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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과 국정감사는 ‘남의 일’

감사원과 국정감사는 ‘남의 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산업은행 본관.

2005년 11월 25일, 김창록 신임 한국산업은행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재임 중에 산은이 좋은 은행(Good Bank)에서 위대한 은행(Great Bank)으로 변신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차용한 것이다. 아직 임기가 1년여 남았지만 목표는 초과 달성(?)한 듯하다. 산은은 ‘위대함’을 넘어 ‘신도 부러워한다는 직장’이 됐으니 말이다. 여기에 감사원 감사나, 국회 국정감사 정도는 무시하고 갈 만큼 배짱도 두둑하다. 지난해 국감 때 국회의원들로부터 “방만한 경영을 한다”며 호된 질타를 받았던 김 총재는 당시 산은의 과도한 연봉 잔치가 사회문제화하자 “연봉 중 1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곤욕은 올해도 이어졌다. 지난 10월 29일 국회 재경위원회의 산은에 대한 국감은 지난해, 또 그 지난해의 재방송 같았다. ‘돈 잔치’ ‘예산낭비’ ‘도덕적 해이’가 그대로 지적된 것이다.
神도 부러워하는 ‘돈 잔치’
한 가지 새로운 이슈가 있었다면 “미술관 협찬이 전무했던 산업은행이 왜 김창록 총재가 부임한 후 신정아씨가 근무했던 성곡미술관에 네 차례에 걸쳐 7000만원을 협찬했는가” 하는 의혹이었다. 김창록 총재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 더욱 의혹을 샀다. 김창록 총재나 산은은 다른 피감기관과 마찬가지로 이번 국감이 대선을 앞둔 전초전 분위기였다는 데 내심 만족했을지 모른다. 대선 이슈에 가려, 언론이나 여론의 이목이 분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100% 출자한 자산 118조원의 대형 국책은행이 정부와 국회의 감사까지 무시하는 지경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 ‘돈 문제’부터 그렇다. 2005년 감사원 감사, 2006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산은은 숱한 예산낭비 사례를 지적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별로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이미 지적된 사안인데 산은이 여전히 낭비하고 있는 예산은 약 182억원이다. 법정기준을 초과하는 노조 전임자 급여로 지난 2년간 8억3000만원이 지급된 것은 하나의 예다. 재정경제부 기준으로 노조 전임자 수는 3명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노조 전임자는 8명이다. 지난해 노조 전임자 법적 기준을 초과한 5명에게 지급된 급여는 3억8700만원이다. 또한 산은이 직원들에게 공짜로 집을 빌려줌으로써 발생한 이자 차액 손실만 53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역시 지난 감사원 감사 때 지적된 것이다. ‘단순업무는 용역업체를 쓰라’는 지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현재 산은 운전기사의 경우 76명 중 자체 직원이 41명으로 지난해와 똑같다. 이미 폐지된 유급월차휴가제도는 ‘휴가 보전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지급되고 있고, 지난 2년간 지급된 돈만 62억원이다. 지난해 유아교육비 보조, 문화비 등의 명목으로 직원 1인당 연간 731만원을 지급했다. 유학 중인 직원에게 ‘해외학술연수’라는 명목으로 월급을 지급하고, 아예 4000만원에 달하는 학비와 현지생활비도 지원하고 있다. 산은 부장급은 해외출장 때 정부부처 차관급보다 하루 100달러 정도 많은 출장비를 받는다. ‘신도 부러워한다’는 산은은 2006년 기준으로 연봉 1억원이 넘는 정규직 직원 수가 392명이다. 산은 직원 중 18.5%가 억대 연봉자인 셈이다. 성과급 잔치도 현란하다. 산은의 지난해 성과급 예산은 2002년 대비 1493% 늘었다. 지난해 성과급으로만 184억원이 지급됐다. 2000여 명 조직에 5년간 지급된 성과급만 479억원에 달한다. 임원들 통장은 더 두둑하다. 산은 총재에게 지난 5년간 지급된 성과급은 1억7500만원. 부총재와 감사는 각각 1억6400만원, 1억400만원을 받았다. 문제는 ‘산은이 이런 돈 잔치를 벌여도 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데 있다. 우선 산은의 태도를 보자. 산은 측은 “업무 특성과 인력 수준을 감안하면 다른 은행보다 낮거나 유사한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산은 관계자는 “직원 평균 근속년수가 17년 정도고, 평균 연령이 40세나 되는 고경력 위주의 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은행과 단순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고경력 조직은 그에 걸맞게 일을 하고 있을까? 산은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조1008억원, 2005년에는 2조4217억원이었다. 하지만 이는 겉보기일 뿐이다. 대부분 보유주식 매각과 지분법 평가이익으로 발생한 영업외 수익이기 때문이다. 실제 영업이익은 2003년 5199억원 적자였고, 2004년 2609억원으로 흑자전환한 후 지난해 영업이익은 1942억원으로 3년째 하락 추세다. 다시 말해 실제 순수 영업상 이익은 미미한데도, 정부의 정책적 투자에 따른 지분 매각 및 평가차익을 가지고 ‘자신들의 성과’라며 성과급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김창록 총재는 취임 직후 산은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총재가 직접 주재하고, 부장급 간부 전원이 참석한 워크숍을 가졌다. 이때 논의된 주제 중 하나가 ‘산은이 망하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산은 관계자는 “분위기는 굉장히 심각했고, 주요 의제는 시장개척과 적당주의 타파,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 고객보다 조직 편의를 우선하는 문화 타파 등이었다”고 기억했다.
영업이익은 3년째 추락
산은은 ‘위대한 산은’이 되려는 모습을 보여 주었는가. ‘한국산업은행법’상 중요 산업에 대한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회사채 인수 및 보증 등의 업무를 하도록 규정돼 있는 산은은 이미 그 기능과 역할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오히려 김창록 총재는 “세계적인 투자은행(IB)이 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민간은행처럼 사업영역을 계속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문석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산업은행이 중요 산업 지원이 아닌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돈놀이하듯 여신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 의원에 따르면, 올해 산은은 삼성카드·현대카드·롯데카드 등 카드사에 5100억원, 캐피털 등 각종 여신금융회사에 약 1조3200억원을 공급했다. 반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34.4%로 일반은행 중기 대출 비중보다 약 4%포인트 낮다. 국책은행이면서 민간영역 업무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도 다른 나라 얘기처럼 듣고 있는 셈이다. 산업은행은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 회사채 투자에는 인색한 반면, 일산·도곡동·목동 등에 지점을 설치하며 민간은행의 PB영업을 지향한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만약 이 같은 영업행위로 손실이 날 경우 국민 혈세로 막을 것인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책은행 본연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참고로 산은의 부실채권 비율은 1.4%로 전체 은행권에서 최고치다. 영업이익률은 0.2%, 순이자마진도 업계 최하위권이다. 산은이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정부, 특히 재경부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다. 공공기관 기관장 연봉 1위인 산은 총재자리와 감사자리는 지난 10년간 100% 재경부 출신이 차지했다. 김창록 총재 역시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를 거쳐 현 자리에 앉았다. 나의 잔치판에 누가 찬물을 붓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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