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지혜 찾아 세월을 가로지르다

지혜 찾아 세월을 가로지르다

▶세계경영연구원에서 지난 5월 1일 열린 ‘인재경영의 7가지 딜레마’ 수업. 지식클럽 회원들이 인재 선발에 대해 토론 중이다.

“지식클럽에서 세계적인 경영 논문들의 핵심을 뽑아 설명하는 강의를 들었다. 세계화 시대를 읽는 넓은 시야를 갖는 데 도움이 됐고, 이런 안목이 실제 비즈니스에 신선한 아이디어로 연결된다.”(박진수 LG석유화학 사장) “그동안 ‘잭 웰치’류의 경영실용서나 강의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려 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다. 인문학 과정을 들으며 오히려 창조의 원천은 인문학이란 확신이 생겼고, 직원을 대상으로 인문학·예술 교육도 마련할 예정이다.”(백경호 우리CS자산운용 사장)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매주 두세 시간씩 빼놓지 않고 ‘강의실’을 찾고 있다. 지속가능 경영, 감성리더십, 창조경영, 지식경영 등 자고 나면 쏟아지는 신경영기법과 변화하는 리더십을 따라가기도 벅찬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다. 기업경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강의료도, 황금 같은 시간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서형 전 금호건설 사장에 따르면 주 5일제를 도입하기 전 금호그룹은 매주 토요일마다 전문가를 초빙해 계열사 CEO와 임원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열었다. 이 전 사장은 “최신 경영 흐름, 정세 변화와 관련한 강좌 외에 그림이나 음악 등 예술에 대한 강좌도 있었다”며 “인문학적 소양을 필요로 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업무에 대한 전문 지식은 실무자들이 훨씬 많이 알고 있지만 그런 유능하고 똑똑한 직원들을 이끌려면 리더는 그들보다 큰 틀에서 경영 철학을 세우고 통찰하는 역량이 필요하다”며 CEO들이 다양한 강좌를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국내에서 CEO를 대상으로 한 강좌가 처음 생긴 때는 30년 전으로 각 대학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하면서부터다. 10여 년 전부터는 전경련 부설 국제경영원이 설립되면서 CEO 대상 강좌가 사회기관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기업경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강좌가 주를 이루다 문학·역사·예술·인문학을 비롯한 와인·그림·음악·사진·음식평론 등으로 세분화되고 확장된 것은 불과 3년 전부터다. 감성경영, 창조경영이 21세기 화두로 떠오르자 지난해 6월 세종문화회관은 세종예술아카데미를 개관하고 점심·저녁강좌를 개설했다. 강의 내용은 고전음악·미술·씨네클래식·뮤지컬·오페라·살롱음악회로 예술 분야를 망라했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교육사업팀장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강좌를 듣는 CEO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세종문화회관 근처 회사의 CEO들이 점심강좌에까지 몰리고 있다. 임 팀장은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은 점심·저녁강좌에서 뮤지컬과 오페라를 듣고 있고 한주희 대림산업 사장은 살롱음악회에 참석 중”이라고 귀띔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세리CEO’는 2001년부터 회원 대상으로 온라인 강좌를 시작해 현재 370여 개의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콘텐트를 담당하는 김진혁 팀장은 “연구소가 돈 버는 곳은 아니니까 지식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하자는 취지에서 강좌를 만들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인기를 끄는 이색 강좌는 김정운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가 강의하는 ‘재미는 창조다’다. 최근 새롭게 개설돼 관심을 끄는 강좌로는 대자연의 생존법칙을 경영에 접목한 ‘세렝게티 생존경영’이 있다. 그 외 ‘대중문화읽기’ 역시 꾸준히 관심을 끌고 있는 강좌다. 이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조찬 세미나 ‘메디치21’은 3년 전부터 시작된 인문학 강좌로 지금까지 800명이 넘는 CEO가 참석했다.
부산에서 비행기 타고 출석
이 외에도 여러 전문기관에서 CEO를 대상으로 이색 강좌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음식평론, 펀 리더십, 비즈니스 스피치, 기업 위기관리, 비즈니스 코칭, 자비명상, 디자인과정, 공예아카데미과정, 혁신체험과정 등이 인기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 지역에 개설된 전문기관의 CEO 대상 강좌는 줄잡아 50여 개에 이른다. CEO 대상 강좌를 개설하는 사회 전문기관이 늘면서 대학 최고경영자과정도 변화하고 있다. 교수들이 강좌를 이끌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외부 기관과 손잡고 강좌를 개설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아웃소싱 방식으로 개설하는 강좌도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많은 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이 경영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수강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강좌들은 오랫동안 본질에서 벗어나 수강생들의 인맥 관리 통로로 이용돼 왔다. 또 대학들이 앞다퉈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하면서 수강생을 모으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최근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이런 크고 작은 CEO 대상 강좌가 쏟아지게 된 배경에는 경영환경의 급변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 전반에 글로벌 시대에 부응하는 지식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면서 ‘경영’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CEO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산업이 갈수록 세분화되고 신기업경영 기법, 신기술 개발 등 기업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CEO도 평생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4년 전 ‘CEO를 위한 비즈니스 코칭’ 강좌를 개설한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강좌를 수강한 사람은 600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사회 지도층과 기업 임원을 뺀 CEO가 절반을 차지한다. 고 대표는 “CEO들이 코칭 스킬을 배우러 오는 이유는 더 이상 과거의 방식이 직원들을 이끄는 데 유효하지 않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과거에 CEO는 상명하달식 지시와 명령에 익숙했지만 요즘은 리더가 부하직원을 잘 키워야 하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리더십 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인문대학은 지난 3월 2기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AFP) 수강생을 뽑는데 40명 정원에 300여 명이 몰려 정원을 늘려야 했다. 이강재 인문대학 기획실장은 “지난해 진행한 1기 강좌의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당시 수강생 수십 명이 고전을 읽는 모임을 만들어 수료 후에도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열기를 전했다. 세분화, 전문화, 다각화를 거쳐 21세기 기업경영에 필요한 강좌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그동안 강좌에 낀 거품도 서서히 걷히고 있다. 각종 강좌를 개설하는 전문기관 중에서 단순히 인맥 만들기로 강좌가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업이 끝난 뒤 저녁모임을 금지하거나 수강생들 사이에 회비를 못 걷게 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또 친목 도모를 핑계로 해외골프 여행 등 ‘염불보다 잿밥’에 열을 올리는 강좌가 되지 않게 하려고 불필요한 행사를 생략하는 기관도 늘고 있다. 무엇보다 수강생 모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형식적이거나 허술한 강좌는 빠르게 도태되는 분위기다. 대신 관심과 인기를 끄는 강좌를 듣는 수강생들은 대체로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세계경영연구원 ‘지식클럽’을 통해 최신 경영 트렌드를 익히고 있는 황영순 보스산업 대표는 회사가 부산에 있는 탓에 매주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오가며 강의를 듣는다. 황 대표는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경영자가 똑똑해지기를 원하고 있다”며 “교육비보다 비싼 비행기를 타고 강의를 들으러 다니지만 아깝지 않다”고 흡족해 했다. ‘협상&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이수한 김성균 남광토건 부회장은 1년을 끌어온 골치 아픈 문제를 강좌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말끔히 해결했다. 김 부회장은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로부터 추가 공사비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받지 못해 애를 태우다 회장과 직접 담판을 짓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배운 협상기술과 지식을 활용해 미수금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며 “그뿐만 아니라 상호 간 신뢰가 쌓이는 등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성과를 소개했다.
협상 강좌 듣고 수억원 벌기도
한국코칭센터 ‘CEO 대상 비즈니스 코칭’ 과정을 이수한 양재하 동양기전 대표는 “코칭 강좌에서 배운 대로 임직원들에게 실시해본 결과 측량할 수는 없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봤다”며 “고객사로부터 혁신적인 품질개선에 대해 칭찬받는 등 회사에 획기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과 세계미식문화연구원이 함께 마련한 음식평론 CEO 과정은 올해 초 5기 과정을 끝냈다. 업무 개선을 목표로 음식평론 강좌를 들은 하원만 현대백화점 고문은 “음식과 식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열정, 선진 식문화를 익히고 체험할 수 있는 장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경영연구원이 지난 3년간 ‘협상스쿨’ 강좌를 들은 CEO 434명 중 2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6%가 “업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협상을 통해 실질적으로 10억원 이상 이익을 냈다”고 대답한 사람도 5%를 차지했고, “수억원의 이익을 냈다”는 응답자는 22%에 달했다. 수많은 강좌가 사회 곳곳에서 진행 중이지만 CEO들은 더욱더 다양한 강좌를 원하고 있다. 세계경영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금융 관련 지식, 인문학 강의, 인사 전략, 고객만족 향상 사례 등을 향후 더 배우고 싶은 분야로 꼽았다. ‘위기관리’ 강좌를 들은 CEO 27명은 ‘향후 기업 경영 및 개인 발전을 위해 더 받고 싶은 교육 분야’를 묻는 질문에 변화관리, 디자인 접목 경영, 신사업 발굴, 우리 역사의 숨겨진 이야기 등을 꼽았다.


전성철 IGM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의 진단


감성적 창조성이 경쟁력의 핵심
21세기는 지식이 국민 경제를 좌우하는 시대다. 지식사회는 돈과 기술이 넘치면 나타나는 사회다. 과거에는 기업의 3대 생산요소인 자금·기술·사람이 모두 귀했다. 그래서 그중 한 가지만 다른 기업보다 비교우위에 있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금과 기술은 과거에 비해 흔해졌다. 예를 들어 기술의 경우 과거 일본에서 들여오지 않으면 안 됐지만 지금은 유럽, 미국 등에서도 기술이 유입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투자자금은 국경을 넘어 이동 중이다. 이 때문에 지금은 세 가지 생산요소를 잘 결합하는 기술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됐는데, 이 기술이 바로 지식이다. 사람을 누가 더 잘 활용하느냐, 창조성과 열정을 갖게 하느냐, 훌륭한 인재를 어떻게 유치하느냐 하는 문제들이 중요해졌다. 다시 말해 생산요소 활용기술이 바로 지식이며 이것 없이는 경쟁에서 우위를 지킬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거에는 비즈니스에서 인간관계가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가 투명해지고 온라인화로 감시기능이 커졌다. 따라서 경영에서 연줄이나 인간관계보다는 더 낮은 가격, 높은 품질이 경쟁력이 됐다. 이것을 가 능케 하는 것이 바로 지식이고 여기서 새로운 지식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배경으로 CEO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강좌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다양한 프로그램의 강좌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창조성이 중시되는 감성의 시대기 때문이다. 감성과 문화를 가진 기업,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제품이 중요해졌다. 이제 창조성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된 것이다. 따라서 CEO들은 경영 본질을 배우면서 보조적인 문화, 역사, 예술, 인문학 등의 강좌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영공부를 따라잡느라 지루해진 CEO들을 위한 틈새시장에 그들의 탈출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신선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강좌들이 파고들었다. 그로 인해 수요에 맞춘 공급, 다시 말해 다양한 프로그램의 강좌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무슨 강의 들을까?

◇IGM세계경영연구원 -지식클럽(세계적 경영저널과 저서 통한 최신 경영트렌드 학습 북클럽)-박진수 LG화학 사장, 신동원 농심 부회장, 신영주 한라공조 대표, 이경하 중외제약 대표, 민형동 현대백화점 사장 -NCP(협상&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최고경영자 과정. 협상과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실전 모의 훈련)-송자 대교 회장, 강석희 CJ미디어 대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조영주 KTF 사장, 김성균 남광토건 부회장, 배영호 코오롱 사장 -IGMP(세계 경영트렌드, 선진 경영지식 전수와 한국 전통문화 탐방)-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이상윤 농심 대표, 김진환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아카데미 -정오 강좌(클래식, 미술산책, 씨네클래식, 뮤지컬)·저녁강좌(오페라하우스, 살롱음악회)-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 한주희 대림산업 사장, 이영두 그린화재 회장

◇한국코칭센터 -CEO를 위한 비즈니스 코칭(코칭 스킬과 코치형 리더 훈련)-김근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신윤식 하나로드림 회장, 김정원 듀폰 부사장, 박은주 김영사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세계미식문화연구원 -음식평론CEO과정(음식평론의 이론과 실제, 세계 음식문화 체험)-오명 건국대 총장, 박효남 밀레니엄서울힐튼 총주방장, 남기령 한국로얄코펜하겐 대표

◇서울대 인문대학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세계 문화·역사·철학 등 인문학적 지식 통한 창조정신 고양)-김인철 LG생명과학 사장,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 주장건 세종서적 회장, 백경호 우리CS자산운용 사장

◇건국대·HS펀리더십센터 -펀 리더십과정(웃음을 통한 긍정, 자신감, 변화 유도)-17대 국회의원 임종인, 박종하 한일전자 대표, 김태욱 안산시새마을지회 회장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2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3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4"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5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6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7가상세계 속 시간을 탐구하다

8고령화·저출산 지속되면 "2045년 정부부채, GDP 규모 추월"

9해외서 인기 폭발 'K라면'…수출 '월 1억달러' 첫 돌파

실시간 뉴스

1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2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3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4"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5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