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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은 돈도 된다

착한 일은 돈도 된다

사회적기업은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번 돈은 일부나 전액을 좋은 일에 기부한다. 많은 사회적기업이 생겨나 이런 선순환을 이룬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진 곳이 될 것이다. 국내외에서 성공을 일군 사회적기업의 사례를 살펴본다.

경기도 고양에서 운영되는 사회적기업 위캔의 작업장. 장애인을 고용해 유기농 쿠키를 굽는다.

‘테레사 수녀의 따뜻한 마음과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치열한 경영 전략으로 운영되는 기업.’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

‘사회적 기업가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잡아주거나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고기 잡는 산업을 혁명적으로 바꾸기 위해 매진한다.’

사회적기업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적기업은 ‘좋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기업’이다. 그런데 사회적기업을 설명하는 말이 위와 같이 여러 갈래로 나뉜다는 건, 사회적기업이라는 기치 아래 넓은 스펙트럼이 펼쳐져 있음을 반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9년에 낸 보고서에서 사회적기업을 이렇게 규정했다.

“기업적 전략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되 공익을 추구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경제적·사회적 목적을 이루고자 하며, 사회적 소외와 실업 문제에 대해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모든 민간 활동.” 유기농법을 통한 농작물 재배처럼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사회적기업이 있다면, 다른 기업에서 생산하는 것과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취약 계층을 고용해 생산·제공한다는 점이 특징인 사회적기업이 있다.

아예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안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세운 사회적기업도 나온다. 일반 기업으로 하여금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이윤의 일부를 내놓도록 하는 일도 넓게 보면 사회적기업 활동에 포함된다.



- 명사가 앞장서면 손님이 모인다 = 지난 9월에 타계한 영화배우 폴 뉴먼은 사회적 사업가로도 명망을 쌓았다. 그는 인공 조미료나 방부제를 넣지 않은 친환경 샐러드 드레싱을 제조겿퓔탭求?뉴먼스 오운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뉴먼스 오운은 이익의 100%를 공익적 목적에 사용한다.

설립 이래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은 모두 2억5000만 달러. 뉴먼스 오운에서 지원받는 곳은 전 세계에 걸쳐 1000곳에 이른다. 사업은 뉴먼이 친구들에게 나눠주던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비롯됐다. 뉴먼은 크리스마스 때 집에서 직접 만든 샐러드 드레싱을 선물했다. 샐러드 드레싱을 더 달라는 친구들이 많았다.

반응이 좋자 그는 친구 한 명과 함께 82년에 샐러드 드레싱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뉴먼은 상업적인 일에 자신의 얼굴을 사용하는 걸 꺼렸다. 그러나 동료는 “라벨에 자네 얼굴을 넣지 않는다면 드레싱을 단 한 병도 팔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먼은 이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얼굴을 라벨에 사용하도록 했다.

대신 모든 이익은 자선사업에 사용하기로 했다. 록밴드 U2의 보컬 보노는 대기업 경영진들에게 전화해 에이즈 퇴치기금에 기부하는 RED 캠페인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했다. 보노가 나서자 여러 기업이 호응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애플, 컨버스, 델, 엠포리오 아르마니, 갭, 마이크로소프트 등이었다.

이들은 캠페인에 참여한다는 표시로 상표의 오른편 위에 RED 마크를 붙였다. 2006년 초 보노가 다보스 포럼에서 RED 브랜드를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이 캠페인은 1억 달러가 넘는 기금을 조성했다. 이 기금 덕분에 저개발국의 8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에이즈 약을 제공받았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라민은행 창립자 무하마드 유누스



- 종잣돈을 빌려줍니다 =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은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가 2006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그라민은행은 잘 알려진 대로 빈민, 특히 생계를 짊어진 여성에게 보증 없이 소액을 대출해 줬다.

그라민은행의 무보증 소액 대출은 ‘마이크로 크레딧’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에 확산됐다. 마이크로 크레딧 모델은 여러 갈래로 진화 중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과 사회적 투자자를 연결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 키바(www.kiva.org)가 그중 하나다.

2005년에 설립된 키바를 통해 사업 자금을 지원받은 사람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 40여 개국 1800명, 대출 금액은 1300만 달러에 이른다.

투자한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은 13만 명. 한 사람당 평균 100달러를 빌려준 것이다. 키바를 통한 대출엔 이자가 붙지 않는다. 투자자는 원금만 돌려받는다. 지구촌의 누군가를 돕는다는 보람을 이자로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베이는 지난해 마이크로 플레이스(www.microplace.com)라는 이름으로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시작했다.

마이크로 플레이스도 키바처럼 사업자가 필요로 하는 자본을 담보 없이 대출해 준다. 다만 키바와 달리 투자자에게 만기 때 원금과 함께 연 1.5~3%의 이자를 얹어 준다. 마이크로 플레이스 사이트에서 투자를 기다리는 자영업자는 지역, 가난한 정도, 성별, 상환 이자율 등에 따라 분류돼 있다. 투자자는 분류 항목을 여럿 선택해 투자 대상을 좁힌 뒤 누구에게 돈을 빌려줄지 결정하면 된다.



- ‘창조적 자본주의’ 개척자들 = 빌 게이츠는 올해 초 다보스 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란 개념을 내놓았다. 그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통해 시장의 힘이 적용되는 영역을 현재 시장에서 소외된 계층에까지 확대함으로써 불평등이 해소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빌 게이츠가 제시한 방법 중 하나가 기업이 저소득 계층에 맞춰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는 하위 소득 계층에서 사업 기회를 잘 포착하는 기업은 큰 이윤을 거둘 뿐 아니라 저소득 계층에 큰 효용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그라민은행은 창조적 자본주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라민은행보다 더 돋보이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성공 사례가 그라민폰이다. 그라민폰 역시 무하마드 유누스가 설립했다.

이 사회적기업은 그라민은행의 대출 시스템에 빈민층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접목한 것이었다. 사업 모델은 이렇다. 그라민은행은 사업할 의욕이 있는 동네 아줌마에게 돈을 빌려줘 휴대전화를 구입하게 한다. 휴대전화 아줌마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마을 사람들에게 ‘공중 휴대전화’로 제공하고 이용 시간에 따라 요금을 받는다.

그라민은행이 97년 서비스에 들어간 그라민폰은 이제 가입자 1700만 명이 넘는 방글라데시 최대 휴대전화 사업자가 됐다. 휴대전화 아줌마는 가입자 수가 전체의 약 3%에 불과하지만 서비스 이용 요금에서는 전체의 19%를 기여한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농민들을 겨냥해 저렴한 관개 펌프를 개발한 킥스타트 역시 창조적 자본주의를 구현한 회사로 평가된다.

킥스타트가 발로 밟아서 작동하는 관개 펌프를 내놓기 전까지 아프리카 농민들은 하루 종일 물 웅덩이를 오가며 양동이로 물을 길어왔다. 킥스타트의 관개 펌프 머니메이커를 장만한 농민들은 물을 주는 데 들이던 시간을 확 줄일 수 있었다. 대신 작물 재배에 더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자 작물 수확량이 급증했다.




-‘사회적 벤처캐피털’ 활발 = 벤처캐피털은 벤처 기업에 투자한다. 창업 단계의 사회적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은 ‘사회적 벤처캐피털’이라고 불린다. 대표적인 사회적 벤처캐피털로는 아쇼카를 들 수 있다. 아쇼카는 80년에 미국 환경보호국(EPA) 부국장으로 일한 빌 드레이튼이 설립됐다.

드레이튼은 오늘날 현실에 적용된 탄소배출권 개념을 EPA 부국장이던 79년에 주창한 인물이다. 출범할 때 5만 달러였던 아쇼카의 기금은 2007년 말 현재 3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아쇼카는 81년에 인도의 사회적 기업가를 첫 ‘아쇼카 펠로’로 선정한 이래 지금까지 60개 국에서 사회적 기업가 1800명을 발굴해 지원했다. 자금 지원 외에 경영 전략과 재무에 관한 자문 서비스를 제공했다. 아쇼카는 세계 25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이들 지부에서 160명의 활동가가 상근한다.

에코잉 그린은 87년에 사모펀드 제너럴 애틀랜틱이 기금을 출연해 만든 사회적 벤처캐피털. 에코잉 그린은 매년 20개 안팎의 사회적 벤처를 펠로로 선정한다. 지난 20년 동안 40개국에서 450개의 사회적기업을 발굴해 25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밖에 스콜재단이 사회적기업을 적극적으로 북돋워 주는 사회적 벤처캐피털로 꼽힌다.



- 아름다운 기업들 = 국내에서 사회적기업은 취약 계층에 자선을 베푸는 형태로 2000년대부터 등장했다. 이 무렵 정부는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찾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심상달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사회적기업이 법제화되기 전까지는 사회적기업의 규모는 물론 이에 대한 지원 역시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은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에서는 사회적기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취약 계층에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겿퓔?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

정부는 노동부 장관에게서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은 기업에 경영 지원, 시설비 지원, 공공기관 우선 구매, 조세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현재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은 곳은 154개. 심상달 박사는 154개 사회적기업을 일자리 제공형 42개, 사회 서비스 제공형 16개, 혼합형 40개, 기타형 22개로 분류했다.

국내 사회적기업은 대개 취약 계층에 일자리나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내 사회적기업 가운데 가장 활발한 곳이 아름다운가게다. 아름다운가게는 기증받은 물품을 매장에서 판매하고 여기서 거둔 이익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2002년에 1호점인 서울 안국점을 연 이후 현재 전국에서 8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의 매출은 2006년 106억 원에서 지난해 132억 원으로 증가했다. 매출은 판매 수입에 기금과 협찬금 수입을 합친 금액. 순이익은 9억 원에서 18억 원으로 늘었다. 아름다운가게는 이익 전액을 공익사업과 자선에 사용한다. 심 박사는 아름다운가게의 성공 요인으로 다각적인 파트너십 구축, 적극적인 홍보, 철저한 투명성을 든다.

먼저 아름다운가게는 자원봉사자, 기업, 언론, 비정부기구(NGO) 등과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맺고 활용했다. 그리고 소외된 이웃과 아름다운가게에 대한 홍보를 활발히 벌였다. 또한 돈이 들고 나가는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후원자들에게 믿음을 줬다. 아름다운가게는 매달 각 매장의 판매 수입과 기부금 사용 내역 등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참고 자료 : 유병선 <보노보 혁명> , 심상달 <사회적기업의 활성화 방안> , 정선희 <사회적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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