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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 경제 하는 마음까지 태울라

[양재찬의 프리즘] 경제 하는 마음까지 태울라

지난주 우리들 마음도 꺼멓게 탔다. 푹 쉬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려는 설 효과는 숭례문을 덮친 화마에 날아갔다. 언제부턴가 대형 사고가 터지면 나오는 말이 있다. ‘초동 대처에 문제가 있었다’ ‘평소 안전관리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이런 말이 나왔고, 사실로 입증됐다. 2006년 3월, 100여 년 만에 숭례문을 시민에게 개방한다는 취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이후 관리였다.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화재에 취약한데도 흔한 스프링클러 하나, 화재감시 센서도 없었다. 밤에는 관리원도 없어 노숙자들이 쉼터로 이용할 정도였다. 또다시 황당한 재난을 겪지 않으려면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런데 사고 수습 과정을 보면 과거 행태 그대로라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관리 소홀과 화재 진압 과정의 문제를 놓고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 서울시가 서로 남의 탓을 한다. 숭례문이 무너진 그날 2~3년이면 복원이 가능하다는 호언이 나왔고, 이튿날에는 당시 서울시장으로 숭례문 개방을 주도했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고 제안했다. 더구나 화재 직후 높이 6m의 천 가림막을 설치한 서울 중구청은 한 술 더 떠 아예 안을 볼 수 없도록 높이 15m 알루미늄으로 대체하던 중 여론의 질타를 받고 일부를 투명 패널로 바꿨다. 불이 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초동 대처다. 이보다 중요한 게 사전 예방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란 불에 미국처럼 금리인하·재정지출·긴급 대책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전 관리와 선제적 조치다. 우리 정부도 이를 강 건너 불 구경으로만 생각했다간 화상을 입을 수 있다. 과거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던 시절 남대문에 문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다투면 서울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었다. 숭례문을 개방하면서 그만큼 위험도 커질 테니 관리에 더 신경 쓰고 위험 대비도 철저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대비 없이 문을 열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한·미 FTA 협정이 타결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준비하고 대비했는가? ‘1대 29대 300의 법칙’(하인리히 법칙)이란 게 있다. 하나의 큰 재해가 일어나기까진 가벼운 부상을 입을 정도의 재해가 29건, 또 그 속에는 깜짝 놀랄 만한 300개의 사건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대형 사고는 여러 차례 반복된 전조를 무시해서 터진다는 말이다. 사소해 보이는 일에서 큰 사고의 단초를 찾지 못하면 엄청난 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 경제가 열병을 앓는 데서 보듯 경제라고 이 법칙이 비켜가지 않는다. 큰일이 터지면 선진국은 응급처치를 한 뒤 문제와 대책을 논의할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회는 오랜 시일에 걸쳐 실태 조사와 연구를 한 끝에 책임자 이름을 붙인 보고서를 내고, 이를 행정부와 의회가 하나하나 집행한다. 9·11 테러에 대한 미국 위원회 보고서는 2년이나 걸려 나왔다. 보고서는 책으로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학교 교재로도 쓰인다. 우리처럼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도 숭례문 화재와 비슷한 사고를 겪었다. 1949년 1월 26일 법륭사 금당벽화가 불에 탔다. 큰 충격을 받은 일본은 이듬해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고 문화재 방재 시스템을 갖췄다. 금당벽화가 불에 탄 1월 26일을 1955년부터‘문화재 화재 방지의 날’로 정하고 매년 문화청·소방청 공동으로 주요 문화재가 있는 곳에서 화재 등 재해 방지 훈련을 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매달 민방위 훈련을 하면서도 문화재 화재 예방 훈련은 없었다. 더구나 지금 하는 짓을 보면 서둘러 막고, 덮고, 다시 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빨리빨리 처리하자는 식이다. 이렇게 했다간 언제 또 재난과 사고가 닥칠지 모른다. 대형 재난과 사고는 막대한 비용손실과 함께 사회불안에 경제 하는 마음까지 상처를 입힌다. 불탄 숭례문을 교과서에 싣자. 있는 그대로 다음 세대에 알려 경종을 울리자. 이번 사고를 낙제점인 재난 대응 점수를 높이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 영하의 추운 날씨에 하얀 국화꽃을 들고 잿더미가 된 숭례문을 찾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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