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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구 “경험 많고 유능한 사장감 없소”

급구 “경험 많고 유능한 사장감 없소”

증권업계에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불고 있다. 외국 금융기관에서 선진금융기법을 갈고닦은 인재들이 잇따라 국내 증권사의 CEO로 스카우트되고 있다. 글로벌화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증권사 CEO를 추천해 달라는 직·간접적인 요청이 많지만 조건에 맞는 인재를 찾기가 힘들다.” 얼마 전 은퇴한 한 증권사 감사는 최근 증권업계에 전문인력은 물론 CEO 구인난이 심각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금융권은 물론 재계에서도 너도나도 증권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이끌 수 있는 능력 있는 CEO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올해에는 임기가 만료되는 증권사 CEO도 10여 명에 달해 그야말로 ‘CEO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1세대 ‘올드보이’ 품귀 현상
실제로 최근 증권업에 진출하겠다는 회사들은 난립을 우려할 정도로 많은 상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월 말까지 증권사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신규 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곳은 무려 13곳에 달한다. 설립 주체도 다양하다. 기업은행, LIG손해보험, 한국씨티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물론 STX, 코린교역, 한국창업투자 등 일반 기업도 다수가 포함돼 있다. 심지어 개인들까지 나선 상태다. 금감원의 증권사 신규 허가는 오는 5월께 판가름 날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마다 증권업 진출에 대한 이유와 명분이 있지만 한마디로 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일단 하고 보자’는 곳도 있는 것 같다”며 “향후 심사과정에서 CEO 및 전문인력, 인프라 구성 등 증권업에 대한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면밀히 따져 5월께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올해에는 11명의 증권사 CEO가 임기가 끝난다. 남명우 NH투자증권 사장을 비롯해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 장옥수 부국증권 사장, 윤경립 유화증권 사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유정준 한양증권 사장, 정진호 푸르덴셜투자증권 사장, 양원일 BNP파리바페레그린 사장, 진수형 한화증권 사장, 양장원 이트레이드증권 사장 등이다. 이들 CEO의 임기만료는 오는 5월에 집중돼 있어 연쇄이동이 불가피한 상태다. 증권업계에서는 임기만료 CEO 중 남명우 사장, 유정준 사장 등 4~5명이 교체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형증권사 한 고위관계자는 “오는 5월부터 있을 증권사 주총의 최고 이슈는 CEO 연임과 선출”이라며 “현재 11명의 CEO 중 3분의 1 정도 교체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렇게 임기만료되는 CEO 자리와 신설 증권사 CEO 자리까지 합치면 20명가량의 최고경영자가 필요한 셈이다. ‘CEO 구인난’이란 말이 나올 법하다. 현재 CEO 공모를 진행 중인 농협 고위관계자는 “자통법이 본격 시행되면 증권업계의 국내외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며 따라서 최고경영자의 자리가 매우 중요한데 국내에는 인력풀이 부족하고 더욱이 CEO 구인난까지 겹쳐 쉽지 않다”고 밝혔다. 때 아닌 CEO 구인난으로 인력 품귀 현상이 벌어지자 증권업계 1세대인 ‘올드보이’들의 가치가 치솟고 있다. CEO 후보로 거론되는 일이 많아지고, 다시 컴백하는 CEO들이 생겨나고 있다. 증권사 신규 설립으로 전문경영인에서 오너로 변신을 준비 중인 손복조 전 대우증권 사장은 무려 10여 군데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또 김지완 전 현대증권 사장은 최근 하나대투증권 대표로 돌아왔으며, 정종열 전 동부증권 사장은 솔로몬투자증권 사장으로 컴백을 준비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1세대들의 컴백은 오랜 증권 경험과 경영 노하우가 돋보였기 때문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사이 국내 증권업계가 많은 인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특히 글로벌화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증권업계에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은 큰 단점”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감각 있는 해외파 급부상
CEO 구인난 속에 부각되고 있는 인재들이 바로 해외파 출신이다. 글로벌 금융기관에서 투자은행 등 선진금융기법을 경험한 한국 인재들이 증권사 최고경영자로 각광 받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과 헤드헌터업계에 따르면 현재 외국 금융기관의 한국 인재들은 증권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관과 기업들의 스카우트 1순위다.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글로벌 경영과 선진 금융상품 개발이 증권업계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를 잘 아는 CEO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전문인력 헤드헌터업체인 피플케어써치는 “현재 모 기관으로부터 증권사 CEO로 해외파 인재에 대한 스카우트 요청을 받아 물색 중에 있다”며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진출이 잇따르고 해외영업도 늘면서 해외파 인재를 많이 찾고 있다”고 전했다. 해외파 인재들은 이미 증권사 CEO로 속속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사업분할을 통해 종합증권사 설립을 추진 중인 KTB네트워크는 최근 이병호(미국 이름 Hobart Lee Epstein) 전 동양종금증권 수석부사장을 CEO로 스카우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병호 대표이사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의 한국 대표를 지낸 IB전문가다. 이 대표이사의 영입으로 현 KTB네트워크 김한섭 사장은 벤처투자와 PEF(사모주식펀드)를 담당할 KTB네트워크신기술금융(가칭) 대표로 자리를 이동할 예정이다. KTB 고위관계자는 “이병호씨를 KTB투자증권(가칭)의 CEO로 영입했다”며 “KTB투자증권은 단순 브로커리지가 아닌 글로벌 투자은행이 목표인 만큼 국제 경험이 풍부한 최고경영자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한누리투자증권(현 KB투자증권)을 인수한 국민은행은 신임 대표이사로 김명한 도이치뱅크그룹 한국 대표를 영입했다. 김명한 신임 대표이사는 JP모건 한국 대표 겸 글로벌마켓 총책임자를 역임했고 2005년부터 도이치뱅크그룹 한국 대표 및 글로벌마켓 총책임자를 맡아왔다. 국민은행은 “KB투자증권을 국내 최고의 IB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CEO를 뽑아야 했다”며 “김명한 대표이사는 국제업무 능력이나 안목에서 최적의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하나은행은 지난해 자회사인 하나IB투자증권 사장으로 이찬근 전 골드먼삭스 대표를 영입했다. 해외파 출신으로 토종 증권사 CEO가 된 것은 이찬근 대표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해외파 1세대로 불리는 이 대표는 지난 25년간 글로벌 금융기관에서 투자은행 업무를 담당했던 IB전문가. 1991년부터는 UBS증권과 골드먼삭스증권의 한국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국제 경험을 가진 해외파 인재들이 잇따라 신설 증권사의 CEO로 영입되고 있지만 자칫 문화적 충돌로 인해 큰 효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외국 기업과 다른 노사문화와 업무스타일 등으로 인해 임직원 간 갈등이 커져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CEO는 아니지만 임원급으로 해외파 인재들이 국내 증권사로 스카우트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업무환경이나 스타일이 달라 큰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중도 하차하는 해외파 인재들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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