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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취업추천서 씨가 말랐다

대학에 취업추천서 씨가 말랐다

▶서울의 한 대학 졸업식에서 지방 중소기업 사장이 자기 회사에 와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서울시 하계동 대진고등학교. 지난 2월 2일 이 학교를 졸업한 550명 중 서울 소재 대학에 260명이 진학했다. 지방대학과 2~3년제 대학을 포함하면 진학률은 90%에 이른다. 이 학교 조용동 교사(진학 담당)는 “자발적으로 재수를 선택하는 학생이 많아 정확한 수치를 내기는 어렵지만 약 80%는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 간다”고 말했다. 3학년 한 반 정원은 34~37명. 대략 25~28등 안에 들면 대학생이 될 수 있다. 1990년에도 3학년 담임을 맡았다는 조 교사는 “90년대 초에는 한 반 40명 중 절반 정도만 대학에 진학했다”고 회고했다. 대진고교만의 현상이 아니다. 1990년 고등학교 졸업생은 76만2000여 명. 이 중 대학 진학자는 25만3000여 명이었다. 재수생을 포함하면 34만2000여 명이 ‘90학번’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려는 100명 중 45명만 대학생이 되던 시절이다. 당시 일반 고등학교 한 반 정원은 50명 안팎이었다. 이 중 4년제 대학을 가려면 15~20등 안에는 들어야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고교 졸업생은 1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76만4000여 명이었다. 하지만 ‘밀레니엄 학번’으로 불린 ‘00학번(재수생 포함)’은 64만5000여 명으로 늘었다. 수능시험을 본 100명 중 15명 정도를 빼곤 다 대학에 진학한 셈이다. 96년부터 일정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하고 대학 정원을 자율화한 뒤 10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운 대학생이 배출됐다. 2003년부턴 대학 입시 수험생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은 역전 현상이 벌어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학력 인플레이션은 생산설비 자동화와 업무 자동화로 일자리가 없거나 적은 성장이 이뤄지는 산업구조 변화와 맞물려 대량 청년실업 사태를 가져왔다. 15~64세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 비율인 고용률은 별 변화가 없는데 대졸 청년 구직자가 무더기로 쏟아진 결과다. 1990년이었다면 고교 졸업과 함께 ‘고졸 채용 시장’으로 진출했을 30여만 명이 ‘대졸 채용 시장’으로 옮겨왔다.
인력수급 미스매치 현상 심해졌다
그러나 은행과 공기업 등 화이트칼라 직종은 외환위기 이후 감소했다. 채용 관행도 신입사원보다 경력사원을 더 뽑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대졸자의 취업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시험 준비가 길어지면서 대학에 오래 다니게 됐다. 2000년 이후 ‘1년 휴학’은 필수가 되다시피 했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군 입대’가 대부분이었던 휴학 사유가 당당하게 ‘취업 준비’로 대체됐다. 2006년 대졸자의 평균 재학기간은 군 복무를 하는 남학생의 경우 7년 2개월, 여학생은 4년 8개월이었다. 97년 대비 남학생은 1년 1개월, 여학생은 6개월 졸업이 늦어진 것이다. 졸업을 늦춘다고 취업 상황이 나아질까? 정부 공식 통계로 청년실업자는 2004년 41만여 명, 지난해에는 33만여 명이다. 하지만 학원이나 집에서 취업 준비만 했지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업자는커녕 실업자 대열에도 못 낀 채 아예 비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되는 취업준비생이 같은 기간 16만여 명이나 늘었다. 대학 졸업 이후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이 평균 11.2개월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정부 통계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98년 외환위기 이전 4~6%였던 20대 청년 실업률은 2000년 이후 줄곧 6~8%대를 유지하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나 전문가들은 취업준비생과 구직 단념자, 일주일에 18시간 미만 일하는 불완전 취업자 등을 감안한 실질 청년실업률을 20% 정도로 본다. 대학 졸업자는 늘었는데 일자리는 되레 줄었다. 90학번이 본격적으로 졸업한 94~96년 청년층 일자리는 200만 개 안팎이었다. 하지만 00학번이 졸업한 04~06년 일자리는 150만 개 이하로 줄었다(한국은행 금융연구원 보고서). 고학력 실업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업자 중 대졸자 비중은 2000년 30%에서 2006년 43%로 높아졌다.
대학생 55.8%가 취업 과외 받는다
각박해진 대졸자 취업 환경은 기업이 대학에 보내는 입사 추천서의 질과 양 모두에서 큰 차이가 난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서울 소재 대학에는 추천서가 붙은 입사원서가 쌓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추천 원서가 씨가 말랐다”는 것이 많은 대학 취업 담당자들의 얘기다. 숭실대 전삼현 교수(법학과)는 “3년 전만 해도 예전보다는 줄었어도 간간이 추천서가 들어왔는데 요즘은 아예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요즘 대학생들은 중·고교 시절 신물을 냈던 ‘학원 인생’을 다시 걷고 있다. 온라인 취업전문 업체 잡코리아에 따르면 대학생 55.8%가 취업 과외를 받고 있다. 연간 1000만원이나 되는 등록금도 모자라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지출하는 사교육 비용이 연간 207만원으로 조사됐다. 학력 인플레와 고용률 정체 현상은 노동시장에 이상한 변화까지 가져왔다. 자발적으로 취업을 늦추는 구직자는 늘어나는데 기업들은 구인난을 겪는 것이다. 이른바 인력 수급의 ‘미스매치 현상’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기업의 인력 부족은 지난해 현재 25만 명에 이른다. 1년 전보다 4만5000명 늘었다. 중소기업, 특히 제조업 분야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서울 소재 중소 제조업체가 당장 필요로 하는 인력은 9만 명이다. ‘그래도 대학 나왔는데…’라며 험한 일을 싫어하는 3D 기피 심리와 안정적인 일자리 선호,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력 부족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인력 수급의 미스매치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대학을 나와 취업에 성공해도 ‘괜찮은 일자리’를 갖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비정규직이나 임시직 등 불완전 취업자가 늘어난 탓이다. 이는 실업급여 지급 상황으로 입증된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는 68만5000명으로 1년 사이 7만5000명 증가했다. 보험 적용 대상자가 일용직 노동자까지 확대되고 제도를 알고 이용하는 사람도 늘어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괜찮은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년 전인 2002년 실업급여 수급자는 30만 명에 못 미쳤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20~30대에 몰려 있는 점도 문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실업급여 수급자 중 29세 이하가 전체의 25%다. 수급자가 가장 많은 30대(29.7%)를 합치면 20~30대가 전체 실업급여의 절반 이상을 받는 셈이다. 실업급여를 통해서도 실업률 통계의 허점이 발견된다. 노동부는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 통계를 발표하면서 “전체 실업자 가운데 실업급여를 받는 비중을 나타내는 ‘실업급여 수혜율’이 34.8%”라고 밝혔다. 실업자의 34.8%가 68만5000명이라니 역산하면 전체 실업자는 약 197만 명이라는 얘기다. ‘일자리 창출’, 특히 ‘청년실업 해소’는 대선 때마다 단골 핵심 공약이다. 이명박 정부도 매해 60만 개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다. 하지만 고용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드물다. 일각에선 급격한 고령화 때문에 머지않아 인력부족 상황이 올 것으로 내다보지만 아직은 먼 얘기다. 『실업사회』라는 책에서 김만수 박사가 “사회 총자본 중 기업이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자본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취업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결국 기업이 잘돼서, 많은 직원을 뽑는 것이 현실적인 유일한 대안이다. 실용정부는 이런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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