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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세금 환급 大亂에 국민은 ‘헷갈려’

초유의 세금 환급 大亂에 국민은 ‘헷갈려’

대한민국 세정(稅政)에서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받기만 하던 국가가 이번에는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실상은 지난 정권과 생각을 달리한 이번 정권에서 세금을 감면하거나 환급해 준다는 얘기다. 종부세·유가환급금·재산세 등이 대상이다. 돌려받는 사람만 연 인원 3000만 명에 달한다. 그야말로 세금 대란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세금을 돌려받아야 할 사람도, 일선 세무서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다. 어쨌든 종부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일부 위헌판결을 계기로 세금 환급 전쟁은 시작됐다. 하지만 납세자 중에는 어디서, 어떻게 돌려받을지 막막한 사람이 많다. 같이 세금을 냈어도 누구는 받을 수 있고, 누구는 못 받기도 한다. 왜 이런 대란이 일어나는지, 내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얼마인지,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이코노미스트가 알아봤다.

국세청은 지난 11월 19일 종합부동산세 환급대상자 19만2000여 명에게 약식 경정청구서(更正請求書·잘못 낸 세금을 돌려 달라고 세무서에 신고하는 것)를 발송했다.

한마디로 19만2000여 명에게 세금을 돌려줄 테니 신청하라는 얘기다. 종부세에 대한 찬반을 떠나 가뜩이나 연말에 업무가 몰리는 세무서로서는 종부세 환급으로 일감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종부세는 그래도 전국의 몇몇 세무서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재산세 과표적용률 인하와 관련된 지방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재산세도 환급 러시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른 혼란도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에서 밝힌 대로 재산세 과표적용률을 지난해 수준(공시가격의 50%)으로 동결할 경우 1370만 명가량이 세금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세금은 아니지만 정부에서 과도하게 오른 유가와 서민경기 침체를 감안해 서민층과 자영업자들에게 주기로 한 유가환급금(대상자 약 1700만 명)까지 보탤 경우 연말 연초 공공기관은 ‘환급 업무’로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

또 근로장려세제 도입으로 내년부터 극빈층과 차상위계층은 연간 최대 80만원까지 지원을 받게 된다. 이 외에도 각종 명목의 세금이 환급되거나 감면된다. 바야흐로 ‘환급의 시대’다. 물론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 세금을 환급해 준다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막상 돈을 준다고 해도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막막하다.

국세인 종부세는 세무서에서 담당하고, 지방세인 재산세는 시·군·구청에서 맡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막상 종부세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일부 위헌판결을 내리기 전후 서울시 지방세를 담당하는 강남구, 서초구 등에 국세인 종부세 환급에 관한 문의가 하루 수십 통씩 걸려왔다.


구청에 국세인 종부세 문의 쇄도


강남구청 세무과의 한 직원은 “종부세는 구청이 아니라 세무서 담당이라고 알려드려도 ‘왜 전화를 이리저리 넘기느냐’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환급금인 유가환급금은 국세청에서 신청을 받아 지급하고 있다. 어떤 세금을 어디서 돌려받아야 하는지도 혼란스럽지만 그 세금을 돌려받거나 감면 받기 위해 어떤 자격과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는 더 오리무중이다.

얼마 안 되는 유가환급금을 위해 세무사나 법무사를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넋 놓고 기다리다간 나라에서 주는 돈도 못 받는 ‘바보’가 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가장 가까운 구청이나 동사무소가 요즘 별안간 바빠졌다. 종로구청 민원실의 한 직원은 “11월로 접어들면서 유가환급금 관련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유가환급금은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신청 받지만 구청이 문의 창구처럼 돼 버렸다. 세금을 돌려주는 창구도 복잡하지만 더 문제는 이번 정책이 급하게 추진되다 보니 환급의 기준과 범위가 확정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일단 종부세는 세대별 합산이 위헌으로 결정남에 따라 부부 공동명의로 고가주택을 가지고 있는 가구는 환급이 확정됐다.

문제는 자진납부 여부다. 경정청구가 원래 자진납부한 사람들만 대상이 되기 때문에 고지서를 받고 세금을 낸 사람들은 해당이 안 된다. 반면 고지서를 받고도 세금을 내지 않고 불복해 이의신청을 한 사람들은 이번 위헌판결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어진다. 이 때문에 한편에서는 ‘법대로 따른 사람은 손해를 보고 버티는 사람은 이익을 본다’는 불만도 있다.

정부의 공식 입장은 자진신고자에게만 환급해 준다는 것이지만 국세의 특성상 추후 경정청구가 가능해 여전히 환급과 관련된 불씨는 남아있다. 더욱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1주택자 종부세는 내년에 사실상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다. 법리적으로는 새로운 법이 입법될 때까지는 기존법이 효력을 발생하지만 곧 폐기될 법에 근거한 세금을 낼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유가환급금도 환급이 이미 시작됐지만 한편에선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대상자만 약 1700만 명에 환급 규모가 3조2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액수인 만큼 잡음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소득신고가 부정확한 일부 자영업자와 의사, 변호사 같은 일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까지 환급 대상에 포함되면서 비난 여론이 높다.

반면 실제 소득증빙이 없는 노점상이나 일용직 등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이 가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있다. 정부도 뒤늦게 이런 점을 파악해 영세 자영업자뿐 아니라 여기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에게도 유가환급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다 보니 이미 유가환급금이 지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대상자들이 계속 생기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머지않아 유가환급금 지급과 관련된 비리나 부정이 드러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조세 저항 확산될 우려도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여당은 재산세와 관련된 지방세법 개정안도 추진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과표적용률을 지난해와 같은 50%로 동결하고 세부담 상한선을 150%에서 125%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재산세 개편과 관련해 “이미 올해(재산세) 고지분이 다 나갔기 때문에 올해 납부분은 소급 적용해 나중에 환급하겠다”고 밝혔다.

이 말대로 된다면 내년에는 다시 재산세 환급 러시가 일어날 전망이다. 유가환급금, 재산세, 종부세를 합치면 국가로부터 돈을 돌려받는 사람이 연 인원 3000만 명을 넘어선다.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은 대부분 대상이 되는 셈이다. 이 외에도 11월 20일 현재 국회에 제출된 감세 관련 세법 개정안은 모두 63개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소득세법 개정안이 19개로 가장 많고,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도 11개 제출돼 있다. 지방세법 개정안(9개), 부가가치세법 개정안(7개) 등도 주요 감세법안이다. 내용별로는 소득공제 확대(소득세법, 부가가치세법), 양도소득세 인하(소득세법), 법인세 인하(법인세법), 재산세 인하(지방세법)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런 법들이 정부 뜻대로 쉽게 통과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미 종부세 논란에서 봤듯 이를 두고 여의도에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감세를 기본 목표로 하는 현 정권에 대해 야당은 증세 또는 부자들의 세금 감면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통에도 불구하고 이들 감세 관련 법이 통과된다면 이후 정부는 각종 소송이나 민원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감세 관련 법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진납세를 하는 납세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종부세법 개정에서 보듯 고지서에 의해 순순히 납세한 사람은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낮고 이의신청, 행정소송 등으로 납세를 미룰 경우 오히려 세금을 안 내도 되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부터 정권의 성향에 따라 세제가 순식간에 확확 바뀌면서 국민의 납세의식이 떨어지는 점은 큰 문제다. 당장 헌법재판소가 내년 말까지 거주목적 1주택자의 종부세 부과 효력을 인정했지만 내년은 물론이고 올해부터 거주목적 1주택자들의 강력한 조세 저항이 예상된다.

국가 조직을 운영하는 기본이 세수(稅收)라는 점을 감안할 때 납세의식이 약해질 경우 국가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 서울시립대 박훈 세무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과도한 종부세를 낮추는 정상화 과정이라고 하지만 변동이 너무 심해 국민이 세제 안정성을 믿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념을 떠나 세제와 세정은 안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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