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열정 전달치를 극대화하라
[MANAGEMENT] 열정 전달치를 극대화하라
▶탄생 100주년을 맞은 헤르베르트 카라얀. |
“정보화시대의 도래로 인해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경영모델은 사라질 것이다. 미래의 기업은 병원, 대학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같은 조직을 닮게 된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1988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에 게재한 논문 <새로운 조직의 태동> (The Coming of the New Organization)에서 내놓은 예측이다. 오케스트라가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자유롭게 흐르면서 자율적으로 결정해 나가는 조직이라고 본 것이다. 반면 보스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설립해 지휘하고 있는 벤 잰더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야말로 지상에 남은 마지막 전제주의의 요새이며 최악의 비즈니스 리더십 모델”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교향악 자체가 권위주의 내지 카리스마적 독재권력을 찬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음악가도 있다. 맞서는 두 견해 가운데 어느 쪽이 오케스트라란 조직의 특성과 지휘자의 역할을 더 잘 설명할까? 답을 찾기 전에 먼저 탁월한 지휘자들이 어떻게 구성원들을 움직여 아름다운 음악을 빚어냈는지 살펴보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1876~1957)는 “아름다움의 극치는 정확함에 있다”고 주장한 극도의 객관주의자였다. 그는 단원들에게 ‘폭군’처럼 군림하며 정확함을 강요했다. 이는 1919년 튜린에서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을 리허설 하는 동안 일어난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토스카니니는 한 제2 바이올린 주자의 냉담한 표현에 분개한 나머지 지휘봉으로 그의 활을 내리쳤다. 활이 튀어올라 그 주자의 눈을 쳤다. 그 뒤 벌어진 소송에서 토스카니니는 ‘엄청난 격분’의 발작을 ‘정상적 성격’으로 해석한 어느 교수 덕분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걸핏하면 지휘봉 꺾는 토스카니니 이탈리아인 중에서도 보기 드문 다혈질이었던 토스카니니는 걸핏하면 지휘봉을 꺾어버렸다. 그의 분노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에 비유될 만큼 뜨거웠다. 리허설 도중 어느 연주자가 부적당한 소리를 내거나 음악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이 화산이 폭발했다. “그것은 내가 여태껏 들어본 소리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고백이다. 악단은 토스카니니를 무서워했지만 속으론 존경하고 사랑했다. 토스카니니가 타계하자 그가 이끌었던 미국 NBC 심포니는 그와 운명을 함께 함으로써 그 마음을 표현했다. 일 년 동안 지휘자 없이 추모 연주를 한 뒤 해산한 것이다. 지휘자에게 오케스트라가 바칠 수 있는 존경 가운데 이보다 더한 걸 상상할 수 있을까. 폭군 토스카니니가 악단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최고의 경지를 위해 헌신했고 악단이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를 불같이 타오르게 한 원인은 당시 오케스트라가 놓여 있던 열악한 상황이었다. 토스카니니는 주어진 짧은 시간 내에 최상의 연주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리허설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었다.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도 고됐지만 그 자신은 더욱 힘이 들었다. 그의 격노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던 까닭이다. 토스카니니가 지휘했던 BBC 심포니의 비올라 수석이었던 버나드 쇼어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것은 뭔가 달랐다. 그는 연주자들을 독려했고, 생각을 새롭게 했다. 진부한 음악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났고, 리허설은 언제나 기대됐다. 모든 것이 지나칠 정도로 집중력이 있었고 생기가 넘쳤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데려갔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angler·1886~1954)는 20세기 전반 음악계에서 토스카니니와 나란히 떠있던 빛나는 별이었다. 푸르트뱅글러의 리더십은 토스카니니의 그것과는 반대편에 있다.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뱅글러의 스타일은 ‘엄정한 객관주의’와 ‘영감적 주정(主情)주의’로 대비된다. 세계적 메이저 레이블 텔덱(Teldec)에서 나온 <지휘의 예술> 이란 영상물을 보면 베를린 필의 원로 타악기 주자 베르너 테리헨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팀파니 앞에 앉아 있었어요. 연습 중에는 항상 악보에서 눈을 떼지 않았죠. 그런데 갑자기 우리 중에 누군가가 특별한 음색을 내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어느새 생기 있고 매력적인 음향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지휘대는 비어 있었어요. 동료들을 살펴보니 눈길이 홀 입구 쪽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막 홀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푸르트뱅글러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대원문화재단이 개최한 지휘자 캠프. |
종종 눈감고 지휘 즐긴 카라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1908~89)은 푸르트뱅글러의 판타지와 토스카니니의 정확함을 겸비한 명장이었다. 그래서 ‘독일의 토스카니니’나 ‘토스카라얀’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인간 심리에 통달했으며 교사 기질을 타고난 지휘자였다. 단원들은 그가 리허설 중에 말한 것뿐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매혹되곤 했다. 그는 리허설에서 결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리듬, 액센트, 음색의 변화가 자주 이뤄졌지만, 이는 그가 구체적으로 지적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수가 일어난 전후 맥락을 바로잡는 가운데 이뤄졌다. 지휘자 카라얀이 발휘한 리더십의 상당 부분은 감성적인 것이었다. 지휘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눈맞춤’을 통한 연주자와의 교감임에도 카라얀은 종종 눈을 감고 지휘하기를 즐겼다. 그는 “지휘 도중 눈을 감으면 음악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어서”라고 했지만, 실은 오케스트라를 집중시키기 위한 연기가 아니었을까.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은발을 날리며 지휘하는 카라얀의 절제된 몸짓과 표정에 연주자들과 청중 모두 최면처럼 빨려 들어갔으니 말이다. <보그> 의 기자는 그의 음악을 들을 때의 감동을 “올림푸스 산을 내려온 제우스 신을 만나는 님프가 된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카라얀은 오케스트라 지휘를 승마에 비유한 적이 있다. “기수가 장애물을 말 대신 넘어줄 순 없다. 기수가 할 일은 올바른 방향으로 정확한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그는 스피드와 스포츠를 즐겼다. <그라모폰> 의 칼럼니스트 로브 코원은 스포츠카 경주, 제트비행기 조종, 요트항해, 승마 등 카라얀이 좋아한 스포츠들은 ‘전진에 대한 깊은 열망’에 바탕을 둔 것들이라고 풀이했다. 음악적 재능과 인간적 매력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강점이 카라얀에게는 있었으니, 바로 사업적인 마인드였다. 그는 클래식 음악을 신기술에 접목해 클래식 음악산업 사상 최고의 성공을 거뒀다. 또한 각종 페스티벌과 아카데미, 레코딩 프로젝트 등을 기획하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이를 실행했다. 카라얀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를 휘어잡고 뜨거운 갈채를 받았고 사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그에겐 예찬자만큼 비판자도 많았다. 그들은 카라얀이 자기 현시욕에 가득 찬 나치 동조자였으며 클래식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 장사꾼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들 세 마에스트로가 보여준 것처럼 뛰어난 지휘자의 리더십은 대개 ‘특별한 강력함’을 갖추고 있다. 이는 오케스트라란 조직의 특성과 목표를 고려할 때 쉽게 이해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은 섬세하게 짜인 직물처럼 실 한 올만 빠져도 바로 티가 난다. 더구나 다른 조직과 달리 오케스트라의 구성원들은 ‘동시에’ 직물을 짜야 한다. 어느 한 구성원의 실수가 다른 구성원의 노력으로 메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은 고도로 기량을 전문화한 개인주의자들이다. 이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자제하면서 전체의 조화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게 지휘자의 역할이다. 매년 젊은 지휘자들의 리더십 트레이닝을 위한 지휘캠프를 개최하는 한국지휘자협회의 사무국장 송영규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절대적 리더십이 요청되는) 지휘자에게는 연습이란 것이 없습니다. 오케스트라 앞에 서는 순간 그는 ‘지휘자’일 뿐이죠. 수십 명의 단원들을 향해 ‘자, 이제 나를 위해서 한번만 연주해 주시겠어요?’하고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89년과 90년 카라얀과 번스타인이 차례로 세상을 뜨고 난 뒤 세계 음악계에는 영웅적인 마에스트로 시대의 종말이 선언됐다.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지휘자 신화> (The Maestro Myth)를 통해 ‘위대한 지휘자’는 과거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무분별한 권력과 부의 추구는 그들의 권위가 만들어질 수 있는 신비스러운 기반을 파괴했으며, 세 개 대륙에 기반을 두고 철새처럼 움직이는 마에스트로들은 더 이상 연주자들의 경외심이나 줄어드는 청중의 영적 갈망을 지배하지 못한다. (중략) 미래의 지휘자들은 문화 인식의 변방에 있는 훨씬 수수한 틈새 영역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기술적 변화로 인해 지휘자의 주관보다는 객관적인 연주가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오디오 세트가 들려주는 사운드가 극히 정밀해짐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지휘자의 강렬한 자기 주장보다는 균형과 정밀함이 우월한 가치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한때 ‘멋대로 템포’와 ‘맘대로 강약’을 즐겨 구사했던 로린 마젤이 60년대 기린아로 떠올랐다가 힘이 빠져버린 것이나, 역시 70년대 강렬한 자기 주장을 폈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웬만큼 순화된 것도 결국 시대의 흐름 탓이었을 것이다. 21세기 들어 세계 오케스트라와 지휘계의 구도는 ‘중원의 빅3’가 아니라 이전보다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리더십을 추구하는 음악가들이 겨루는 춘추전국시대다. 이들은 ‘마에스트로’란 타이틀을 해고하고 그 아우라를 과장해 추종하는 이들을 비웃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휘자 없이 수평 조직으로 운영되는 오케스트라가 주목받고 있다.
돌아온 음악의 제우스 카라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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