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말라 ‘독약이라도 마시자’
돈줄 말라 ‘독약이라도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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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수출 실적이 전국 수위권을 놓치지 않아왔던 저장(浙江)성. 저장성은 중국 내에서도 상술이 뛰어나기로 이름난 원저우(溫州) 상인이 버티고 있는 전통적인 비즈니스 중심지다. 그러나 올 상반기 들어서는 두 번이나 월 수출신장률이 전국 평균을 밑도는 실망스러운 실적을 보였다. 급기야 지난 7월 3일 뤼쭈산(呂祖善) 저장성장은 비통한 목소리로 최근 저장성 경제가 맥을 못 추고 있으며 지난해 하반기 이래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고백했다.
최근 원저우 기업 경영실태 조사에 의하면 전체 30만 제조업체 중 20% 정도가 공장가동을 중단했거나 단축하고 있으며, 무려 4만 개 이상의 기업이 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공무역을 위주로 먹고 사는 광둥성 역시 올 들어 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시행 중인 강력한 긴축정책은 위안화 평가절상, 급등하는 원자재 가격, 인건비 상승,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해외시장 수요 감소 등의 요인과 복합적으로 작용, 경제성장 동력이 급격하게 약화되고 있다. 재계 인사들은 산업구조 고도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긴축정책의 강도와 범위에 대해서는 너무 심하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최근 인플레 우려가 심화하면서 금융기관의 대출규제가 더욱 강화되자 설상가상으로 자금난까지 겹치고 있다. 은행권 자금차입이 막히자 별수 없이 민간 고리대금업자에게 손을 벌리는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저장성 일대 민간 고리대금업자 입장에서 보면 요즘이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부의 단속과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한 대금 회수 불안감으로 그들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은 실정이다.
중국 경제가 호황이고 기업들이 잘나갈 때야 이러한 돈줄은 ‘보약’이겠지만, 요즘처럼 강도 높은 긴축정책이 시행되는 시기에 고금리의 급전은 위기기업에 ‘독약’이 되고 있다. 실제 저장성의 대표적 민간기업인 진우그룹, 난왕그룹, 인타이부동산 등이 추풍낙엽처럼 하루아침에 쓰러진 것도 민간에게 빌려 쓴 거액의 고리대금 상환부담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리대금을 놓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고사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것일 뿐이다.” 4~5년간 고리대금업에 종사하고 있는 민간 대출업자 M씨는 기자와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지난 7월 22일 저녁 저장성 창난현의 고급 호텔 커피숍 가장 은밀한 구석에서 기자와 만난 가운데 M씨는 “이곳에서 주로 사업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입고 있는 티셔츠는 오래되어 낡은 흔적이 역력하고 구두 앞부분도 해져 있었다. 옷차림만 보고서는 그가 무려 5000만 위안(약 80억원)의 자기 자금을 주무르는 민간 대출업자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저장성 유명기업에 대한 1억 위안 넘는 대규모 자금부터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몇 십만 위안의 급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관여하고 있는 그는 최근 친구에게 1000만 위안 규모의 7일 만기 단기자금을 융통해 주었다.
“만약 자기 돈을 융통해 준다면 최소한 원금은 보장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돈까지 합할 경우에는 200%의 원리금 회수가 담보되어야 한다”고 M씨는 말했다. 이러한 엄격한 리스크 관리는 민간 상업은행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것이다. M씨가 제공하는 대출 방식은 보통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닭을 빌려 알을 낳는 방식’, 즉 수요자에게 급전을 빌려주고 이익을 챙기는 것이고, 둘째는 어음할인 방식, 셋째는 기업의 기존 대출금 청산 이후 2차 자금을 대출받는 중간에 필요한 단기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모두 속전속결형으로 끝낸다. 자금 회수의 안전성을 고려해 일반적으로 대출기간은 10일을 넘지 않는다. 그가 받는 이자는 월 6% 수준이다. 이는 은행 대출금리보다는 훨씬 높지만 현재 민간 고리대금 업계에서 통용되는 금리와 비교해서는 크게 높은 것은 아니다. 자금 회수 리스크가 클 경우에는 월 금리가 15%에 달한다. M씨 역시 아무리 기업이 어려워도 이렇게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 장기간 사채를 쓰기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넘쳐나는 고리대금업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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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곳에서는 막대한 민간자본이 담보기관, 투자기업, 전당포 등 각종 경로를 통해 금융 대출금 형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회색’ 자금은 겉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비중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긴축정책이 시행된 이후 지난 1년 동안 이러한 지하금융은 때로는 기업의 고사(枯死)를 막는 ‘링거액’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사약’이 되기도 했다.
지난 7월 13일 저장성 정부는 은행감독위원회, 중앙은행과 공동으로 ‘소액자금 대부회사 시범운영에 대한 지도 의견’을 발표하고, 111개 소액자금 대부회사의 시험영업을 개방하는 한편, 민간자본이 자기 보유자금을 이용해 대출업무를 하는 것을 허가했다. 저장성 정부는 시범운영 회사의 등록 자본금 상한선을 2억 위안으로 규정하고, 오로지 자기 자금으로만 대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전체 대출금 중 70%는 단일 대출 건별 금액이 50만 위안을 초과할 수 없도록 했으며, 나머지 30%는 대출 규모가 자본금의 5%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또한 대출금리 역시 사법부 규정에 부합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상한선을 폐지했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기존의 많은 회색금융 회사는 합법적으로 대부업무에 종사할 수 있게 됐다며 상당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화이(華儀)전기, 정타이(正泰) 등 저장성 소재 유명한 민간기업조차 적극적으로 대부회사 신청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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