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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급급매물 '아파트 잔치' 끝났다

쏟아지는 급급매물 '아파트 잔치' 끝났다

이코노미스트는 2005년 8월과 2006년 2월, ‘부동산 버블 논쟁’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그때까지만 해도 치솟는 아파트 값을 두고 거품 논쟁이 팽팽했다. 이후 집값은 한 차례 더 폭등했다. 하지만 이제 논쟁은 끝난 듯하다. 아직까지 “강남 아파트 값은 거품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부동산학자가 있지만 극히 일부다. 관심은 ‘거품이 언제, 어떤 속도와 어느 크기로 빠질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버블 붕괴 직전’이거나 ‘이미 진입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국내외 버블 붕괴 징후를 심층 진단했다.



#1

“아파트 사려는 사람이 없어요”


“지난해 초부터 심상치 않더니, 요즘은 아예 거래가 안 된다.”

서울 강남, 경기 분당·용인 지역 부동산중개업소의 공통된 반응이다. ‘가격이 정체되거나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거래는 끊기는’ 전형적인 버블 붕괴 전 단계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도 부동산 폭락 전 1년 6개월~2년 정도 우리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일각에선 이를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래 실종은 전국적이다. 버블세븐 지역은 물론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이상급등을 보였던 강북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지역도 요즘은 매물만 쌓인 채 거래가 뚝 끊긴 모습이다. 국민은행이 전국 2665개 부동산 중개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거래가 한산하다고 답한 비율이 91.6%였다. 서울의 경우 강남이 98%, 강북은 97.8%였다.

거래는 없는데 급매물은 넘쳐난다. 잠실 지역에서 10년째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업소가 붙여놓은 급매 가격을 다 믿으면 안 된다”며 “진짜 급매는 훨씬 싸게 나와 있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아파트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고 “진짜 급급매는 지난해 말보다 25% 이상 싼 것도 있다”고 밝혔다.



#2

심리적 저항선 무너지고 있다

송파구 3조3000억원, 용인 2조9000억원, 분당 2조3000억원, 강남 2조원, 목동 6500억원. 올 들어 지난 9월 말까지 사라진 집값 시가총액(부동산뱅크 조사)이다. 버블세븐 지역에서만 12조원이 증발했다. 강남 재건축단지에서 점화된 아파트 값 하락세가 서울 강북은 물론 경부 라인을 따라 번지고 있다.

심리적 저항선도 무너지고 있다. 강남 불패의 상징 은마아파트의 경우 77㎡가 최근 8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주민들이 “안 팔면 안 팔았지”라며 심리적인 저항선으로 여겼던 9억대가 깨졌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12단지의 경우 89㎡형 급매물이 5억원 밑으로 나왔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호가가 6억5000만원 하던 곳이다.

개포 주공 1단지 42㎡는 올 초 8억원대 초반에 매매됐지만 여름 이후 거래가 실종되더니, 최근 7억원대 밑으로 매물이 나오고 있다. 분당 양지마을 108㎡도 지난해 말 기준 1억원이 더 내려가, 6억원대 저항선이 뚫렸다. 분당 수내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5억9000만원에 나온 매물도 찾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도 마찬가지다. 올해 강북 소형 아파트 값 상승세를 이끌었던 노원·도봉·강북도 거래가 실종된 채, 최근 1~2개월 사이 시세보다 2000만~3000만원 싼 매물이 나와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버블세븐 일부 지역의 경우 호가 기준으로 최고점 대비 20% 이상 빠진 곳이 있지만, 2005년 8·31 부동산대책 직후를 기준으로 하면 여전히 20~30% 정도 높은 가격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거래가 실종된 상태에서 급매물로 싸게 팔린 아파트 가격이 바로 시세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평균 시세보다 5000만~1억원씩 싸게 매물이 나오면 그 동네 주민들이 가만 있지 않았다.
미분양 넘치는데, 정부는 아파트 공급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3

미분양 속출에 신도시 물량까지 가세

미국과 일본은 ‘부동산 불패 심리’가 이끌고, 저금리가 뒤를 받쳐주면서 주택 공급이 급증했고, 결국 집값 폭락의 원인이 됐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1만8000가구 입주가 일시에 몰리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한 잠실 재건축단지는 과잉공급 결과를 잘 보여준다. 지방 미분양 아파트 속출도 마찬가지다.

잠실의 경우 일시적 현상이라 치더라도, 지방은 2006년 아파트 잠재 공급과잉이 60만 호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급등했던 지난 7년간 지방은 조용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문제는 앞으로다. 수도권마저 아파트가 초과 공급됐다는 인식(올해 수도권 29개 분양 아파트 가운데 순위 내 청약이 마감된 곳은 세 곳뿐이다)이 퍼지는 마당에, 올해 말부터 향후 3~4년간 50만 가구가 공급된다.

공급원은 2기 신도시다. 2010년까지 공급될 가구만 해도 광교 3만, 동탄 15만, 송파 4만 등 30만 가구에 달한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가 지난 9월 19일 서울 근교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까지 향후 10년간 30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2기 신도시 매력이 급감해 자칫 공동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기존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대출받은 ‘처분조건부 대출’ 물량이 7만여 건에 달하는 점도 부담이다. 특히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이 2만여 건인데, 부동산 거래가 실종되면서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처분 시한 1년 연기를 검토한다지만, 만기 안에 주택을 팔지 못하면 대출자는 20%의 연체이자를 은행에 내야 하고, 3개월 지나면 경매 절차를 밟게 된다. 헐값에라도 팔거나 경매시장 쪽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4

빚으로 장만한 집이 위험하다

지난 10월 8일 신한은행은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3%포인트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한 주 전에 고정 대출금리가 10%대에 도달하면서 심리적 마지노 선을 돌파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자 전격적으로 인하를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반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대부분 10% 언저리까지 치솟았다. 5개월 만에 2%포인트나 뛴 수치다.

주택담보대출의 93% 정도를 차지하는 변동형 대출금리도 급등해 현재 8% 초반대다. 지난 7년간 가계부채는 300조원 이상 증가했고, 9월 말 현재 집을 담보로 가계가 빌린 돈이 307조원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엄격했기 때문에 가계발 금융부실에 따른 부동산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가처분소득 축소 등으로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가처분소득 대비 국내 개인부채 비율은 미국에 비해 높고, 금리상승 요인이 많아 가계 금융위험 부담은 큰 상태다.



#5

미분양이 몰고 올 건설사 연쇄 부도

미분양 사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알려진 미분양 주택은 16만 호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25만~30만 호 정도로 보는 게 정설이다. 최근에는 분양가보다 매매가가 낮은 속칭 ‘깡통 아파트’도 출현했다. 지난 8월 말 입주를 시작한 강동구 K아파트의 경우 109㎡형 시세가 3억9000만원 선으로 분양가보다 1000만원 정도 내린 상태다. 잠실, 서초 등에도 이런 아파트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분양해약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시세가 폭락하면서 분양가보다 싸지자, 계약자들이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분양을 해약하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준공 후 미분양’이다. 시공사에는 부도수표와 같은 준공 후 미분양 건이 전국 4만여 채에 가깝고,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입주 예정 아파트는 25만 호가 넘는다.

이들 물량 중 미분양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경우 건설사들은 분양가의 70% 수준에서 처분하는 ‘땡 처리’를 시도하고, 주변 시세에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건설업 경기는 연쇄도산을 우려할 만큼 악화돼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건설업 자금사정은 2003년 9월 이래 최악이다.

올 1~8월 종합·전문건설업체 중 250개가 도산했다. 국내 건설업체는 약 5만8000개. 종사하는 인원만 185만 명이고, 건설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 남짓이다. 건설사 연쇄도산은 아파트 시장 경착륙으로 이어진다.



#6

거품 빠져야 할 타이밍 놓쳤다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자 ‘10년 주기설’도 재등장했다. 1970년, 80년대 말과 2001~2006년 부동산 폭등이 있은 후 찾아온 침체가 모두 10년 주기로 반복됐다는 것이다.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에 사이클은 없다”고 하지만,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7년 이상 상승 추세였던 기간에도 상승기와 하강기가 두 차례씩 반복됐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부동산 경기에 대한 진단(9·24)’이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부동산 경기 위축은 그동안 과열되었던 경기가 순환적 측면에서 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2006년 집값 폭등 때 잔뜩 끼었던 거품이 정부의 부동산 부양정책과 투기 바람이 불면서 오히려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된다면 훨씬 고통스러운 하락장을 지켜봐야 한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16개국의 30년간 자산 가격변화를 분석한 IMF 연구자료에 따르면 10이 올랐다면 9 정도가 다시 떨어진다”고 밝혔다. 신영증권은 지난 8월 ‘부동산 불패 신화는 깨지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의 22.8%가 거품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달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와 윤형호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재정학회 학회지를 통해 “2001년 이후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등 ‘강남 4구’의 아파트 값 상승분 중 최대 70%가 거품”이라고 주장했다. 거품 붕괴의 크기가 거품의 크기에 비례한다면, 서울과 수도권 집값은 앞으로 더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7

집값 버블 붕괴는 세계적인 현상

2000년대 들어 부동산 가격 상승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었다. 미국, 유럽, 중국,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 부동산이 ‘잔치’를 벌였다. 세계 경제호황의 끝물이었음에도, 넘치는 달러가 각국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부동산 투자를 부추겼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저금리 기조가 집값 거품을 일으키는 이유가 됐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세계 각국의 집값이 동시 다발로 하락하고 있다. 미국은 2006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일본, 중국, 홍콩,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에서 거래는 끊기고 집값이 하락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000년 이후 급격한 상승에 이어 최근의 하락세까지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이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형 건설업체나 부동산회사가 파산하고 주택담보대출 부실 우려가 커지는 등 위기의 징후도 비슷하다.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해외자금 조달비용이 오르면, 금리가 오르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인상되면서 부동산 심리 위축은 심해진다. 세계 각국의 부동산 시장이 국제 금융 시장과 복잡하게 연계돼 있는 마당에 한국만 예외일 수는 없다.



#8

현금 비중 늘리는 부자들 움직임

고급 정보에 밝은 부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시중은행 강남지점의 한 PB는 “발빠른 고객들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아파트나 수익형 부동산을 처분해 왔다”며 “최근에는 양도세나 종부세 때문에 매도 타이밍을 놓친 고객들의 클레임이 심한 편”이라고 밝혔다. 그는 “진짜 부자들은 생각보다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하는데, 지난해 중반부터는 주택이나 아파트 투자에 아예 관심을 끊었다”며 “어느 정도 수익이 난 아파트는 팔고, 펀드를 환매하는 등 현금 비중을 늘리는 모습이 뚜렷했다”고 말했다.

정보에 빠른 여의도 증권가 분위기도 고려해야 한다. 한 애널리스트는 “올 들어 아파트를 파는 애널들의 소식이 속속 들렸다”며 “여의도 쪽에서는 부동산 장기침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골프회원권 폭락도 눈여겨봐야 한다. 최근 골프회원권 값은 끝모르게 추락 중이다. 올봄에 비해 평균 25% 떨어졌다.

고가 골프장의 경우 연초 대비 50%나 떨어졌다고 한다. 매수자가 없는데 법인은 물론 개인 고객까지 내다 팔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골프회원권 폭락이 의미를 갖는 것은, 일본의 경우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 골프회원권 값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9

경기침체 땐 아파트도 별수 없다

세계 경제가 대공황(Great Depressin)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한국 경제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9일 금리를 인하(0.25%포인트)했다. 10월 초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은 환율 폭등으로 향후 물가상승 압력이 더 거세졌음에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더 컸기 때문이다.

기업 자금사정은 악화 일로고 실적도 점차 나빠지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탄식이 쏟아지는 실정이다. 세계 경제가 악화되면서 한국 경제를 떠받치던 수출 시장도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오르지 않는 상황이 이어져 내수침체를 더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IMF는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유가 하락으로 잠잠해졌지만 본격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으로 갈 확률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문제는 암울한 경기의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투자심리가 다시 살아난다거나, 조만간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의 전망은 근거도 미약할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10

백약이 무효… 패닉 다음은 붕괴

지난 9월 1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지방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고 서울 인기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중소 건설업체의 잇따른 파산으로 부동산 거품이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부동산 거품 붕괴를 정확히 예견했던 앤디시에 전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부동산 폭락을 경고했다.

앤디시에는 “세계 경기 침체로 수출이 급감하고, 경상수지 적자가 늘며, 유동성 부족 사태가 오면 부동산 가격폭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지금까지는 은행의 대출 증가가 부동산 가격을 올렸지만 대출을 떠받쳤던 유동성이 위축되고 나면 부동산이 폭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부동산 버블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사실 버블 붕괴론은 2001년 집값이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계속돼 왔다. 하지만 최근처럼 힘을 받은 적은 없었다. 정부의 양도세·종부세 완화 방침과 그린벨트 해제 등 네 차례에 걸친 각종 부동산대책도 시장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시장은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에 이어 패닉 상태로 접어든 분위기다. 패닉 다음은 붕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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