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LIFE] 와인·바비큐 파티 즐기는 ‘옥상정원’

[LIFE] 와인·바비큐 파티 즐기는 ‘옥상정원’

▶서울 논현동 까사솔 빌라를 내려다 본 모습: 서울 강남 부유층을 중심으로 옥상을 녹화하는 붐이 일고 있다.

잿빛 도시에서 흙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자연을 그리워하는 도시인의 욕망이 실현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옥상정원이다. 요즘 수도권의 부유층들 사이에서는 와인을 곁들인 옥상정원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방배동의 한 고급 빌라. 외국계 정보기술(IT) 기업 사장을 지낸 김 전 대표의 보금자리다. 오후 7시가 되자 그가 생일 파티에 초대한 손님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이들은 모두 거실이 아닌 옥상으로 올라갔다. 저녁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기 위해서다. 김 전 대표는 야외용 바비큐 그릴에서 아르헨티나산 쇠고기를 굽고 있었다. 곧이어 등장한 안주인 손에는 올 여름 프랑스에서 공수해 온 보르도 와인이 들려 있었다. 옥상 마당에서 펼쳐진 바비큐 파티는 밤 12시까지 이어졌다. 아무리 떠들어도 뭐라 하는 이가 없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세 블록쯤 떨어진 건너편 빌라 옥상에서도 조촐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변호사협회 간부직을 맡았던 한 법조인의 빌라다. 이처럼 요즘 수도권 부유층을 중심으로 옥상정원 파티가 유행하고 있다. 요즘 수도권에서는 옥상정원이 인기몰이 중이다. 서울에서는 한 발은 땅 위에, 한 발은 시멘트 바닥 위에 딛고 살아야 한다. 서울 전체 면적의 49%가 이미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서울 하늘 아래서 맨발로 흙을 밟을 수 있는 마당을 갖는다는 꿈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 빌딩, 아파트와 같은 콘크리트 덩어리로 땅을 덮어버린 현실에서 우리에게 마당으로 내줄 땅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마당은 영원한 사치일까.

▶옥상정원의 주가가 올라감에 따라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 대부분은 옥상층을 집중 관찰한다.

서울시 생태 현황도를 보면 한 가지 틈이 보인다. 현재 서울 시내에 있는 건물 중 옥상 녹화를 해서 자연을 인공적으로 복원한 면적은 고작 0.04%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렇게 옥상 녹화가 가능한 건물, 즉 지붕이 평평한 건물은 전체의 70%에 이른다. 마음만 먹으면 건물이 들어선 자리만큼 자연을 지붕 위로 올려 복원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옥상정원 바람이 불고 있다. 빌딩과 주택 할 것 없이 버려졌던 옥상이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 것이다. 자연에 대한 갈망이 그 첫째 동기이기는 하지만 덤으로 건물과 주택의 부가가치가 올라가면서 너도나도 옥상을 녹화하고 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는 공간적으로 마당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후루야 노부아키 일본 와세다대 교수(건축학)는 용인 동백지구 타운하우스 동연재를 설계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동연재는 3층 구조의 공동주택이면서도 1가구가 1개층을 모두 사용하는 구조로 사방으로 창문을 낼 수 있게 함으로써 단독주택과 같은 공간감을 준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타운하우스의 옥상 75평(247.935㎡) 전체가 옥상 마당이라는 것. 1가구가 땅을 깔고 앉아 있는 그 면적 그대로 옥상에 하늘정원을 마련해준 것이다. 이 옥상정원은 3층 가구의 전용정원으로 제공된다. 2층 가구는 1층에 약 20평(66.116㎡)의 정원을 꾸밀 수 있다. 1층은 주차장을 제외한 지상 공간을 쌈지정원으로 꾸몄다. 동연재 관계자는 조건은 동일하고 옥상정원(3층)과 지상 쌈지정원(2층)의 차이 때문에 3층 가구 분양가가 7,000만원 비싼 데도 불구하고 3층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다고 말한다. 이런 경향은 아파트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용인 보라지구 건설 예정인 동연재 타운하우스의 모델하우스는 아예 옥상을 포함해 베란다까지 조경을 했다.

엘리베이터홀을 중심으로 좌우 2가구로 구성되는 아파트 옥상에 1가구만 배치하고 나머지 공간을 옥상정원으로 제공하는 펜트하우스는 평당 시세가 일반아파트의 1.5배 수준인 데도 구매자가 줄을 서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고층 아파트의 경우 방범과 일조권에 취약한 옥상층 가구가 기피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전용정원을 가질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로열층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옥상정원에 열광하는가. 타운하우스 개발전문업체 드림사이트코리아의 이광훈 대표는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옥상이란 물리적 공간이 외부와의 단절을 분명하게 해주기 때문에 옥상정원은 지상정원에 비해 독점적 공간으로서의 배타성이 더 확실하게 보장됩니다. 독점적 소유욕과 배타성이 강한 도시인의 욕구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죠. 옥상이 갖고 있는 둘째 물리적 특징은 현저한 과시성입니다. 누구도 넘볼 수 없지만 시각적으로 사방에 개방된 공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부러움을 유발해 주택의 가치를 높여주죠.” 실용적인 면도 간과할 수 없다. 서울 논현동 일대에서 ‘옥상정원 1가구’로 불리는 까사솔 빌라 관계자는 “김장을 담그는 것에서부터 개집 수리까지 모든 일을 옥상에서 한다”며 옥상정원의 실용성을 자랑한다. 그는 “사람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도 하고 와인잔도 기울이기에 옥상정원보다 더 낭만적인 곳은 없다”고 덧붙였다. 주택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조망권이 탁월한 것은 덤이다. 기능적으로도 옥상정원은 탁월한 효용가치가 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겨울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면서 집을 짓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분당·일산의고급 아파트는 꼭대기층에만 옥상을 따로 설계했다.

예전부터 우리는 ‘겨울에 따뜻한 집’이 최고로 잘 지은 집으로 평가됐으나, 이제는 ‘여름에 시원한 집’이 최고로 대접받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하루 평균 기온이 섭씨 20도 이상인 서울의 여름은 191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111일이었으나 90년대에는 16일이 늘어났다. 2090년에는 90년대보다 한 달이 더 길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바로 이런 날씨 변화에 옥상정원이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 옥상에 조경을 꾸미기 위해서는 약 60cm 깊이의 흙을 깔아야 하는데 그 위에 조경을 하게 되면 한여름에 내부 온도를 1.5~2도까지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2도 낮추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에어컨을 돌려 주택의 내부 온도를 전체적으로 2도 낮추려면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도 덥다면 옥상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할 수도 있다. 굳이 한강 둔치까지 갈 필요가 없다. 옥상정원은 여러 계층의 사람이 모인 곳을 꺼려 하는 부자들을 배려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책 사이에 숨긴 화려한 우표…알고 보니 ‘신종 마약’

2경북도, K-국방용 반도체 국산화 위해 전주기 지원체계 구축

3영천시, 베트남 대형 유통업체 K-MARKET과 "농특산물 수출 확대" 협약 맺어

4대구시, 경기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피해 복구 지원에 1억원 지원

5소방당국, 아리셀에 ‘화재 경고’…‘예방컨설팅’까지 했다

6최태원 동거인 첫 언론 인터뷰 “언젠가 궁금한 모든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7갤럭시, 접고 끼고 AI 장착…‘언팩 초대장’ 보낸 삼성전자, 링·폴드·플립 공개

8이복현 “상속세·금투세 등 의견 피력…하반기 ‘골든타임’”

9토스뱅크·광주은행, 올해 3분기 ‘공동대출’ 출시

실시간 뉴스

1책 사이에 숨긴 화려한 우표…알고 보니 ‘신종 마약’

2경북도, K-국방용 반도체 국산화 위해 전주기 지원체계 구축

3영천시, 베트남 대형 유통업체 K-MARKET과 "농특산물 수출 확대" 협약 맺어

4대구시, 경기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피해 복구 지원에 1억원 지원

5소방당국, 아리셀에 ‘화재 경고’…‘예방컨설팅’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