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가게 주인의 ‘거대한 꿈’
지난 1월 26일 홍성은 레이니어 그룹 회장은 로버트 머피 미들랜드 오일&가스 회장과 함께 투르크메니스탄의 아슈하바트 공항에 내렸다. 한국의 지방 공항보다 허름한 이 공항에 미국 재계의 거물이 등장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동안 이 나라는 극단적인 쇄국정책을 펴며 서방 문물의 유입을 꺼렸다. 하지만 대통령이 바뀌면서 그런 기류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홍 회장과 머피 회장이 이날 방문한 것은 세계적 천연가스 보유국인 이 나라에서 인프라 개발과 유전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1월 30일 홍 회장은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을 만나 제1차 국책사업을 공동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1차 사업만 170억 달러 규모이고 2차 사업은 신공항, 고속도로, 학교 건설 등 더 규모가 크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계약서의 문구나 내용을 확정한 단계다. 이제 최종 사인만 남겨두고 있다. 이를 위해 4월 4일부터 실사단이 들어간다. 미국 측 파트너 쪽에서도 에너지 기업이나 컨설팅 회사들이 들어오고 한국에서도 석유공사, SK에너지, LG상사, SK텔레콤, LG데이콤 등이 참여한다. 계약이 확정되는 대로 우선 올 하반기부터 카스피해와 접해 있는 항구도시 투르크멘바시의 항만 현대화 사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어 200만t 규모의 시멘트 공장 건설과 8000km에 달하는 원유, 가스 송유관의 노후 부분 교체 및 유지 사업도 시작한다. 또 무선통신, 인터넷 인프라 건설과 증권거래소와 은행도 설립할 계획이다. 한마디로 낙후된 투르크메니스탄의 현대화 작업을 맡은 셈이다. 사업성은 충분할까? “공사비나 개발비는 일단 현물로 받기로 했습니다. 생산된 석유나 천연가스로 대금을 지급하면 저희는 그 자원을 해외에 팔아 현금화하는 것이죠.” 홍 회장은 이와 별도로 카스피해 연안 유전 가운데 ‘23·30·31 지구’ 개발권도 획득했다. 현재 이 유전의 총 매장량은 약 1억7000만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쪽(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매장량을 3억7000만 배럴까지 봐요. 1억7000만 배럴은 세계적인 원유매장량 평가회사의 수치입니다. 정말 보수적으로 잡아도 4000만 배럴은 될 것으로 봅니다.” 4000만 배럴이라고 쳐도 최근 유가(배럴당 90달러)로 계산하면 36억 달러(약 3조5000억원)의 거금이다. 30년간 이 유전 개발권을 가지게 되고, 수익배분은 정부와 50 대 50으로 정해졌다. 앞으로 유전과 관련된 홍 회장 측의 수입은 수억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홍성은이란 사람이 누구이기에 한 국가의 재개발 사업을 맡게 됐을까? 홍 회장은 현재 미국의 2개 지역은행 설립자(founder) 중 한 사람이고, 교민 은행을 포함해 4곳의 은행에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디트로이트, 시애틀, 버몬트에 각각 호텔을 운영하고 있으며 필라델피아 상수도 사업권자이기도 하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대각선 방향에 9층 짜리 레이니어 빌딩도 홍 회장 소유다. 호텔 개발 사업도 하고 있으며 타운하우스, 콘도미니엄 등 다양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홍 회장 자산은 5억 달러 내외로 추산된다. 부동산 개발 사업을 위주로 해 온 그가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낯선 땅에 뛰어든 것은 딕 그라소 전 뉴욕증권거래소(NYSE) 회장과 로버트 M 머피 전 NYSE 부회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몇 개 은행과 상장사의 주주이기도 한 그는 자연스럽게 NYSE 고위 관계자들과 친분이 생겼고 그중에 딕 그라소, 로버트 머피와 특히 친해졌다. 홍 회장은 5~6년 전부터 알게 된 이들을 통해 에너지 개발 사업에 관심을 가졌고 에너지 사업을 하고 있었던 그라소와 머피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이 과정에서 홍 회장과 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부동산 개발 경험이 있는 홍 회장의 경력과 미국 재계에 탄탄한 네트워크가 있는 그라소의 인맥이 합쳐진다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또 홍 회장의 모국인 한국의 다양한 산업 능력도 고려됐다. 그가 미국으로 처음 건너간 것은 1974년. “70년대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려워서 살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첫 직장은 버몬트에 있는 ‘델리퀸’이라는 작은 햄버거 가게였다. 은행이 담보로 잡고 있는 건물에 세 들어 시작한 햄버거 가게에서 그는 다른 이민 1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일했다.
74년 미국 건너가 월세 가게 세도 못 내고, 부도난 후 이자도 못 내던 건물은 홍 회장의 땀과 함께 임차료를 꼬박꼬박 내는 건물로 바뀌었다. 담보권자인 은행의 한 직원이 매일 햄버거 가게에 와서 점심을 먹던 중 홍 회장에게 제안을 한다. “이 건물 당신이 인수하시오.” 햄버거 가게에서 번 돈으로 아예 건물을 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에서 관리하던 또 다른 건물인 조그만 호텔도 인수제안이 왔다. “그때 아마 10만 달러 남짓 줬을 거예요. 워낙 경기가 안 좋았던 때라 싼값에 인수했죠.” 객실 49개를 갖춘 조그만 호텔인 ‘Bayview Inn’은 그렇게 홍 회장에게 왔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호텔은 버몬트시에서 같은 이름으로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적자투성이에다 흉가처럼 을씨년스럽던 호텔은 홍 회장 손을 거치면서 3개월 만에 흑자로 바뀌었다. “햄버거 가게에서는 손님 수와 후추, 케첩의 양까지 계산하는데 그에 비하면 호텔 경영은 너무 쉬웠다”는 게 홍 회장의 설명이다. 몇 년이 지나면서 그는 본격적인 사업확장에 나선다. 1992년 디트로이트 힐튼호텔은 자동차 산업의 몰락과 함께 매물로 나와 있었다. 바로 전해 7800만 달러를 들여 지은 최고급 현대식 호텔이었는데 호텔을 선뜻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홍 회장이 나섰다.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다. ‘미국 경기가 이 모양인데 무슨 호텔사업이냐?’ ‘자동차 산업은 한동안 다시 재기하기 힘들다’는 등 비관론 일색이었다. 하지만 홍 회장 판단은 달랐다. 경영만 잘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다. 규모는 작지만 이미 쓰러져 가는 호텔도 살린 적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가격은 호텔을 지은 가격의 10분의 1 이하였다. 하지만 힐튼 경영진은 냉담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인에게 호텔 업계의 자존심을 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홍 회장의 능력을 알아봤던 은행 측에서 장문의 추천서까지 쓰면서 보증해 줬다. 마침내 힐튼호텔을 인수한 그는 예의 그 솜씨를 보였다. “참 운이 좋은 게 그때 제 밑에 사업 감각이 뛰어난 지배인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호텔을 어떻게 살릴까 고민하다가 점심시간에 우리 셔틀버스 3대를 가지고 공항으로 계속 돌리는 거예요. 당시 디트로이트 공항 직원만 4만 명이 넘었는데 그 사람들 점심을 호텔로 유도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길을 들이는 거죠. 그게 무서운 겁니다.” 때마침 미국에도 국산품 애용운동인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붐이 불었다. 호텔이 다시 살아난 건 당연지사였다. 홍 회장의 오늘을 만든 또 다른 일화는 뉴욕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타미먼트 리조트(Tamiment Resort) 인수 건이다. 홍 회장은 이 리조트를 인수해 7년 만에 되팔아 무려 1억 달러 이상 이익을 얻었다. 독자적인 우편번호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동부에서 크고 유명한 이 리조트는 한때 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신혼여행지 중 하나였다. 면적만 약 11.5km2(약 350만 평에 38개 동의 콘도, 타운하우스 2200동, 하루 125만 갤런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 큰 휴양지)였다. 이 리조트를 미국의 유명 팝가수가 3억 달러를 들여 개발했다. 카지노까지 포함한 리조트를 계획했는데 주정부에서 허가가 나지 않아 실패하고 물러났다. 두 번째 다른 미국인이 인수했는데 그 역시 흐지부지됐다. 그때(1998년) 도전한 것이 홍 회장이다. 그는 단순히 리조트로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각도로 봤다. 우선 리조트를 인수하자마자 1500개 집터를 팔아 2000만 달러를 벌었다. 집터가 팔리면서 주변이 활성화됐다. 또 주변에 아트센터를 지어 기부했다. 그러자 리조트 주변으로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마침 이듬해부터 미국 경기가 되살아났다. 신경제라는 인터넷 붐이 닥치면서 자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운 좋게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카지노를 허가하겠다고 얘기하면서 리조트에 있는 호텔 값도 치솟았다. 결국 98년 1000만 달러에 인수한 리조트를 2005년 1억 달러에 팔았다. 홍 회장이 2005년에 그 리조트를 팔고 나서 지난해부터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저 운 좋은 사업가의 행운일까? “2005년 타미먼트 리조트를 정리하면서 몇몇 부동산 전문가와 변호사들이 저를 초청했어요. 질문은 이겁니다. ‘미스터 홍,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그래서 제가 ‘부동산 시장은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 이미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들이 난리가 난 거야. ‘무슨 소리냐, 지금처럼 좋은 적이 어디 있었느냐’고요.” 사실 2005년은 미국 부동산 가격이 정점에 이른 시기였다. 그는 어떻게 이런 조짐을 알았을까? “가장 가까운 유대인 부동산 사업가가 2005년 들어 ‘미스터 홍, 혹시 적당한 사람 있으면 부동산 꼭 팔라’고 하더군요.” 뉴욕에만 수백 개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 사업가들의 얘기니 귀담아듣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들은 당시 다른 주에 있는 부동산을 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홍 회장은 2005년부터 부동산 비중을 줄였다. 그가 보는 미국 부동산 시장은 어떨까? “작년 1월에는 2010년께 바닥을 칠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2012년 혹은 2015년까지 갈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앞으로 미국 은행 중 수백 개가 문 닫을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소유한 은행의 주식 가격도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가 투르크메니스탄에 투자하는 것도 미국 경기가 당분간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투르크메니스탄 인프라 개발은 이르면 올해부터 착공할 것이라고 했다. 유조선, 조선수리소 등 항만과 관련된 산업이 우선이라고 했다. 원유는 2년 안에 시추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5억 달러를 가지고 있는 그가 왜 아직도 일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나이는 62세다. “물론 놀고 먹을 수 있죠. 하지만 우리(이민 1세대)가 여기서 멈추면 1.5세, 2세는 더 빨리 멈추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멈출 수 없어요. 2세만 해도 미국식 사고방식 때문에 도전의식이 부족해요. 그런데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뚫어놔야 그 친구들이 주류사회에서 재능을 맘껏 펼치죠.” 미국 국적을 가졌지만 이런 생각은 여전히 한국인다운 사고방식이다. 한국적 사고 덕에 그는 지금 미술계에서도 꽤나 저명인사가 되어 있다. 그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 70점과 일제시대 조선의 2대 총독이었던 하세가와가 소유한 한국 문화재 105점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KBS에서 개최한 백남준 전과 지금 인천공항에 전시된 백남준의 작품인 ‘거북이’ 역시 그의 것이다. 백남준씨 작품은 오사카 박물관에 넘어가기 직전 그가 전량 구입한 것이고, 하세가와 소유 한국 문화재는 우리 문화재를 환수한다는 차원에서 전량 되산 것이다. “미술을 알고 산 게 아니에요. 그냥 우리 것이 일본에 간다니까…. 마침 호텔 팔고 돈도 좀 있었고….” 그렇게 무작정 산 미술품 가격이 지금은 다 서너 배 올랐다. 홍 회장은 광복 60주년인 올해 하세가와로부터 산 105점의 우리 문화재를 국내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누군가 계속 그와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바쁜 일정에 짜증을 내거나 만나는 사람을 소홀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 매번 공손하고 부드럽게 대했다.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걸 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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