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독 “한판 붙자 NYT”
 | ▶머독 체제 아래에서 개편된 WSJ은 경제 뉴스 일변도에서 벗어나 정치, 국제, 스포츠 뉴스까지 다룬다. | |
미국 출판업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편집자 두 명이 수심 가득한 얼굴로 맨해튼 아메리카스 애버뉴 1211번지에 있는 한 고층 건물로 향했다. 석회석을 입힌 이 뉴스 코프 본사 건물에는 회사의 저격수를 자임하는 뉴욕 포스트와 폭스 뉴스 채널이 자리 잡고 있다. 루퍼트 머독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회사들이다. 머독은 세계 7개 대륙을 종횡무진하지 않을 때는 이곳의 8층 사무실에서 자신의 제국을 경영한다. 그의 사무실에는 후면에서 조명을 비추고 천장에서 바닥까지 벽면을 완전히 덮는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폭스 브로드캐스팅과 실리콘 밸리의 마이스페이스 본사, 영국의 B스카이B 위성TV 회사 등 그가 거느리는 수백 개 미디어 회사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편리하다. 머독이 손님을 맞이하는 식당에는 3개의 별실이 있으며 각각 머독이 소유한 신문, 영화, TV 세 미디어를 테마로 꾸며졌다. 이곳은 보안이 철저하기 때문에 머독을 찾아온 유명인사가 다음날 뉴욕 포스트 6면의 가십난에 등장할까봐 마음 졸일 필요가 없다. 방문의 성격을 감안할 때 3년 전 늦은 봄날 머독을 찾은 손님들에게는 비밀보장이 중요했다. 방문자는 타임사의 노먼 펄스타인 당시 편집장과 존 휴이 부편집장이었다. 목적은 다른 실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미디어 업계의 거물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타임은 자칫하면 이미지가 크게 실추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펄스타인과 휴이는 몇 달 전부터 타임지가 얽혀든 ‘플레임게이트’의 실타래를 풀어내려 애써 왔다. 플레임게이트는 백악관 보좌관들이 CIA의 비밀 요원인 발레리 플레임의 신원 정보를 언론에 흘린 스캔들을 말한다. 사건을 맡은 특별검사의 추궁으로 궁지에 몰린 타임지 편집자들은 여전히 법적인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었지만 또한 이제 남은 방법은 기자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선을 넘는 길뿐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바로 기자의 비밀 정보원을 공개하는 것이었다. 이번 경우에는 그 정보원이 우연찮게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I 루이스 (스쿠터) 리비였다. 그래서 자신들의 법적인 입장에 대한 지지를 얻으려고 머독을 찾아갔던 것이라고 펄스타인은 당시를 돌이켰다. 그들은 또 비밀 정보원을 공개하는 데 필요하다면 머독 휘하 매체의 기자들에게 제한적으로나마 지지를 부탁하려 했다고 휴이는 전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컨대 생쥐의 몸통에 자신들의 머리가 얹혀진 모습으로 뉴욕 포스트 1면에 실리기를 원치 않았다(그 정도로 맨해튼의 언론계 엘리트들에 대한 뉴욕 포스트의 영향력이 컸다). 머독은 망설임 없이 “좋다”고 말해 찾아간 편집자들을 놀라게 했다. 시간이 남자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모회사인 다우 존스의 경영난으로 화제가 넘어갔다. 1983~1991년 사이 WSJ의 편집국장을 지냈던 펄스타인이 ‘다우 존스, 소유주 일가 마침내 발을 빼나?’라는 제목의 최신 포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느냐고 머독에게 물었다. 소유주인 뱅크로프 일가가 ‘주당 60달러’에 회사를 매각하려 할지도 모른다고 오랜 재산관리인이 말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머독은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구미가 당기는 듯했다. “그 정도 가격이면 내가 WSJ을 인수해 버젓한 신문인 행세를 할 수 있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그의 두 눈은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을 자신이 편집한다는 생각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지난 4월 말 머독의 ‘정통 신문인 시대’가 막을 올렸다. 월요일(4월 21일) 아침, 호주에서 북미에 이르는 지역의 미디어 시장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인물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친 WSJ이 독자들에게 배달됐다. 머독의 지휘 아래 정치, 국제 뉴스, 문화, 스포츠 뉴스를 보강해 새로 탄생한 WSJ은 가장 권위 있는 언론사인 뉴욕 타임스(NYT)를 향한 공식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19세기 후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저널이 조셉 퓰리처의 뉴욕 월드에 도전장을 던진 이래 신문업계에서 이렇게 큰 거물들 간의 충돌은 없었다. 허스트가 퓰리처에게 덤벼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호주 언론인의 아들인 머독은 뉴미디어 시대라 해도 신문이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여론형성 매체라고 믿는다. 억만장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NYT를 인수하게 되면 싸움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뉴스위크 취재에 따르면 블룸버그의 고위 측근들이 과거 블룸버그 통신사를 경영했던 그에게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 싸움에서 머독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허스트 스타일 황색 저널리즘의 계승자라고 풍자되는 그는 작년 봄 주당 65달러씩 총 50억 달러에 다우 존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섰을 때 상당수 ‘권위지’에서 놀림감이 됐다. 정통성을 중시하는 언론인들은 그가 선정주의와 사리를 앞세우는 사설로 WSJ을 망칠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러나 WSJ의 브랜드를 훼손하는 행위는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은 머독도 잘 안다(그가 화염방사기라면 불태우는 것과 그을리는 것은 구분하는 듯하다). 새로운 WSJ은 예나 마찬가지로 품위 있고 절제되고 읽을 가치가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세계로 시각을 더 넓혀 전통적인 기업계 독자기반을 뛰어넘어 더 광범위한 독자에게 다가서려 한다는 점이다. 과연 그것이 WSJ 독자들이 원하는 걸까. 77세의 머독이 왜 이런 싸움을 시작하지 못해 안달이었는지는 그가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세 가지가 신문·권력·존경이라는 사실을 알면 금세 의문이 풀린다. 머독은 언론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22세 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호주의 아델라이드 뉴스로 언론 제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권력을 확보했다. 세 번째 존경은 뭐랄까,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존경뿐 아니라 반감과 시샘을 동시에 받기 때문이다. 머독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대 미디어 제국을 구축했다. 600억 달러 규모로 평가되는 이 미디어 그룹은 언젠가 그의 여섯 자녀에게 상속돼 둘째아들 제임스가 경영을 맡게 될 듯하다. 머독은 세계 지배의 야욕을 가진 마키아벨리 같은 야만인이라는 비판을 곧잘 받는다. 그래서 권위 있는 WSJ을 인수한 뒤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최고의 신문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그것도 따지고 보면 존경을 받는 한 방법이다. 머독으로서는 타이밍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뉴스 코프의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NYT가 휘청거리는 아주 취약한 시점에 공략에 나섰다. 웹사이트가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NYT는 다른 상당수의 구 매체와 마찬가지로 광고시장을 갈수록 인터넷에 잠식당하고 있다. 4월 중순 NYT의 모회사는 1분기 33만5000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NYT는 경제면에서 “NYT와 신문산업이 낸 최악의 분기 실적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이 회사의 밥줄인 광고가 11% 가까이 줄어 “역사상 가장 큰 폭의 감소”를 기록했다고도 썼다. 이 신문은 현재 100명의 인원감축을 목표로 명예퇴직을 실시하고 있으며 앞으로 몇 달, 심하면 몇 년간은 비용절감을 계속해야 할 듯하다. 반면 머독은 WSJ에 투자를 계속해 왔다. 워싱턴 지국의 인원을 보강하고 인쇄시설을 확충하고 고급 주간지 WSJ의 창간을 계획하고 있다. 이 주간지는 머독 소유의 타임스 오브 런던에서 일했던 영국인 티나 고두인이 편집을 맡았다. 머독은 당초부터 과거 점묘 기법의 흑백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명했던 WSJ의 지면을 대폭 개편할 의사는 없었다. 4월 말부터 시작된 일련의 편집과 디자인 개혁은 혁신이라기보다 진화에 가깝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볼 때 이번 개혁은 아마도 이 신문의 119년 역사상 과거의 어떤 변화보다 더 근본적인 변신을 의미한다. 사진도 기사와 함께 게재하기로 한 1980년대의 뒤늦은 결정, 2002년 WSJ을 상징하는 1면 디자인의 변경을 포함해서 말이다. 머독 체제에서는 정치와 국내·국제 뉴스가 그동안 신문의 본령을 이뤘던 경제기사만큼 자주 1면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초점을 다극화한 1면과 함께 A 섹션 전체를 사실상 종합 뉴스를 총집합한 지면으로 재단장했다. 두 번째 마켓플레이스 섹션은 4월 21일부터 미국 기업계 소식을 전하게 되며 세 번째 섹션 ‘머니 & 인베스팅’은 금융시장과 투자 뉴스의 마당으로 남는다. 문화 섹션은 올가을부터 주말판에 선보인다는 목표로 준비 중이며 주간 스포츠 면도 신설했다. 해박한 지식과 무게 있는 논조로 보수 이념을 옹호하기로 유명한 논설 섹션(사설 반대편의 칼럼)은 기존의 2면을 3면으로 늘린다. 머독은 다우 존스를 인수한 뒤 이 모든 일을 아랫사람에게 떠맡기지 않고 자기 시간의 절반을 신문 개편작업에 할애해 직접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요즘 WSJ 편집국에 정기적으로 얼굴을 들이밀어 긴장감을 유발한다. 부활절에 그의 말마따나 “모범을 보이려고” 불쑥 모습을 나타낸 이후 간부진은 일요일에도 그라운드 제로(9·11 테러 현장) 맞은 편의 WSJ 본사에 출근한다. “머독의 남다른 점은 대형 인수를 성사시킨 뒤엔 직접 경영현장에 뛰어들어 일을 독려하며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회사가 돌아가게 만들고 나서야 관리자들을 놓아준다는 것”이라고 머독의 고위 보좌관인 아서 시스킨드는 말했다. 머독은 올 초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다보스로 떠나기 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아버지 무릎 위에서 자랐다”고 회상했다. 정치 기자 출신으로 호주 언론 그룹을 이끌었던 아버지 키스 머독으로부터 아델라이드 뉴스를 물려받은 머독은 그 후 7년 동안 호주의 신문사와 방송사의 인수, 창업, 투자에 힘을 쏟았다. 그 다음엔 영국과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잉글랜드로 건너가 뉴스 오브 더 월드, 더 선, 더 타임스, 더 선데이 타임스를 사들였다. 1973년에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 땅에서 샌앤토니오 익스프레스 앤드 뉴스를 손에 넣었다. 그 후 몇 년에 걸쳐 수퍼마켓 타블로이드 더 내셔널 스타를 창간하고 뉴욕 포스트, 뉴욕 매거진, 더 빌리지 보이스, 더 보스턴 헤럴드, 더 시카고 선-타임스를 집어삼켰다(지금은 뉴욕 포스트만 소유한다). 머독은 이처럼 언론사를 하나 둘씩 인수하는 과정을 기성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겼다. 이런 생각은 이제 미디어 제국을 이끄는 그의 주요한 경영철학의 하나가 됐다. 지난 2월 그는 맨해튼의 한 극장에 뉴스 코프 인사 관리자 수십 명을 모아 놓고 굵고 때로는 알아듣기 힘든 호주 억양으로 그런 주문을 되풀이했다. “우리는 활자 매체의 계속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자원을 투자함으로써 현실에 도전하고 있다”고 그는 역설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신문 브랜드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 말을 마친 뒤 곧바로 회사의 다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떴다. 아주 성공적인 WSJ 웹사이트도 올가을을 목표로 디자인 개편을 준비 중이다. 쌍방향성을 강화하고 무료 열람 기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리고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기존에 CNBC와 맺은 계약이 만료되면 WSJ 기자들을 정기적으로 출연시킬 예정이다. 그는 WSJ 사업에 관해서는 아무리 작은 문제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챙기는 것 같다. 최근의 한 인터뷰 도중 현재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에 있는 인쇄 공장에서 피닉스까지 신문을 배달하는 데 트럭으로 7시간이나 걸린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WSJ의 제작과 배달체제를 보강하고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NYT와의 싸움은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미 지방 신문사들과 WSJ 인쇄 계약을 맺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되면 신문 배달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사 마감시간도 늦출 수 있다. 한편 WSJ에 정치관련 기사의 비중이 늘어날 듯하다. 머독의 관심은 대체로 “단 두 가지 주제, 정치와 미디어”에 국한돼 있다고 그의 딸 엘리자베스의 남편 매튜 프로이트는 말했다. 프로이트는 런던 PR 업계의 유력인사이며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후손이다. 언론의 먹잇감이 될 만한 방종한 정치인만 보면 머독의 아드레날린이 마구 용솟음친다. 지난 3월 엘리엇 스피처 당시 뉴욕 주지사가 고급 매춘부의 고객이었다는 뉴스는 타블로이드가 요리하기 더없이 좋은 은밀하고 선정적인 재료였다. 그런 따끈따끈한 소식을 접했을 때 그 거물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흥분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뉴욕타임스닷컴이 그 소식을 긴급뉴스로 내보낼 때 머독은 플로리다주 팜 비치에 있는 전용 공항의 격납고에서 고장난 제트기에 갇혀 있었다. 부인 웬디가 지켜보는 가운데 머독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전화 다이얼을 돌려 뉴욕 포스트의 콜 앨런 편집인과 폭스 뉴스의 로저 에일스 국장에게 주문을 퍼부었다. “믿기지 않았다”고 머독은 훗날 스피처의 추문에 관해 말했다. “당연히 전화를 걸어 ‘무엇을 아는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처리할 작정인가’ 물었다.” 머독은 그 순간에 너무 몰두해 WSJ에 그 기사가 어떻게 실릴지 가상 레이아웃을 스케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WJS의 편집자들에게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그는 WSJ을 타블로이드 신문처럼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 대변인이 말했다. 머독이 추구하는 정치 보도의 대표적인 사례는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운동본부를 뒤흔든 WSJ 4월 4일자 1면 기사다. 신문은 힐러리의 여론조사 담당자이자 수석 전략가인 마크 펜이 버슨-마스텔러 광고 겸 로비 업체 최고경영자의 자격으로 콜롬비아 정부 당국자들을 만나 힐러리 상원의원이 반대한 상호 무역협정의 승인을 추진하는 대가성으로 30만 달러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며칠 후 당황한 힐러리 선거 진영은 펜을 수석 전략가 자리에서 강등시켰다. “내 신문 중 하나가 그런 기사를 독점 보도하면 언제나 기쁘다”고 머독은 말했다. 올해 대선 경쟁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 요소 중 하나는 머독이 누구를 지지할지 그리고 허버트 후버 이래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WSJ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는 일이다(“아직 방침을 정하지 않았다”고 WSJ은 최근 머독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수주의 이념의 옹호자인 머독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하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들이 계속 긴장을 풀지 못하도록 압박하기를 즐긴다. 2006년에는 힐러리 상원의원을 위한 모금행사를 주최해 보수파와 진보파 진영을 모두 놀라게 했다. 그러나 올해의 수퍼 화요일(미국 대선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예비선거가 열리는 화요일) 며칠 전 또다른 반전이 일어났다. 뉴욕주 예비선거에서 머독의 뉴욕 포스트가 버락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을 지지했을 뿐 아니라 2006년의 모금행사를 고려할 때 이젠 머독과 가까운 관계라고 모두 가정했던 힐러리 상원의원을 비판했던 것이다. 머독은 왜 힐러리에게 등을 돌렸을까. 그 답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힐러리 상원의원은 뉴욕에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그는 최근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렇다고 대통령 업무도 잘한다는 뜻은 아니다.” 힐러리의 “꼼꼼하고 현안을 꿰뚫는 놀라운 능력”은 높이 사지만 “국가의 대형 현안에 관한 그녀의 의견 다수에 반대한다”고 머독은 말했다. 힐러리 상원의원이 미국을 마거릿 대처 이전의 영국 같은 “의존 사회”에 가깝게 만들까봐 걱정된다는 얘기다. 그는 마거릿 대처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정부가 너무 커서는 안 된다”고 머독은 말했다. 해석하자면 힐러리가 중도적인 노선을 표방하지만 자신에게는 여전히 너무 진보적이라는 의미다. 힐러리 진영은 그 견해를 반박한다. “무슨 증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힐러리의 전략가인 해럴드 아이크스는 지난 18일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녀가 제안하는 정책 중 무엇을 보고 그런 결론을 도출했는지 모르겠다.” 뉴욕 포스트의 오바마 지지 문제는 재미있는 대선 구도가 오래 지속되도록 하려는 머독의 계산된 포석이었던 듯하다. “나는 ‘흥미진진한 경주로 만들자’고 말했다.” 매일 벌어지게 될 NYT와의 경쟁에서 머독은 자신의 신생 폭스 뉴스와 과거 테드 터너 소유였던 중견 방송사 CNN 간에 12년간 지속된 대결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활용할 속셈인 듯하다. 머독은 “공정하고 균형 잡힌” 폭스를 진보 성향의 CNN에 대한 대안으로 선전했다. 그리고 WSJ의 보수 성향도 분명 NYT의 진보 색깔과 대칭을 이룬다. 그러나 WSJ 대(對) NYT의 전쟁은 머독 대 터너의 싸움처럼 사적인 감정싸움으로 번질 것 같지는 않다(머독은 조울증이 있는 터너를 가리켜 한번은 약 먹을 시간이 지났다고 비아냥댔고 터너는 머독을 보고 히틀러 같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머독은 NYT의 공동 회장인 아서 슐츠버거 2세와 친구는 아니지만 적대감도 없다고 말한다. 슐츠버거는 이 기사를 위한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적대적이진 않지만 두 사람의 감정이 격해진 건 분명하다. 머독은 여러 해 전부터 타블로이드 신문을 동원해 슐츠버거를 놀림감으로 만들었다. 뉴욕 포스트는 라이벌 NYT에서 일어난 나쁜 소식을 전하며 그와 함께 눈에 멍이 든 슐츠버거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는 ‘슐츠버거 미터기’난을 실었다. 머독이 다우 존스와의 인수 거래를 매듭지은 후인 작년 12월에는 WSJ까지 가세했다. 이 신문은 머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상업적’이고 ‘이념적’인 동기를 가졌다고 공격하면서, 머독이 WSJ을 자기 사업과 보수파의 정치적 이해를 위한 대변지로 만들려 한다는 세간의 우려를 부채질한다고 NYT를 비난했다. NYT는 다른 수많은 매체와 마찬가지로 머독이 개인의 사업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신의 언론 자산을 이용하려 한다고 비판해 왔다. 머독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한다. “나는 한 번도 결코 그런 적이 없다”고 그는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든지 그 증거를 대보라. 내 신문들은 폭스가 만든 영화들조차 좋게 평하지 않는다.” 머독 진영은 특히 NYT 1면에 연속해 실린 두 건의 심층보도 기사에 발끈했다. 머독의 공사(公私) 양면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역사를 자세하게 파헤친 기사였다. 머독은 또 인터넷 업계 거물 배리 딜러의 요트에서 다우존스 거래 성사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을 때 슐츠버거를 만났는데 곧 나올 자신에 관한 NYT 사설의 논조와 내용에 대해 그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머독의 주장에 따르면 슐츠버거가 다음날 신문에 그 사설이 실리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NYT를 펼쳐 본 머독은 기겁을 했다. 과거 머독이 자기 소유의 위성 TV 서비스인 스타 TV에서 BBC를 퇴출시켰던 일이 그동안 잊을 만하면 거론되곤 했는데 그 사설이 다시 들춰낸 것이다. BBC가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은 데 대한 보복으로 머독이 BBC 뉴스 서비스를 퇴출시켰다는 비난이었다. 당시 머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아시아 시장에 쉽게 진입할 요량으로 중국인들의 환심을 사려 애쓰고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머독은 BBC 뉴스를 축출한 것은 중국 기사 때문이 아니라 금전적인 이유였다는 예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머독은 당장 슐츠버거에게 편지 한 통을 써보냈다. 슐츠버거는 아직도 그 편지의 내용을 불쾌하게 여긴다. “존경하는 아서, 어젯밤에 만나서 반가웠소. … 내가 BBC를 내쫓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하느냔 말이오. … 이제부터 한판 붙읍시다!” 머독이 정말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많은 미디어 산업 분석가, 언론인, 방송통신 전문가들은 WSJ이 NYT의 산하 매체에 결코 커다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런 변화는 WSJ 브랜드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신문을 구식 버라이어티 쇼로 만드는(모든 걸 조금씩 다 하는) 게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다우 존스의 한 전임 고위 간부가 말했다.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신문업계 애널리스트 존 모턴에 따르면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한편으론 “머독 같은 사람과 맞서기에는 때가 아주 좋지 않다. 그는 특정 제품으로 돈을 버는 데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경고한다. 뉴욕 타임스 최고경영자 재닛 로빈슨은 지난 4월 중순 머독과 맞붙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애널리스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NYT는 지금까지 156년 동안 폭넓은 취재를 해 왔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신문의 광고유치와 기사작성에서 훨씬 더 앞서 있다. ” 사실 NYT는 머독이 도전장을 던지기 전부터 계속 어려움을 겪어 왔다. NYT의 시가총액은 27억 달러로 뉴스 코프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근년 들어 NYT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경영진에 비난이 쏟아졌다. 다른 많은 가족소유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슐츠버거 일가는 우선의결권주(supervoting shares)를 가진 가족 신탁을 통해 NYT를 소유한다. 일반 투자자들은 반수가 훨씬 넘는 제2군의 보통주를 소유하지만 의결권이 훨씬 적다. NYT는 이런 복수 주식군 구조로 지난 2년 동안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의 후원을 받는 헤지 펀드의 적극적인 인수 공세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후 또 다시 헤지 펀드 연합의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NYT의 기존 이사들을 쫓아내고 반대파 인사들을 선출해 내부로부터 극적인 변화를 강요하려 모색했다.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NYT는 주주의 지지를 얻으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대신 연합 측 대표 두 명을 이사로 받아들였다. NYT가 계속 악재에 시달리자 경영권이 다른 회사로 넘어간다는 소문이 난무한다. 이 같은 억측은 머독의 일방적인 다우존스 인수 시도가 성공한 후 더욱 부풀려졌다. 가족 소유 기업인 다우존스가 복수의 주식군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적대적인 인수 시도에도 끄떡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NYT와 다우존스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가족 구성원이 많고 불화가 잦은 뱅크로프트 가문은 아무도 회사 경영을 거들떠보지 않지만 자부심과 응집력이 강한 슐츠버거 일가는 실질적으로 NYT를 이끈다. 그래도 여전히 뉴스위크의 모회사인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 이사인 워런 버핏이나 구글 같은 이름들이 NYT를 구하는 백기사로 나설 것이라는 그럴듯한 소문이 떠돈다. 그러나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름은 블룸버그다. 포브스지는 그의 재산을 116억 달러로 추정한다(금융정보 대기업 블룸버그사의 보유 지분에 근거). 폴 스타이거 WSJ 편집국장은 지난 1월 은퇴를 알리는 고별 칼럼에서 우호적인 블룸버그-NYT의 합병 가능성을 점쳤다. 4월 중순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블룸버그 진영의 한 핵심 멤버는 블룸버그 시장의 충복과 최측근 보좌관들이 실제로 그 구상을 검토해 보도록 권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 소식통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평할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익명을 요구했다. 블룸버그는 대변인을 통해 논평을 거부했다. 그 소식통에 따르면 그 합병의 지지자들은 NYT를 사기업화해 무자비한 주주 공격의 여파로부터 “그 브랜드를 보호”하는 데는 그가 적임자라고 주장하며 블룸버그 시장의 ‘공민의식’에 호소하고 있다. “분명 NYT는 블룸버그가 보호할 수 있으며 그가 대단히 관심을 갖는 브랜드다. … 그리고 충분히 경쟁적인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고 그 소식통은 말했다. 일례로 머독은 블룸버그와 NYT의 궁합이 잘 맞는다고 여긴다. 블룸버그가 내년 말 뉴욕시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나라를 위한 공적인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으니 그러려면 NYT 소유가 큰 도움이 되리란 게 머독의 논리다. 그러나 블룸버그가 소유한 NYT와 경쟁하는 것은 그도 두려운가 보다. 머독은 “블룸버그의 사업능력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는 이유를 들어 “그와 맞붙고 싶지 않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머독은 WSJ 인수작업을 펼칠 동안 그 일만 마치면 은퇴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변 사람들에게 남겼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턱없이 빗나갔다. 거래가 성사된 다음날 아침 머독은 한 고위 측근에게 “다음에 추진할 거래를 정했다”고 말했다. 머독은 은퇴계획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마디로 일축한다. 부하 간부들도 그가 언젠가 물러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듯하다. “아버지는 삶에 대한 엄청난 의욕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그의 딸 엘리자베스는 말했다.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열정을 갖고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버지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머독은 젊음을 되찾았다. 30여 년 동안의 결혼생활에서 엘리자베스, 래클런, 제임스(모두 30대 중후반, 첫째 부인 사이에서 난 프루던스도 있다) 세 자녀를 낳은 후 1998년 세 번째로 결혼했다. 홍콩에 있는 머독 소유의 스타 TV 방송국 직원이었던 39세의 부인 웬디는 머독에 비해 40년 가까운 연하다. 그는 웬디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줬다고 말한다. 작년 12월 다우존스 거래의 체결을 축하하는 한 만찬장에서 “아내가 내게 어느 정도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고 말하는 머독의 옆에서 웬디가 다정한 모습으로 몸을 기댔다. “아내가 나를 젊게 만들고 자신의 젊은 친구들을 내게 소개시켜줬다. 그중 다수가 뉴욕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사람들이다.” 머독은 요즘 일을 마치면 캐주얼한 검은색 옷차림을 즐기는 편이다. 머리카락을 염색하러 미용실에도 자주 들르는 모양이다. “웬디가 머독에게 큰 힘이 되어 준다”고 그의 친구 딜러가 말했다. “부인도 똑같이 욕심이 많다. 남편과 자신 모두 삶을 충실하게 살기를 바란다. 아주 보기 좋은 모습이다.” 그런 충실한 삶에는 웬디와의 사이에서 생긴 다섯 살배기와 일곱 살배기 두 딸도 포함된다. 이 딸들의 상속자 지위를 비롯한 여러 문제 때문에 근년 들어 유산을 둘러싼 가족불화가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머독의 자녀 중 현재 유일하게 아버지 회사에서 근무하는 제임스가 나서 결국 그 내분을 해결했다. 그에 따라 작년 가족신탁에서 뉴스코프 주식과 현금이 각각 1억5000만 달러씩 머독의 자녀들에게 배분됐다. 제임스(35)는 작년 12월 승진해 뉴스 코프의 유럽과 아시아 사업을 넘겨받은 뒤 확실한 후보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머독이 WSJ과 자신의 제국을 이른 시일 안에 아들에게 넘겨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가 슐츠버거의 NYT에 도전하는 일에 너무 도취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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