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식당서 밥 먹는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방문을 하루 앞둔 2월 20일 오후. 워싱턴 시내 한 호텔에 머물고 있던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FRB 통화정책국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는 김진일 박사의 호출이었다. “FRB 견학을 위해선 반드시 사전 신고가 필요합니다. 제게 e-메일로 박 기자 영문 이름과 회사명, 여권 번호를 적어 보내 주세요.” 미국 기자들도 자유롭게 들어가지 못한다는 미 경제의 사령탑 FRB. 방문을 앞두고 설레었다. 더구나 전 세계 언론은 지금 FRB 의장 벤 버냉키의 입을 주목하고 있지 않은가. 다음날 오전 10시30분. 워싱턴 시내 20번가와 21번가 사이, 미 국무부 근처에 있는 FRB 입구에 도착했다. 주변 거리는 한산했다. 워싱턴은 아예 연방직할지로 계획된 도시라 도심 전체가 한적하고 조용하다. 빌딩과 빌딩 사이 공간이 넓고 보안과 테러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뉴욕 같은 마천루도 없다. 성조기가 펄럭이는 흰색 건물의 FRB 인근은 나무들과 잔디가 넓게 깔려 있어 큰 정원을 연상케 했다. 건물 앞 작은 초소에 있던 흑인 여경에게 여권을 보여주자 금세 옆 방문객 출입구로 들어가라고 알려줬다. 한가한 평일 목요일 오전이라 방문객은 기자 혼자뿐이었다.
FRB는 미국연방준비제도(FRS·Federal Reserve System)는 1913년 12월에 도입됐다. 미국 통화정책, 은행·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과 규제, 금융체계 안전성 유지, 화폐발행 및 정부 여신 등을 맡고 있다.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12개 지역연방은행이 있다. 현재 의장 버냉키를 포함해 모두 7명의 이사(Governor, 14년 단임)가 있다. |
방문객 검색장은 마치 국제공항 출입국 심사를 연상케 할 정도로 엄격했다. 공항 심사와 똑같은 몸 수색이 이어졌다. 한쪽 데스크에 두 명의 경관이 앉아있고, 짐 검사를 하는 곳에 또 두 명의 경관이 서 있었다. 가져간 노트북과 가방, 웃옷을 벗어 컨베이어 벨트 검색대 위에 올려놨다. 그 과정을 통과하고 나서야 문 앞에서 김진일 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까다로운 출입 심사를 언급하자 김 박사는 “얼마 전 한국에서 장관급 인사가 왔는데 그때는 미국이 오렌지 경보가 내렸던 때라 허리띠까지 풀게 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출입할 때 미국의 국가 경보는 ‘yellow’였다. 그 나마 경보가 낮아져 간소해진 것이다. 1930년대 지어졌다는 건물 내부는 현대식 세련미보다는 중세의 고풍스러운 무게를 느끼게 했다. 군데군데 세워진 흰 대리석 기둥과 나선형 계단, 아주 밝지 않은 건물 조명이 무거운 분위기와 웅장함을 더했다. 복도 곳곳에 직원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 전시돼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로비 1층 3평 남짓 공간엔 아담하게 FRB 견학관이 꾸며져 있었다. 한쪽 벽면을 덮은 미국 지도 위로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등 12개 주요 도시의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표시가 돼 있었다. 한쪽 유리관 안엔 그날 새로 발행된 10달러짜리 화폐가 전시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 ▶버냉키 의장이 통화정책 회의를 주관하는 회의실 건물. 건물 2층에 있다. 부산대 학생들이 견학 중이다. | |
무엇보다 궁금한 건 버냉키 의장이었다. 버냉키가 7명의 이사들과 미국의 통화정책 회의를 주관하는 회의실은 건물 2층에 있었다. 출입문 입구 바닥에 ‘BOARD of GOVERNORS’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원형으로 박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역시 회의실 입구에서 경관이 출입자들을 통제했다. 김 박사 덕분에 회의실에 들어가볼 수 있었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문을 굳게 잠그고 버냉키가 회의를 주재했던 곳이다. 회의가 끝난 후 개방돼 볼 수 있었던 것. 긴 타원형 데스크 앞엔 의자마다 금색 철제 명패에 이름이 박혀 있었다. ‘MR. BERNANKE’라는 이름이 달린 의자는 타원형 중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버냉키는 이 의자에 앉아 1년에 여덟 번 통화정책 회의를 주관한다. 회의에서 나온 통화정책을 발표할 때까지 이 회의실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회의는 꼬박 이틀이 걸려 끝날 때도 있다고 한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이 회의실의 문은 안 열린다. 식사도 직접 이곳으로 배달해 온다. FRB의 철저한 독립성은 인사제도부터 보장되고 있다. 이사들의 임기는 행정부 수반보다 훨씬 긴 14년에 이르며, 이사들의 임기 만료일에 2년간의 시차를 둬 의장을 포함한 이사 전원을 대통령이 일시에 해고할 수 없도록 했다.
| ▶회의실 의자에 붙어 있는 버냉키 의장 명패. | |
18년 동안 미국 경제를 이끌어 온 ‘경제대통령’ 앨런 그린스펀에 이어 2006년 바통을 이어받은 벤 버냉키. 음악을 공부하다 뒤늦게 경제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도 없이 곧장 월가로 뛰어든 실무 경제통 그린스펀과 달리 버냉키는 정통 경제학자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등에서 교수 경력을 쌓았다. 금리인하보다는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 디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는 지론으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도 요즘 휘청거리는 서브프라임 충격에 잇따른 금리 인하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린스펀이 비서를 시켜 점심을 책상에서 해결하거나 손님들과 의장용 전용 식당을 애용했다면 버냉키는 손수 점심 식판을 들고 직원 식당에서 아무 테이블에나 앉아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린스펀보다 개방적이고 서민적이라는 평이다. 이런 서민적인 모습은 취임 직후부터 에상됐던 일이다. FRB 내부용 웹사이트에 ‘중고 미니 밴을 8000달러에 팝니다’라는 광고를 아무 스스럼없이 올려놨던 것. 버냉키의 고심이 깊어지면 더 이상 구내식당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FRB도 분석 어려운 시장상황” |
김명기 한국은행 워싱턴 지사 소장 “버냉키 의장이 잇따른 금리 인하 같은 적극적 정책을 펴고 있지만 상황이 심각한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FRB조차도 이젠 시장의 정확한 분석이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김명기 한국은행 워싱턴 지사 소장의 말이다. 지난해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해결책으로 버냉키 의장이 잇따라 금리를 인하했지만 후폭풍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몰라 답답하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김 소장은 “때때로 FRB 국장급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들은 항상 시장보다 경기를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워싱턴 한국은행 소장으로 왔다. 워싱턴 도심의 가장 큰 번화가인 K스트리트에 사무실을 두고 실시간 FRB 동태를 파악한 후 미국 경제 전망을 브리핑해 한국으로 송고한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인 FRB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버냉키 의장의 의회 증언, 금리 인하 움직임 등은 한국은행의 중요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매월 한 차례씩 사무실에서 한국인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브라운백(Braunbag) 세미나도 개최한다. 한국은행 사무실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FRB와 IMF,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들이 점심시간에 모여 미국 경제 현안에 대한 정보와 한국 경제 정보를 주고받는다. 김 소장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1월 한국은행 조사부 일반 경제과에 입행했다. 워싱턴에 오기 전에는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