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엽의 그림읽기] 물안개 피어나는 봄의 정취
[전준엽의 그림읽기] 물안개 피어나는 봄의 정취
![](/edaily/economist/resources/images/error/noimage.gif) | ▶산수화. 1796년. 종이에 수묵담채. 26×31.6cm. 경기도 용인시 호암미술관 소장. 보물 782호. | |
풍류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우리의 산천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오밀조밀한 선으로 다듬어진 많은 산이 빚어낸 경치는 지루하지 않고, 사계절 덕분에 다양한 색채의 풍경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자연이다. 조선 후기(18~19세기)를 살았던 화가들은 우리 경치를 자랑스럽게 여겼고 많은 작품으로 자부심을 담아냈다. 이런 그림을 ‘실경 산수화’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다니며 현장에서 보고 그리는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의 변화를 좇아 야외 사생을 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우리 선조 화가들은 단순히 경치의 겉모습만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풍경의 근본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진짜 경치를 그리려고 했던 이런 시도를 ‘진경 산수화’라고 한다. 풍경의 본모습인 진짜 경치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그냥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경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빼어난 경관은 물론 바람의 움직임, 숲이나 나무의 향기, 공기의 신선함과 온몸으로 전해오는 정취. 이처럼 오감으로 경치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풍경을 진짜로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그리는 것이 진경이다. 겸재 정선과 함께 진경 산수화의 거봉으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1745~1805)가 그린 ‘옥순봉도’다. 옥순봉은 단양 팔경에 속하는 명승지로 지금은 충주호 조성으로 반쯤 물에 잠겨버렸다. 1796년 이맘때를 그린 이 그림에는 봄의 정취가 촉촉하게 스며들어 있다. 봄의 따사로운 공기 속에 강에서 피어오른 물 기운이 병풍처럼 치켜선 옥순봉의 발치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봄 햇살에 녹은 물안개는 뒷산을 화면 깊숙이 밀어내며 공기원근법(근경은 진하게 원경은 흐리게 그려서 공간을 나타내는 서양화 기법) 효과를 보여준다. 옥순봉의 다섯 봉우리는 점진적으로 낮아지며 묘한 리듬감을 준다. 화면 중심에 그린 가장 높은 봉우리를 기준으로 양쪽의 산세가 같은 기울기를 이루며 화면 전체에 탄탄한 안정감을 준다. 이 그림은 옥순봉을 그냥 바라보는 식으로 그린 것이 아니다. 작가의 시점이 화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면 속에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옥순봉을 바라보는 위치는 그림 오른쪽 아래 배를 타고 있는 인물의 시점이다. 배에서 바라볼 때 가장 가까운 곳은 옥순봉의 오른쪽 아랫부분이다. 옅은 물안개 속에 언뜻 보이는 나무와 바위들은 선명하고도 꼼꼼하게 그려놓았다. 배에서 가장 가까운 봉우리도 짙은 먹선으로 강하게 나타냈다. 또 옥순봉의 깎아지른 절벽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큰 봉우리의 허리 부분을 흐리게, 머리와 발치 부분을 짙게 그려냈다. 이는 절벽의 높이와 수직 벽의 힘찬 느낌을 강조하려는 의도적 표현으로 보인다. 먹으로 산세와 사물의 윤곽을 그리고 옅은 채색을 입힌 수묵담채화의 전형적인 기법인데, 전체적으로 매우 부드러운 기운이 감돈다. 갈색 톤과 청색 톤의 은은한 대비는 봄의 느낌인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한 장치다. 선의 굵기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아 하나의 붓으로 현장 제작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붓의 단조로움이 봄의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데 효과적인 것 같다. 이러한 밋밋한 느낌을 먹의 진함과 옅음으로 극복하고 있다. 정선의 진경 산수화가 경치의 스펙터클(장관)한 느낌에 치중하고 있는 데 비해 김홍도는 경치를 마주했을 때의 섬세한 느낌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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