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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직원 펀드 판매 상상도 못해”

“창구 직원 펀드 판매 상상도 못해”

‘반 토막 펀드’에서 도망치려는 심리는 투자 고수들로 가득 찬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투자정보 제공업체인 트림탭스는 9월에 미국인들이 펀드에서 빼낸 자금이 723억 달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식형 펀드가 435억 달러고 채권형이 288억 달러였다. 10월 첫 주에만 521억 달러가 펀드에서 빠져나갔다. 미국에서도 ‘펀드 런’은 문제다. 이코노미스트는 시티그룹 산하의 투자전문기업 스미스바니의 크리스토퍼 리 뉴욕본점 부사장 겸 CFP(국제공인재무설계사)와 전화 및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펀드 투자 문화를 알아봤다. 크리스토퍼 리 부사장은 1996년 뉴욕대에서 심리학과 동양학을 복수 전공하고 98년 뉴욕대 MBA인 스턴스쿨을 졸업했다. 레이몬드 제임스 파이낸셜 서비스에서 CFP로 출발한 그는 브랜치 매니저(지점장)를 거쳐 2000년부터 시티 스미스바니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기사는 그의 말을 재구성한 것이다.

나를 비롯해 미국의 모든 CFP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고객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주는 것과 위험내성(risk tolerance)을 키워주는 일이다.

위험내성은 모든 투자에 내포해 있는 리스크를 개인이 견뎌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말한다. 한창 일하고 있는 50대 투자자와 은퇴를 앞둔 60대 투자자가 같은 자산 포트폴리오와 위험내성을 지니고 있을 리 없기 때문에 모든 고객의 포트폴리오는 항상 독창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펀드를 선택하는 것도 투자자의 나이, 자산, 목적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의 펀드 투자자들도 현재 크게 실망한 상태다. 그러나 급증하고 있는 펀드 환매 붐을 펀드런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우지수는 1년 새 35~40%가량 빠져있지만 펀드의 목표수익률(즉 위험도)에 따라 손실률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그리고 중국 등 신흥시장에 투자한 펀드는 원금의 50~70%가 사라졌다.

이를 포함한 많은 주식형펀드 투자자들이 환매 후 미국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이동해 관망하려는 과정이다. 내 고객 중에도 펀드 때문에 실망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위험성을 인지한 상황에서 투자했기 때문에 마찰은 전혀 없다. 위험을 피하고 싶은 고객은 이미 채권형 펀드에 투자하도록 권유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처럼 투자자들이 펀드운용사를 고소하는 일은 늘 있다. 하지만 집단소송은 드물고 대부분 개인적인 민사소송이다. 일례로 최근 60대 투자자가 투자금액의 80%를 날리자 자신에게 맞지 않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권했다며 한 자산운용사를 고소한 일이 있다. 이런 일이 즐비했던 때는 2000~2002년이다.

IT 버블로 많은 투자자들이 자산 손실을 입었다.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모든 자산운용사 직원은 고위험·고수익 펀드나 금융상품을 고객에게 권할 때 항상 이런 사실을 알리고 동의를 구하고 있다. 법으로도 반드시 위험을 고지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투자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고객이나 자산운용사 모두 ‘최적의(best) 펀드’를 찾지만 지난해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올해나 내년에도 수익률이 높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들은 투자자의 펀드 상품 구성을 고위험, 중위험, 저위험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규모도 달리하고 있다. 내 고객에게 펀드 하나에 전 재산을 넣으라는 얘기를 할 생각도 없고 어떤 투자자도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은행 창구직원(teller)이 펀드를 판다는 얘기는 상상도 안 가는 일이다. 미국은 일반 창구에서 펀드를 팔 수 없다. 자격증을 갖춘 사람만이 팔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고객도 일반 상업은행보다는 스미스바니, 찰스 슈왑 등 자산운용 전문회사를 선호한다. 미국의 펀드 문화라고 한다면 위기내성을 기르고 모든 투자를 최대한 분산하는 일의 반복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뮤추얼 펀드 가입 비율이 크게 늘어나긴 했지만 한 고객이 전 자산을 모두 뮤추얼 펀드에만 넣는 일은 거의 없다. ETF(상장지수펀드)나 위탁매매, 위임매매도 있고 헤지펀드를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직접 주식투자를 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알기로는 미국인의 절반가량은 주식에 직접투자를 하고 있다.

일반적인 미국인이라면 먼저 퇴직연금계좌인 401K를 들거나 예금을 먼저 시작한다. 그 후에 주식 투자를 시작하고 펀드에 투자해 종자돈을 모아 부동산에 넣는다. 많은 한국인이 주식시장을 도박처럼 생각하거나 굉장히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생각 자체가 투자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다는 증거다.

투자란 수익이라는 기회와 손실이라는 위기가 합쳐진 것이다. 내가 고객에게 늘 강조하는 투자의 팁은 기본적이고 간단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지키기 어려운 일이다.
스미스바니와 함께 펀드 판매로 명성을 쌓아온 투자회사 찰스 슈왑의 뉴욕 월스트리트 지점.

▶투자 리스크가 있다는 점은 펀드, 주식, 부동산 모두에 해당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 목표에 맞는 분산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싸게 사 비싸게 판다는 것이 절대명제다. 하지만 대부분 거꾸로 한다. 신흥시장펀드가 한창 잘나갈 때 들어간 사람들은 현재 70%까지 손실을 보고 있다.

▶모든 투자에는 반드시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학자금 마련이 목표라면 그에 맞는 포트폴리오는 따로 있다. 목적 없는 투자는 투기에 불과하다.

미국인들의 투자 습관
단기 실적보다 수수료에 더 민감

뮤추얼 펀드는 1924년 뉴욕 출생이다. 미국자산운용협회(ICI) 조사에 따르면 미 펀드 수탁액은 87년 8189억 달러에서 20년 만에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여 2007년 현재 12조201억 달러가 됐다.

금액으로 봤을 때 한국은 여전히 법인 투자자가 주 고객이지만 미국은 가계투자자가 전체의 86%를 차지한다. 미국 전체 가구의 44%가 하나 이상의 펀드에 투자했다. 뉴욕의 한 CFP는 “왜 (퇴직연금인) 401K를 연기금이나 직접투자로 잡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개인과 회사가 자율적으로 목돈을 만들어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개인 펀드 투자가 아니라는 이유다. 자신의 퇴직연금 위험도를 고를 수는 있지만 판매채널 자체가 다르다는 것.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다.

ICI의 2006년 설문 결과 미국의 투자자들은 펀드의 과거 운용 성적보다 수수료와 비용을 먼저 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은 ICI 홈페이지에서 737 명의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시행됐다.

미국 투자자들은 펀드에 투자할 때 ▶수수료 등 펀드 가입 비용(74%, 이하 복수응답) ▶과거 운용실적(69%) ▶투자 위험도(61%) ▶주가지수와 수익률 비교(55%) 순으로 확인한다고 응답했다. 50%가 넘는 응답률을 보인 항목은 ▶펀드의 순자산 가치 측정 ▶투자 종목 확인 등이었다.

같은 시기 유사한 설문을 진행한 한국의 한 업체 응답항목은 미국과 비슷했지만 첫 번째 고려사항인 과거 운용실적 응답률이 17%(복수응답)에 불과해 관심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ICI는 또 미국 투자자의 펀드 가입 경로 설문결과 응답자의 70%가 PB나 CFP 등 전문가를 통해서라고 답했다. 미국은 법적으로 자격증이 없는 은행 창구 직원은 펀드를 팔 수 없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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