유는 인수자가 누군지 추적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나 대기업에서 자사주를 그렇게 처리하는 것 봤나? 그러면 외국 기관투자가가 가만히 있겠나?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또 EB 발행 차익에 대한 세금 130억원을 미리 냈다. 거기에 983억원의 채무보증도 했다.”

-자금 조달은 문제 없는 것 아닌가?
“자기 자본의 30%에 달하는 983억원이 지급 보증돼 있다. 동아제약의 신용평가에 다 반영되는 것들이다. 자사주는 회사 돈으로 산다. 회사 돈은 모든 주주의 공동 재산이다. 그걸 만약에 자신의 의결권으로 사용한다면 회사 재산의 유용이다. 회사 재산을 가지고 왜 특정인(강정석 대표)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려고 하나? (자기 지분은) 자기 돈으로 사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럼 이 방법 말고 더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인가?
“많다. 회사채 발행해도 이것보다 쉽고 저렴하게 쓸 수 있다. 다른 기관투자가나 펀드에 물어보니 동아제약 정도면 국내에서 더 싼 이자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 이사회에서도 여러 가지 다른 제안을 했다. 만기도래 채무를 리볼빙(연장) 하는 것도 얘기했고, 자사주를 보유하고 직접 EB를 발행하자고 했다. 그런데도 거부했다. 더 싸고 좋은 방법을 택하지 않은 것은 다른 의도(의결권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 화해하고 복귀했는데, 무보직, 비상근 이사였다는 게 사실인가?
“분명히 상근 이사라고 주총에서 김원배 사장이 얘기했는데 보직이 없고, 비상근이고, 사무공간도 없었다.”

-사무공간도 없었나? 다른 기사에 보니 동아제약 건물 5층에 사무실 있다고 하던데….
“거기는 유충식 부회장(현 동아제약 이사)이 예전부터 쓰던 사무실이다. 유 부회장님도 비상근이니 자주 안 오고 하니 내가 거기서 잠깐잠깐 일 봤다. 도서관의 메뚜기처럼.”



동생과 다투는 이유



-현 경영진에 힘을 실어주고 봉합하는 게 동아제약을 살리는 길이라는 의견도 있다. 부회장은 그냥 대주주로서 역할만 하고…. 그렇게 할 순 없나?
“그렇게 하려고 (지난 3월) 화합한 것 아니냐? 화합한 것은 이사회에서 우리 숫자가 적으니 현재 경영진을 밀어주면서 우리도 경영 참여 하면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고, 당초 우리 안을 대폭 양보했다. 그랬는데 들어가니 바뀌었다. 그래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면 무슨 배려가 있겠지 하면서…. 그런데 동생은 오히려 이상한 방식으로 EB 발행하고 애초 합의를 무시하면서 자기 지분을 늘리려 하고 있다. 동생 측이 신사협정을 깬 것이다. EB 발행계약서를 동아제약이 보증했기 때문에 이사로서 내가 봐야 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안 보여 준다. 공문을 3, 4번 보내도 안 보여 준다. 이사회는 형식적으로 하고, 보직이 없으니 임원회의는 참석 못한다. 15% 이상 가진 주주가 이렇게 대접받아도 되는 것인가? 동생은 나의 경영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꼭 사장이나 대표이사가 아니라도 된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내가 동아제약을 가지려는 게 아니다. 사장 자리가 탐나는 것도 아니다.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만 해주면 된다. 그러면 동생과 아버님과 같이 경영할 것이다. 꼭 대표이사가 아니라도 된다.”

-아버지나 동생과 이렇게 감정다툼이 있는데도 화합할 생각이 드나?
“나는 그렇게 배우고 자랐다.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배웠다. 지금도 할아버지 제사는 내가 모시고 있는데 가족이 흩어지거나 갈라지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시적으로 좀 서먹해졌지만 결국 아버님도 모시고, 동생도 다 보살필 것이다. 만약 동생이 진짜로 어려우면 도와줄 것이다. 항상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이번에 임시주총에서 이긴다면 다 포용하고 잘 끌어 갈 것이다.”

-만약 임시주총에서 이기더라도 경영에서 배제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절대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동생이 동아제약 영업본부장과 동아오츠카 대표를 겸직하는 건 무리다. 두 개가 동아제약그룹에서 핵심적인 자리인데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 아버지도 옛날부터 그렇게 말씀했다. 주주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그런 요구를 한 거지, 회사를 나가라고 한 적 없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없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저번에 어떤 언론에도 썼지만 아버님이 참 좋은 훈련 시켜주시는구나, 그냥 공부만 하고 편안하게 살다가 회사도 잘 모르고 하는 것보다, 이렇게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내가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구나. 저는 아버님을 여전히 존경한다. 단지 지금은 아버님의 판단이 좀 흐려지신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곧 다시 회복되시리라고 본다. 정말이다.”

-아버님이 작은집을 더 편애하시나?
“그런 편이다. 큰누나 딸 결혼식장에도 안 오셨다. 우리 애들도 최근 사이가 벌어지면서 못 만났다. 3년 전만 해도 사이가 좋았다. 우리 큰애와 여행도 가시고. 저도 물론 그전까지는 좋았다.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아버지를 갈라 놓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와 사이 좋았나?
“좋았다. 결혼하기 전은 물론이고 결혼하고 나서도 여행가면 같은 방에서 잤다. 어렸을 때는 뭐, 항상 옆에 끼고 다니셨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강 부회장이 어릴 때 아버지는 이미 둘째 부인과 살고 있지 않았나?
“저는 그 집(작은집)에도 가끔 갔다. 아버님 뜻을 따라서 고분고분하게. 저는 하나도 거스른 게 없었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 자기 전에. 이게 한 편의 드라마라면 참…. 저희 형님이 아프게 된 것도 부모님의 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거듭 묻자 강 부회장은 눈물을 글썽였다. 인터뷰 중간중간 한숨도 내쉬었다. 경영권 문제를 얘기할 때 좀처럼 감정의 변화 없이 차분하던 그가 어린 시절 이야기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번 분쟁으로 혹시 아버님께서 내가 당신을 거역하고 있다고 생각하실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그는 “동아제약을 바로 세우고,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만드는 것이 할아버지와 아버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아버님과 대화하고 있나?
“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지금도 가끔 편지는 드린다. 한 달 전쯤에 편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으시다.”

-혹시 자신의 뜻을 거역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한결같이 아버님을 존경하고, 모시겠다고 했다. 동아제약의 어른이고 우리 집의 어른이시다. 나뿐 아니라 집사람도 아버님을 모시겠다는 생각엔 변함 없다. 다만 회사 문제에서 경영철학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아버님과 대립하는 건 아니다. 나도 아버지도 동아제약을 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화해의 조건들



-아들에게 뭔가 단단히 화가 나신 모양이다. 짚이는 게 없나?
“굳이 따져 본다면 어머님과 이혼했던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충격 받으셨던 것 같다. 그걸 제가 뒤에서 조종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부모님 이혼을 왜 조장하겠나? 막았지만 어머님이 워낙 강경했다.”

-이혼하실 때 어머님이 경영 참여를 요구하는 등의 일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아니냐?
“제가 어머님 모시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나온 다음에 월급도 없었다. 어머님은 40년간 남편 없이 혼자 사셨다. 그런데 생활비마저 끊기니까 ‘이건 나를 부인으로 여기지 않는 거 아니냐?’며 화가 나셔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아버님이 위자료(53억원)를 주셨는데 어머니는 그걸로 안 된다며 경영 참여를 요구하셨다. 50년의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어머니를 나는 말렸다. 말렸지만 어머니는 참 불쌍한 분이다.”

-이복동생에게 쌀쌀맞게 대했다는 얘기도 있다. 형이라고 부르지 말고 직책을 부르라고 했다던데.
“그런 게 아니다. 가족끼리 있을 땐 형이라고 해도 되는데 회사 업무에서는 형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저는 회사에서 회장님이라고 하는데 동생은 회사에서도 아버님이라고 한다. 언젠가 회사에서 나한테 형이라고 하기에 직함을 부르라고 했다. 그게 아마 민망했던 모양이다.”

▶2004년 6월 부자(父子)가 본지 주최 미래경제포럼에서 다정히 웃고 있다.



-수석무역 주식을 용마로지스에 판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고소장에는 수석무역의 주식 가치가 떨어질 것을 미리 알고 계열사인 용마로지스에 주식을 팔았다고 나와 있다.)
“그것도 회장님이 결정한 거다. 회장님 결재 다 받았다. 나는 그때 밖에 나와 있었다. 사실상 2004년 7월부터 회사 못 나왔다.(고소장에는 이 거래가 2004년 말에 있었다고 되어 있다.) 2004년 12월까지 대표이사 사장이었는데 사실상 6월까지밖에 일을 못했다. 그때 자동차 키까지 빼앗아 갔다.”

-주식 매각으로 이익을 노린 것 아닌가?
“당시 나는 이미 회사 출근이 불가능했다. 그때 회사의 한 분이 매각 실무를 했다. 내 것을 챙기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차까지 회수당한 사장의 말을 듣고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있나?”

-그래도 그 거래의 이익금은 부회장에게 들어온 것 아닌가?
“그건 맞다. 평가이익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것이 문제가 되는 건 줄도 몰랐고, 회사에서 다 처리해준 거니까 그냥 지나갔다. 이제 와서 그걸 문제 삼으니 자기들이 문제를 만들고 자기들이 고소하는 셈이다.” 강문석 부회장은 인터뷰에서 “오해가 있어서 기자의 질문에 답은 했지만 이 내용은 빼달라”고 했다. 그는 “일일이 설명하다 보면 아버지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고 회사가 우습게 보일 것 같아 얘기하지 않는다. 아들로서 ‘아버지가 한 것이다’고 한다거나 윗사람으로서 ‘실무에서 한 일이다’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박카스 판매 부진이 부회장을 내보낸 공식적인 이유다. 어쨌든 당시 박카스 매출이 부진했던 건 사실이다.
“그때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꿀 때였다. 그걸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고 계획했는데 그런 시간을 안 주신 거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박카스만 기대고 살았다면 회사가 더 어려워졌을 거다. 나는 구조조정하면서 R&D 비용을 계속 늘렸다. 내가 나올 때는 300억원까지 늘렸는데 그래서 지금 자이데나나 스틸렌 등 신약이 나온 것이다. 전문의약품 영업조직도 확충하고 개발도 많이 했다. 하루아침에 전문의약품 매출이 느는 게 아니다. 동아제약도 최근 경영실적이 좋아진 배경으로 스틸렌, 자이데나 등 전문의약품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원배 사장은 자이데나 개발할 때 부회장이 하지 말라고 했다던데….
“그 사람 양심이 있으면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 아마 뒤에서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으니 그렇겠지만…. 내가 부사장 때 고혈압 치료제를 하려고 10억원이 넘는 고가의 컴퓨터를 사왔다. 신약 개발하려면 물질의 분자구조를 알아야 되기 때문이다. 1년인가, 2년인가 매달렸는데 고혈압 치료제 개발에 결국 실패했다. 그 팀을 그대로 두고 다른 것을 찾아서 해보자 해서 비아그라 유도체를 찾아서 자이데나가 나왔다. 내가 사장이었는데 만약 반대했으면 컴퓨터도 못 샀고, 그 팀도 해체해야 했는데, 실패를 인정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니냐? 당시 연구소장인 김원배 사장과도 말이 잘 통했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

-31일 주총은 어떻게 보나? EB 관련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결정 안 나면 저쪽으로 판세가 기울 것 같은데.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약 가처분 결정이 안 나더라도 그걸 감안해서 대비하고 있다. 그래도 여유 있게 승리할 것이다.”



10월 31일 주총 결과는?



-EB 지분 포함하면 저쪽이 19%, 부회장 쪽은 15% 정도 아닌가?
“우호적으로 지지해 주는 분들이 많다. 일부 기관투자가가 우리를 지지할 것으로 본다. 올 초 외국인 투자자의 절대다수가 우리의 주주제안을 지지했다.”

-어느 정도 확보했나?
“비밀이다.”

-25%정도 되나?
“그건 넘어야 되지 않나? 25%면 애매하지 않나?”

-만약에 이긴다면 동생도 함께 가나?
“물론이다. 동생에겐 잘할 수 있는 일을 주겠다.”

-해마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 아닌가?
“내가 이기면 동아제약 분쟁은 완전히 끝난다. 약속할 수 있다. 단순히 지분 확보에 자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욕심을 버리고 화합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동생 쪽과도 같이 상의해서 결정하겠다. 내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화합이다.”

-그렇게 쉽게 화해되겠나?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니까 할 것이다. 안 되면 집안이 엉망 되는 것 아니냐? 회사도 중요하지만 집안을 화합시키는 게 개인적인 목표다.”

-이기면 대표이사로 복귀하는 건가?
“그건 아직 생각 안 해봤다. 내가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할 수도 있다. 하여간 회사가 잘되는 쪽으로 기여할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

-왜 본인이 동아제약을 맡아야 하나?
“일단은 창업주인 할아버님이 나에게 책임을 지워주셨다. 유산은 그냥 쓰라고 준 게 아니다. 또 20년간 이쪽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동아제약 발전, 제약산업 발전에 몸을 던져보고 싶다. 이대로 방치하면 먼저 사라져간 제약회사들처럼 될 수도 있다. 또 내겐 해외사업의 경험, 네트워크가 있다.”

▶“모든 것이 오픈 돼 있고,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다. 회사를 위해서 빨리 매듭짓고, 전문경영진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양쪽 다 주주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을 앉히는 것은 생각 안 해봤나?
“그것도 좋다. 저는 모든 것이 오픈 돼 있고,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다. 회사를 위해서 빨리 매듭짓고, 회사를 전문경영진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현 경영진도 포함된다.”

-직원들도 심란할 것 같다.
“동감한다. 그래서 이번 임시주총에서 결론을 맺고 싶다. 오래 끌면 내가 이겨도 회사는 거덜난다. 최대한 빨리 사태를 종결시켜 직원들이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지금 팀별로 1명씩 차출해서 관제데모 다닌다. 지금 수석무역 앞에도 와 있을 거다.”

-강 회장은 나름대로 성공한 경영인인데 강정석 대표를 선택했다면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은 (둘째 부인과)같이 사시니까 그런 것 같고…. 예전에 유충식 부회장님이 회장님에게 물어봤는데 ‘정석이 걔는 안 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들었다. 지금은 아무래도 작은어머니의 입김이 미치는 것 같다. 연세 드신 다음에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줄곧 화합을 강조하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나? 주변에서도 받아들이나?
“물론 안 받아들일 만한 사람도 있는데 내 뜻을 따라주지 않겠나? 이번에 이겨도 배제하면 회사를 위해서는 악영향이다. 포용력을 갖고 움직여야 된다.”

-만약 계열사를 좀 나눠줬으면 분쟁이 안 생겼을 수 있나?
“동아제약그룹이 분리를 하기 어려웠던 구조다. 그래서 그런 해결책을 못 찾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동아제약을 포기하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할아버지의 유지도 있고….” 인터뷰 내내 강 부회장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보고인 듯했다. 하지만 그는 시종 높임말을 써가며 침착하게 답했다. 어쨌든 10월 31일 동아제약 임시주총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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